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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자립농업의 길 - 호주, 뉴질랜드를 가다
2017-02-01 16:09:00

 

자립농업의 길

- 호주, 뉴질랜드를 가다

 

전희식 (한울농장 대표. 전북 장수군 산골에 살면서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시골집 고쳐 살기』 등을 썼다.)

 

 

 

밥 한 끼 찾아 한 시간 반

 

열흘간의 해외연수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짧아진 초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칠곡이나 순천 등 지방으로 가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하루를 넘기지 않고 귀가하려고 다들 서둘러서 헤어졌다. 나는 다음날 서울에서 있을 귀농정책연구소 창립식에 가야해서 어차피 1박을 해야 하는 처지라 저녁을 서울에서 먹게 되었다.

 

친구와 만난 장소는 제법 번화가였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꼬박 1시간 반을 헤매다가 겨우 시장기를 달랜 걸 떠올리면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 끼의 밥상 앞에 앉기가 이리도 힘들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다.

 

밥집을 찾으며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는 않았다. 채식을 하지만 우리는 제법 유연한 편이다. 멸치 육수 정도는 감수하는 아량도 있고 김치찌개를 시켰을 때 고기 덩어리만 건져내고 먹기도 하는 융통성 있는 채식인이다. 그런데도 한 시간 반 만에야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고기를 본 메뉴로 하는 식사가 전부여서다. 어디를 가도 밥은 없고 고기였다. 지하식당은 숨이 막힐 듯해서 되돌아 나왔고 어느 건물 7층은 간판과 메뉴가 달라서 헛걸음 했다. 우리가 찾는 메뉴로는 장사가 되지 않았나보다.

 

식탁위에 깔린 비닐 보, 수입산이 대부분인 음식들, 위해성 논란이 여전한 멜라민 식기, 유해물질이 염려되는 코팅이 벗겨진 주방도구들. 이뿐인가. 무쇠솥에 담긴 밥 역시 마찬가지다. 출처를 묻지 않는 폐철들을 녹여 만드는 무쇠 제품들은 방사능 오염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농사의 최종 착지점은 건강한 밥상이다. 내가 지은 농사가 이런 꼴로 식탁에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해월 선생은 일찍이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라 하여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는 이치에 세상만사가 담긴다고 했다. 대한민국 2015년의 밥 한 그릇은 대한민국 얼굴이 담긴다. 농민이 어려 있고 농촌이 엿보인다.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밥 한 그릇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고 할 수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농업을 둘러보러 간 20명 연수단의 참여 이유가 각기 같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랬다. 단돈 7천 원만 지불하면 밥 한 상 받을 수 있는 오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올 농사가 풍년이라서 농산물 값 폭락에 시름이 깊은 우리 농민들은 흉년이면 팔 게 없어 또 걱정이다. 농민이 위태한 나라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 역시 위태롭게 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조건이지만 프로그램이 흥미로워서 참가신청을 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이 되었다. 대산농촌재단의 2015년 해외농업연수였다.

 

 

농부가 주인인 농산물시장

 

어디건 장터는 구경거리로도 그만인 장소다. 현대화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는 재래장터가 더 그렇다. 지역산물은 그 지역의 인문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정취까지 담고 있다. 이번 연수 프로그램에서 20개쯤 되는 크고 작은 방문지 중 여덟 곳이 시장이었다. 시장 방문지가 이렇게 많은 것은 우리나라 농부들의 가장 큰 고심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산도 어렵지만 판매가 늘 고민이다. 가을철이면 시세도 잘 모르고 무 배추를 밭뙈기로 팔아넘기기도 한다. 거래가 안 되면 다음 작기 때문에 갈아엎는 수도 있다. 파종과 물류, 판매에 대한 주도권을 농부가 쥐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시장을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농장 매장

 

농장 매장은 농장 직거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다. 아침에 농장에서 채취한 식품을 날 것 그대로 진열대에 놓으면 약속된 시간에 이용자들이 와서 사 가는 것이다. 신선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호주의 멜버른 근교에 있는 ‘페닌슐라 유기농장(Peninsula Fresh Organics)’과 뉴질랜드의 캠브리지에 있는 ‘모나베일 블루베리 농장(Monavale Blueberies Organic Farm)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가족농이다. 남의 손을 빌리더라도 직원 개념보다 품꾼이다. 평소 가족노동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가족농과 다를 바 없지만 우리나라와 농장규모까지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페닌슐라 농장 주인인 웬 쉴트Wayne Shield(44세)와의 얘기 중에 그가 이곳 외에 좀 떨어진 곳에도 농장 하나를 더 가지고 있대서 얼마나 되는 곳에 있냐고 했더니 자그마치 350킬로미터나 멀리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가 싶었다. 아랫동네쯤에 트럭 타고 2-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떠올렸다가 찔끔했다. 5대째 이 농장을 가꾸고 있다는 그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유기 가공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은 기본이고 근교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장바구니’ 주문 배달도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 구성은 우리와 비슷했다. 10여 가지 농산물을 넣어 포장하는데 호주달러로 30달러라고 했다. 2만5천 원가량이다. 포장 작업을 베트남 출신 외국인이 하고 있었다. 그 지역의 70~80%가 이주민인데, 그 이유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임금격차가 없고 엄격한 노동법이 적용되며 농장주와의 분쟁이 생기면 행정이나 법원은 철저히 약자 쪽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전통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쉴트는 1년 소득이 200만 달러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22억 원이다. 말이 가족농이지 엄청난 대농이었다. 그만큼 우리와는 농사의 규모가 다른 것이다.

 

호주 축산 현황을 보면 1헥타르인 3천 평 목장에 소가 1.6마리꼴이라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준 현지 뉴질랜드 농업연구소 김태훈 박사의 설명이다.

 

가족농의 농사법도 우리의 통상적인 개념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농법의 차이는 농사 규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농기계가 용도별로 다 있었다. 대형농기계를 가족농 개념에 넣지 않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물이 귀한 상황이라 따로 저수지를 만들어 놓고 빗물을 모아두었다가 쓰고 있었다. 농사용 물의 부족 현상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임을 알게 한다.

 

가족농은 곧 소농이라는 우리 개념과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직접 자신이 농사지은 작물을 가공까지 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파는 점은 닮았다. 모나베일 블루베리 농장Monavale Blueberry Farm은 블루베리로 와인도 만들고 잼도 만들고 젤리 같은 것도 만들어서 농장 입구 방문자 센터에서 팔고 있었다. 식당도 직접 운영했다. 그 농장에서 나는 재료로 식탁을 차리는데 그만큼 방문자가 많다는 얘기다.

 

농장주 폴Paul은 육종도 직접 해 26종의 블루베리 품종을 보유하고 있었다. 블루베리만 20헥타르(약 6만 평)에 재배하고 있는데 수종에 따라 나무의 크기도 다르고 관리 방법도 달리하고 있었다.

 

문화장터

 

이 농산물 장터를 ‘농부문화장터’라고 부르기로 한다. 농산물만 파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문화가 결합되어 운영되는 장터여서다. 우리나라에도 교육농장과 체험농장이 만들어진 지는 오래되었다. 사실 외국에 가 본다고 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있는 건 아니다. 외국과의 왕래가 빈번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서다. 요즘은 농정 관계자뿐 아니라 농부들의 해외 농업연수가 활발하다보니 지구 반대편에서 시행하는 독특한 농산물 거래 기법은 금방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시선과 철학에 따라 같은 곳에 가더라도 달리 해석되고 달리 적용되는 법이다.

 

내 눈에는 여러 농부문화장터 중, ‘콜링우드 어린이 교육용 농부시장(Collingwood Children’s Park)’이 대표적인 장터로 보였다. 아주 독특하게 꾸며지고 독특하게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우리 방문단의 많은 사람들이 전체 토론시간에 이 농부시장의 독특함에 놀라며 우리나라의 여러 체험농장 사례와 개선점을 얘기했을 정도다. 이 시장은 관광, 교육, 장터, 문화, 공원, 농장, 목장이 결합되어 있었다. 또한 지역공동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운영의 특징 하나는, 평소에는 이 교육농장 입장료가 20달러이나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농부시장 장날에는 무료라고 한다. 농부를 위한 장터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조치다. 장날에 맞춰 갔는데 장터가 참 재미있었다. 농부들이 정해진 위치에 트럭이나 승용차를 대 놓고 적재함을 열거나 트렁크를 젖혀 올려서 바로 점포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넘쳤다. 이유가 있었다. 장터가 열리는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쳐 오는 길목이 있는데 복합경영 농장과 동물농장이 있었다. 동물농장에서 아이들은 젖소 젖을 짜거나 공작새의 화려한 자태를 구경한다. 닭이나 칠면조, 양, 공작, 강아지 등이 자유롭게 어울려 돌아다니는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누비다 보면 사람도 농장의 동물이 된 느낌이 들 정도다. 동물들은 만져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과 친숙하다.

 

콜링우드 교육농장의 동물

 

조랑말도 있고 거름자리도 있어서 거름 치우기 체험도 가능하다. 곳곳에 벤치와 식구 단위의 식사 터가 있어서 장터에서 사 온 음식을 둘러앉아 먹을 수도 있다. 앉는 자리는 볏짚다발을 뭉쳐서 만든 것이었다. 정취가 있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볶음밥 판매 부스에서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재일교포 3세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라며 김치를 덤으로 줘서 고맙게 먹었다.

 

교외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요 아이들 데리고 와서 놀기에도 좋은 공원 같은 곳이었다. 한 젊은 여성은 집에서 만든 여러 종류의 잼을 가져왔는데 근처에서 열리는 농부장터 이곳저곳에 갈 때마다 3천 명쯤 되는 SNS 친구들에게 알린다고 했다. 그러면 근처 사는 사람 또는 인근으로 나들이 나온 친구(고객)들이 놀기도 할 겸 찾아온다는 것이다.

 

멜버른 시내 중심에서 겨우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강변이다 보니 땅값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이 농장이 지금처럼 자리 잡은 것은 개발을 추진하려던 시 당국과 시민들 사이에 오랜 논쟁과 협상이 거듭된 결과물이어서 시민들의 사랑을 더 받는다고 한다. 동물원이자 교육장이자 농장이자 공원인 이곳이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멜버른 외곽에 있는 ‘세레스 유기농장(Ceres Environment Park)’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전에 폐기물 처리장이었던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토양을 개선하고 조성한 곳으로 친환경 연구와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육묘장까지 운영하면서 지역 농부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이곳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친환경의 모든 영역이 망라되어 있어서다. 친환경 육묘, 친환경 농사, 친환경 재생에너지, 친환경 습지, 친환경 농부장터, 친환경 식당, 친환경 교육장, 친환경 퇴비장 등이 1만3천 평 농장 안에 잘 배치되어 있었다. 1년에 견학 오는 학생들만 8만 명이라고 했다. 농장에서 직영하는 판매장도 있고 농부들이 직접 생산물을 가져와 거래하는 장터도 있었다.

 

세레스 농장의 농부시장

 

친환경 재생에너지 부분은 특히 잘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산청군의 민들레 공동체나 고산의 덕암마을, 임실의 중금마을 등 에너지 자립마을이 있고 신재생에너지 체험장이 있지만 이곳 세레스는 많이 달랐다. 가령 이런 식이다.

 

거대한 집열기가 햇볕을 모으면 그 열로 광물을 가열하고 그 광물의 온도차를 이용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식물 잔해들을 발효시켜 바이오 가스를 만들어 주방으로 연결해 조리를 하는 시설도 있었다. 학생들이 교육체험 하기에 좋은 장치로 보였다.

 

풍력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이용하여 농장에 물을 대는 장치도 있다. 빗물을 모아두는 저지대의 연못물을 위쪽 농장으로 끌어 올리는 이 장치는 수로 배관을 지하로 하지 않고 노출시켜서 방문객이 그 원리를 잘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경사진 농장 옆에는 버려진 욕조 여러 개를 위에서 아래로 나란히 이어놓고 배수구끼리 파이프로 연결해서 욕조마다 농사 부산물과 음식 찌꺼기, 가축 배설물 등을 채워두니 지렁이 양식장도 되고 고농축 액비 생산시설도 되었다. 유기물이 부식되면서 연결된 파이프로 진한 액비가 흘러내려 모아지고 있었다. 이는 작물에 뿌려주는 좋은 거름이다.

 

온라인 장터

 

온라인 판매가 발달하기로는 우리나라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우비Ooooby(Out of our own Backyards)’는 온라인 장터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온라인 농산물 거래 장터와 닮았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각 지역에 독립적인 운영체가 있고 그것이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생협들처럼 전국 물류센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개별 농가나 몇몇 영농조합 제철 농산물 꾸러미와도 달랐다.

 

우리가 오클랜드 우비를 방문한 날은 화요일이었는데 마침 농부들이 농산물을 가져오는 날인 동시에 발송하는 날이었다. 전 주 금요일까지 주문 받은 목록을 바탕으로 해당 농가들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선별작업을 거쳐 포장하는 중이었다.

 

농가들에게는 1주 단위로 대금을 지불한다고 한다. 호주의 시드니뿐 아니라 다른 해외 지역으로 확장해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도 이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운영 면에서 강점이 있는지는 명료하게 보이지 않았다. 지역 체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두드러진 특징 같았다.

 

 

농민들의 주도성

 

우리가 둘러본 여러 유형의 농산물 시장들은 어느 곳 가리지 않고 농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가장 큰 차이라고 하겠다. 위에 소개했던 페닌슐라 유기농장의 농장주는 ‘빅토리아 주 농민시장연합회’ 회장이었다. 시장연합회를 농민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가락동 농산물시장을 농민들이 운영한다는 것이니 새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농민들로 조직된 ‘빅토리아 주 농민연합(Victoria Famers Federation)’에서는 주 정부의 농업정책을 수립한다. 산하에 축산, 곡물, 원예, 양계 등 일곱 개 강력한 품목별 조직을 구성하여 생산과 유통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고 놀라운 것은 물·토양관리위원회와 같이 주요 사안에 대한 네 개 위원회를 구성하여 자율적으로 물과 토양을 관리하고 있었다. 행정의 역할을 농민단체가 하고 있는 격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호주뿐 아니라 뉴질랜드도 같았다. ‘뉴질랜드 유기농협회(Organic Farm New Zealand)’는 자체 유기인증을 발급하는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롱브레스 유기농 농장(Long Breath Eco Organic Farm)’ 농장주도 위 협회의 감사직을 맡았었고 ‘유기농시스템’의 회장 직을 맡고 있었다. 전형적인 가족농이면서 농산물 시장을 운영하는 것과 농업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지역농업을 협의하는 기구인 농민회의소마저 지지부진하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농민 손실을 보전하고자 하는 ‘농업파괴무역이익 공유제’를 하자고 몇 년째 요구해도 마이동풍인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농민단체가 나라 농정을 좌지우지하고 농산물 시장도 장악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더구나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직전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뉴질랜드처럼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주지 않고 농민들이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게 맞는 말인가?

 

연수단의 조별 토론에서 나온 몇 가지 지적은 기억할 만하다.

 

우선, 호주와 뉴질랜드는 국토면적에서 농목축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66%와 52%나 된다. 20%인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총 면적으로 따지면 더 차이가 커진다. 호주는 땅덩어리가 우리나라의 77배다.

 

호주는 서비스를 포함한 총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농목축업의 비중이 2004년 기준으로 자그마치 19%나 된다. 소고기 수출은 세계 1위이고 유제품 수출은 세계 3위이다. 전 세계 양털 생산량의 1/3을 호주가 생산한다. 뉴질랜드는 총 수출입규모의 50%에 이른다. 우리는 1%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수출 순위 선두에 드는 반도체산업과 통신기기, 그리고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는 삼성과 현대가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농목축업이 중심산업인 나라와 경제유발효과나 국민총생산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복지제도도 검토 대상이다. 멜버른의 ‘퀸빅토리아’ 시장에서 만난 교포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당신은 지금 한 달에 180만 원씩 연금을 받는다고 했다. 지금껏 자녀들 교육비와 의료비를 전액 무료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실제 우리는 멜버른 도심의 순환 전차를 무한정 무료로 탈 수 있었다.

 

직장과 수입을 잃는 순간 알거지가 되는 우리 현실과 다르다. 사회적 지위에서 가장 취약한 우리 농민들의 처지를 저런 나라의 상황에 견주어서 농업지원금 운운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하겠다.

 

사실, 농업은 경제성이나 생산성으로 검토될 분야가 아니기도 하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그런 단순 경제논리로 농업을 보지 않는다. 국민총생산의 2%도 되지 않는 농업을 애지중지하며 지원하고 육성하는 선진국들이 많다. 농업이 갖는 다원적 가치 때문이다. 이것을 인식하느냐 여부가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농업을 중시하는 것 또한 꼭 농산업의 규모나 생산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유기농에 대한 규정을 보면 일종의 철학의 문제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유기농을 참으로 정교하게 규정하고 있다. 2조에 보면,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제·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그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업·수산업·축산업·임업(이하 “농어업”이라 한다) 부산물의 재활용 등을 통하여 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한 농산물·수산물·축산물·임산물(이하 “농수산물”이라 한다)을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토양의 건강성을 살리고, 생태 및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키는 것. 즉, 지역환경에 순응하여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순환시키는 생태적 노력을 통해 인간 삶의 질을 높이며, 사람들 간의 공정한 관계를 형성시키고 환경 보존의 유익함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전통, 혁신 및 과학기술을 종합한 농업을 의미한다.]로 되어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다 보니 작년에 가수 이효리가 집에서 키운 콩을 판매한다고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가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기농이라고 써 붙인 팻말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유기농산물의 생산, 취급, 판매는 국가기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이 법 60조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하고 있다. 참 황량한 농업정책이 아닐 수 없다. 정책이랄 것도 없고 철학의 부재가 개탄스러운 수준이다. 유기농산물의 개념과 지향을 바로 세우기보다 농사과정의 화학물리성과 위반 시 처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역동적인 생명의 길

 

위에 언급했던 ‘롱브레스 유기농 농장(Long Breath Eco Organic Farm)’의 농장주 브렌든 홀 Brendan Hoare을 만나기 전에 농장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고 여겼는데 역시 그랬다. 호흡을 농장 이름에 붙인 사람답게 그는 동양에 심취하여 5년 동안이나 아시아에서 농사일을 배웠고 지난 10월 괴산에서 열린 세계유기농축제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의 농장은 농사가 주主가 아니라 삶이 주였고 자연이 주심인 것처럼 보였다. 자연에 다가가는 태도도 사뭇 달랐다. 주변 산세와 등고선 표본도를 놓고 농장을 조성했다. 물과 나무와 풀과 동물이 어디에 깃들어야 하는지 풍수와 주역의 원리를 쫓아 배치했다.

 

롱브레스 농장에서 브렌든 홀이 농장 주변의 지형 등고표본을 놓고 농장 조성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뒷산에서 화목이 조달되었고 꽃이 만든 꿀을 벌이 모았다. 동물들과 과수, 밭농사, 정원, 집, 숲이 합당한 자기 위치에서 활력이 있었다. 현대농업이 오래 전 잃어버린 농사의 참 모습이다.

 

홀은 우리에게 인상 깊게 읽은 책이라면서 『4천년의 농부』를 소개했다. 이 책은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히람 킹Franklin Hiram King(1848 ~ 1911) 박사가 1909년부터 3년간 중국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면서 유기농법을 눈으로 보고 쓴 답사 보고서이자 그의 유작이다. 킹은 화학비료와 거대 농기계에 의존하는 현대농업을 이미 그 당시에 절감하고서 동양에서 대안을 찾았던 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낭비적인 오물 생산자다. 인간은 그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그 자신까지도 황폐화시켰다. 그의 파괴의 빗자루는 세대를 거치면서 통제력을 잃었고, 모든 생명의 토대가 되는 땅의 비옥함을 앗아가 향후 수백 년 정도밖에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절규하면서 그는 땅을 착취하지 않는 공생의 농법에서 희망을 찾았다.

 

인간의 똥을 비롯한 동물의 배설물과 연료로 쓰고 남은 재, 땔감으로 쓸 수 없는 낙엽과 잔가지 등을 신성시하면서 땅에 뿌려온 동양의 배설물 활용법을 극찬했다. 모두 우리가 버린 지 오래된 삶의 지혜고 농사기술이다.

 

1924년경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한 농법인 생명역동농법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카오스 스프링스 농장(Chaos Springs Farm)’ 방문도 인상 깊었다. 잔디를 깎는 방향까지도 역동성을 살리고 있었고 밭에 심은 작물이 8괘를 따른 모습도 돋보였다. 특히 증폭제를 만드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모터를 이용하여 큰 투명한 물통의 물을 정회전과 역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24시간 동안 계속한다고 했다.

 

 

카오스 스프링 농장의 고속회전을 통해 미생물 증폭제 만드는 장치

 

 

농업환경 따른 자립도 계획 시급

 

호주나 뉴질랜드는 자연조건이 농목축업과 원예에 적합하고 낙농업을 하기에도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야의 산물로 타 산업 종사자까지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조건에서는 농업의 역할과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수출농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이 많고 농지가 협소한 우리의 경우 자립농업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가 중요해 보인다. 흔히 자립농업의 개념을 국민 단위의 먹을거리 자급으로 보기도 하고, 농민들의 자립적 삶에 두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우리 농업 현실에서는 요원한 과제로 남는다.

 

국토의 합리적인 활용범위 안에서 우리의 농업자립 계획을 설계할 때라고 본다. 먹을거리의 자립도뿐 아니라 농산 직물이나 공업용 원자재 공급, 농사와 농소득에서 산림생산과의 연관성을 살피는 농업자립도를 정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관광이나 교육, 힐링까지 농업의 부가적 가치 영역에 두는 경향이다.

 

농지 규모나 먹을거리 생산량에 대한 관심에서 농부 중심의 유통, 문화 매개농업 등 새로운 분야를 열어 가야 할 것이다.한국 농업이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번 연수단원들의 공통된 과제가 될 것이다. 연수단은 여러 농업 현장에서 경험과 지혜를 축적한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의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었다.

 

 

어스송 공동체 마을의 정원형 농원

 

뉴질랜드 북부에 있는 생태마을 공동체 ‘어스송 커뮤니티(Earthsong Eco-Neighborhood)’ 에서 듣게 된 소크라테스의 말로 글을 맺는다. 농부가 밥 한 그릇 찾기 위해 도심에서 1시간 반을 헤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진정한 변화란 과거에 맞서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당신의 온 힘을 기울일 때 찾아온다.” - 소크라테스

 

 

 

 

* 모심과 살림 6호(2015)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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