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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생협운동과 사회운동의 틈에서 청년운동의 미래를 생각하다
2017-01-18 12:24:00

 

생협운동과 사회운동의 틈에서 청년운동의 미래를 생각하다

 

세토 다이사쿠 (瀬戸大作, (일본) 팔시스템연합회 지역지원본부 부본부장)

번역 이미란(한살림성남용인 활동가)

 

 

필자는 팔시스템 생활협동조합연합회에서 사회운동에 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운동을 추진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특히 2008년 송년파견촌을 통해 가시화된 빈곤 문제,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관련 피해자 구제, 방사성 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일 등 생활협동조합의 기본인 ‘살리는 협동’에 힘을 쏟고 있다. 아래 내용과 같이 일본 생협운동의 아버지인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의 ‘협동조합의 중심사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 이익공락利益共. : 생활을 향상시키는 이익을 나눔으로써 풍요로워진다.

. 인격경제人格.. : 부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인간을 존중하는 경제사회를 만든다.

. 자본협동資本協同 : 노동으로 번 돈을 출자하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자본으로 활용한다.

. 비착취非搾取 :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익을 나누는 사회를 만든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협동조합의 중심사상’을 실현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일본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사업 규모가 크게 발전해왔지만, 사회적 과제 해결에 뛰어든 NPO나 시민단체는 특히 자치조직 간 끈이 약한 ‘분산고립형’으로 되어 있어 네트워크 연계가 부족한 상태이다. 이 글에서는 일본에서 ‘사회연대경제’ 구축의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팔시스템 등 협동조합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청년들의 운동으로부터 성찰할 지점은 없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

 

청년과 노동조합, 생협의 보수화

 

일본 중의원衆議院에서는 현재 안전보장법제가 논의되고 있다. 또한 국제평화지원법안, 자위대법과 PKO 협력법 등 현행관련법 10개를 일괄 개정하는 ‘평화안전법제정비법안’까지 2개 법안을 7월까지 가결하려 하고 있다. 반면 오키나와沖.에서는 헤노코.野古 신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의 민심을 묵살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을 살리기는커녕 원전 사고 피해자 건강문제구제책 시행을 중단하고 주택 지원 또한 축소하고 있다.

 

‘빈곤의 연쇄’도 확대되고 있으며, 빈부격차 또한 계속 벌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9월의 생활보호수급세대는 161만 세대로 사상 최대인 한편, 1억 엔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부유층이 처음으로 100만 세대를 돌파했다. 평균소득의 절반을 밑도는 빈곤세대의 아동은 6명중 1명으로 어린이 빈곤율이 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2위이며, 대부분 모자 2명으로 이루어진 편부모세대의 빈곤율은 5%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증가 등이 빈곤의 연쇄를 낳고 있으며, 성인의 빈곤이 아동 빈곤과 청년 빈곤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어느 틈엔가 젊은이들에게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는 청년 중 절반 이상이 학자금 대출로 이자 부담을 겪고 있다.

 

아베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향한 강압정치나 원전 재가동 준비에 반대하며 수상관저 앞에서는 매일같이 시민들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주말에는 곳곳에서 집회가 열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수화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집회와 데모에 참여하지 않는다. 주요 노동조합의 다수는 원자력무라原子力村에 굴복하여 탈핵에 대한 의사 표현도 하지 않는다. 빈곤과 격차를 만드는 TPP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생명과 생활을 파괴하는 원자력 발전과 TPP에 대해 많은 생협들 또한 어떤 반대 의사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조와 생협 진영의 이러한 모습은 현재 일본 사회운동이 얼마나 약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빈곤퇴치운동을 하는 청년들

 

앞서 집회와 데모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적은 지금의 상황을 절망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노숙자 지원을 담당하는 시민활동의 많은 부분이 젊은이들의 힘으로 꾸려지고 있고, 네팔의 NGO 지원활동 보고회에도 젊은이들이 참가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빈곤 문제를 고민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립생활지원센터 ‘모야이’에서는 노숙자를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신주쿠 역 주변에서 아웃리치outreach(지역사회 봉사활동) 활동을, 화요일에는 사무소에서 정기상담회를 열고, 아파트 입주 시 연대보증과 생활재건을 위한 정보 제공, 생활보호자 신청 시 동행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무소 바로 근처에 ‘코모래비장’이라는 단독주택형 집이 있어 매주 토요일에 부담 없이 들러 자가 로스팅한 ‘코모래비 커피’를 마시거나 300엔짜리 점심을 먹으면서 장기나 바둑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야이를 설립한 것은 두 명의 뜻있는 젊은이였는데, 그중 한 명인 이나바 쯔요시.葉剛 씨는 신주쿠 옆 나카노中野 구에서 ‘도쿄 쯔꾸로이 펀드’를 설립, 비어 있는 빌딩을 개조해 8개의 방을 숙박시설로 제공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인 유아사 마코토湯.誠(현 호세이 대학 특임교수) 씨는 송년파견촌 촌장으로, 빈곤 문제를 사회에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1994년 2월 신주쿠 서쪽 출구 지하통로의 일부가 펜스로 봉쇄되고, 거기에 살고 있던 노숙자 열 명이 강제로 쫓겨난 적이 있었는데, 도청 바로 앞에 빈 상자로 만든 (노숙자들의) 집이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나바 씨는 그 일로 친구와 함께 신주쿠 현장에 들어가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정기적으로 야간 순찰과 식사 배급을 시작했다. 그 후 같은 시기에 시부야.谷에서 노숙자 생활지원 활동을 하고 있던 유아사 씨와 함께 ‘모야이’를 설립하게 되었다.

 

모든 사회 문제에서 그렇듯 빈곤 문제에서도 이른바 권력자들은 빈곤 당사자를 사회로부터 배제하여 빈곤을 보이지 않게 하려 하거나 빈곤을 당사자 본인의 책임으로 축소한다(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방사능 피해에 대한 국가의 대응도 같은 모양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빈곤 문제를 가시화하는 운동을 전개해 온 것이다. ‘모야이’를 중심으로 한 도쿄의 빈곤 퇴치 활동은 1990년대 20대의 젊은이가 진실을 마주하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2014년 ‘모야이’의 이사장은 이나바 씨에서 27세의 젊은이인 오니시 렌大西連 씨로 이어졌다. 이처럼 과감한 세대교체를 두고 이나바 씨는 “같은 사람이 오랜 기간 한 조직의 대표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설명했다. 필자는 그 외에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고 보는데, 첫째는 당사자인 젊은 세대가 운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NPO 등의 창업세대인 리더 자신이 스스로 졸업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오니시 씨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 커다란 좌절을 경험한 당사자이다. 아자부麻布고등학교라는 도쿄 최고 엘리트 고등학교 출신임에도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빈곤 문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친구의 권유로 신주쿠 식사배식에 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여파로 400명 정도가 식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노숙자는 목욕도 안하고, 빈병을 모으고, 말을 걸기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많지는 않았지만 여성도 있고,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그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다. 또 미디어 등을 통해 ‘송년파견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어떤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고, 어떤 사람이 상담하러 오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는 잘 몰랐다. 그때까지는 노숙자라고 하면 역에서 자는 걸까, 일은 안하는 걸까, 뭔지 잘 모르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사정을 들으며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친척 아저씨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내가 굉장히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노숙자들도 함께 밥을 짓거나 야간 순찰에 참가하고, 그중에는 지원단체의 사람도 있었으며, 이른바 전문직 종사자,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나도 밥을 나눠주고 야간 순찰을 하면서 ‘왜 이 사람은 계속 노숙자로 있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매주 상담, 의료, 관공서 업무 지원을 하고 있는데 왜 노숙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많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꼈다. 그리하여 신주쿠에서 월요일에 행해지던 생활보호자 신청에 동행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야이’의 오니시 씨뿐만 아니라, 현재 빈곤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단체 대부분은 20대 젊은이가 이사장으로 있거나 대표를 맡고 있다. 14살에 노숙자 문제를 알고, 19살에 오사카시기타大阪市北 구에 NPO법인 ‘Homedoor’를 설립한 가와구치 가나川口加奈 씨도 20대로서 취로지원사업으로 HUBchari(노숙자들의 공통의 특수기술인 자전거 수리를 활성화시킨 쉐어사이클), HUBgasa(버려진 비닐우산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판매사업) 사업을 젊은 여성의 감각으로 사업화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고교생을 ‘난민고교생’이라고 부르며 시부야를 중심으로 소녀들의 자립 지원을 하고 있는 여고생지원센터 콜라보Colabo 대표이사 니토 유메노仁藤 夢乃 씨도 20대이다.

 

니토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인터뷰에서 “가족과 사이가 나빴고, 학교도 싫어서 한 달에 25일 정도를 시부야 거리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모이는 것은 그런 친구들뿐이었다. 좁은 인간관계 안에서 희망이 전혀 없이 계속 죽고 싶은데, 죽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빈곤 문제에는 생활의 궁핍뿐 아니라 관계성의 빈곤도 있다. 니토 씨의 경우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에 고졸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 만난 것을 계기로 다른 세계를 알고 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역시 지금 관여하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안심하고 있을 장소와 여러 어른들과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한다. 니토 씨가 설립한 NPO법인 ‘콜라보Colabo’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든 소녀들이 의식주와 관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립되어 궁핍한 상태에 있는 10대 여자아이들에게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장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도록 자립 지원도 하고 있다. 집과 학교에서 머물 장소를 잃어버린 여자아이들은 ‘관계성의 빈곤’에 힘들어하고 있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른 채 스스로 포기하고, 점점 부정적 순환고리에 물리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특히 ‘관계성의 지원’ 측면에서 여자아이들이 여러 어른들과 만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밤거리를 돌며 헤매고 있는 10대 여자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상담하는 일 외에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SOS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출장상담도 하고 있다.

 

빈곤퇴치운동에 참여하는 이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자신의 경험과 상황에 따른 당사자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협 직원의 실상: 빈곤퇴치운동을 담당하는 청년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이미 여러 문헌을 통해 소개되었지만, 일본의 생협은 1970년대 후반부터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것을 지탱하게 한 것이 공동구매였다. 그러나 공동구매의 성장은 80년대 후반부터 둔화되었다. 주부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반의 구성 인원이 줄고, 반이 유지되지 않는 지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생협의 전국조직인 일본생활협동조합연합회는 점포 중심으로 전환했지만, 대부분의 점포는 적자경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공동구매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팔시스템의 전신이었던 지역 생협의 다수는 완고한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당시의 직원은 사회변혁을 꿈꾼 70년대의 안보 투쟁, 즉 전공투(全共闘,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의 약자) 출신의 활동가가 많았다. 국가와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본 결과, 다시 지역으로 돌아가서 지역의 당면 과제부터 새로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총괄적 결론이었다고 한다.

 

팔시스템의 전환점은 공동구매 대신 무점포사업으로서 개별 배송을 고안하고 실천한 것이었다. 이후 생협의 개별 배송사업 창업을 담당했던 것은 팔시스템의 창업자세대이다. 생산자와 제조처 개척, 산지직송 채소 매입, 소분 작업, 주문서 작성, 배송, 주문집계와 발주, 그리고 조합원 활동 등 거기에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합원과 지역의 소리를 듣는 창업자 정신이 있었다. 그 무렵에는 생협 직원을 전담 직원이라고 불렀다. 생협 활동과 사업 전반의 ‘현장’이 양립하여 항상 당사자 입장에서의 활동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개별 배송사업의 적극적인 확대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 속에서 ‘보통’의 존재로 자리 잡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반부터 많은 대학졸업생이 채용되기 시작하며 임금인사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또 상품부 및 물류 시스템 부문을 연합회 업무로 집중시키고 회원생협은 배송업무와 조합원 확대, 지역과 조합원 활동을 담당하는 등 연합회와 회원생협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 ‘혼자서 무엇이든지 한다’에서 ‘분업’으로 이행된 것이다.

 

개별 배송사업을 지탱한 또 하나의 요소는 운송회사에 배송을 위탁한 것이다. 운송회사의 배송 담당은 지정된 생협 유니폼을 입고 생협의 업무 매뉴얼에 기반해 배송뿐 아니라 조합원 응대, 조합원 확대 및 공제 영업도 담당하도록 했다.

 

생협 직원은 대졸자의 취직자리 중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과 안전한 식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등 생협 특유의 취직 동기에 대한 특징은 있지만, 취업으로서의 선택지인 것에는 다름이 없다. 또 한 가지의 지망 동기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다. 대졸자로 생협에 취직하여 4~5년간 현장에서 일하고 지역센터의 센터장을 목표로 하거나 본부 업무를 담당하는 등, 현장은 통과하는 지점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생협 직원이 지역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한편으로 생협이 대형화됨에 따라 ‘안전한 상품을 파는 조직’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어쩌면 생협 자체가 안전한 상품에 특화된 슈퍼마켓으로 전락하는 위험성을 늘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시되는 것이 생협 직원의 역할이며 문제의식이다. 자자체나 민간기업이 손을 대지 못하는 영역으로, 자신들의 삶에 있어 생활인으로서의 과제를 사업화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상을 구현해가는 것, 생협의 사회적 의미는 거기에 있다. 그런데 ‘현장성’을 잃은 직원이 ‘생활인의 과제를 사업화하는 일’이나 경제적 이유로 조합원이 되지 못하는 사회적 취약자 등 ‘당사자’의 존재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걱정을 또한 갖게 된다.

 

생협 직원을 다시 일으키는 힘 - ‘당사자성’을 되찾기

 

생협은 그동안 주로 활동단체가 기금을 조성하여 지원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이러한 차원에서 빈곤, 원전 사고 피해자 생활지원, 복지, 교육, 마을 만들기 등의 모든 과제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별 단체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노숙자 지원 현장에서, 지역의 거처 만들기의 현장에서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 현장에 직원을 계획적으로 관여하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도쿄 도 이나기.城 시에 위치한 팔시스템의 드라이SC에서는 센터의 공간을 취업 지원 사업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폐식용유 리사이클 사업이나 지역 사업소와의 협력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워커즈코프연합회와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생활의 궁핍 문제에 초점을 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함께 사업을 일으키고, 서로 의지하는 지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팔시스템에서는 이처럼 당사자와 함께 연대하며 순환사회를 만들기 위한 협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바이오디젤연료(BDF, Bio Diesel Fuel) 사업이나 삼림 사토야마里山 관련 사업으로 연계하고 젊은이 지원 거점부터 사회연대, 지역순환형 산업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시민 리사이클 사업에 빈곤 계층 및 사포스테 이용자, 장애인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직업 체험이나 중간 취업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른 사업소에서 이용자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도 하고 있으며, 간담회와 지역 이벤트, 행사 등을 통해 이러한 활동을 많이 알리려 하고 있다.

 

한편 야마나시山梨 현에 위치한 ‘NPO법인 푸드뱅크 야마나시’(전前 팔시스템 야마나시 이사장이었던 요네야마 케이코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일하고 있으며, 빈곤 가정을 대상으로 월 2회 식료품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식료품 지원 활동을 통해 빈곤을 눈에 보이게 가시화한 일은 특히 의미 있는 것으로 꼽을 수 있으며, 그 밖에도 자립 상담 지원사업, 취업준비 지원사업, 일시생활지원 위탁 사업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4월부터 발효된 ‘생활궁핍자자립지원법’에는 식료품 지원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으며, 조성금이나 지자체별 자금 지원이 끊기면서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푸드뱅크 야마나시의 2015년 수입 예산은 22,855,000엔으로, 2014년과 비교하면 ‘관계만들기’ 명목의 지원예산 2,000만 엔이 삭감되어 전체 금액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지자체마다 식자재 지원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푸드뱅크 야마나시도 그동안의 지원 사업 중 70%가 지속되지 못하는 처지다. 이로 인해 빈곤이 더욱 비非가시화되어 빈곤 가정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다.

 

팔시스템에서도 활동을 유지, 지속하기 위해 각 조직에 긴급지원을 요청함과 동시에 올여름부터는 월 1회 식료품과 생활용품 기부 활동을 시작한다. 당면한 문제는 식료품 구입을 위한 자금 지원이지만, 생협의 장점인 택배사업을 활용한 배송 지원도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젊은 층인 생협 직원을 활용하려고 한다. ‘돌봄 배송’을 통해 빈곤 당사자와 만나는 접촉면을 늘리고, 그 현장에서 느끼는 것을 소중히 여기게 할 것이다.

 

자본주의 상품유통경제 안에서 대형 유통 기업을 ‘태양’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만으로는 밤을 밝힐 수 없다. 태양이 비치는 곳에는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스스로 태양은 아니어도 태양의 밝은 빛을 반사해서 어둠에 어스름 빛을 비치는 달과 같은 존재, 그것이 생협의 사업이어야 한다. 생협은 달이 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생협 직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그 시작점은 ‘당사자성’을 되찾는 것으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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