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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적정기술의 동향과 농촌 기술운동
2017-02-01 13:19:00

 

적정기술의 동향과 농촌 기술운동

 

김성원

전남장흥 귀농, 농촌생활기술 적정기술 연구자,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 『화목난로의 시대』 저자,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적정기술연구소 연구원.

 

 

 

적정기술이 왜곡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적정기술은 후진국을 돕기 위한 국제 원조 도구나 대안 에너지 기술, 환경단체나 귀농단체의 활동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적정기술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왜곡과 혼란이 더해지면서 적정기술 운동에 앞섰던 사람으로서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적정기술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질문해본다.

 

 

적정기술의 다양한 이름

 

적정기술만큼 수많은 이름과 입맛대로 해석되는 기술은 없다. 대안기술, 적당기술, 중간기술, 공동체 기술, 생태적 기술, 자급자족기술, 생활기술, 인간화된 기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술, 자유기술, 저자본 기술, 값싼 기술, 작은 기술, 진보적 기술, 급진적 기술, 부드러운 기술, 로우테크Low Tech, 토착기술 등등.

 

슈마허E. F. Schumacher로부터 출발했지만 무수한 개인, 단체, 조직, 기관에 의해 회자되면서 적정기술은 새롭게 정의되어 왔다. 종종 그의 본래 기획과 달리 왜곡되거나 혼란을 더하기도 했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태도나 이념적 접근, 사회운동 차원, 정치경제에 대한 입장, 경제개발 전략의 차이, 장치나 도구의 유형에 따라 적정기술은 각각 다르게 언급되어 왔다.

 

어떤 이들에게는 단지 특정 국가의 자연 자원과 자본, 노동, 기술 더 나아가 사회적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경제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더 이상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기업이나 국가에게 일임하지 않는 기술적 선택이기도 하다. 다양한 의미부여 때문에 혼란스러울 정도의 유연성을 가진 적정기술은 기술과 도구, 인간과 환경적 한계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예술이자 권리가 될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제작하기 쉽고, 배우기 쉽고, 유지 관리가 편한 기술이자 에너지 집약적이지 않은 기술이다. 화석에너지보다 대안에너지나 축력, 인력을 사용하는 장비나 도구로 이해되는 적정기술은 사람의 손 기술과 숙련된 기능에 의존하고 소규모 기업 또는 지역공동체에 부합하는 기술이며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슈마허의 중간기술과 한국의 ODA

 

적정기술의 아버지 슈마허는 산업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1955년 UN 사절단 일원으로 버마(현 미안마)를, 1961년 농촌개발 자문으로 인도를 방문했던 슈마허는 서구적 산업화와 기계화에 반대하여 제3세계 농촌사회의 자주적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술로 ‘현대적 산업기술’이 아닌 ‘중간기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그가 제안한 중간기술은 호미와 트랙터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이다. 즉, 작은 규모로 생산 가능하며 지역의 상황에 적합한 기술이다. 1966년 슈마허는 중간기술개발집단(ITDG)을 설립하여 제3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1970년 이후 슈마허의 뒤를 이은 활동가들은 ‘중간기술’이라는 용어보다 ‘적정기술’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중간기술개발집단이 만들어진 지 근 50년이 지난 후 이곳 한국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도 슈마허의 저항성은 지워지고 적정기술이 시장주의로 변색되고 있다.

 

국제원조 기구나 해외무상지원을 결정해야 하는 정책 당국에게 적정기술은 제3세계 특정 지역과 문화에 대한 적용성이 높은 저비용의 경제개발 기술이자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쉬운 경제개발 도구일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한국은 2009년 OECD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국제무상원조(ODA) 의무를 갖게 되었다. 정부에게 있어 ODA 사업은 국격 증진과 외교를 위한 도구다. 정부의 무상원조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2015년도 전체 예산은 6천4백억 원. 이 중 경쟁 입찰에 붙인 대외 무상원조 사업 예산은 2천100억 원 규모이며, 한국수출입은행이 승인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1조4천억 원을 포함하여 2015년 정부의 전체 ODA 예산은 총 2조 원에 이른다. 국제원조 사업은 대기업에게는 자원개발과 시장개척을 위한 사업이나 이미지 제고의 수단이 되었으며 중소기업에겐 경쟁입찰을 통해 해외사업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된다.

 

적정기술이 국제무상원조의 한 방편으로 주목받으면서 정부와 대기업의 투자와 지원이 확대되었다. 꿀이 있는 곳에 벌들이 모였다. 적정기술을 활용하거나 표방하는 관련 단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 현재 100여 곳이 넘는다. 적정기술 연구개발 수행 능력이 있는 몇 단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제선교, 자선, 원조 단체들이다. 국제원조를 위한 적정기술은 이들 단체들이 정부의 예산과 기업의 지원을 끌어오기에 좋은 구실이 되었다. 진지하게 제3세계의 자주성과 지역성을 고려하며 적정기술을 연구개발하고 보급하는 기관은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엔 과거의 IT 벤처처럼 적정기술을 아이템으로 삼는 사회적기업이나 벤처(요즘은 ‘스타트업Start up’이라 불린다)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3세계의 척박한 오지에서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국제협력단체 활동가들과 청년들의 인도적 활동은 그 자체로 당연히 숭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시대 첨병이 되었던 선교사들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인도적 원조를 뒤이어 제3세계에서 환경과 토착 공동체를 파괴하며 자행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자원개발과 노동착취가 떠오르는 것은 삐딱한 나의 시선 때문일까. 이 혼탁한 세상에선 어떤 선행도 어느새 회색이 된다. 인도적 지원이란 명분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 적정기술은 슈마허의 의도와는 조금은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CAT의 이상주의자들과 대안기술

 

적정기술에 대한 다양한 정의의 공통 핵심은 기술과 지역적 환경과 조건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데 있다. 최소한 특정 공간과 시간 속의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 적합한 기술을 의미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적정기술은 초기 유럽과 미국의 활동가들에게 있어 저항이자 신념이었으며 실천적인 언어로서 단지 기술 이상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적정기술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이제껏 그 의미에 있어 충분한 합의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질적인 각양각색 사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대안기술의 세계적 메카인 영국의 CAT(Center for Alternative Technology)는 제럴드 모건 그렌빌Gerard Morgan- Grenville에 의해 시작되었다. 1974년 그는 황무지였던 미드 웨일즈의 버려진 채석장을 몇 안 되는 소수의 선구자들과 함께 개척했다. 현재 CAT에는 약 150여 명의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체험할 수 있는 방문자 센터와 교육, 연구기관을 갖추고 있다. 방문자센터에는 매년 약 6만5천 명이 방문한다. CAT의 사업은 생태적 생활, 생태건축, 숲 관리,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성, 유기농업 환경위생 등 폭넓은 기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종종 반항적인 몽상가들과 이상주의자들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회고록의 서명처럼 모건은 정신 나간 이상주의자(Crazy Idealists?)’였을지도 모른다. 그들 집단은 70년대 산업문명의 진군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믿었으며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다소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대안들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공유했다. 이들의 비전은 최소 16세기부터 시작되는 전통, 즉 18세기 기계파괴 운동을 벌인 러다이트Luddites, 19세기 사회비판가였던 러스킨Ruskin과 사회주의자이자 공예운동가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 이르는 영국의 반 산업주의 전통의 이상과 낭만을 이어받았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중반 산업문명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뉴레프트New Left, 대안문화운동, 환경보호운동, 퍼머컬쳐, 협동조합운동, 영성운동, 여성해방, 탈학교, 평화운동 등과 중첩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러한 흐름들은 익명의 대중사회와 거대기술을 철저히 불신했다. 인간적 규모와 유연함을 강조했던 대항문화는 실천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창조할 수 없었던 몽상가들과 이상주의자들을 매혹했지만 구체적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대안기술은 구체적 대안으로 이해되었다.

 

1971년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의 환경단체들이 결집하여 생태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환경단체인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현재 세계 최대의 환경단체 네트워크가 되었다. 1972년엔 로마 클럽이 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로 인해 세계 인구는 감소되고 경제 성장은 축소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지 40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예견은 지난 기간 중 대부분 적중했다. 이러한 가운데 1970년대 영국에서는 소위 ‘녹색운동’에 대한 재정의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다. 논쟁을 촉발한 이들은 현대 산업사회가 생태의 지속가능성과 양립할 수 없으며 재앙을 향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다수 환경론자들의 설득력 있는 주장의 함의는 ‘탈산업사회’였다.

 

반면 CAT의 구성원들은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계속 했다. 산업이 붕괴된 조건에서 과학과 기술을 포기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회의 개혁과 지속가능한 세계의 재구성을 위한 도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CAT는 실증적으로 40년 동안 지속해왔다. 비록 근본환경주의 그룹들과 조금은 다른 비전을 갖는다 하더라도 CAT가 그들이 고백하고 있는 영국의 오랜 반산업주의의 전통과 다양한 대항문화, 1970년 이후 촉발된 산업기술사회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에서 촉발된 실천적 논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적정기술은 현 산업사회에 대한 어떤 저항의 전통과 실천적 논쟁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또는 어떤 논쟁을 만들어가며 실증적인 실천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

 

 

진보적 사회운동과 산업사회 내부의 적정기술

 

미국에서 적정기술은 진보적 사회운동의 새로운 기획이었다. 랭던위너가 『길을 묻는 테크놀러지』에서 지적하듯이 1960~70년대 최대 산업국가인 미국 내부에서 적정기술운동은 진보적인 정치운동의 후퇴와 산업기술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적정기술은 에너지 대안의 모색이 아니라 새로운 개혁과 변화의 기운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미국에서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이전의 선거들에서 패배하며 큰 타격을 입었고 지속된 시위와 조직 활동에 지쳐갔다. 많은 활동가들이 정치운동을 포기하고 적정기술운동을 시작한 시기다. 미국 진보진영 일부의 새로운 모색과 활로로 적정기술이 선택된 것이다. 1976년 농민출신인 민주당의 카터가 미국의 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이를 적극 지원하면서 적정기술운동은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인 레이건이 차기 대통령이 된 후 적정기술에 대한 지원은 급격히 철회되었고, 서서히 미국의 적정기술 운동은 크게 축소되었다. 이는 미국의 적정기술 활동가들이 왜곡된 정치와 사회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한 결과였다. 또한 산업기술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전면적인 사회개혁과 생태적 전환을 목표로 삼는 활동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2008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미국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치운동에 지친 진보진영 활동가들과 사회운동의 일선에서 멀어진 활동가 출신의 귀농·귀촌자들이 적정기술을 택했다. 이들은 처음엔 개인적 필요와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산업기술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농촌사회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적정기술을 전개했다. 해외원조와 다른 방향에서 지난 5년여 동안 한국 사회 내부를 향한 적정기술은 (아직 미미하지만) 반핵운동, 지역운동, 협동조합운동과 결합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활동가들 그 자신들은 저항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초적인 적정기술 보급과 교육에 급급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활동 그 자체의 저항성이나 보다 정밀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다듬지 못하고 있다.

 

 

생태전환과 사회개혁의 비전, 적정기술 시즌2?

 

2013년 4월 26일 필자를 포함한 일군의 적정기술 활동가들이 모여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이하 전환기술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전환기술협동조합은 에너지·경제·환경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의 생태적 전환과 지역의 자립적 순환경제구축에 필요한 전통기술, 적정기술, 생태적 현대기술을 포괄하는 ‘전환기술’을 연구, 개발, 교육, 생산, 보급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적정기술’ 단체이면서도 ‘전환기술’을 단체명에 넣으면서 사회의 생태적 전환과 개혁을 좀 더 분명하게 내세웠다. 이 점은 설립취지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자연과 생태농업을 근간으로 한 자급자족, 절제된 기술과 도구, 호혜와 협동의 경제 환경 속에서 자연 앞에 겸허하며 기쁨 속에 평화로운 창조적 본성을 회복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지역 공동체들, 지역의 풍토를 반영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개성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생태사회로의 전환이란 비전은 희망의 미래를 지금 여기에 구현하게 하는 동력이다.

 

우리는 기술의 힘을 실감한다. 과학적 진보와 산업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우리의 온 삶을 규정하는 환경이자 결정적 구조였다. 후쿠시마 핵 발전 사고는 산업 자본주의가 낳은 거대기술의 비극적 최후를 상징한다. 지금 여기서 그동안 우리의 기술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전복 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지식과 기술은 생명 공동체의 건전성과 안전 및 아름다움을 보존할 때 올바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랜 과거의 언덕을 넘어 전승된 전통기술과 오늘날 오만한 과학지식에 대해 한계와 제약을 가하는 적정기술의 혼합은 생태순환사회로 변모하기 위한 최선의 전환기술이다.”

 

설립 후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전환기술협동조합은 전국에 걸쳐 다수의 적정기술협동조합들과 단체들이 탄생하는 데 모태가 되었다. 곡성의 항꾸네협동조합, 천안의 작은손협동조합, 공주 두레적정기술협동조합, 예산 꼼지락 적정기술협동조합, 아산의 송악에너지공방협동조합, 아하홍성생활기술협동조합, 서천알콩달콩협동조합, 서울의 마을기술센터핸즈와 적정기술공방, 울산 자립기술협동조합 등 전국 각처에 다수의 지역단체, 귀농단체, 환경단체들이 적정기술을 자신의 활동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전환기술협동조합은 생태적 전환과 사회개혁이란 목표를 분명하게 표방한 것에 비추어 구체적인 방안과 실천에 있어서는 미숙했다. 다른 단체들에서도 대중적인 확산의 과정에서 생태적 전환과 사회개혁의 목표는 유실되어갔다. 적정기술이 한국 사회에 소개된 이후 급격히 확산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성과 다양한 가치는 무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너무 간단하게 ‘원조 기술’, ‘값싼 대안 에너지 기술’, ‘쉬운 기술’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적정기술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논의하고 우리 사회에 걸맞는 비전과 의미를 찾아보아야 할 때이다. 설령 우리 역시 적정기술의 합의된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해도 단지 가벼운 기술 유행이 되도록 놔버릴 수는 없다. 산업화된 기술이 망쳐버린 이 세계에서 생태적인 전환을 희망하는 우리에게 적정기술은 드문 기술적 성찰과 모색의 계기임이 분명하다.

 

개인과 몇몇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적정기술의 인적 기반을 힘겹게 넓혀오던 ‘적정기술 시즌 1’이 끝나고 뒤이어 ‘적정기술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충남에 적정기술 관련 협동조합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충남적정기술협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고, 충청남도는 2015년 5억 원을 들여 ‘적정기술 에듀파크’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충남의 농촌정책 사업과 연계하여 적정기술 교재를 제작 중이다. 경기도 역시 생활환경 개선과 복지격차 해소, 농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을만들기 사업에 적정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서울시는 적정기술 공모전을 녹색연합, 마을기술센터 핸즈와 함께 금년에도 개최한다. 적정기술을 앞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오던 완주에 이어 다른 지자체들에서도 본격적으로 정책적인 관심과 투자를 시작했다. 이미 산업화된 우리 사회 내부를 향한 적정기술의 변화이다.

 

앞서 언급했듯 적정기술 관련 청년 창업도 늘기 시작했다. 정부와 기업도 청년의 적정기술 관련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청소년의 인생 설계를 위한 학교 밖 교육을 인정하는 자유학기제가 도입되었으나 자유학기제가 요구하는 보다 다양한 체험 교육과 실기 교육을 위한 콘텐츠를 갖춘 학교 밖 기관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학기제를 위한 교육 콘텐츠로 적정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요구를 감당할 적정기술 분야의 인적 자원은 부족하다. 한마디로 적정기술의 수요는 증가했지만 적정기술 분야의 인적자원도 기술적 콘텐츠도 아직은 빈약한 상황이다.

 

 

적정기술 농기계와 농기계 자작운동

: 농촌 기술공동체의 복원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귀농·귀촌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2014년 한 해만 4만5천 명가량이 농촌으로 귀농하거나 귀촌했다. 2014년 도시텃밭 인구는 1백8만 명을 넘어섰다. 농식품부 자료에 의하면 2024년까지 4백8십만 명까지 증가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은 주로 소규모 농사를 짓는다. 이러한 농업 인구의 변화는 소농에 맞는 소규모 농기구와 적정기술 농기계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벌써 유럽의 텃밭용 농기구를 모방·제작해 판매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적정기술 농기계 자작운동을 전개하는 팜핵, 말에 현대적 농기계 장치를 부착한 세계적 적정기술 농기계 축제인 북미의 호스프로그레시브데이즈2)와 현대적 우경 기술을 보급하고 있는 틸러스인터내셔널Tillers International, 2001년부터 중고 자전거 부품을 이용하여 자전거 믹서기, 탈곡기, 분쇄기, 물 펌프 등 약 2000개의 발굴림 구동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는 과테말라의 NGO 마야페달에 대한 혁신적인 귀농귀촌인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마야페달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제작 방법과 도면을 내려받을 수 있다. 프랑스 농민들도 스스로 농기계를 제작하고 있으며, 영국의 농업노동자연맹, 오픈소스에콜로지와 같은 단체들은 농민의 농기계 자가제작 워크숍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농민들이 스스로를 농업노동자라고 표현하는 자기인식도 놀랍지만 이들의 실사구시의 활동이 부럽다.

 

OECD 평균의 38배 정도 되는 한국 농업에너지 이용 수준은 심각한 지경이다. 이런 때 에너지 위기의 농업을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농기계 기업에 종속되는 농업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도 농민의 소규모 농기계, 농기구 자가 제작운동이 한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농촌 지역의 소규모 농기계 수리소, 철공소 등 최소한의 생산 기반을 가진 기능인들을 교육하고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들과 농민들이 함께하는 농기계 자작 워크숍 모델을 만들고 시장화 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도구와 기계를 바꿔야 에너지 문제가 바뀐다.

 

공동체에 관한 담론에서 종종 간과되어 왔지만 전통적인 농촌은 기술공동체였다. 목수와 대장장이, 도공이나 와공, 토수, 가바치, 염색 장인, 죽공예 장인 등등 지역사회 내에 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가진 장인들과 농민들은 서로 협력하고 교환하며 삶을 영위해왔다. 이 점을 잊지 않은 유럽과 북미에서는 농촌생활기술센터들이 민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농업기술센터가 산업적 농업을 지향한다면 농촌생활기술센터는 농촌의 생활을 바라본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지역의 기술 자원을 잃어버린 우리 농촌은 지역 외부의 기업과 산업화된 현대적 기술에 생활을 의존하게 되었다. 에너지 위기, 경제 위기, FTA, 농업인구의 변화 등 농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속에서 기술이 점점 더 마을과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그 어떤 노력의 성과도 농촌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적정기술이든 전통기술이든 대안에너지이든 농촌사회의 순환경제와 자립성, 협력, 지속성 증대, 그리고 자연과 인적자원의 절제된 활용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농촌은 피치 못하게 지역 기술공동체를 복원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장 급진적인 변화와 산업기계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농촌의 기술공동체를 복원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적정기술은 그러한 활동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기술적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 『모심과 살림』 5호(2015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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