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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지역에서 쓰는 한살림운동사
2017-07-05 10:17:00

 

지역에서 쓰는 한살림운동사

- 기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다

 

 

김현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string@hansalim.or.kr

 

 

1985년 원주소비자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는 참석자들의 투표로 이사장을 선출했다. 투표용지 37매가 담긴 봉투는 30년 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창고 같은 방의 허름한 장에서 고스란히 발견됐다.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는 그 자체로 세월의 흔적이었다. 세로로 쓰인 한 투표용지의 글씨를 두고 혹 무위당 선생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투표용지뿐 아니라 수기로 작성한 회의록, 조합원원장, 교육일지, 주문장 등, 당시 조합 운영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료들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다. 이전에 진광학원현 진광고등학교에서 한살림에 내주어 조합 사무실 겸 창고로 썼던 그 공간은 이후 오랫동안 비어 있는 채로 남아 있다가 뒷날 원주의 사회적기업 ‘노나메기’에서 전체 공간 중 일부를 정비해 사무실로 사용해왔는데, 몇 해 전 그곳에서 오래된 사진 몇 장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로 미루어 한살림 초기 모습으로 짐작됐다. 이후 원주한살림1) 30년 백서 작업을 맡은 담당 활동가가 다시 그 장소를 찾았고, 구석구석 뒤진 끝에 마침내 낡은 문서들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쥐똥과 오줌 자국, 갉아먹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채로였다. 무더운 여름날, 악취와 땀으로 범벅된 속에서 귀한 자료들을 ‘구출’한 이야기는 원주한살림 30년사 정리 과정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한 장면이었다.

 

과거의 자료들은 그저 먼지 쌓인 종이뭉치이거나 보존연한이 지나면 폐기해도 무방한 자료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록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자료를 모으는 일은 종종 고고학에서의 발굴 작업에 비유된다. 과거를 복원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발견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디지털 장치로 손쉽게 기록을 생산하고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손으로 기록하고 어디엔가 자리를 마련해 보관해야 했음을 새삼 떠올린다. 책장이나 캐비닛 속 문서들이 30년 뒤에 중요한 ‘사료’로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 예상하기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살림운동이 서른 해를 넘기는 동안, 각 지역마다 자기 역사를 정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작업은 당연히 그동안 여러 형태로 기록된 자료를 모으는 일에서 시작된다. 무엇이 남아있는가를 보는 것은 동시에 무엇이 남아있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말과 글, 즉 기억의 기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원주한살림에서는 2015년 30년 백서를 발간했고, 한살림경남의 30년사는 해를 넘겨 2017년에 책으로 묶였다. 부산에서는 2013년에 20년사를, 청주에서는 2015년에 25년사를 각각 펴냈다. 당시 집필 작업을 맡았던 이들을 만나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모습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봐야 한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바였다. 과거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그것을 공동의 기억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에 다시금 주목하는 이유다.

 

1986년 서울 제기동의 한살림농산을 통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살림’이라는 이름은 각지에서 꿈틀대던 움직임들과 만나 더 크고 다채로운 한살림이 되었다. 원주소협은 1985년에, 경남소협은 1986년에 각각 창립해 몇 해 뒤 한살림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89년에는 한살림청주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부산에서는 1990년에 문화운동 그룹을 중심으로 부산한살림모임이 꾸려진 이후 1993년에 부산한살림공동체를 창립해 물품공급을 시작했다. 하나의 화분에서 분갈이해 옮겨 심듯 동일한 모델이 확산된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지역의 토양에서 자체 조건에 맞게 싹을 틔웠다. 각각의 무대에 고유한 관계와 등장인물들이 존재했다. 무지개를 이루는 빛깔처럼 자기 색을 유지하며 주변에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받았다. 전체의 역사는 단순히 부분의 합이나 그것을 섞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각각이 어떻게 저마다의 색을 띠게 되었는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원주한살림 30년, 지역사회가 함께 기른 열매

 

30년사를 정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이 또 자료를 모았다. 몇 번의 사무실 이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실된 자료들, 그 탓에 듬성듬성 비어 있는 부분은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초기 발기인과 조합원들에게 손글씨로 엽서를 써 보내며 도움을 청했다. 서랍 안 깊숙이 들어있었음직한 조합원통장이나 가입신청서, 오래된 사진들이 소환되었다. 시간의 흔적과 개인의 기억이 덧입혀진 자료들. 하지만 그 수 또한 많지 않았다.

 

초기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서둘러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다. 30년의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드나들었고, 누군가는 떠났다. 한 번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 게 마지막이었던 분도 있었다. 몸이 성치 않거나 기억이 흐릿하거나 마음이 멀어졌거나 하는 이유들로 이야기를 충분히 기록하지 못했다. ‘조금 더 일찍 했어야 했나’라는 당연한 아쉬움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한 역사’가 될 때까지 아직 더 묵혀둘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도 있었다. 길다면 긴 30년이지만 그 시간은 이미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아직 ‘현재’이기도 했다.

 

생협 등 단체의 역사를 정리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할 자료는 단연 총회자료와 회의록이다. 원주한살림의 경우에도 창립부터 30차까지의 총회자료집이 뼈대 역할을 했다. 곳곳에 이가 빠지긴 했지만 이사회 회의록과 소식지도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역사 부분은 이사장 임기를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했다. 2015년까지 총 6명의 이사장이 거쳐갔다. 각 시기마다 함께한 임원, 실무자, 생산자, 조합원들의 글과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특히 전국 물류 통합 이전에 원주한살림의 생산자로 관계 맺어온 초기 생산자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각별히 담겼다.

 

역사를 돌아보는 일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축은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일이다. 20년, 25년, 30주년 당시 있었던 방향 논의 내용을 함께 수록한 이유다. 조합원 이야기마당도 특히 중요한 의미를 두고 준비했다. 조합원이라는 집단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27인의 발기인으로부터 시작해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원주한살림 안에서 목소리는 훨씬 다채로워졌고 그 언어들은 보다 생활과 삶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처음’의 고민을 여전히 담고 있다.

 

2015년 생협으로 창립한 한살림춘천의 역사를 별도의 장에서 다룬 점도 인상적이다. 독립 법인으로 설립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독자적인 역사를 드러내고자 했다. 원주한살림의 자체 가공공장에서 시작해 2008년 독립 법인이 된 살림농산에도 별도 지면을 할애했다. 어떤 조직도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자기만의 역사를 가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중첩된 역사를 공유하면서 각자의 역사를 써나간다는 의미로 읽히는 부분이다.

 

백서를 담당한 백송희 활동가는 원주한살림 30년을 돌아보는 ‘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의 문제다. 발간 주체들이 치열한 고민과 논의를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그를 토대로 일관성 있게 정리해내려는 욕심이 있었으나 당시 상황 속에서 녹록치 않았다. 자료와 기록의 정리를 체계화하는 계기로 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기록에 대한 관심과 그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충분치 않은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 원주한살림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는 작업을 할 때 딛고 갈 만한 징검다리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더 늦기 전에 한 차례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해낸 것은 그 자체로 큰 성과다.

 

원주라는 지역사회의 존재는 든든한 울타리인 한편 중압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원주한살림의 30년은 한살림의 역사이면서 원주 지역 협동운동의 역사이기도 했다. “원주소비자협동조합 탄생기” 부분을 집필한 정인재 전 밝음신협 이사장은 원주한살림 창립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더듬어보는 일이 중요한 이유를 “그것은 원주한살림뿐만 아니라 오늘의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 사회개발위원회 활동으로부터 이어져 열매로 맺은 것이 지금의 한살림이다. 지역사회가 함께 씨 뿌리고 물을 주어 길러낸 셈이다. 지역의 원로들이 한살림 조직에 적을 두지 않았더라도 한살림을 한 식구로 여기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래서 열매만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를 보는 작업, 원주 지역사회 전체 역사 안에서의 위치와 위상을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원주한살림 삼십년>은 원주라는 지역에서의 한살림운동사를 충실히 다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당 선생의 글씨로 완성된 제호.

‘삼십년’은 생전에 남긴 글씨 가운데 각각 한 글자씩을 따와서 붙였다.

 

 

 

한살림경남 30년, 조합원이 함께 써온 역사

 

한살림경남에서도 30주년을 맞이하는 전체 기획 속에서 백서 발간팀이 꾸려졌다. 마찬가지로 자료의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비에 젖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는 등 여러 사건사고들로 소식지와 이사회 회의록 등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20주년 즈음 한 차례 역사를 정리해 소식지에 실었던 내용과, 단행본 『스무살 한살림 세상을 껴안다』,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정리한 초기 한살림경남 구성원들의 구술녹취록 등을 참고했다.

 

그 밖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오래된 실무자들, 특히 발간팀의 일원이었던 김종혜 실무자의 기억에 많은 부분 의존했다. 기억은 ‘살아 있는 자료집’ 역할을 했다. 20년 넘게 한살림을 하면서 한 번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 더불어 한살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이번 작업에 담겼다고 했다. 백정혜 조합원은 8년 전쯤 공동체지금의 마을모임에 소속돼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소식지기자단으로, 홍보 담당 활동가로 일했다. 최근 10년 이내의 조합원활동 내용은 그 경험으로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었다. 박순녀 조합원은 무위당 선생의 잠언집을 권해 준 활동가 덕분에 한살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소식지기자단 활동을 하며 취재차 30주년 준비위원회에 참관했다가 ‘얼떨결에’ 백서 팀에 자원했다. 활동 경험이 얼마 되지 않았던 이유로 진행 과정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나 여타 조직과 다른 회의 방식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각자 필요한 역할을 채워준 집필진의 조합이 좋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다른 지역의 백서를 참고하며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 ‘우리만의 것은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했다. 그중 하나는 자체적으로 생산자조직을 끌어안고 있는 만큼 생산자와 동고동락하며 서로 배려하는 속에서 함께해 왔다는 점이었다. 생산자와 조합원 활동의 연대관계, 이를테면 조합원들이 생산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애쓰고 일손돕기나 체험 활동 또한 그러한 연장선에서 해왔다는 것을 통해 경남만의 독특한 한살림이 드러났으면 했다. 그리고 조합원 개개인의 활동을 밀도 있게 지원하고 소식지에 많이 실어왔기 때문에 그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고자 했다. 조합원 입장에서도 이 백서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끔 하자는 취지였다.

 

준비위원회에서도 ‘읽히는 백서’,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게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30년은 모두가 경험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 기간 어딘가에 내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다. 때문에 초기에 쓰였던 교육이나 홍보 성격의 원고들보다는 조합원들의 생생한 활동이 담긴 글이 중심이 되었다. 그간 소식지에 실렸던 조합원들의 그림도 귀퉁이마다 살려 넣었다. 결과적으로 내 이야기, 우리 공동체 식구들의 글과 사진이 들어 있는 책, 한살림경남의 30년을 함께 써온 조합원들 모두의 책이 되었다.

 

13년 전 생명학교 위원으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박소영 조합원은 “같이 지내다 보니까 재밌고 좋아. 이래 좋은 언니들을 만나서 내 30대가 너무 풍요로운 것 같았고, 이 험한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았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람들 간의 만남과 그로 인해 맺어진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조합원 한 명 한 명의 말과 글로 담겼다. 매 시기를 함께해온 각자의 기억을 기록하고 그것을 모아낸 것, 그 또한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문적이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만들어낸다는 것, 그게 어쩌면 한살림경남의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스스로 내린 평가였다. 백정혜 조합원은 한살림 일을 하면서 잘난 한 명이 스무 명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모자란 스무 명이 같이 굴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협동조합의 속성임을 알게 됐다. 모자란 스무 명이 모였을 때 ‘이게 될까’ 싶은데 결국 되는 것, 여전히 굴러가고 있는 것, 그게 놀라운 점이라고 했다. 백서 또한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원고가 취합된 이후에는 놓쳤던 빈틈이 보였다. 역사와 비전이 함께 담긴 백서를 발간하고자 했으나 비전 부분은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조합원 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움직임과 활동을 통해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었다면 의미 있는 비전 제시가 될 수 있었겠지만 준비와 토론이 부족했다. 30주년 기념 포럼 전문을 실었으나 직접적인 방향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는 점, 조합원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제시된 비전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 제목은 ‘사람과 생명 이야기’이다. 역사 구분에서도 생명이라는 단어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30주년 기념 포럼의 열쇳말도 ‘생명’이었다. 생명운동이라는 것은 한살림경남의 정체성으로 중요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변화에 대한 요구는 어디에나 있어서, 누군가는 생명이라는 단어에서 무거움, 예스러움, 혹은 종교적 느낌을 받는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생명’을 빼고 한살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한살림은 생명을 중시 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생명’은 여전히 계속해 가져가야 할 중심 가치라는 것이다.

 

 

한살림경남은 2015년 한살림연합과 물류 통합을 이루었다. 기존까지 독자적으로 운영해왔던 홈페이지와 자체 물류시스템 등이 전체 한살림 체계 안으로 이전되면서 공통의 내용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30주년사는 ‘통합 이전까지의 역사’라는 의미도 있었다. 자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떻게 사업과 활동을 펼쳐왔는지의 이야기다. 만일 30년 뒤에 두 번째 백서를 발간한다면, 연합조직과 협력하는 속에서 독자성과 특성을 유지해가면서 그 내용을 스스로의 역사로 정리해낼 수 있을까, 단지 전체 한살림 안의 한 지역으로 남지 않을 수 있을까, 또 다시 생겨난 질문이자 숙제이다.

 

 

부산한살림 20년,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

 

부산한살림 또한 20년을 맞이하는 전체 기획 속에서 20년사 발간 작업이 시작됐다. 소식지편집모임이 중심이 되어 집필모임이 꾸려졌다. 조직활동을 정리하는 일이기에 조합원이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한 책을 내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걸어온 길을 스스로 돌아보고 마디를 짚어가자는 의미가 더 컸다. 

 

시기를 구분한다면 지금 현재 활동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10년과 그 이전의 잘 알지 못하는 10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재정사고 등을 겪으며 단절됐던 1세대의 역사. 이를 채우기 위해 우선 ‘만나고 싶었습니다’라는 기획으로 앞서 활동했던 조합원 이사, 실무자, 생협 이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분들을 한 분씩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을 뿐더러 제대로 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웠던 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 기회에 들여다보고자 했다. 단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기록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얽히고설키고 엉클어져 있던 매듭을 풀고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기에, 인터뷰는 서로 마음을 나누고 관계의 끈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거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든 더 잘해보려 했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혹여 잘못된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조차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라는 인정. 때문에 그에 대해 잘 정리하는 게 지금 우리의 몫이자 숙제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이 곧 관계를 푸는 ‘열쇠‘가 됐다. 비어 있던 역사는 그렇게 만남과 이야기를 통해 복원되었다.

 

집필모임이 꾸려진 뒤에는 곧바로 <한살림선언>을 함께 읽었다. 한살림선언에 비추어 부산한살림이 제대로 걸어왔는가를 돌아보자는 취지였다. 구성원 중 누군가는 선언의 내용이 자신에게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선언이 심대한 가치를 담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맞게 활동해왔을까, 일상의 운동에서 녹여내 왔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 속에서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필사를 하고 1박 2일의 시간 동안 깊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집필진의 시각과 관점을 통일하는 과정이자, 활동을 통해 내재되어 있던 가치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집필모임은 1주일에 두세 번씩 만났다. 처음에는 2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집중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도 짚으면서 전체 흐름을 살펴나갔다. 집필을 앞두고는 각자의 관심 영역에 따라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작업, 생산자, 조합원활동, 물품 등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각자 맡은 부분을 중심으로 기초 작업을 하고 함께 검토했다. 세세한 구성, 기술 하나하나 의논하고 합의하면서 진행했다.

 

집필에 참여한 김지현 조합원은 활동했던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에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내용이 몇몇 조합원의 입을 통해 자신에게 전달되어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조합원들이 에너지를 가지고 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가 기록된 속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또한 그전에는 산발적이었다고 생각되고 유기적 관계가 잘 보이지 않았던 조합원활동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씨줄날줄처럼 얽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한살림과 함께 걸어온 생산자들을 소개하는 부분은 전체 구성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이야기를 청하고자 다시 찾아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동안 생산자들과 관계 맺어온 조합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내는 방식이었다. 생산지는 부산한살림의 학교라고 흔히 얘기한다. 지금은 소모임의 비중이 다소 커졌지만 이전까지 조합원활동의 내용은 생산지 방문이 주를 이루었다. 백 권의 책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들을 생산지에서 수없이 맞이해왔다.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은 공동체의 의미가 다소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여전히 한살림운동의 주요한 방향이라고 본다. 마을모임 등의 활동도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모든 생명은 자기의 터를 중심으로 관계 맺는다고 할 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의미는 거듭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생산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는 점은 부산한살림이 추구하는 바가 구체화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초기부터 가까이에서 함께해왔던 소농 생산자들뿐 아니라 조금 멀리 있더라도 영향을 받고 교류했던 생산자들까지, 한 문장 한 문장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겼다. 물품은 가급적 점점 가까이 있는 생산지를 발굴하는 방식으로 조정해왔지만, 지역이라는 의미에는 물리적 거리 못지않게 관계성이 중요하게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생명의 근본 원리로 보는 관점도 주요하게 반영되었다. 지역 안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토대에서 전체 가치를 하나로 가져가는 것이 곧 부산한살림이 바라보고 지켜온 한살림운동의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상세한 연보가 부록 형식으로 수록되었을 뿐 조합원이나 공급액 증가와 같이 성장이나 변화를 보여주는 수치는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 또한 부산한살림이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점이다.

 

부제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동요 ‘반달’의 노랫말에서 따왔다. 

20년의 역사가 앞으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살림청주 25년, 살림을 내어주며 함께 커온 역사

 

한살림청주가 위치한 충북 지역의 경우 1984년부터 성당 등을 거점으로 무농약 쌀 직거래가 시작됐다. 음성 지역의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생산한 무농약 쌀이 대부분 일반 수매되는 상황에서 ‘적어도 알고 먹어줄 소비자를 찾고자’ 택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지역에서 한살림을 시작하면서 그 내용을 이어받았고, 상당수 생산자들은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한살림운동이 본격화되는 과정에 결합하게 된다. 청주한살림준비위원회가 꾸려진 것은 1989년이지만 이전에 이미 한살림운동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준비위원회 시절부터 줄곧 실무 역할을 해오다 25년사 발간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은 오상근 전 상무는 ‘여는 글’에서 “25년 세월은 한살림청주의 역사요 참여한 개인의 역사”라고 썼다. 한살림청주와 ‘나’의 인연을 회고하는 30인의 글, 그리고 ‘부록’ 지면에 그동안 함께한 모든 임원, 실무자, 매장운영자, 활동가 명단을 연도와 날짜까지 빠짐없이 넣은 배경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230쪽 남짓의 책자에 담을 수 있는 역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기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의 노고와 헌신, 애정과 정성에도 감사해야” 함을 잊지 않았다.

 

20주년에 맞춰 계획했던 발간 작업이 늦춰져 25년사가 되었지만, 덕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업할 수 있었다. 전체 틀을 잡아나가는 단계에서 더디게 진행되다 편집위원회를 재구성하면서 실무적 경험을 가진 이들이 결합해 속도가 붙었다. 기존에 어딘가에 수록되었던 글이나 자료에서 옮기지 않고 모든 내용을 새로 작성했다. 집필과 편집의 방향이 뚜렷했기에 가능했다. ‘자랑하는 역사’를 쓰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 기록을 남기는 작업에 초점을 두었다. 세부적인 연도와 시기도 여러 자료를 비교·대조하며 꼼꼼히 맞췄다.

 

역사는 당장 널리 읽히기 위한 것은 아니더라도 필요에 따라 누군가 찾아볼 수 있고, 참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거라고 본다.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보다 잘 준비해가기 위한 스스로의 필요도 있었다.

 

한살림청주를 시작할 무렵의 구성원들은 전체 한살림의 역사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다. 그것이 지역만의 특색을 만들어냈다. 특히 청주 지역에서는 생산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타 지역보다 먼저 공급을 시작한 물품이 많았다. 대추, 홍시용 감, 호두, 간장, 옹기류 등, 물품별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첫 만남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었다.

 

이웃 지역으로 한살림운동을 넓혀온 것 또한 중요한 역할로 보았다. 이웃한 한살림대전이 분화해 독립한 과정은 ‘살림을 내주었다’고 표현되었다. 1997년 무렵,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잇따른 요청으로 대전에 매장을 열었다. 충주제천 지역에서 환경운동 그룹을 중심으로 한살림을 시작할 당시에도 도움을 주었다. 생산·소비 기반을 함께 넓혀나가야 하겠다는 판단에서 2009년에는 상주 지역에도 물품 공급을 시작했다. 이는 이후 안동·영주 지역의 소비자들과 인근 생산자들이 결합해 한살림경북북부를 창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살림청주의 25년사는 이처럼 인근 지역에서의 분화와 창립 과정뿐 아니라 전국 단위의 활동과 사업의 변화, 주요 사안들을 함께 다루고 있다. 시기별로 전체 한살림운동의 흐름 속에 어떻게 함께해왔는지가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역사 서술에 중점을 두는 만큼, 한살림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사회적 배경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어떤 운동이든 시대 흐름과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등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주 지역의 경우 가톨릭농민회 활동과 더불어 신협운동의 기반이 있었기에 한살림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충북농촌개발회현 눈비산마을에서는 초기 1년간 실무자의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등 한살림이 자리를 잡기까지 든든히 뒷받침했다.

 

그러한 배경을 중요하게 보는 관점은 앞으로의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살림 역시 이후에 생활협동조합법이나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는 데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단계로도 자연히 이어진다. 지역 내 사회적기업과의 물품교류 등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거기에는 지역 생산자조직의 역할도 중요하다. 많은 생산자들이 함께 만들어온 역사처럼 다시금 그동안 다소 옅어졌던 관계를 다시 끈끈히 하려고 한다. 지역 산지의 물품에 대해서는 연합 물류를 거치지 않고 받는 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 그런 과정 속에 생협조직의 틀을 넘어 지역에서 한살림운동을 더 넓게 펼쳐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살림 초기에만 해도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생명운동, 생명살림이라는 언어가 보편화되고, 당시에 수급이 원활치 않았던 무농약(친환경) 농산물도 이제는 넘쳐나는 등 30년 동안 이루어져온 세상의 변화에 한살림이 일정 부분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그 과정을 오롯이 함께 밟아온 이들의 평가였다.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여전히 신생 협동조합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서 한살림을 포함한 생협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리라 본다. 조직에 갇히지 말고 지역사회의 맏형으로서 함께 성장해간다는 비전은, 그럼 점에서 25년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90년 전국에서 첫 번째로 열린 생명학교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기록은 현재와 미래를 구성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나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의 자료를 보존하고 그를 기록해 고유의 역사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우선 위의 사례에서 보듯 기록의 주체, 내용, 방향에도 각 조직마다의 특성이 반영되고, 그에 따라 결과물의 형태와 성격도 제각각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독특함’을 발견해내는 것이 주요한 것으로 보였다.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동시에 관점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체계적인 자료관리는 훗날 역사 서술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필요할 뿐 아니라, 자료와 기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폭넓은 공유와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측면에서도 유효하다. 그렇게 기록되고 공유되는 내용은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바탕이 되는 한편 시대적·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위치와 위상을 확인하며 중층적으로 함께 구성해가는 역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지역에서의 한살림운동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원주 지역의 경우 협동운동과 민주화운동(2011), 협동운동과 생명운동(2012)을 주제로 해 총 14명을 대상으로 구술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충북농촌개발회의 경험을 통해 본 충북지역 협동운동의 뿌리와 확산 경로(2013)를 주제로 6명의 구술을 기록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위 구술 작업은 한살림을 포함하여 지역사회, 더 나아가 한국사회 협동운동의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또한 2014-2015년에는 한살림경남과 한살림광주의 설립과 전개 과정에 대해 각각 주요 구성원들의 구술을 기록했다. 개인과 조직의 역사인 동시에 한살림의 태동을 가능케 했던 지역적·시대적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다.

 

2017년에는 한살림운동 30년을 기념하는 백서와 생산조직의 30년사가 각각 발간되어 큰 줄기를 구성했다. 무수한 가지를 이루는 것은 개별 단위, 그리고 개인들의 기록이다. 일례로 20여 년의 매장 활동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한 활동가의 인터뷰에는 조직과 개인이 함께 성장해 온 과정이 생생한 이야기로 담겼다.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었거나 중심 역할을 맡아온 리더만이 아니라 함께해온 개개인의 역사가 소중하게 기록되는 것, 그 역시 한살림운동사를 써 나가는 여러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기업에서도 기업의 사명을 공유하고 미래 비전과 경영 전략 수립에 참고하기 위해 사사를 발간하고 사료관을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 단위에서도 아카이브와 기록 작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변화에 적응하고 앞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도록 요구받는 시대일수록, 그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기록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기록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구성한다. 그동안 여러 단위에서 정리되고 해석되어 온 역사가 미래로 향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1) 본문제 표기되는 명칭(원주한살림, 한살림경남, 부산한살림, 한살림청주)은 해당 조직의 표기를 따름.

 

 

 

* 『모심과 살림』 8.5호(2017 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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