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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성장 위기 시대, 농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색
2017-02-01 15:35:00

성장 위기 시대, 농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색

 

허헌중 ((재)지역재단 상임이사)

 

 

 

 

20년 뒤 한국농업의 암울한 전망과 농업·농촌의 붕괴 위기

 

20년 뒤 한국농업의 암울한 미래

 

“농가소득이 도시가구의 41%로 추락하고, 수입농산물이 국내 농업총생산액의 87%로 증가!” 20년 뒤 한국농업의 암울한 전망이다. 지난 10월 14~15일 농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연 국제회의에서 농경연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FTA) 영향의 누적에 따른 수입 증가로 20년 후 수입농산물이 무려 39조 원어치(2014년 우리나라 농업총생산액 45조 원의 87%에 해당)에 이를 전망이다. 그만큼 수입농산물의 국내시장 잠식→우리농산물 판매 감소(국산끼리 경쟁 심화, 과잉공급)→가격폭락의 악순환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다. 그 결과 도시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1995년 95.7%에서 2014년 61.5%로 급락한 데 이어, 2035년에는 41.2%로 추락할 암울한 미래가 예상된다고 한다.

 

정부와 관변 연구기관의 공식회의에서 암울한 미래 전망이 나왔는데도 일반 언론들은 무관심하며 외면한다. 한국농업은 그동안 농업·농민·농촌을 희생양 삼아 이윤 극대화에 혈안이 되어온 개방론자, 성장제일 경쟁력지상주의자에게 공격당하다 못해 이젠 완전히 잊혀진(외면하고 싶은) 존재로 전락된 듯하다. 겨우 농업전문지에서나마 그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다.

 

농가소득이 도시에 비해 41.2%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농업포기를 넘어 정상적인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농업·농촌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래전부터 많은 예산을 들여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수출을 위한 농업 희생 정책, 대기업과 대도시 중심의 성장, 경쟁력 위주의 신자유주의 농정을 폐기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목표로 농정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농민들의 소득과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며, 도농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모두 바꿔야 한다. 마지막 경고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농촌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암울한 한국농업 20년 전망”, <한국농어민신문> 2015. 10. 20.)

 

지금도 암울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20년 뒤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도 암울하다는 데 있다. 현장 농민들은 ‘농업해체, 농촌붕괴, 농민몰락’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정부는 온갖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수많은 종합대책을 추진했으나 현실은 개선은커녕 더 악화되고, ‘풍년기근’이 연이어 닥친다. 기술 발달과 생산·유통 기반의 향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봤자 FTA 등 수입 확대와 맞물려 시장에는 수입농산물이 넘쳐나니 국산 농산물의 만성적인 공급과잉과 가격폭락은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판매가격은 하락하고 농업경영비는 상승하니 당연히 농가경제 채산성은 악화되어 농사만으론 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물가상승 영향을 제한 실질가격 기준으로 보면, 농업소득(농업총수입-농업경영비)은 지난 10년간(2005-2014) 1,371만 원에서 945만 원으로 무려 31.1%나 떨어졌다. 경영여건 악화는 도농간 소득격차를 점점 벌이고 있다. 지난 20년간(1995-2014) 도농간 소득비는 95.7%에서 61.5%로 격감했다. 실질가격 기준으로 같은 기간 동안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은 37.8% 증가한 반면, 농가소득은 11.5%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4년 농업소득은 명목으로도 연간 1,030만 원에 불과, 월 평균 겨우 86만 원에 머물러 도시 2인 가구 최저생계비 월 102만 원에도 못 미친다.

 

그 결과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 66.5세(40세 미만 0.9%), 경지규모 1헥타르 미만 농가는 전체 농가의 65.3%, 농산물 판매금액 1천만 원 미만 농가는 전체 농가의 64%가 될 정도로 우리 농업의 약체화와 지속불가능의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단기처방이 아니라 근본전환이 요구된다

 

이대로 가면 암울한 미래가 예상될 정도로 오늘 농업은 위기며 농촌은 피폐하다. 넘쳐나는 수입농산물에 국산농산물의 만성적 과잉공급 반복과 가격폭락의 악순환, 그로 말미암은 농가경제 파탄과 도농간 소득격차 심화로 이제 농사만 지어서는 최저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왜 점점 어려워지는가. 역대 정부가 농정개혁을 내세우며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정책이 농업·농민·농촌을 희생양으로 삼는 성장제일주의, 수출지상주의 정책이었고, 농정은 그 뒤치다꺼리 역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기에는 저임금-저농산물 가격정책과 도시 산업예비군 조달 등 공업화와 도시의 부속물로 인식되었고, 1980~90년대 이른바 개방화·세계화 시대에는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인식되었다. 최근 정부는 마침내 53개국과의 FTA 체결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추진 등 전면개방시대를 강행하면서 농업·농민·농촌을 완전히 사회적으로 배제시키고 있다.

 

현재와 같은 농정 기조가 계속된다면 정부 스스로 전망하듯이 암울한 미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나와 있다.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농정의 총체적 틀(농정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곧 대증요법식의 단기처방이 아니라 농정 이념, 농정 목표 등에 관한 농정 패러다임의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근본전환이 왜 절실한가. 오늘날의 농업해체, 농촌붕괴, 농민몰락을 낳은 그동안의 잘못된 농정 패러다임, 곧 성장제일주의와 경쟁력지상주의 농정 패러다임이 지속될수록 암울한 미래와 농업·농촌의 붕괴로 인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위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식량, 물, 에너지를 둘러싼 지구적 규모의 위기를 겪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국내 차원에서 그 해법의 중요한 기둥 중 하나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정책과 농민의 인간다운 생활권 보장 정책을 강력히 펼치고 있다. 그만큼 농업·농민·농촌의 붕괴는 바로 전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곡물의 대외의존도 심화(2014년 24.1%)는 식량수급 위기와 식량전쟁 시대의 경제적 지속가능성 위기를 초래한다. 지금과 같이 농약과 화학비료 과용 및 석유에너지 의존 농법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도시·농촌 격차,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등은 공간적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농촌사회 노령화·과소화·공동화空洞化로 인한 전통 및 문화 보존 단절, 공동체사회 파괴, 농촌 붕괴로 인한 지역사회 공동화는 사회문화적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우리나라 농정 실태와 잘못된 농정 패러다임의 문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농정의 실태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그동안 정부는 수많은 농정대책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농업·농촌의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했다. 농가인구의 지속적 감소와 노령화로 인한 농촌사회의 공동화, 곡물자급률 저하 등 먹거리 주권의 위기, 농가소득 정체와 농가부채 증가 등 농가경제 피폐화, 도농간 격차 확대와 농가 간 양극화 및 농촌 빈곤율 급증 등이 심각하다.

 

농가경제 악화의 주범은 시장개방으로 인한 수입 증가, 농업생산성 증가로 인한 국내농산물의 과잉공급 반복에 따른 가격폭락의 악순환이다. 특히 구조조정정책의 주된 지원대상인 대농에게 일부 생산 집중이 있으나, 이들마저 생산과 소득이 증가한 반면 부채와 가격파동에 시달리고, 구조조정에서 소외된 영세농과 고령농은 농촌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문제는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이다. 앞으로 농정이 생산성 향상에만 경도되는 한 오히려 농업·농촌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행해온 성장제일·경쟁력지상주의 농정 패러다임이 갖는 근본 한계와 오류를 다시 범할 뿐이다.

 

우리나라 농정은 전통적으로 성장제일·경쟁력지상의 생산주의에 입각해 있다. 생산성 증대=농가소득 증대=농업발전=농촌발전의 관점에서 증산 혹은 규모화(대농으로의 생산 집중) 등 구조조정이 농정의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시장개방을 추진하면서 ‘국제경쟁력 있는 농업만이 살길‘이라는 경쟁력지상주의에 따라 구조조정에 치중해왔다. 그 결과 생산성 향상과 일부 구조조정을 이루었으나 농업문제, 농가소득 문제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1995~2012년 사이 실질 농업 국내총생산은 연평균 1.1%씩 증가했으나 총 실질농업소득은 연평균 2.6%씩 감소하는 ‘성장과 소득의 괴리 현상’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노동생산성도 연평균 4.8% 증가하여 비농업부문의 1.5배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 문제는 악화하고 있다. 이는 농가경제 채산성이 악화된다는 얘기며, 그중 주요 지표인 농가교역조건 곧 농가판매가격이 농가구입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2005-2014)을 보아도 농가판매가격은 20.3% 오른 반면 농가구입가격은 32.5% 올랐다. 농산물을 판매한 가격보다 농촌임료금 51.9%, 농업용품값 46.7% 등 구입재 가격이 더 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판매가격이 따라가지 못해 교역조건이 악화된 것은 시장개방으로 인한 수입증가, 국내 농업생산성 증가로 인한 국내산 공급량의 증가(수입으로 인해 좁아진 국내 시장을 두고 산지간 품목간 경쟁의 격화)와 그로 인한 가격폭락의 악순환 때문이다.

 

특히 경쟁력 강화를 위한 농업 규모와 시설의 확대,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집약적 농법과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부담은 한계에 이르렀다. 헥타르당 농약 사용량은 OECD 평균의 14.3배, 에너지 사용량은 무려 37배, 비료 과다 사용과 축산분뇨 방출로 헥타르당 질소 수지 초과량은 3.2배, 인산 수지 초과량은 네 배에 달한다. 더욱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 축산분야 재앙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잘못된 농정의 실태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잘못된 농정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문제는 시장개방과 함께 경쟁력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농정, 경쟁력지상주의 농정에 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잘못된 농정 패러다임은 농가소득 향상, 가격 지지, 생산비 절감, 식량자급, 농촌지역사회 유지·활성화, 농민의 인간다운 삶 보장 그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나아질 전망이 있는가? 쌀시장 전면개방을 비롯해 전방위 FTA에 이어 TPP까지 추가 개방이 현실화되면, 농가경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정부 기관 예측으로도 20년 뒤 수입농산물이 현재 국내 농업총생산액 45조의 87%에 달하고 도농간 소득격차가 2014년 61.5%에서 2035년 41.2%로 악화된다고 하니 오죽하겠는가.

 

최근 농정은 이러한 경쟁력지상주의 생산주의 농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쟁력지상주의 농정으로는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와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요구, 농민들의 열망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다. 농업·농촌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이제 농정 패러다임의 근본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국민에게 농업·농촌은 무엇인가?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 재인식

 

20년 뒤 우리 농업이 현재 총생산액의 87%를 수입농산물에 내어주고 13% 이내로 축소되어도 좋은가? 농가소득이 도시 대비 41.2%로 악화되어 도시 가구의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이 되어도 좋은가? 과연 한국농업의 존재 이유, 가치와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와 국민들의 농업·농촌에 대한 요구,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농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농업은 인간생명의 필수조건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생명산업이며 환경적으로 탄소 중립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녹색산업이다. 그리고 농촌은 생산의 주체인 농민이 삶을 영위하는 생산의 공간이자 국민들의 휴양 및 생활공간이다. 따라서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는 국제경쟁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할 수 없다. 생명산업이자 녹색산업으로서의 가치와 역할, 생산공간이자 휴양·생활공간으로서 가치와 역할은 수입농산물이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들은 과연 농업이 경제성장을 이끌 미래성장산업, 첨단산업으로 또 수출산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는가?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의 2.2%에 불과하고, 농산물 수출액은 총수출액의 0.7%에 불과하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농업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수출을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고 장기저성장 시대에 국민들이 농업성장 정책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소수의 기업농으로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가? 우리 농업구조는 기본적으로 가족소농구조에 기초한다. 절대다수 가족소농들이 농업생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농촌 환경과 국토를 지키는 정원사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소수의 기업농이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소농들의 이농·탈농이 가속화된다면 농촌사회의 공동화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위기는 필연적이다.

 

국민들은 농업·농촌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우선 무엇보다도 수입농산물로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가치소비 욕구, 안전안심 요구 등 간절한 소비 욕구가 존재한다. 가격이 비싸도 수입농산물 대신 우리 농산물을 찾는, 수입농산물로 결코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수입농산물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농촌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다. 국민들은 농업·농촌이 이를 충족시켜주기를 기대한다. 휴양과 여가 공간, 노후생활 공간, 자녀들의 인성함양 공간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기대한다.

 

국민이 농업·농촌에 바라는 가치와 역할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직결된다. 현대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과 관련한 농업·농촌의 존재 이유(기본이념, 가치, 역할)는 여섯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국민 식생활의 유지·향상, 둘째, 활력 있고 매력 있는 지역 만들기에 의한 국토의 균형발전, 셋째, 국민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는 풍요로운 자연 및 국토환경의 보전관리, 넷째,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삶의 생활공간, 다섯째, (초)고령화사회의 건강한 노후인생과 자기실현의 장, 여섯째, 자라는 다음세대로 하여금 생태적 감수성과 협동적 문화를 체화하게 하는 창의적 협동적 인성함양 공간 등이다.

 

더 이상 축소되어서는 안 되는 농업·농촌의 현실적 역할

 

농업·농촌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농정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물론 오늘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적 역할을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먼저 농업의 고용 유지·창출 역할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농업에는 160만여 명이 고용되어 있다. 갈수록 제조업의 고용능력이 저하되고 서비스산업 또한 취약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일자리 문제 해결에서 농업의 중요한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대부분 농업취업자는 전직이 사실상 어렵다. 이들에게 농업은 부가가치와 수익 창출의 거의 유일한 선택이다.

 

다음, 세계에서 가장 부족한 경지조건 때문이다.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은 380㎡(115평)밖에 안 되는 세계 최하위 조건에 있다. 그동안 우리 농민이 이 면적에서 노동생산성과 토지생산성을 최대화하여 그나마 지금까지 심각한 먹거리 위기를 국민들이 겪지 않게 했다. 앞으로 세계 인구증가 대비 가용 경지의 절대부족(2050년 인구 90억에 필요한 경지는 현재보다 70% 더 필요)이 우려되고, 기후변화 위기 속에 지구적 규모로 닥쳐오는 에너지·물·식량의 위기 등을 고려할 때, 식량의 안정적인 수입을 관리하는 이상으로 국내 적정규모의 농업·농지를 유지해나가야 한다.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과 다원적 기능의 최대한 발휘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

 

농정 패러다임은 ‘한 시대와 사회를 지배하는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농정의 총체적인 틀’이라고 한다. 농정 이념(목표), 농정 대상, 농정 추진체계, 농정 수단 등으로 구성되고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정 이념(목표)이다.

 

그동안의 잘못된 농정 이념이 오늘 농업·농촌 붕괴를 초래하고 있고, 20년 뒤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게 한다. 이제 농정 이념을 경쟁력지상주의에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의 실현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의 실현을 대목표로 하고, 그 세부목표로서 1)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 2)농민의 인간다운 생활권 보장 3)순환과 공생의 도농공동체 실현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농가경제가 안정되고 농민의 삶과 농업생산이 지속가능하도록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의 지원이 국민의 절대적 공감대, 곧 왜 농업을 지원해야 하는지, 그것이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농업·농촌의 존재 이유(가치, 역할)가 무엇인지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 기초해야 지속가능하다는 데 있다.

 

한국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농업의 가장 중요한 존재 가치는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은 무엇보다 먹거리의 안정적 확보(가능한 국내 자급과 안정적인 수입관리)에 의해 지지될 수 있다.

 

농업은 이러한 식량 생산 이외에 그로부터 파생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다양한 기능(다기능성, 다원적 기능, multifuctionality)을 수행한다. 이러한 다기능성 농업에 기초하여 농촌은 단순한 식량 생산 공간의 역할만이 아니라 생활 공간, 경제활동 공간, 환경 및 경관 공간, 문화 및 교육 공간, 휴양 및 보건치유 공간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세 가지 특성, 곧 결합생산, 공공재적 성격, 비교역적 역할을 지닌다. 먼저 농업생산이 지속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합생산의 특성이다. 다원적 기능은 생산이 이루어질 때 파생적으로(결합되어) 생기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다음, 다원적 기능은 누구나 제한 없이 누릴 수 있고(비배제성), 시장가격을 통해서는 그 가치가 적절히 평가·반영되지 않기(시장실패) 때문에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끝으로 비교역적 역할이다. 다원적 기능은 교역을 통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비교역재에 속한다. 수입농산물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루과이라운드에서도 다원적 기능에 관한 지원 정책을 비교역적 관심사항으로서 인정하여 허용보조 정책으로 분류했다.

 

성장제일 생산주의에서 다기능성 농업으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의 실현

 

다원적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농정 패러다임은 경제, 사회문화, 환경을 분절적으로 보는 부문정책 시각과 다르다.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경제, 사회문화, 환경적으로 통합적 정책, 곧 농업·농촌·식품·지역·환경 정책의 통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정책목표로서 성장제일 생산주의의 경제적 효율성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농촌과 다기능성 극대화 농정, 지역먹거리체계 구축, 도농상생, 중소농·가족소농의 협동화, 지역농업 조직화, 민간-행정 간, 지역 이해당사자 주체 간 다층적 거버넌스와 상향식 파트너십을 강조한다.

 

 

<표 1> 농업에 대한 생산주의(산업) 관점과 다기능(지역) 관점 비교

 

 

농정개혁의 주요 의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 실현을 위한 농정개혁 방향 설정

 

그동안 추진해온 성장제일 생산주의 관점의 기존 농정을 진단하여,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보조금을, 농가소득 지지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최대 발휘를 위한 농가 직접지원 프로그램으로 전환 확대하는 등, 새 농정 패러다임에 기초한 농정개혁 방향을 설정한다.

 

이를 위해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을 새롭게 재발견하고 다원적 가치와 역할에 따라 농업·농촌을 재구성할 수 있는 농정 이념(목표), 세부 목표, 정책 수단, 추진 방식, 추진 체계 등을 재설계한다. 이러한 재설계의 목표는 당연히 지역의 지속가능한 통합적 발전과 주체역량 강화에 두어야 한다.

 

농가소득 지지와 다원적 기능의 최대 발휘를 위한 직불제의 대폭 확대

 

전면개방 시대를 맞아 전통적인 시장개입형 가격지지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수입농산물의 범람과 국내산의 과잉공급-가격파동의 악순환 속에 농산물 가격의 상대적 하락과 농업경영비의 상대적 상승은 농업부문의 실질가치를 하락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농업소득만으로는 농가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 이에 성장제일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다원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직접지불제를 재편·강화하여 농가소득 지지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농정개혁의 프론티어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농정개혁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EU는 2005년 품목별 직불제를 통합한 단일직불제를 도입하였다. 농업 예산에서 직불금 비중은 2001년 68%에서 2011년 79.5%로 증가했다. 그 후 2013년 공동농업정책 개혁은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환경보전 등 다원적 기능의 강화 방향으로 직불제를 전면 재편한다. 단일직불의 면적당 지불단가 격차를 축소하여 ‘기본직불’로 지급해 농가간 격차를 줄이고, 환경 기여 조건을 강화한 ‘녹색 직불’, 소규모 농가에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소농 직불’, 40세 이하 신규청년농 직불, 조건불리지역 직불 등을 도입했다. 2013년 개혁은 농업생산에 대한 국가 지원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농업의 환경적 기여 또는 공공재 공급이라는 다기능성 농정으로 전면 전환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직불제는 종류만 많고 실제 농가소득 지지 효과가 미미하다. 농업 예산에서 직불제 비중을 현행 12% 수준에서 5년 후 30%, 10년 후 50%, 장기적으로 EU 수준인 80%까지 확대 추진하여 실질적인 농가소득 보장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환경 기여 조건을 강화하는 대응의무 준수로 국민 공감대 확보

 

농가소득을 지지하는 직불제에 대한 정부 지원의 정당성은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높임으로써 가능하다. 국민이 바라는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를 잘 보전 관리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환경, 경관, 자연자원, 생물다양성 등을 보전 관리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대응의무(보전 관리 의무) 준수를 강화한다. 그래서 다원적 기능을 제고함으로써 국민의 공감대와 지지를 얻도록 한다.

 

교역조건 악화와 경영위기를 흡수할 주요농산물 가격보전직불

 

다원적 기능의 최대 발휘를 위한 직불제의 전면 재편은 전면개방시대에 당장 부닥치는 농가경영 위기 해소대책을 동반해야 실효성이 있다. 즉 수입농산물→농산물 가격파동→농가교역조건 악화와 경영 불확실성을 흡수하여 농가경영을 안정화하는 피해보전(가격보전)직불제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시장개방의 전면화로 교역조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면, 궁극적으로 다원적 기능을 담당할 농민의 경영위기와 이·탈농은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농업·농민 축소·붕괴로 인해 다원적 기능의 발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지 않도록 사전에 국민의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 즉 수입농산물로 인한 직접 피해품목만이 아니라 농산물 간 소비대체성으로 인한 간접피해품목까지 (전면개방의 피해가 특정품목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므로) 중요 농산물들에 대한 가격보전직불제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국민대토론의 광범한 전개

 

농정 패러다임 전환과 농정개혁을 하기에 앞서 ‘국민에게 농업·농촌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 ‘국민은 농업·농촌에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는가?’, ‘전면개방 시대를 맞아 농가피해를 어떻게 보상하면 좋은가?’,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농정을 어떻게 개혁하면 좋은가?’ 등에 대해서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 시민, 관련 산업계, 환경 및 에너지 시민사회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광범한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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