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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통합 경제학
2017-02-01 11:21:00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통합 경제학

-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김영사, 2015.

 

김용휘 (한양대 강의교수,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 변함없이 존재하는 진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만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진리이며, 자기 자신과 별개가 아니면서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참여한다는 느낌이다.”

 

 

피케티 vs 아이젠스타인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신음과 절규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1% 부자들의 독점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1%가 전체 부의 99%를 차지하고, 99%가 1%의 부를 가지고 다투는 꼴이다. 그러니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삶은 갈수록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온갖 ‘갑질’의 형태로, 비정규직 차별과 청년실업의 증가로, 낮은 최저임금, 복지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들과 여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이는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률로 나타나 생명이 철저히 외면되는 현실을 낳고 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막대한 부의 옆에서는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충고를 외면하고 부자들의 부를 더 증대시켜주는 반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국가의 ‘재분배’ 역할을 여전히 방기하고 있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출판계를 강타한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선진국의 소득불평등 심화와 그 원인을 엄청난 통계 자료를 인용하여 밝힘으로써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철저히 부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했음을 만천하에 밝혔다. 하지만 이 책은 애초에 대안 제시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기에 대안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던 차에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제안하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 얼마 전 번역되어 나왔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가 그것이다.

 

아이젠스타인은 전문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이자 문명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어 통역사, 비즈니스 컨설턴트, 요가 강사를 거쳐 현재 고다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07년 『인류의 도약』이라는 책으로 세계 석학들과 지성계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천재 통합사상가로 발돋움했으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본, 경제, 사회, 문명, 의식, 인류의 문화적 진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러므로 그는 경제학이라는 분과학문의 좁은 틀에 갇혀서 현미경식으로 ‘경제’를 보지 않고, 주변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통합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피케티와 달리 그가 가진 큰 장점이다. 역사적으로도 경제학의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오히려 경제학자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곤경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돈이 돈을 무한 증식시키는 화폐금융시스템 자체에서 찾는다. 자연파괴, 전쟁, 빈곤, 실업 등의 모든 문제가 ‘무한히 자기증식하는 돈’, ‘상품으로 매매되는 돈’, 특히 ‘높은 이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돈의 특징으로 인해 지금의 시스템은 끝없는 성장을 강요하며 탐욕과 무한경쟁과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생태계와 공동체적 관계 등 ‘공유자원’의 약탈을 필연적으로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거래되는 돈의 98퍼센트가 헤지펀드, 금융파생상품 등과 같은 투기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실물경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제 위기에 대한 습관적인 첫 대응책은 더 많은 돈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 즉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뭐든 바꾸는 일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젠스타인은 후손들이 살아갈 지속가능한 문명을 위해서는 모든 문제의 근본인 ‘돈’, 귀중한 자연과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끊임없이 자기증식하는 돈을 전제로 한 현대의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방식은 돈과 인간의 경제를 우주 만물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신성’에는 고유성과 관계성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이 신성하다는 것은 그것이 그 자체로 유일하고 고유성을 가질 때, 그리고 그것이 나와의 특별한 관계, 또는 더 큰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신성한 관계를 잃어버림으로써 모든 관계를 물화物化시키고 양量으로만 규정해 왔다. 삶의 질적이고 신성한 측면을 잃어버림으로써 영혼의 피폐와 근원적 외로움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그 결핍을 다시 탐욕으로 채워왔다.

 

아이젠스타인은 이런 신성함을 다시 회복하자고 한다. 그것은 자연 속에 명백히 존재하는 경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협력과 공생과 전체성을 우위에 두고 자연을 선물의 그물망으로 이해하던 토착적 사고방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일곱 가지 대안

 

아이젠스타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역행 과정을 시작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사회에서 선물과 필요를 이어주면서 발생했던 돈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여 상품과 서비스 영역에 있던 것들을 선물, 호혜, 자급자족, 공유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제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면 가치가 떨어지는 ‘역이자 화폐’, 각종 불로소득을 없애는 경제적 지대의 제거, 생태계를 비롯한 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과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지역 경제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경제·통화의 지역화, 또한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배당금(기본소득), 그리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는 P2P 경제 등을 통해 구체적이면서도 점진적인 방식으로 제기하고 있다.

 

대안1. 역이자 화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곤경의 근본 원인을 ‘무한히 자기증식하는 돈’, ‘상품으로 매매되는 돈’, ‘높은 이자’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에 첫 번째 방안은 ‘역이자 화폐’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실비오 게젤의 ‘노화하는 돈’의 아이디어를 계승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가치가 줄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쌓아둘 수 없고, 그 자체의 자기증식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로써 성장은 없지만 부의 공정한 분배가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이 사라져 더 이상 단기적 수익에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이 소멸을 거쳐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구현한다. 돈은 더 이상 자연 법칙의 예외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연방준비은행이 지급준비금에 역이자를 부과하거나 소멸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어느 나라든 그런 권한은 입법기관에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수단이 효력을 잃어가면서 이제 이 대안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담론화 할 때가 되었다.

 

대안2. 경제적 지대의 제거, 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 사회에 기여하는 일은 하지 않고 단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불로소득의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부의 양극화는 불가피하다. 이에 대한 이 책의 해법은 토지에 단일세를 부과하자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의 획기적 주장을 계승하되, 다른 많은 공유자원이 사유재산으로 바뀐 지금은 이것을 확대해서 토지 이외에도 전자기스펙트럼, 채굴권, 매장 석유, 특허권 등 수많은 형태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경제적 지대를 세금을 통해서 환수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재산은 인류에 앞서 존재했거나 인류 공동의 산물이기에, 그것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한 어떤 개인도 사적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공유자원에서 비롯된 것은 무엇이든 요금이나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지적재산은 저작권과 특허권의 기간을 줄임으로써 공유자원으로 되돌릴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지적재산을 낳은 문화적 모체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유전자, 전자기스펙트럼, 인터넷 같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모두가 공유하면서, 사회적, 환경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사용권을 배분해주어야 한다.

 

세금체제에 있어서는 재산과 자원에 대한 불로소득에만 과세함으로써 노동에 의한 과세, 즉 판매세와 소득세는 줄이거나 사라지게 한다. 이로써 자원을 보존하게 만드는 강력한 경제적 유인책이 생겨날 것이다. 경제적 지대는 단지 먼저 소유한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기에, 경제적 지대를 없애면 보다 공정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적재산 분야에서도 공유가 확대되고 예술적·지적 창작물의 ‘원료’가 사유재산의 제약을 덜 받게 되면서, 수익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대안3.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지금은 대수층을 고갈시키고도 사회에 그 비용을 물지 않듯이, 폐기물을 흡수·처리하고 탄소를 순환시키는 지구의 수용능력, 유독성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인체의 수용능력을 고갈시켜도 그 비용은 물지 않는다. 오염과 그 밖의 환경 파괴로 인한 비용은 대개 오염 유발자가 아닌 사회 전체와 미래 세대가 치르게 돼 있다. 이는 명백히 부당한 일일뿐 아니라, 계속되는 환경 파괴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오염 및 고갈에 대한 비용을 당사자가 직접 지불하도록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런 조치들은 환경과 경제의 대립관계를 해소하는 동시에,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창조적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사업상 최선의 결정이 환경적으로도 최선의 결정이 될 것이다. 보존, 오염 방지, 유해 폐기물 정화를 위해 헌신하는 새로운 거대 산업들이 등장하고, 쓰레기 제로 생산이 일반화될 것이다. 높은 원료비용은 생산의 소형화와 효율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대안4. 경제, 통화의 지역화

 

전 세계적인 공동체의 와해 속에서, 우리는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존하고 살아가는 지역경제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단일문화 속에 익명으로 표류하기보다 사람들과 결속되고 공간과 결속되기를 원한다. 게다가 글로벌 생산 체제는 지역들 간의 경쟁을 부추겨, 임금과 환경규제 면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하게 만들고 있다. 생산 및 거래가 지역화되면, 우리의 행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더 분명해져서 우리의 타고난 공감능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많은 자연, 사회, 문화적 공유자원이 본래 지역적, 생태지역적이므로, 공유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 시스템은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주권 또한 자연스럽게 강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을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키운 것들로 조달하고, 주택과 수많은 대량생산품도 지역 재료를 사용한다면 소규모로 생산되고 재활용될 것이다.

 

대안5. 사회배당금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기술 발전 덕분에, 삶에 필요한 것 중 측정 가능한 것의 생산은 대단히 쉬워졌다. 이런 기술 발전은 선조들이 준 선물이자 인류 공동의 재산이므로, 누구나 공유할 자격이 있다.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자연이라는 공동의 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이미 우리 것인 공동의 부를 얻기 위해 일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면, 경제적 지대에 대한 배상, 환경오염에 대한 과세 등(2, 3번 참조)으로 얻는 수익을 모든 시민들에게 사회배당금으로 지급하면 된다. 사회배당금은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디플레이션 위기를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배당금은 생계에 꼭 필요한 것들을 해결할 만한 수준으로 지급되는 것이 이상적이며, 그 이상의 돈을 벌고자 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이다. 사회배당금은 사람들이 생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일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어서 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생활은 더 이상 생계를 잇기 위한 생활이 아닐 것이다. 생계 압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영감이 이끄는 방향에 사용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분리’로 황폐화된 사회와 지구를 치유하는 데 재능을 쏟게 될 것이다.

 

대안6. 경제 역성장

 

수 세기 동안 방적기에서 디지털 컴퓨터에 이르는 노동력 절감 장치들이 발명될 때마다, 우리는 일을 줄이기보다 소비를 늘리는 쪽을 택해왔다. 화폐 시스템에 의해 강요된 이런 선택은 사회자본, 자연자본의 고갈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이제 소비를 늘리는 선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무위험 이자를 추구하는 동력이 사라지면, 경제 성장이 있어야 자본의 흐름이 촉진되는 시대도 끝나고 역성장 경제가 실현 가능해진다. 기술 발전은 계속되고, 우리는 일을 줄이는 선택, 더 정확히 말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빈곤층과 중산층은 지금보다 풍족함을 누리며, 역성장 경제인데도 경제가 성장하는 듯한 효과를 느낄 것이다. 보통은 성장 중심의 사업 투자에 의해 가능하던 임금 상승과 고용 확대의 혜택이 정상상태 경제 혹은 역성장 경제에서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화폐 영역은 위축되고 선물, 자원봉사, 여가, 측정 불가능한 것들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사람들은 비경제적인 활동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될 것이다. 영상, 음악, 비디오, 뉴스, 책 등 디지털 콘텐츠의 비용제로화 추세도 계속될 것이다. 자원 기반의 생산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겠지만, 계속되는 기술 발전 덕분에 인적 비용은 줄어, 많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더 많이 나눠 쓰고, 임대가 줄어드는 대신 더 많이 빌려주며, 판매가 줄어드는 대신 더 많이 베풀게 될 것이다. 이 모두가 역성장 경제의 반영이자, 역성장 경제를 앞당기는 길이다.

 

대안7. 선물 문화와 P2P 경제

 

화폐 영역의 확대는 다른 형태의 경제 순환, 그중에서도 특히 선물의 순환을 희생시켜 이루어진 것이었다. 모든 경제적 관계가 유료 서비스화되면서, 우리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독립해 멀리 떨어진 익명의 서비스 제공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가 위축되면서 소외, 고독, 심리적 고통을 가져오는 주된 이유이다. 게다가 돈은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측정 불가능한 것들을 순환, 발전시키는 일에 적합하지 않다.

 

선물의 호혜경제가 중심이 되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교환하게 되면, 필요한 것이 상품이든 서비스든 돈 그 자체든, 사람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를 충족하게 될 것이다. 직접 선물을 주고받는 모임, 선물과 필요를 이어주는 온라인 조직을 통해 돈 없이도 많은 필요가 충족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하는 공동체에 깊은 소속감을 갖게 될 것이다. 사용자 신용창출 시스템은 인터넷 기반의 P2P 대출과 함께, 기존 은행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없애줄 것이다. 지역 단위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상에서도, 인정과 감사라는 측정 불가능한 ‘화폐’가 출현해 사회와 환경에 대한 기여를 서로 연결하고 보상해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의 각 요소는 자연스럽게 다른 요소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핵심은 ‘성장의 종말’이며, 지구와의 새로운 관계를 향한 인류의 전환이며, 새로운 ‘사람들 이야기’이다. 결국 신성한 경제라 부르는 것의 기저에는 지구의 동반자가 되려는 우리의 열망과 모든 존재의 특별함과 상호연결성에 대한 새로운 영적 깨달음이 놓여 있다.

 

 

가슴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아이젠스타인이 제시한 대안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며, 아이젠스타인 개인의 천재적인 발견으로 나온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경제적 지대의 제거는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헨리 조지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며, 역이자 화폐는 ‘노화하는 돈’의 개념을 주창한 실비오 게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는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환경부담금이나 배출권 제도를 살린 것이다. 또한 사회배당금은 최근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기본소득과 같은 것이며, 일부 나라에서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경제·통화의 지역화 역시 우리 사회에서 생협이나 신협,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지역통화, 로컬푸드 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거나 전개되고 있다. 또한 선물 중심의 호혜경제 역시 가라타니 고진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온 바다. 그 외에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나 사카르의 『프라우트 경제』, 가가와 도요히코의 『우애의 경제학』 등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결국 그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선배 학자들로부터 받은 지적 ‘선물’에 의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의 대안의 핵심은 실비오 게젤의 아이디어를 통한 새로운 화폐 시스템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에 바탕한 호혜성, 선물의 정신을 살리는 데 있다.

 

아이젠스타인에게서 인상 깊은 것은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착취와 갈등, 환경파괴와 빈곤의 세계화를 1% 부자들의 탐욕으로 돌려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이분법적인 분리의 이야기이다. 그는 탐욕은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일 뿐이라고 한다.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가로채면서 냉담한 우주 속에 고립된 자아는, 그러나 연결된 존재의 풍요와 단절되었기에 결핍을 낳았고, 이것이 탐욕을 낳는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그들의 결핍을 치유해주고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서 스스로 나눔의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품격을 갖게 해주는 일이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돈이나 물질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물질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는 ‘영적(spiritual)’이라는 말을 ‘물질적’이라는 말과 대립적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세계를 지금보다 더 신성한 대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와 순환과 물질적 삶 자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해월 선생의 ‘경물敬物’이 아니었던가?

 

아이젠스타인의 탁월함은 새로운 경제학을 경제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에서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또한 드러난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가장 큰 혁명은 자아의식과 정체성의 혁명”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모든 생명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역설한다. 영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원리를 경제에 구현해야 함을 강조한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먼 이야기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당장 최저임금도 못받는 열악한 현실에서 이 이야기는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배의 항해에 비유해 보면 이것이 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는 등대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등대를 향해 좌표를 찍고 가야 한다. 아무리 현실의 파도가 거세다 하더라도 가야 할 목표 없이 그 현실에 매몰되어 파도와 싸우고만 있다가는 결국 더 큰 파도나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나면 좌초하고 말 것이다. 배가 등대를 향하는 것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경제가 나아가야 할 비전은 물론 우리 문명의 배가 향해야 할 등대를 제시하고 있다. 피케티가 현실을 보여줬다면, 아이젠스타인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통합적 사상가 아이젠스타인이 그리고 있는, 그리고 우리 가슴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뜨거운 열망을 품어안고 힘껏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 『모심과 살림』 5호(2015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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