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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저성장 시대 삶의 위기와 대안
2017-02-01 14:46:00

저성장 시대 삶의 위기와 대안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들어가는 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위기가 시작되었고,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가 일어나 세계로 확산되었다. 최근에는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강경 좌파로 꼽히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영국 최대 야당인 노동당 당수로 당선되었다.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향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부르면서, 비인간적 경제모델을 거부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사적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면서도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은 사회·경제적 약자와 자연생태계, 미래세대로 떠넘겨버리는 시장만능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전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구조는 불균형과 양극화를 확대시키고 자연생태계의 지속불가능한 파괴라는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동안 전체적으로 상당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이것이 해당 국가나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그만큼 사회도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성장사회에 대한 신화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를 뒷받침하는 생산력 증대가 노동시간 축소와 여가 시간 확대로 삶에 축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양극화 확대에 따른 박탈감, 불완전 고용과 실업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존과 같은 규모와 속도로 성장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 고도성장기의 달콤하고 강렬했던 기억들을 바탕으로 성장을 재추동하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으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세계 전체적으로 예전의 성장세는 이미 꺾였고, 저성장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되고 고착화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높아지는 경제적 불확실성은 ‘계산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성장 모델이 한계를 맞고 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해마다 연말쯤이면 다음해 경제성장률을 예측하고 전략적 투자처를 자신 있게 소개하던 그 많던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지금은 찾기가 어렵다.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최종 기관으로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조차 몇 달 후의 경제성장률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된 상황을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가? 경제성장률 하락 현상을 ‘저성장’이라는 말로 단순화시켜버리기에는 당면한 현실의 무게와 다가올 미래의 충격이 결코 간단치 않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주류의 경제시스템이 거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만큼, 기존의 고정관념과 시스템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장시대가 그 효력을 다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 문제,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할 것인가

 

저성장을 ‘문제’로 삼는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해 온 주요 기반은 ‘성장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는데, 지금 세계경제 전체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면서 성장경제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면 거래비용과 비효율성은 높아지고 미래지향적 투자와 자본 조달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장의 종말이 곧 신뢰의 종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1),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성장촉진 전략은 오히려 위기를 더욱 앞당기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2)

 

예전처럼 높은 성장을 회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성장에 따른 기대 효과는 충족될 수 있는지, 과연 이런 성장체제가 지속가능한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조차 성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현실에서, 선진국 따라잡기에 매진해 온 후발 주자들의 미래 전망은 더욱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금의 상황이 ‘저성장 시대’라는 진단하에 다양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을 따지기에 앞서, ‘저성장’이라는 담론의 내용과 쓰임새부터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저성장이라 하면 말 그대로 ‘성장률이 낮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흔히 저성장이라는 말에서 경기침체와 소득 양극화, 높은 실업과 구조조정의 일상화 등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저성장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신속하게 극복해야 할 ‘문제’로 다뤄지게 된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저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여전히 모호하다. 저성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양하고 개념 또한 상대적임을 발견할 수 있다.3) 대개는 과거의 고도성장기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낮아진 상황과 연결시킨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상황을 저성장기라고 불러도 틀리지는 않는다.4) 하지만 고도성장기 이전의 경제적으로 더 열악했던 상황은 비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저성장을 국가 간에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데, OECD 회원국 평균 성장률이 1.7%인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3%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 문제를 경제적 성장률만 가지고 다루는 것도 문제인데,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영역의 총량적인 평균 성장률 개념으로는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농업 등 각 부문별 불균형의 문제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저성장에 따른 시대적 변화와 이로 인한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현재 통용되는 저성장 담론의 성격과 실체를 분명하게 살펴야 한다. ‘저성장’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경제 중심적이고 국가 총량적이며 진화론적인 발전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도성장은 좋은 것이고 저성장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논리로 과거 특정 시점의 고도성장기를 비교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 현재와 다가올 미래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문제다. 이처럼 저성장 담론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짚지 않고 자칫 오용될 경우 오히려 지금의 위기적 상황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권위주의와 맹목적 성장주의, 약탈적 팽창주의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기가 국가 권위주의 체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본격화된 국가주도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은 농업, 노동, 민주주의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오늘날 저성장에 따른 위기 담론이 확산되면서 정치적 권위주의와 자본의 이익 보호, 무분별한 개발사업의 강행과 같은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 선진국으로의 진입 문턱에서 개도국의 맹추격에 쫓기고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와 재계를 중심으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런 논리가 결국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FTA, TPP 등을 통한 경제개방 확대와 노동개혁,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과 같은 개발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 또 다른 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의존한 성장경제가 한계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5) 하지만 삶의 위기를 고성장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던 바다. 이제 ‘저성장은 곧 삶의 위기’라는 인식은 극복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성장 중독이 만들어낸 거품을 거둬내고 위기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향에서 지금의 저성장 담론이 다뤄질 필요가 있다.

 

저성장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과제들

 

그렇다면 저성장으로 일컬어지는 경제위기 문제를 다루는 지금의 방식들은 어떠한가?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위기를 빌미로 정부가 개입하기보다 시장에 맡겨 두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장의 자율에 맡겨 놓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은 시장 자율에 맡겨서 얻게 될 성장의 효과가 불확실한데다, 위기상황이 해결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동안 사람들의 삶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위기와 저성장의 장기화 국면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노력의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들은 서로 다르다. 규제완화와 통화량 증대,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적극적인 성장촉진을 주문하는 입장에서부터,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을 비롯한 기업의 책임과 시장에 대한 규율 강화 등 경제구조 혁신을 주문하는 입장, 그리고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틀 속에서 내놓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보완 또는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경제 영역을 적극 만들어내자는 입장까지 주장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앞서 성장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내놓는 대표적인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이윤주도 성장전략과 임금주도 성장전략을 들 수 있다.6) 이것들은 최근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서도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이윤주도 성장전략(profit-led growth strategy)’은 임금 억제를 통해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결국 사회 전체는 물론 노동자들의 삶도 개선될 것이라는 선성장-후분배 논리에 기반해 있다. 이것은 그동안에도 주력해왔던 방식으로, 지금도 정부는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조치로 기업에 대한 투자와 수익성을 보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임금 억제와 함께 노동개혁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7) 하지만 이런 이윤주도 성장전략으로 얻어진 기업의 이익이 고용확대와 투자촉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는 어려운데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천문학적으로 쌓여가고 있는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8) 고용 불안과 양극화 확대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억제시켜 소비 침체와 경제적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한편, ‘임금주도 성장전략(wage-led growth strategy)’9)은 부와 소득 분배의 악화에 따른 총 수요부족을 지금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보고, 임금인상을 통한 소비지출 확대를 통해 성장의 출구를 찾으려 한다. 이것은 지난 50여 년간 수출주도 성장을 위해 임금을 억제해 온 기존의 방식과는 흐름을 달리하는 것으로, 최근 들어서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경제위기 해법으로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임금주도 성장전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업과 자본 측에서는 임금인상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할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한국경제 전체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기업의 임금인상을 강제하기가 어렵고,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소득 증대가 국내 소비 확대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임금주도 성장전략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비정규직과 실업 등 노동 영역의 격차와 불균형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비판,10)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 증가가 투자 증가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비판도 살펴봐야 한다.

 

종합해볼 때, 소득주도나 임금주도를 포함해서 대기업 중심 수출주도, 이윤주도, 부채주도의 성장경제가 한계에 처한 만큼 성장주의 전략의 효력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적 저성장이 장기화 되면 될수록 임금이나 소득을 높여서 성장의 출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을 1대 99의 사회로 부르듯이,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세습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또는 소득의 증대는 이제 대다수 사람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빈곤이나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삶의 자립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를 향해 기존의 성장경제가 만들어놓은 가치와 구조, 체계 전반을 바꿔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한국사회가 당면한 지속가능성 위기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말에서 확인되듯 우리의 지나온 경제성장 과정은 ‘잘 사는 삶, 잘 사는 나라’의 표본을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맞추고, 허리띠 졸라맨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진국을 따라잡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저임금에 기초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통해 빠른 성장을 해왔다.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477억 원에서 2014년 1,485조 원으로 3만1천 배 이상 증가해 세계 13위 규모를 차지했고,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7달러에서 28,180달러로 420배가량 증가했다. 수출 또한 1964년 1억 달러에서 지난해 5,727억 달러로 세계 6위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11)

 

하지만 성장의 빛이 화려했던 만큼 그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주도형 성장체제 속에서 정치와 사회 영역은 상대적으로 저발전 했고, 농업과 중소기업, 농민과 노동자들의 희생은 컸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빠른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양극화는 심해졌고, 자살률은 1983년 10만 명당 8.7명에서 2013년 28.5명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수출과 부채에 의존한 성장모델이한계를 맞고 있다. 성장경제를 이끌어 온 요소투입형, 초고속 목표달성형 성장제일주의의 특성이 지금 오히려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경제의 저성장, 중국의 성장 둔화, 유럽의 재정위기 장기화 등으로 우리의 수출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내적으로 내수시장의 위축과 함께 양극화와 고용불안이 확대되고, 1,2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사회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조짐이다. 여기에다 생산과 생활의 토대가 되는 식량과 에너지의 생태학적 자립기반도 선진국가들에 비해 매우 취약한데다,12)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2017년부터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절대 수가 감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와 사회, 생태적으로 지속가능성 전반이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이제 동반성장, 포용성장, 녹색성장 그리고 창조경제와 같은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여기에다 성장경제의 위기가 가져다 줄 혼란과 부작용도 상당할 전망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보다는 단기적이고 파편적인 접근이 우선시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생존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활을 건 경쟁은 공동체적 가치와 사회적 관계를 더욱 파편화시키게 된다. 특히 우려가 되는 것은 저성장에 따른 변화된 상황이 권위주의를 강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다. 소위 ‘경제 살리기’가 모든 이슈를 압도하면서 수단적 효율성과 목적 합리성이 과정과 절차를 압도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현상은 지금의 정부에서도 확인되는데, 경제위기 극복을 앞세운 임금 삭감, 공공서비스 축소, 민영화, 노동개혁 등의 조치를 민주적 의견수렴 과정을 뒤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성장사회(growth society)에서 성숙사회(mature society)13)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때다. 지금부터라도 성장을 위한 새로운 수단과 전략을 찾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성장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와 시스템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적극 찾고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성숙사회에 대한 전망과 변화의 조짐들

 

사람도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성숙기에 접어들듯이, 이제 사회도 양적 성장기를 넘어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성숙기로 나아가야 한다. 성숙사회로의 전환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성장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대안을 찾자는 논리와, 설사 성장이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주체적으로 성숙한 삶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차원이 다르다. 성숙사회로의 전환은 후자에 해당한다.

 

성숙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넘어서고자 제기되었던 보존사회(conserver society)14)에 대한 논의도 문제인식을 같이하는 것이며, 1990년대 중반 버블경제 이후 세계적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가치와 생활양식에 대한 고민들도 비슷한 기조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다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성숙사회에 대한 논의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성숙사회는 일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고, 빠르게 사는 것보다는 느리게 사는 것에 더 가치를 두며, 사용하면 없어지는 물질을 소유하기보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이타적인 삶과 다음 세대의 지구를 생각하는 사회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15)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경제가 성장사회를 이끌어왔다면, 성숙사회는 저성장과 함께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정체 또는 감소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16)17) 또한 우리의 경우 인구증가와 함께 수도권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급격한 공간개발과 확장이 성장경제를 뒷받침해왔다면, 성숙사회는 수도권 인구유입이 줄어들고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역도시화라는 새로운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18) 그리고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마을’과 ‘동네’가 강조되고, ‘재생’과 ‘공동체’가 새로운 가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성숙사회가 추상적인 담론이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미 현실화 되고 있는 이러한 경향들이 최근의 경제위기로 성장사회의 거품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새삼스레 확인되고 촉발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숙사회를 향한 탈성장 전략과 실천 과제들

 

성숙사회를 향한 탈성장 전략들

 

성장의 위기 또는 저성장 시대의 도래는 생산과 소비, 고용에 대한 욕망과 현실적 조건(자원, 돈, 시간 등)이 가진 한계 사이의 불일치(mismatch)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흔히 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공급 측면에서 성장의 한계 요인을 찾아서 해결하고자 하는데, 이런 접근방식은 문제 해결의 시기를 뒤로 미뤄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위기를 피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물리적 한계와 욕구 사이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탈성장(sustainable degrowth)’이 필요하다.19) 성숙사회를 향한 탈성장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탈성장(degrowth)’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탈성장이 담고 있는 방향이나 지향성은 분명하다. 탈성장론의 대표적 이론가인 세르주 라뚜쉬는 탈성장을 하나의 대안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의 모태母胎라고 이야기한다.20) 라뚜쉬의 주장을 따라가자면, 탈성장은 기존 체제의 수명 연장이 아니라 혁명적 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 체계를 바꾸고, 지금의 경제를 사회적 관계와 자연계의 질서 속에 다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연대사회의 검소한 풍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21)

 

탈성장은 화폐와 시장에 기반한 경제적 거래관계로 인한 문제점을 인간과 사회,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의 폭넓은 참여와 토의, 숙의 과정을 통해 ‘필요’의 의미와 내용을 새롭게 하고, 공감과 합의 과정을 통해 성장과 행복을 재정의 하고,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화폐에 기반한 시장경제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그만큼 탈성장 전략은 생활양식과 구조, 시스템의 동시적 전환을 위한 다차원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22)

 

탈성장 전략의 핵심 원칙을 ‘재사회화’, ‘재지역화’, ‘재정치화’로 정리해볼 수 있다.23)

 

첫째, 재사회화(re-socialization)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최근에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소셜하우징, 소셜다이닝 등 사회적 가치, 사회적 관계, 사회적 역할, 사회적 주체 등 ‘사회적인 것’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따라서 탈성장 전략으로서 재사회화를 통해 ‘시장의 자유’를 확대시켜 온 기존의 흐름을 바꿔서 ‘시장으로부터 자유’를 위한 대안의 영역을 만들고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자기조절적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를 사회 영역으로 재배치(re-embedding)시킬 것을 강조했던 칼 폴라니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재사회화는 다양한 유형의 활동 영역들로부터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끌어올리고, 이들로부터 협동과 연대의 관계망을 확장시켜 다른 경제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이것을 통해 사회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점차 높여나가는 것이다.

 

둘째, 재지역화(re-localization)다. 성장경제에서 지역은 효율적 생산과 소비의 기지로서 전략적 자원 동원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탈성장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순환과 자립의 다양한 대안적 실천들을 종합하고 연결시키고 뿌리내리게 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지역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다. 먹거리, 교육, 의료, 복지, 안전 등 삶의 주요 과제들이 동네, 마을, 지역에서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서 아래로부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성숙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재지역화는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 사회, 생태적 자급력을 높이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력’과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복원력’, 나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창조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역 차원에서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력을 높이는 것, 자본과 자원, 에너지의 지역순환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 지역공동체와 협동경제 영역을 통해 사회경제적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 등을 실천 과제로 들 수 있다.

 

셋째, 재정치화(re-politicalization)다. 이익을 사유화, 독점화 하면서 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은 다른 곳으로 떠넘겨버림으로써 결국에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생존까지 위협하는 무책임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 사회, 생태적 약자들의 삶을 보호하고 공적 자산과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시켜 나가는 노력이 매우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현실 정치의 주류 집단의 관심은 이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검증되지 않은 지속불가능한 개발사업들이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유권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선거 후 버젓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왜곡된 정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는 생활이고 삶의 문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정치가 새로워져야 한다. 국가가 가진 자원의 권위적 배분에 대한 역할을 시장을 보호하고 성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데 맞춰왔던 기존의 흐름을 바꿔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성장경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경제, 사회, 생태적으로 지속불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껏 우리 사회를 움직여 온 자원과 권력의 흐름과 작동 방식을 바꿔내기 위한 정치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당연히 정치의 주체와 의제,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껏 의사결정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사회·경제적 약자들, 말 못하는 자연생태계, 미래세대의 권리와 필요들을 지혜롭고 균형 있게 살필 수 있는 보다 성숙한 책임의 정치를 통해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삶의 대안을 위한 실천 영역과 과제들

 

자신의 삶을 돌보는 노동과 일자리

 

흔히 사람들이·탈성장 담론을 허무맹랑하거나 과격한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저성장 상태가 되면 당장 많은 사람들이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고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IMF 경제위기가 준 충격적 경험은 이런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물론 지금의 경제 시스템도 당면한 노동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24)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성장모델을 유지한 채 고용 안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측과, 노동시장 경직성과 노사갈등에 따른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주장하는 측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정규직 노동체계로 집어넣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이것이 바람직한 해법인지에 대해 심각한 물음이 있다. 저성장 시대에 삶의 대안으로서 노동과 일자리에 대한 탈성장 전략이 중요한 이유다. 성장이 정체된 시대에는 임금 노동시간의 감소를 통해 생산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균형 있게 줄여나가야 한다.

 

한 사람의 업무를 쪼개서 여러 사람과 나누는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 방식보다 일감 나누기(work-sharing)로 노동시간 자체를 줄여나가면서 나머지 시간을 여가에 더 사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25) 그리고 총 노동시간을 현명하게 줄임으로써 확보된 여가 시간을 새로운 창조활동의 영역으로 연결시켜나가야 한다. 이것을 통해 빈곤과 실업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서 협동노동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비화폐적이고 호혜적인 경제 영역을 만들고 삶의 주체성과 안정성을 회복해나갈 필요가 있다.

 

대안적 삶을 위한 스스로 만들기와 돌보기

 

성장위기 시대에 자신의 운명을 경제성장과 소득증대에 내맡긴다는 것은 몹시 불안하고 불행한 일이다.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삶의 필요들을 즐겁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들을 배우고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스스로 만들기’ 즉 자작自作 운동26)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일터에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어서 필요한 것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기술을 활용해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으로, 이처럼 자신의 몸과 힘으로 생존을 위한 창의적 기술을 적용해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드는 일은 자립적 삶의 시작이자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27)28) 여기에는 조리, 예술, 문화,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결합되기도 하고, 만들기 도구를 제작하고 생산물을 함께 나누는 장터를 펼치는 일 등을 통해 새로운 대안의 영역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생협 활동에서 자작 운동은 이미 익숙한 활동 영역이기도 하다.29) 최근 들어서는 마을공동체운동을 하는 곳에서 풀뿌리 공방들이 들어서고 있고, 직접 만든 물품들을 가지고 장터를 여는 모습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삶의 자립을 위한 이런 활동들이 협동과 연대를 통해 마을을 넘어 지역과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

 

한편, 대안적 삶을 위해서는 국가와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돌봄의 영역들을 적극 만들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번 위기 상황을 경험해 왔는데, 그때마다 가족이 국가에 앞서서 최후의 안전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빠른 시대변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전통적인 가족단위는 해체되고 가족의 역할과 의미도 크게 바뀌었다. 가족이 담당하던 양육과 돌봄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이 사회의 관련 기관과 제도 영역으로 들어갔으며, 그동안은 성장경제가 이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위축되면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반면, 세수부족 등으로 재정적 부담을 느끼는 정부는 돌봄 영역을 피하고 싶은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가가 담당하지 못하는 돌봄의 영역을 시장에 맡길 수도 없는 일이다. 돌봄 서비스의 상품화가 가지는 차별성과 부작용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점점 더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부모 세대의 빈곤과 결핍이 자녀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돌봄 문제를 단순한 사회서비스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초로서 인간생명의 생산·재생산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0) 결국 국가, 시장, 가족 단위를 넘어서 돌봄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한 대안의 영역을 협동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에서 당사자들 스스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대안경제의 인프라로서 농업, 기본소득, 대안기술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전문화된 경제가 아니라 노동집약적이고 사회적 가치가 높은 대안의 경제, 비공식적이고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살림의 경제영역을 통해 삶의 필요들을 해결하고 일자리와 소득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유통 과정을 단순화해서 생산과 소비의 주체와 영역들을 밀착시킴으로써 신뢰의 경제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도 포함된다. 직거래 장터, 로컬푸드, 생활협동조합운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관련해서 식량생산과 먹을거리 자급을 위한 농업은 다양한 대안경제 활동의 인프라로서 중요하다. 식량은 생존을 위한 기본 요소인데, 화폐와 소득에 의존한 경제에서 발생하는 먹을거리 빈곤도 문제지만, 식량의 총량적 생산의 한계와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식량위기는 대안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킬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농업은 식량공급처 역할을 넘어서 고령화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생태적 자원을 보호하며 녹색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제공해줌으로써 대안경제 영역을 뒷받침해 준다. 그만큼 농업은 저성장 시대의 살림살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영역으로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요즘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도 대안경제와 관련해서 의미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공식적인 노동영역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때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소득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하는 기본소득은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노동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대안경제 영역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대안기술도 대안경제의 활성화에 있어 중요하다. 기능적 전문화와 제도화를 통해 인간을 기계나 관료제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온 것이 현대 산업사회의 기술이고, 이것으로 지금까지의 성장경제를 뒷받침해 왔다. 그런데 성장경제가 한계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경제 영역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술의 성격과 내용도 바뀔 필요가 있다. 적정기술이 그러한 대안의 하나다. 적정기술은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높이면서 삶의 자립을 돕는 기술로, 시장의 상품경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양한 지역자립 모델을 만드는 데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저성장 시대, 협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성장경제가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신뢰를 잃으면서 새로운 차원에서 다양한 모색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의 영역으로 주목받아 온 협동조합은 이런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협동조합을 비롯해 경제적 대안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화폐, 대안금융 등은 모두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심각한 한계와 부작용들을 발생시킬 때 그에 대한 창조적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따라서 지금처럼 성장시대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도전과 변화들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동조합 영역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협동조합 역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만큼 사회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동시에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역할과 책임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저성장시대를 맞아 협동조합의 역할이 공공부문이 감당해야 할 일자리 만들기와 사회서비스의 생산 및 전달자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협동조합들이 지속성장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업과 활동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 질문들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시장경쟁을 통한 성장, 매출 증가를 통한 성장이라는 기업의 일반논리가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협동조합 또한 마찬가지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환경이 새롭게 변하고 있는 가운데 협동조합이 직면하게 되는 과제를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자.

 

첫째, 협동조합 경영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협동조합 경제 역시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만큼 경기 침체와 저성장의 지속은 협동조합 영역 전반, 특히 신생 협동조합들의 생존에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생협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올해 한국 생협의 평균 성장률은 작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물론 협동조합의 역할과 가치를 성장률이라는 지표로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저성장의 장기화와 고착화라는 변화된 상황을 어떤 눈으로 읽어내고 위기 극복의 방향을 잡아나갈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협동조합 경영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서 일본 생협들이 1990년대 국가 경제위기 상황을 거치면서 발견한 교훈들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일반 기업들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의 다각화와 규모화를 추구했던 일본 생협들이 국가 전체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진통의 과정을 통해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조합원의 관심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밀착시켜나가는 것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협동조합의 사업과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이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체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사업과 조직운영의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의미 있는 시사점이 될 것이다.

 

둘째, 성장시대의 종언 이후 등장하게 될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협동조합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조합원의 삶의 필요와 요구에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사업과 활동을 해나가는 것만큼 협동조합에서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상황과 살림살이의 조건이 변화됨에 따라 조합원들이 당면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과제들을 협동조합의 사업 및 활동과 어떻게 연결시켜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나아가 조합원은 물론 이웃과 지역사회 전반의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나서야 한다. 즉, 먹을거리, 교육, 의료, 복지, 일자리, 안전 등 국가와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다 개인 또는 개별 가정의 단위에서는 해결하기 벅찬 삶의 과제들을 협동의 힘으로 상호부조의 관계망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 협동조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1) 리처드 하인버그,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노승영 역, 부키, 2013, 138쪽.

2) 팀 잭슨, 『성장 없는 번영』, 전광철 역, 착한책가게, 2013.

3) 성지은·박인용, “저성장에 대응하는 주요국의 혁신정책 변화 분석”, Issues & Policy 68, 2013, 6쪽.

4) 기간별 평균 성장률을 보면 1970∼1979년 9.4%, 1980∼1988년 9.1%, 1989∼1997년 7.4%, 1998∼2007년 4.7%, 2008∼2012년 3.8%로 점점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현대경제연구원, “잠재성장률의 위기”, 「경제주평」 474호, 2012.).

5) 우리의 경우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가족 전체가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던 충격적 경험 때문에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에 대한 인식론적 두려움이 특히 크다.

6) 이윤주도 성장이 기업의 소득을 중심으로 한다면, 소득주도 성장은 근로자 소득을 중심에 두고 있다.

7) 이 점에서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8) 경기침체와 함께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은 200조 원에 가까운 현금성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금의 80%를 삼성, 현대와 같은 5대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 노동소득분배에 의한 성장전략으로, 소득주도, 고용주도 성장전략으로도 불린다.

10) 최저임금적용 대상 근로자는 2014년 기준으로 전체의 14.5%에 해당된다.

11) 통계청,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Ⅰ(해설편)』, 2015.

12)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4%, 에너지 자급률은 원자력발전을 제외하고 3% 수준이다.

13) ‘성숙사회’라는 말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미래학자 데니스 가보르Dennis Gabor(1900~1979)의 저서 『Mature Society)』(1972)에 나온 말로, “높은 수준의 물질문명과 공존하면서도 정신적인 풍요와 생활의 질적 향상을 최우선시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말한다(정규호,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문명 전환기의 도전과 과제”. 『시민교육』 6, 2012, 33-37쪽.).

14)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 환경론자들을 중심으로 유한한 지구자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한 것으로, 이후 소비자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자 한 「레이들로 보고서」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15) 최진호, “이제는 성숙사회를 준비하자”, 국토연구원. 『국토』, 2013, 2-3쪽.

16) 이동우, “성숙사회의 새로운 지역정책방향 모색”, 국토연구원, 『국토』, 2013, 9-15쪽.

17) 지금과 같은 저출산 기조로 보면, 우리나라는 2030년의 5,216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2060년에는 2012년 보다 604만 명이 더 적은 4,396만 명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급격한 노령화로 총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2.9%에서 2012년 14.1%까지 증가했으며, 2060년이면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거의 50%에 육박할 전망이다.

18) 물론 여기에는 2012년부터 시작된 행정·공공기관의 지방이전도 영향을 주었다.

19) Sekulova, F., Kallis, G., Rodriguez-Labajos, B. and Schneider, F., “degrowth: from theory to practice”,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38, 2013. p.2.

20) 세르주 라뚜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탈성장의 길”, 김신양 역, 『모심과 살림』 6호, 2015, 38쪽.

21) 위의 글, 38쪽.

22) Sekulova, F. et al., 위의 글.

23) 여기서 재(再, Re-)는 ‘다시’와 ‘새롭게’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24) 전체적으로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고, 성장경제하에서도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으로 내세운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 대해 해고, 조기퇴직, 전출, 파견, 휴직, 임금억제, 직장폐쇄 등의 조치를 다양하게 취해왔다.

25) Sekulova, F. et al., 위의 글.

26) Maker운동, Craft운동으로 불린다. 당사자의 자작 ‘DIY’(do it yourself)에서 협력적 자작 ‘DIO’(do it with others), ‘DIT’(do it together)으로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27) 송수연, “새로운 문화정치의 장, 자립문화 운동”, 『문화과학』, 2013, 154쪽.

28) 이 점에서 농업은 자립적 삶을 위한 토대로서 가장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29) 생협활동 초창기 활발했던 재생비누 만들기는 물론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뜨개질 소모임, 장 담그기와 술 빚기, 식생활 조리교실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30) 홍찬숙, “개인화와 ‘젠더사회’”, 「한국사회학」 47(1), 2013, 257쪽.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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