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6호] 저성장 시대, 지표로 본 삶과 사회의 위기
2017-02-01 15:06:00

저성장 시대, 지표로 본 삶과 사회의 위기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문제 제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는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이후 계속되는 경제충격과 함께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저성장에 대한 우려는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과 향후 그것이 가져올 경제사회적 충격에 대한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다. 저성장 문제에 대한 보다 지혜로운 대응이 없이는 우리 사회가 더 큰 경제사회적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데 대한 해법은 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다를 수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의 경험에 따르면, 인적자본을 개발하고 기술혁신을 이루고 노동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성장 동력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시장과 사회적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제 역할을 하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저성장이 장기화될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일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과거의 성장전략을 넘어선 보다 종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이 저성장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면 일자리 창출이 둔화하고, 가계소득이 감소하며 이것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그것이 기업의 투자가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업과 빈곤 등 사회 문제가 심화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문제는 저성장 국면에서는 복지 수요 증가와 세수 감소가 함께 진행되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 등의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경제사회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적 위기 또는 사회시스템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노동에서의 이원화가 사회 전체의 이원화로 이어지고, 박탈과 배제의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결속력이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각 개인들이 사회적 부조리에 분노하면서도 이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모든 개혁이 전제하는 공동체와 미래를 위한 인내와 양보를 기대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을 주요 사회지표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저성장 국면의 정책적 대응

 

학술적으로 저성장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를 찾기는 힘들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률이 몇 % 이하면 저성장이고,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 때 저성장 국면이라 부르는지 명확한 기준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후퇴(economic downturn)가 최소 2분기 이상 국내총생산이 감소한 경우를 지칭한다면, 저성장은 성장률 제로 또는 그에 근접하는 낮은 성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장기간 지속되어야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경제성장률이 과거 고도성장기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로, 그리고 그것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로 저성장 또는 저성장 국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과 관련해서 저성장 장기화를 우려한 바 있다. 그 원인으로 고령화 및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 노동생산성 둔화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신흥산업국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브라질과 중국에서도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저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래 그림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과 실질 경제성장률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좌측 그림은 1970년대~1980년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이 나타나고 있음을, 우측 그림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경제성장률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1990년대 초부터 진행된 일련의 정책적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1990년의 환율제도 개편과 1995년의 OECD 가입과 시장개방, 그리고 개방경제하에서의 위기관리의 미흡 등이 그것이다.

 

<그림 1> 한국 국내총생산 및 실질 경제성장률 추이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계속 내외부의 경기 충격에 직면하였고, 일련의 충격은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위험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외환위기가 임금근로자의 대량실직과 그에 따른 빈곤율 증가를 야기했다면, 2003년의 신용대란은 자영업자들의 파산과 실직을 야기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금융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으며, 고용률 감소와 빈곤율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재정적자를 감수한 경기부양은 이후 재정적으로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 쇼크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국제기구들은 거의 일관되게 경제개방과 구조개혁을 외쳐 왔다. 저성장의 장기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선진국은 연구개발과 사회기반시설 확충 그리고 기술향상을 위해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신흥산업국은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투자 장벽을 제거하는 등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는 서비스산업을 육성하여 고용창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국제기구들이 외환위기에 처한 저발전국이나 체제전환국에게 했던 정책 권고는 실업이나 빈곤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장개방으로 국제금융자본은 큰 이득을 보았다. 각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제안된 정책은 또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복지정책에서 최소한의 개입을 강조하던 이러한 기조는 리먼 쇼크에 직면해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국제기구들은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경기부양을 함으로써 세계경제가 심각한 침체국면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보다 강력한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는 주저하였다.

 

2009년 G20 정상회의에서는 저성장과 경기충격하에서 뒤늦게 경기부양책을 쓰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당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강력한 사회보장체계가 상시적으로 외부의 경제충격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시스템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회보장제도는 경제충격에 대한 일종의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리먼 쇼크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공적재원을 투입하는 방식이 갖는 한계를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기부양을 위해 단기적으로 운영되는 경기부양책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표적화된(Targeted) 지원을 하지 못하는 단점을 갖는다. 21세기 경제사회적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체계 구축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매우 설득력 있는 지적이었던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처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급등하는 실업문제와 빈곤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실업자에게 공공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회보험제도와 공공부조제도를 공고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사회보험제도의 전 국민화 그리고 보다 합리적인 공공부조제도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이 전략은 큰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로는 실업자와 빈곤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사회보험제도는 정작 심각한 수준으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나 경기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던 자영업자를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장 사회보험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사회보험 가입에서 배제되는 양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조제도는 방대한 빈곤층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는 뒤늦은 사회보장제도 정비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표 1> 종사상지위에 따른 사회보험 가입률의 시계열적 비교

 

지표로 본 사회적 위험

 

우리 사회가 처한 경제사회적 위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회의 생산과 재생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 원리는 간단하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과 생산물을 자신의 부모와 아이들을 부양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복지제도를 통해 보호하게 된다. 소득을 재분배하는 복지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득의 분배와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나타난 결과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일차적으로 근로연령층 사이에서 노동소득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확산으로 노동 이원화가 빠르게 진행된 결과이다. 그리고 근로연령층 중 상당수의 인구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양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른바 근로빈곤층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집단의 빈곤화는 이들이 부양하는 노인과 아동의 빈곤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이 적지 않다. 정상적인 복지국가라면, 강력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빈곤 위험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전체 빈곤층의 20~30%가량을 보호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전통적 빈곤층인 노인이나 장애인 외에도 많은 근로연령층이 빈곤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지표 : 자살률의 증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행복도 또는 사회적 위험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다양한 지표들을 묶어 작성한 행복지수(Happiness Index), 사회권지수(Social Right Index), 사회통합지수(Social Cohesion Index)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지수들이 지표 구성이나 각 지표의 가중화 문제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이러한 다양한 지수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사회지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살률이다.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 명 당 고의적 자해자 수)은 2003년 22.6에서 2012년 28.1로 5.5% 포인트 증가하였다. 적지 않은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1983년 자살률이 8.7%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9.4% 포인트, 즉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제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 중 암이나 심장질환 그리고 뇌혈관질환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원인이 되었다.

 

<그림 2> 한국의 자살률 추이

 

위의 자살률을 연령대별 추이로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적 위험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직면했던 세 차례의 심각한 경기충격 다음해에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자살이 각 개인의 질환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경제사회적 변화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과거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전환기 자살률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했던 사례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한중일 3국의 자살률이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급격한 경제시스템의 변화와 그것이 각 개인에게 미치는 충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어 자살률이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자살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1983년 자살률을 100으로 할 때, 2014년의 자살률은 20대 116, 30대 261, 40대 247, 50대 240, 60대 270, 70대 379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50대 이상 인구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30대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창 활발하게 경제활동에 참여할 인구집단의 높은 자살률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3포 세대’로 불리는 집단의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태롭게 서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과 같은 비극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위험으로는 무엇을 들 수 있는가.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로 하겠다.

 

노동의 위기 : 실업과 고용불안 그리고 저임금

 

그 첫 번째 위험은 역시 노동의 위기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유럽이 경험했던 장기실업보다 미국이 경험했던 저임금 노동의 확산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용불안이 확산된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은 장기실업으로 이어지기보다 단기실업 또는 취업과 실업의 무한반복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노동시장은 차츰 두 개로 분리되어, 한 세계는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과로를 감수하고 다른 세계는 저임금과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 이원화된 노동시장에서 청년층은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중년층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주변부 노동시장에서 노후를 꾸려가야 한다.

 

<그림 3> 종사상지위에 따른 임금의 양극화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 빈곤과 격차의 심화

 

사회보장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노동의 이원화는 바로 소득격차의 확대와 빈곤율의 증가로 나타나게 된다. 아래 그림은 우리나라가 와환위기 이후 상·하위 소득계층 간 소득격차가 더욱 확대되었고, 중위소득 50% 이하 빈곤층 또한 계속 증가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리먼 쇼크를 정점으로 그 정도는 소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빈곤율과 소득격차 등은 외환위기 당시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림 4> 소득격차 및 빈곤율의 추이

 

가계부채의 증가 : 성장의 논리와 복지의 부재

 

누군가 자신이 버는 노동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면,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국가의 복지제도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두 개 또는 세 개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수고를 감수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출 요인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자식이나 부모가 아파서 많은 병원비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앞뒤 가릴 것 없이 빚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사하게 거리에 나앉을 수 없어서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지불한 사람들, 자식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빚을 낸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 필수재의 성격을 갖는 지출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부채를 감수하고서라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계부채에는 국가가 관리해야 할 성격의 가계부채가 있고 해당 가구가 관리할 수 있는 성격의 가계부채가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가계부채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분위별로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집단은 누구인가? 그것은 당연히 하위소득계층이다. 이는 노동소득의 감소와 가계부채의 증가가 맞물려 나타나는 결과인 셈이다.

 

<그림 5> 소득분위별 <원리금 상환액/처분가능소득) 비율 및 변화

 

저출산 문제의 심화 : 재생산이 불가능한 사회

 

앞서 언급했던 경제사회문제가 종합적으로 맞물려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저출산이 장기간 심화된 결과, 예상되는 인구고령화의 가속화 그리고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문제이다. 이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노후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노인 인구의 증가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파장이다. 유럽 각국의 인구고령화는 연금제도의 성숙을 통해 그 충격을 대부분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적어도 노인빈곤층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덜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경우이다. 더욱이 현재 연금제도의 가입률이 50~6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노인빈곤 문제는 여전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이제 근로연령층이 감소하는 기점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를 부양해야 할 근로연령층이 감소한다는 것은 향후 이들이 감당해야 할 조세부담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는 국민부담률이 높지 않음에도 세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힘든 상황에서, 더 복잡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셋째, 현재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핵심은 저출산 문제에 있다. 인구고령화는 정책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에 출산율 제고는 정책적으로 많은 노력을 통해 조금씩 개선할 수 있다. 이미 외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도 노동과 주거 그리고 보육 및 교육정책의 강화가 시급하다.

 

<그림 6> 연령집단별 인구규모에 대한 전망

 

 

맺으며

 

저성장 시대의 가장 큰 고민은 실업이나 빈곤 등으로 복지욕구가 증가하는 반면, 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재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점점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장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과거의 논리로 회귀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노동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비용을 줄이거나 사회보장분담금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추가적으로 조세를 인상하더라도 그것은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만일 외환위기 이전이라면 다시 한 번 개인을 희생하는 형태의 일대 결단이 가능할지 모른다. 국가를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희생을 감수하고 금모으기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이 그러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이 더 개인주의적이 되었음을 의미하기보다, 지난 20년간 많은 개인의 희생이 헛되이 자신들만의 희생으로 그쳤다는 박탈감 때문이다. 이러한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국민들이 공공기관에 대해 갖는 신뢰감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어떠한 정책적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정치 쟁점으로 변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말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와 법 집행에 있어 공정성을 지켜야 하고, 빈부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하고, 노동하는 사람이 경제와 사회를 강건히 부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지칭하는 ‘싸구려 복지국가’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하고 그 위에서 이룬 경제성장과 빈부격차, 그것은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한 것인가. 설사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니 성공적인 방식인가. 누군가는 이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는 지금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정산하기 이른 시점이다. 노후보장을 희생하며 투입했던 엄청난 교육비로 일군 인적자본은 우리가 기대했던 성과를 가져왔는가. 지금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공교육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사실상 매우 힘든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성장의 시대가 한 사회에 안겨주는 교훈은 흥미롭다. 2012년 봄 파리에서 만난 한 사회학자의 말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0년대까지 제3세계에서 약탈한 부를 기반으로 자본가와 노동자가 공존했던 역사적 타협은 고통스럽게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도 짧았던 고도성장기를 지나 고통스러운 저성장의 터널에 들어서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노동비용을 절감한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보장체계를 굳건히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성숙기까지의 공백을 메우는 데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 모심과 살림 6호(2015)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