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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한살림, 가까운 먹을거리와 공정무역
2017-09-01 19:10:00

  

한살림, 가까운 먹을거리와 공정무역

 

 

이근행

모심과살림연구소와 한살림연합, 생산자연합회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농업살림연구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ecolkh@naver.com

 

 

한살림이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을 구상하고 논의한 지 10년이 되었다. 가까운 먹을거리 표시를 시작한 것은 2009년 봄의 일이다. 2008년 봄과 여름에는 광우병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촛불이 타올랐다. 2010년 지방선거는 무상급식으로 뜨거웠고, 논의는 친환경급식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 무렵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먹자는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으로 로컬푸드 매장과 파머스마켓, 꾸러미가 확산되었다. 음식문화의 관점에서는 슬로푸드가 주목받았다. 슬로푸드 국제대회와 박람회가 열리고,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도 개최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7~2008년에는 전 세계적 이상기후와 유가폭등, 곡물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며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해 30여 개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2010년의 애그플레이션은 자스민 혁명으로 이어져 중동, 아프리카 독재정권들의 붕괴를 낳았고, 시리아의 복잡한 정치상황은 내전으로 확산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에 얼마 앞서, 아름다운가게에서는 공정무역사업을 구상하고 2003년 아시아 지역 수공예품을 시작으로 해 2006년부터 공정무역 원두커피를 취급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민중교역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생산과 소비를 호혜적 연대로 구성하는 아시아 민중기금이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2017년 공정무역의 날(5월 둘째토요일)에는 일본과 한국의 공정무역과 민중교역 경험과 과제를 나누는 ‘공정무역&민중교역 포럼’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처럼 지난 10여 년간 사회 경제적 상황, 생산과 소비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이 땅의 농업을 위해 명태 이외 품목에 대해서는 국가 단위를 넘어선 교역에 신중해온 한살림에서는 근래 들어 설탕을 한시적 조건으로 부분 허용키로 했고, 압착식용유 생산과 넌지엠오사료 용도로 대두 수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글은 한살림의 기본 가치인 밥상살림·농업살림의 관점에서 ‘가까운 먹을거리’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변화하는 농업생산과 먹을거리 환경에서 공정무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농업, 먹을거리 환경의 변화

 

먹을거리 생산과 소비의 역사는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제도를 만들고 생산관계를 구성해 정치경제체제를 혁신해온 지난 만여 년의 시간을 넘나든다. 인류의 발전과 재생산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긴 시간의 끄트머리, 100여 년 근대의 기간에 인류는 양적으로 5배에 가까운 인구증가를 이루어 75억 명을 넘어섰다. 위대한 생산력의 승리라 할 만하다. 현 세대의 주류는 지구행성에서 전무후무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고, 우리 사회 또한 넘쳐나는 육식과 음식에 대한 탐닉에 취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는 과거(화석연료 등)와 미래(핵폐기물과 유전자조작 등)의 에너지와 자원을 현재로 끌어들여 쏟아 부은 성과일 뿐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생산·소비 방식임을 깨닫고 있기도 하다. 그 사이 제국주의와 개발국가 시대,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구축된 ‘세계농식품체계global agri-food system’는 강고하게 버티고 있고, 우리는 기꺼이 먹을거리 주권을 내주고 그 체계 아래 포섭되어 있다. 농지를 개발지로 내주고 밥상에 올릴 쌀마저 초국적 곡물상에 내주며 우리 밥상의 5분의 1밖에는 책임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공식품의 대부분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가공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입에 들어오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끼 밥상에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 체제와 사회문화적 환경·제도가 관철되어 있고, 자본주의적 상품관계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 폭도 크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라 저성장, 제로성장 시대로 진입하였다. 모든 성장하던 사회지표들은 절벽(청년고용절벽, 인구절벽, 성장절벽 등)을 맞닥뜨리고 있다. 생산부문도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자원 생산의 정점peak으로 표현된다. 많이 알려진 석유생산정점피크오일, 모든 민물의 70%를 이용하고 있는 농업이 활용할 수 있는 민물의 고갈피크워터, 자본의 국내외 토지수탈로 소농이 일굴 농지의 고갈피크랜드, 소농과 자급농이 사라짐으로써 함께 사라질 전통농사지식피크농업지식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생산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와 병충해 피해이다. 생산량의 감소와 불안정은 인류사회 지속성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공정무역에서도 근래 들어 이상기후에 따른 제3세계 산지의 생산 불안정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 그리고 한살림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며, 한살림 생산자, 소비자 구성원들의 생산-소비양식, 한살림과 농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안정된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고리를 풀어야 할까?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의 확장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과 위기가 높아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먹을거리 생산農과 소비食 사이 거리가,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세계농식품체계를 강화시켜온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확대는 ‘공간적 거리’를 확대시켰고, 이동거리가 늘어나는 데 따라 에너지 사용이 증가하였다. 농과 식 모두 산업화되면서 ‘시간적 거리’ 또한 확대되었다. 작물과 가축의 생장주기는 무시되고, 저장이 늘었으며, 영양·신선도·안전성은 떨어졌다. 이 역시 에너지를 투입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시공간적 거리의 확대는 ‘사회적 거리’를 확대하여 농-식의 관계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유통단계는 복잡해지고 단계별 독점화는 강화되었다. 이러한 농-식 거리의 확대는 농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관계를 굳혀왔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라는 본질을 중요시해온 한살림은 멀어져가는 농-식 관계와 다가오는 기후변화 시대를 고민하며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을 구상하였다. 2007년말 논의가 시작되어 토론회를 열고 해외 사례를 참고하였다.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은 우리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려 먹을거리 발자국을 줄이자는 캠페인이며, 장거리 수송에 따른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으로 밥상에서 기후변화를 인식하고 환경을 함께 지키자는 살림운동의 의미를 갖는다.

 

이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은 이른바 푸드마일 캠페인의 번역이다. ‘푸드마일Food Miles’은 1994년 영국의 시민단체 ‘지속가능한 농업·식량·환경연합SAFE’1)에서 ‘푸드마일 리포트: 식품의 장거리 이동의 위험성’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지역농업 육성과 로컬푸드 운동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먹을거리 수입이 많은 일본은 농림수산정책연구소에서 푸드 마일리지 개념을 도입하여(2001년) 일본,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푸드 마일리지를 측정하고 국가별 식량공급구조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국립환경과학원이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를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먹을거리를 얼마나 멀리서 들여오고 있는지를 조사·연구하였는데(2009년과 2012년) 2010년 이후로는 일본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일인당 푸드마일리지(7,085t·㎞/인)가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 푸드마일에 대한 인식은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과 연결되어 확산되었고, ‘대지를 지키는 모임’은 푸드마일과 운송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산출하는 ‘푸드 마일리지 캠페인(2003년)’을 전개하였다. 이는 ‘식육기본법’ 제정(2006년)에도 영향을 미쳤고, 한살림과 한국 사회도 이를 참고하였다.

 

한살림은 2009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점으로 ‘가까운 먹을거리 표시제’를 시작하여, 많은 양이 수입되는 밀, 콩 등이 높은 비중으로 포함되는 물품이나 두부, 빵, 국수, 장류, 쌀 등 주요 농산·가공 품목에 적용하고 있다. ‘국내 산지/수입될 경우 해외 산지’에서 각각 운송되는 이동거리와 이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비교하여 물품포장과 영수증 등에 표시하였다. 표시된 품목들에 대해 (수입하지 않고) 한살림 물품을 소비하여 감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온실가스CO2 양은 2010년 1,051톤에서 2016년 1,509톤으로 늘어났다.2)

 

가까운 먹을거리 표시 예

 

 

푸드마일은 수치로 표시되어 소비자들에게 먹을거리 이동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가까운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나와 지구를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지표이다. 그리하여 식품 수입량이 많은 나라에서 관심 있게 연구·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푸드마일은 이동거리만을 따지는 단순한 지표이기 때문에 생산에서 가공과 유통, 소비와 폐기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간과한다는 비판과 논쟁도 많이 있다. 단순한 예로 호주에서 방목되어 수입되는 소고기와 대부분 수입 사료를 먹고 자라는 한우를 비교했을 때 사료의 이동거리, 사육 과정에서 들어가는 에너지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모두 합해보면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영국에서 푸드마일 논의가 진행되자 뉴질랜드 링컨대학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양고기와 영국에서 생산된 양고기의 전 과정을 평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영국에서 생산된 양고기에서 발생된 온실가스 배출량이 네 배에 이른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품의 환경성을 따질 때 생산에서 소비를 거쳐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투입된 물질과 에너지를 산출해야(탄소라벨링) 한다는 것이다. 푸드마일을 강조하는 로컬푸드는 지역의 생산과 소비관계, 고용, 복지, 문화, 교육, 환경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우리의 먹을거리 살림은 단순하지 않다.

 

한살림의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은 하나의 캠페인으로서 의미는 여전하지만 표시제를 넘어선 내용의 개발이나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정무역, 민중교역의 전개

 

푸드마일이 놓치고 있는 점은 또 없을까? 한편에서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선진국에 수출하는 경우에 대해 공정마일Fair Miles 논의도 활발하다. 이는 교역이 개도국에 미치는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고려하는 개념이다. 영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을 구매하는 데 매일 백만 파운드를 사용하고 있고, 아프리카 농가들은 영국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 영국에서 직접 생산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하면 영국이 10.6톤, 케냐는 0.3톤이다. 에너지집약적인 영국에서 온실을 지어 토마토를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아니면 이동에 따른 에너지 소모는 있더라도 에너지가 덜 투입되는 케냐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농민들의 생산과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공정마일은 푸드마일과 공정무역의 접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대화와 투명성, 존중에 기초하여 국제무역에서 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거래기반의 파트너십으로, 저개발국가의 소외된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고 정의된다. 식민지시대 노예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지원하는 활동에서 시작하여 2차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는 서구의 종교단체, 비영리단체들이 3세계의 노동자, 농민의 생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소규모 교역활동에 머물렀다. 1990년대 이후 시장규모가 급속히 확장되고 공인인증기관도 여러 곳으로 늘었으며, 품목도 커피, 바나나, 차, 과일, 코코아, 꿀, 설탕, 쌀, 너트, 오일, 향신료 등으로 다양해졌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 커피로 본격화하여 설탕, 초콜릿, 올리브유, 축구공, 토산품과 의류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12 세계 공정무역의날 한국 페스티벌 ⓒ아름다운커피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자립으로 가기보다는 의존이 지속된다는 등의 비판이나 주류화 논란이 있으나 관심과 시장이 확대되면서 점차 규모화하고 관점과 활동의 갈래도 다양해지며 소비자들의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동안 한살림은 농업살림의 가치지향을 명확히 하여 이 땅의 건강을 회복하고 건강한 생산을 확산하는 데 충실하기 위해 해외 교역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우리 바다에서 사라졌으나 식문화에서 버리기 어려운 명태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수입품을 취급하고 있다. 15년 전, 이 결정을 내리는 데 2년의 논쟁을 거쳤다. 공정무역 설탕을 한시적으로 취급하는 데에도 수년간의 의견나눔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확장되는 시장과 소비 인식에 따라 공정한 무역방식이라면 필요한 물품을 취급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점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림의 가치가 열린 것이듯, 한살림운동 또한 근본주의나 국수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어려운 시절 한살림도 서구 사회의 지원을 받아 자리 잡을 수 있었듯, 한살림의 성과라 할 수 있는 가치와 자원을 필요한 지역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류를 해나가고 있다. 특히 서두에 언급한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에도 주요 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이 기금은 일본과 한국의 생협 등을 중심으로 진행해온 민중교역을 발전시켜 아시아 여러 나라 민중교역 단체들 간의 상호교류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2009년에 설립된 이래 연대 활동과 민중교역 생산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금융사업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농업살림의 길

 

농업살림과 공정무역은 어떤 관계일까? 배타적인 긴장관계일까 혹은 보완적인 포용관계일 수 있을까? 사실 우리 농업이 처한 현실에서는 이런 논의가 배부른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유무역 정책으로 아예 생산부문에서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으니, 당당히 제값 받고 주요 주제에 들어가는 공정무역처럼 농업도 이 땅에서 공정한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는 게 우선 드는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 농업의 현실은 밝지만은 않다. 심지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이 정부의 농정과제에 농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드러나지 않아 생산 현장의 성토가 들끓고 있는 와중이다.

 

2009 호혜를 위한 아시아민중기금 창립총회

 

우리 농업의 핵심 과제는 무너지고 있는 자급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회생하는 만큼의 자급역량을 지속하여 유지·확장하는 일이다. 한 사회의 자급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농사짓는 사람의 수와 연령대, 농지의 면적과 지력, 농업용수와 종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농업살림의 길이다. 자급역량이 큰 사회는 공정무역과 같은 활동을 오히려 포용할 수 있다. 공정무역조차 경계하고 배타적인 사회는 자급역량이 낮다는 반증이다.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자존감을 가진, 자기 중심이 바로 서 있는 존재는 타 존재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정도나 인정하는 태도도 다르다. 살림의 실천은 타자와의 소통과 교섭을 통해 자기를 혁신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한살림운동의 중요한 실천은 밥상과 농업의 건강을 살리는 데 있다. 밥상의 건강함은 농업의 자급력이 살아나야 보장되고, 농업의 자급력은 밥상을 건강하게 살리는 실천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농업 자급력이 위기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정무역의 확대를 비판하며 막아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유무역 시대에 손 놓고 있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살림의 생산과 소비 관계처럼 생산-소비의 얼굴이 있는 직접적인 관계, 정당한 생산보장과 자립지원의 경제관계, 인권과 생명권을 인식하는 생산방식 지원 등, 공정무역에 비추어 현재의 산업화·상품화된 관행적 생산을 성찰하고 우리 사회의 생산방식을 돌아볼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 기존 자유무역 관행을 견제할 안목과 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공정무역의 확대로 관련한 국내 물품 생산의 자급력이 떨어진다면 보다 면밀히 검토해 볼 일이지만, 상업적 주류화를 꾀하는 공정무역이 아니라면 품목 생산이 충돌하는 배타적 상황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살림의 경우는 나름 내재화한 농업살림의 안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입산 명태와 설탕을 논의하고 도입한 방식을 볼 때 그러하다. 물품교역의 봇물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경계는 건강한 예민함이나, 그렇다고 논의조차 금기시하는 것은 살림의 접근이 아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대두 수입문제는 한살림이 새롭게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설탕의 경우는 생산자들이 북해도 사탕무 재배와 정제시설을 돌아보고 가져와 재배해보기도 했지만, 일정 기간 안에 효소를 담을 정제설탕을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설탕 취급이 꿀 등 다른 품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지치는 않으며 한편으로 매실 등의 안정적 소비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판단으로 당시 논쟁에서 다소 소극적으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압착식식용유와 넌지엠오대두박 사료 생산을 위해 대두를 수입하는 것은 그 품목의 특성상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대두는 주요 곡물이자 국내에서도 자급력을 높여나갈 품목이기 때문에 공정무역의 긍정적 요소를 모두 동원한다 해도 콩 수입이라는 물품 교역의 진행과정이 국내 콩 생산을 늘려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부문의 검토에서는 가격과 공급의 안정성이 중요하겠지만 한살림이 농업살림을 기치로 내세우는 만큼 앞서 언급한 공정마일이나 공정무역의 관점에서는 어떠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대두 수입도 업체에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공정무역과 민중교역의 경험에서 배운 안목으로 살펴보고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생산자연합회는 지난 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검토하고 ‘연합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내용을 수용하기로 함. 다만, 수입콩의 용도를 대두유와 대두박 생산에만 국한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수입콩 사용과 동시에 우리콩살리기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는 의견을 냈다. 덧붙인다면 당장은 어렵겠지만 대두유와 대두박 생산에 우리콩을 공급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리콩살리기운동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비부문의 필요를 조직하는 것이 생협조직의 역할이라면, 생산부문에서 또한 생산자들의 의견과 생산 환경을 살펴보고 생산조직으로서 책임 있는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에도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생산조직이 관련 여건을 충분히 파악해 농업살림의 관점에서 책임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참고하여 소비조직이 의견을 수렴하고, 최종적으로 생산-소비 대표 단위에서 논의해 결정한다면 한살림의 첫 마음을 지켜가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갈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은 농업살림의 메시지이다. 메시지는 형식의 유지만이 아니라 그 안에 시대변화에 맞는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공정무역은 농업살림의 금기가 아니다. 한살림을 하는 것은 농업살림을 주요 가치로 인식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응하고 실천해가는 것이다.

 

주권이 내게 있음을 확신하는 국민의 참여와 실천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듯이, 식량주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천이 한살림을 실현할 것이다.

 

 

 

1) Sustainable Agriculture Food and Environment, 1999년 Sustain으로 재편

2) 한살림 총회자료집 참조.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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