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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매식과 혼밥의 시대, 밥 운동의 새로움을 찾다
2017-09-05 14:13:00

 

매식과 혼밥의 시대,

밥 운동의 새로움을 찾다

 

김민경ㅣ한살림대전 식생활교육문화센터 사무국장

김지연ㅣ수원시 학교급식지원센터 센터장

백기욱ㅣ한살림생산자연합회 외식사업본부 본부장

정영미ㅣ한살림연합 식생활센터 활동

 

 

밥상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줄어가고, 브라운관 속 집밥 열풍과 달리 밥상의 외부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간편히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확산하고 밥상의 의미를 알려내는 노력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공공급식 영역에서는 직거래를 통한 친환경, 지역산 식재료의 비중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학교 밖 공공급식과 식문화 영역으로도 사업과 활동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외식사업을 통해 가정 내 물품 공급을 넘어 건강한 먹을거리와의 접점을 보다 다각화하려는 시도도 작게나마 시작되고 있다. 식생활교육은 학교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식품안전 분야를 넘어 대상에 맞게 다양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았다. 집 밖으로 나온 밥 운동, 밥상살림 활동이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 새로움을 꾀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나 1인가구 등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바탕으로 네 명의 패널이 각자의 활동과 식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장의 문제의식과 실천의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밥 운동의 새로움을 찾아나가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급식은 교육이다

 

김지연  저는 식생활운동가였어요. 급식 문제가 아이들의 먹을거리와 밀접하게 연관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지금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유치원까지 급식을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공공급식 영역에서도 ‘식’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적어도 공공급식 테두리 안에서만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현재 초중학교까지는 무상급식으로 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제는 급식이 복지의 문제를 넘어서서 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급식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저희 센터에서는 학교로 찾아가는 식생활교육을 하고 있어요. 먹을거리에 관련한 네 가지 주제를 잡아서 학교에서 선택하게끔 하고 그 주제에 맞춰 이론수업과 간단한 체험활동을 해요. 특히 중요한 것은 몸으로 체득해서 조리하는 아이들로 길러내는 데 있어요. 그래서 조리수업까지 연계해서 80분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도 먹거리 길라잡이 양성과정을 진행해요. 누구나 이 과정을 들으면 길라잡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고 이걸 내 옆 사람한테 알려줘야겠다는 태도와 마음을 갖게 하는 것까지가 저희 센터의 목적이에요. 음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위험하다고 얘기하기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서 자기와 주변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끔 학부모와 시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김민경  활동 내용만 보면 식생활교육센터와 내용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 외에는 어떤 사업을 하고 계신가요?

 

김지연  교육 쪽 활동도 있지만, 저희 센터에서 다른 한 축으로 주요하게 하는 일은 학교로 납품되는 수산물과 김치의 공동구매예요. 공동구매 업체를 선정하고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여서 학교로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특히 수산물은 학교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굉장히 많아요. 저희는 지금 145가지 품목에 대한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97개 전체 학교, 중학교 56개교 중 55개교, 7개 단설 유치원에서 수산물 공동구매에 참여하고 있어요. 수산물 가격이 워낙 급등하고 학교에서 각각의 재료를 검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센터에서 안전성 검사를 진행하고 있고 그 밖에도 방사능, 중금속, 식품첨가물, 한우 유전자 검사 등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방사능 검사를 80여 건 정도 진행했는데 올해는 127건으로 상향조정해서 검사를 강화하고 있어요. 저희 센터의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쌀이나 친환경 식자재에 대한 차액지원은 돈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곳과 거래할 수 있게끔 조언을 드리고 있어요.

 

정영미  초등학교의 경우는 친환경으로 많이 전환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현황은 어떤가요?

 

김지연  초등학교는 거의 전국적으로 우수 농축산물 차액지원사업을 통해 친환경급식을 운영하고 있어요. 수원시를 포함해서 서울과 경기도 지역은 조례가 제정되어 있어서 대부분 친환경 차액지원사업으로 시중 친환경 식자재와 일반 식자재와의 차액만큼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요. 중학교는 아이들의 식사량이 많아서 식재료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식비가 모자라는 학교 같은 경우는 차액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곳이 일부 있고요. 고등학교 경우는 무상급식이 아니라 급식비가 수익자 부담이다 보니 대부분 차액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저희 센터에서는 가급적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양념류와 일부 품목-간장, 된장, 고추장, 콩기름, 두부, 옥수수-들은 넌지엠오non-gmo로 들어갈 수 있게끔 차액지원을 하도록 시에 계속 제안하고 있어요.

 

김민경  대전 같은 경우는 급식 상태가 그리 좋지가 않아서, 엄마들이 중심이 돼서 운동을 하시려고 하거든요. 단체가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직접 국회의원을 찾아가거나 서명 받는 식으로요. 급식지원센터 차원에서 학부모와 어떻게 연대해 가는지, 학부모들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김지연  학부모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죠. 앞서 말씀드린 먹거리 길라잡이 과정에 학부모들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안전먹거리 강사양성과정이었는데, 사실 강사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시민이나 학부모의 인식이 개선돼야 학교급식이 개선되니까 그 과정을 수료하신 분을 우선적으로 학교급식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시게끔 해요. 학교급식 소위원회나 학교 운영위원회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고 있고요.

 

정영미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 급식지원모니터링단에 신청해서 참여해보면, 체계적인 교육도 없고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깊이 들어가는 걸 학교에서 원하지도 않았고요. 그 부분이 정책화되거나 급식지원센터에서 학부모 교육을 좀 더 강화하면 좋을 거 같아요.

 

김지연  일단 학교에 모집 공문을 보내서 안내를 드리고 있긴 한데, 말씀하신 부분에 저도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그리고 저희는 학교급식지원센터이지만 도시재단에 들어와 있는 6개 센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수원시민의 삶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있는데, 올해는 1인가구에 초점을 맞춰서 ‘싱글라이프 개선사업’을 하려고 해요. 수원시의 경우 경기도에서 1인가구 거주 비율이 두 번째로 높아요. 대학교가 제법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이 친구들의 식사가 안쓰러운 수준이에요. 물론 본인들은 잘 인식을 못하죠. 그냥 맛있으면 되고 시간이 없고 귀찮고 돈이 없으니까요. 경제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외식비거든요. 옷은 허름하게 안 입어도 밥은 허름하게 먹잖아요.

 

 

청년들의 제대로 된 한 끼 식사

 

백기욱  저도 외식사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데이터를 봤는데, 카드지출 내역에서 추출한 자료를 보면 총 지출 비용에서 외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대가 제일 높아요. 그런데 절반 가까이가 찻값, 커피 값으로 쓰여요. 실질적으로 밥을 사먹는 금액은 낮은 거죠. 30대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밥값 지출 비용이 훨씬 높아져요.

 

김민경  얼마 전 <시사인>에 ‘흙밥’에 대한 기사가 실렸어요. 청년들이 먹는 밥 수준이 너무 형편없고, 대충 챙겨먹는 수준을 넘어서 못 먹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는 내용이에요.

요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배경이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인 경우가 많아요. 되게 비싼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요. 한 달 내내 대충 먹다가 한 번씩 그런 곳에 가서 먹고 사진 찍고 올리면서 만족을 느끼는 거예요. 먹거리가 하나의 자기 홍보수단이 된 거죠. ‘흙밥’이나 학교급식을 찍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희 지역에서도 1인가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자연히 보여지는 이미지를 신경 쓰게 돼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시작하면 접점이 없으니까요. 우선 만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정영미  한살림에서 밥상살림운동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그 내용은 결국 먹을거리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인 거잖아요. 그 의미들을 외부로 발신하는 게 식생활운동의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식생활센터에서는 조합원 교육과 생활문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과 함께, 교육활동가를 양성해가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거기에는 식생활교육 활동의 기본인 ‘생산과 소비는 하나’라는 지향이 담겨 있고요. 최근에는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연구모임을 각각 운영하고 있어요. 전통음식, 혼밥, 이유식, 학생들과 고령층 밥상까지, 대상과 내용별로 세분화되어서 활동이 많이 펼쳐질 텐데, 그게 주요 방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민경  지역에서도 2030 혼밥이나 실무자 모임같이 청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우선 참가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어요. 일단 젊은 조합원 수가 많지 않고 지역 내 연대가 활발하지 않다보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접점이 없는 거예요. 일반 대중은 더더욱 만나기 힘들고요. 혼밥 프로그램을 저희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무플’이었어요. 주축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40~50대이다 보니 홍보수단이 잘못됐던 거죠.

 

정영미  한살림에서 이제까지는 조합원 중심 기획을 계속 해왔는데, 조합원에 가입하는 시기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가 대부분이고, 대학생이나 20대 1인가구 비율이 너무 적기 때문에 2030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조합원만을 보고 기획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식생활교육을 외부화한다면 그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한 밥 운동을 위한 변화

 

김지연  요즘엔 식당에 인지도가 있는 셰프가 와서 팝업식당으로 여는 게 유행하기도 하더라고요. 한살림에서도 식당을 열었으니 그런 아이디어를 참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식재료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는 거죠. 누가 생산을 했고, 우리가 이런 밥을 먹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예를 들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사 한 끼를 분기별로라도 기획해서 진행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백기욱  지금은 초기라서 조금 안정이 되면 여러 기획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식당 1호 같은 경우는 사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에요. 그렇게 할 수도 없고요. 처음에 걱정을 조금 했는데 근처 직장인분들이 한번씩 오시더라고요. 외식사업의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한살림운동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인구수가 정체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지금 방식의 물품 공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사업성 측면보다는 확산, 다양화, 다각화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정영미  음식마다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백기욱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인스타그램에서 소비하는 분들이 이해하는 수준에 맞추려면 심플해야 해요. 기존 한살림운동은 어떻게 보면 강요를 해왔던 측면이 있어요.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철학적인 언어로 먹을거리를 설명한다는 건 사실상 벽에 부딪히죠. 그래서 일정 부분 조합원운동으로 좁혀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대중운동이라고 하면 예전 방식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트렌디한 방식을 차용하는 것도 필요하죠. 한편으로는, 옛날 말로 하면 사람을 남기는 작업도 계속돼야 하고요. 제가 예상하기엔 초중고까지 친환경 급식을 먹었던 세대가 성장하면, 물론 청년기에 잠시 ‘일탈’을 한다 하더라도(웃음) 흐름이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활동하는 게 조금씩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괜찮은 먹을거리를 먹고 내 몸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게 좋고 멋지다고 인식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지연  요즘에는 확실히 그렇게 좋은 음식을 먹는 걸 멋있다, 내 몸과 내 삶에 이만큼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생겨나고 있는 거 같아요. 여전히 사는 데 바빠서 먹을거리는 뒷전인 경우도 있지만요. SNS를 봐도, 물론 나를 증명하는 영수증처럼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측면도 있겠지만,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학교급식지원센터의 경우도 우선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걸 넘어서 시민들 대상으로 좋은 식문화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영미  저희도 식품안전교육을 넘어서 식생활교육으로 오면서 그런 변화 중 하나로 조리 부분을 많이 늘렸어요. 요리활동가라는 명칭도 만들었고요. 기본 이론교육에 요리활동 부분을 추가해서 조리까지 그 과정에 넣고 있어요. 사먹는 걸 어떻게 먹는지가 한 축에 있다면, 다른 한 축으로는 제대로 만들어 먹는 문화 형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리활동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식재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고 다듬는 방법 같은 것도 잘 몰라요. 밥 짓기부터 시작해서 만들어 먹는 문화로 가는 한 축을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김민경  저희 경우도 프로그램에 대부분 요리가 들어가 있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인도 요리, 스페인 요리도 좋아하잖아요. 그런 걸 레스토랑에 가서 사먹는 게 아니라 한살림 재료로 만들어 본다거나, 수제맥주를 만든다거나, 야식도 편의점에 가지 말고 간단히 냉장고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요리활동으로 기획한 거예요. 무조건 정해진 방식대로 정해진 걸 먹어야 한다고 접근하면 못 만나니까, 일종의 타협점을 찾는 거죠.

주변을 둘러보면 활동가들이 밥을 안 해먹어요. 제 경우는 작년에 노동 시간을 좀 줄이면서 밥 먹는 양이 많이 늘었어요. 전에는 쌀 4kg을 사면 세 달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한 달에 8kg씩 계속 먹게 되는 거예요.

사실 쌀 운동을 하려면 정시 퇴근만 해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저희는 주로 “한 사람당 쌀 양을 얼마나 늘리면 논 몇 평을 살린다”고 캠페인을 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7-8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서 밥 해먹기는 힘들어요. 생활문화운동이라고 한다면 내부 사람들이 먼저 변화를 해야 하고 조합원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도 그렇게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전체적으로 사회가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지 않고서는 쌀 소비량은 더 늘지 않을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여유가 생기니까 요리하는 게 너무 재밌어졌어요. 남은 재료로 뭘 할까 창의성도 발휘하게 되고요.

 

백기욱  일주일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요리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건 소중한 경험이라서 집에서 밥을 해먹는 건 중요하죠. 저도 요리를 좋아하게 된 게 저를 키워준 할머니가 간식까지 다 해주셨거든요. 그 맛을 먹어본 사람은 그 기억이 있고, 맛은 기억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게 돼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집에서 칼질을 하는 게 ‘요리’라고 한다면, 저도 지금은 거의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 해요. 대부분 냉동실에 있는 걸 해동해서 먹는 식이죠. 생활패턴이 바뀌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김지연  레고식 요리라고 하잖아요. 가공이나 전처리돼 있는 걸 조립해서 먹는 거죠.

 

정영미  저는 4050 세대인데, 4050세대와 2030세대의 식생활은 너무 차이가 나요. 저 같은 경우 봄에 나오는 두릅, 머위, 망초 같은 들나물을 한 번씩 텃밭에서 채취해서 가족을 먹여야만 마음이 편해요. 그 기운을 먹는 거고, 꼭 이 시기에 먹어야 하는 게 많은 거예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어요. 저희 애들이 둘 다 20대인데, 자꾸 사먹으려 해서 매일 싸워요. 어떤 음식들은 제가 보기에는 식생활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달고 짜고, 속이 불편할 거 같은데, 애들은 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령 편의점 도시락의 맛을 몇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본래 먹거리는 수백 가지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식생활문화가 이어지지 않는 게 고민이 돼요.

 

김지연  그 계절에 나는 식재료가 주는 힘과 그 맛이 있죠. 학교 현장에서도 문제로 나타나는 게, 일부이지만 젊은 영양사들이 제철음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일례로 한여름에 식재료로 시금치를 주문하는 거예요. 시금치가 가장 맛있을 때가 2월, 추울 때잖아요. 가격도 싸고요. 그런데 한여름에 시금치를 시켜서 왜 이렇게 맛이 없느냐, 시들하냐고 반품을 하고 비싸다고 불만을 제기해요. 그게 급식의 내용에도 고스란히 전달되거든요. 그래서 하반기에는 영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절기교육을 꼭 넣으려고 해요.

또 한 가지는, 식재료가 마트에만 가면 다 진열돼 있다 보니 아이들한테는 과자 사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고기 같은 경우도 내가 키우던 소를 잡아서 먹는다고 하면 함부로 매일같이 먹을 순 없을 텐데, 그런 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저희도 생태순환 먹거리 체험으로 토종씨앗을 심는 것부터 채종까지 전 과정을 가족과 학생들과 같이 해보려고 해요.

 

백기욱  예전에 영국에서 지낼 때 제이미 올리버라는 요리사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을 봤는데 가장 좋았던 건 시장에서 쇼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거였어요. 저도 재래시장을 안 갔었는데 그걸 보고 나서 주말마다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면서 놀았어요.

사실 식당에 좋은 거 먹으러 와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잖아요. 어떻게 재배되는지 같은 것엔 관심이 없고 내 몸에 좋고 내 입맛에 맞는 걸 원하는 모습이 있는데, 외식사업의 경우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 거예요. 일일이 앉혀놓고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요.

 

정영미  혼자 먹는 사람들이 재료를 사서 해 먹으려고 하면 사먹는 것보다 훨씬 비싼 경우가 있어요. 한 가지 음식을 만드는데 열 가지 재료를 다 사야 된다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먹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을 것 같아요. 네트워크나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안에 먹을거리를 만드는 활동이 들어간다면 좋은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겠죠.

 

김지연  우리 센터에서도 수원시 청년지원센터 안에 있는 조리공간을 활용해서 공유부엌이나 커뮤니티키친 같은 식당 개념으로, 청년들과 같이 자연주의 셰프가 가르쳐주는 요리를 배우고 밥 먹는 모임을 해보려고 해요. 청년들의 술 문화가 또 엉망이잖아요. 그래서 전통주 만드는 것도 한 꼭지를 넣어서 같이 진행해요. 그런 움직임들이 좀 확산이 됐으면 좋겠어요.

 

백기욱  런던이 전 세계적으로 외식을 제일 많이 하는 곳일 텐데, 웬만한 마트에 가면 거의 다 조리가 된 음식을 팔아요.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넣고 꺼내서 열고 접시에 담으면 아주 예쁘게 담겨지도록 세팅된 음식이죠. 그런데 일종의 로컬운동 차원에서 마트와 결합된 식당이 생겼어요. 예전에 조사했던 건데 계속 확산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한살림 매장이라고 생각하면 그 옆에 식당이 조그맣게 있는 거예요. 매장에서 남는 것, 소비 안 된 재료를 싼 값에 받아서 조리를 하고, 아침 점심 저녁을 테이크아웃 하게 하는 거예요. 운영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고, 키친에서 노동하면 한 끼를 제공해요. 로컬운동 차원에서 가장 확산할 수 있는 모델 중 하나라고 봤어요. 그 경우엔 지역화폐가 있어서 가능했던 측면도 있는데, 그렇게 다 얽혀 있는 거죠. 그때 외식사업의 가능성을 봤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죠. 한국의 외식업체들은 전 세계 어디보다도 경쟁력이 대단하고, 프랜차이즈가 모든 상권을 장악한 상황이에요. 시장조사를 해 보니 친환경식당도 상당히 많긴 한데 대부분 적자예요. 문 닫은 곳도 많고요. 높은 원가 문제도 있지만 사실상 트렌드를 못 읽는 탓도 있어요. 식당은 트렌드예요. 우선 시각적으로 맛있어야 하고, 남들이 가야 가지 혼자는 잘 안 가요. 그렇게 맛집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하고 단골로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지역이나 마을 단위에서 하는 식당들이 안정화가 되기 어려운 점은 그걸 사업적으로 한다는 데 대한 판단이 완전히 서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커뮤니티와 식당의 경계에 있는 경우가 많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들의 라이프 서클, 그 동선 안에 들어가야 해요.

 

정영미  ‘한상한살림 식당’의 경우는 메시지를 어떻게 담느냐도 중요할 것 같아요.

 

백기욱  현재로서는 ‘한살림 밥상’이라는 자체로 우선 알리려고 해요. 생산자를 이어서 느리게 제대로 지은 음식을 담는다, ‘잇다 짓다 담다’가 슬로건이에요. 조리시간이 걸리니 재촉하지 마시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오래 머무르게 만들려고 해요. 한 시간 동안 드시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머무르는 동안 메뉴판의 문구 같은 걸 통해서 먹는다는 것, 제철음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리려고 해요.

또 ‘여기는 이렇게밖에 못하는구나’를 알게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해요. ‘재료가 없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거든요. 산지에서 안 온다거나 하는 경우에요. 조금 욕심을 부려서 양념류까지 거의 대부분 한살림 재료를 쓰고 있는데, 지금은 산지에 직접 발주를 해서 받고 있어요. 물류체계가 바뀌면 좀 더 수월해질 거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식당 다섯 개 정도를 직영으로 운영한다면 식재료 준비를 하는 센터를 별도로 두는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거예요.

장기적으로 제가 꿈꾸는 건 한살림 매장이 있고, 지하에 커뮤니티 공간이 있고 2층에 식당과 술집이 있는 그런 모습이에요. 우리 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터전 마련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침 출근길에 밥 먹고 퇴근길에 밥 먹는 작은 식당이 동네마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지원하는 게 저희 외식사업본부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살림 식재료를 유통하고 컨설팅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겠죠.

 

정영미  대전 식생활센터에서는 발효학교를 1년 프로그램으로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특히 60~70대 남성분들이 참여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중요한 사례라고 봐요.

 

김민경  남성분들이 요리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세요. 나이대가 대부분 60대 분들이에요. 퇴직하시고 집에서 밥을 못하니까, 요리 강좌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 같아요. 매스컴에 요리하는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향도 있을 거고요.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식생활센터를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됐겠죠. 이제는 중년 세대도 주요 대상인 것 같아요. 여성분들은 요리하기 싫어하시지만 남자분들은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저녁 강좌를 열거나 남성분들이 좀 더 접근하기 쉽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하는 흐름인 것 같아요.

 

정영미  앞으로 조리나 요리는 남녀 구분을 넘어서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가 되겠죠. 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제 경우도 남편이 은퇴하면 모든 집안 살림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웃음),남자들이 퇴직하고 20년을 그런 삶을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늦게 경험하는 거죠. 가족 내에서 균형도 맞추면서. 그런 점에서 5060세대가 주요 대상이 되는 것도 하나의 추세인 것 같아요. 시간이 많고, 그게 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하나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경계를 넘어 사회와 함께

 

김지연 식생활교육에서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미각교육인 것 같아요. ‘맛’에 대한 감각을 깨운다는 측면에서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음식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미식의 시대잖아요.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들을 취하는데, 그렇다고 몸에 다 좋은 건 아니고 그 이면에 추악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음식 너머에 대해서 보게 하는 일을 같이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한살림의 경우에는 조합원을 넘어서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교육으로 확장되면 더 좋겠죠.

 

정영미  저희 센터에서도 최근에 고민하는 내용인데요, 지금까지 조합원에 머물렀다면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외부화’라고 할 수 있었어요. 풀이하면 경계를 넘어서 사회와 함께 가는 식생활센터의 모습을 하려고 준비 중이고, 교육 내용 또한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에는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온 내용도 상당히 많잖아요. 이번에 한살림성남용인에서는 절기교육을 미술관과 같이 진행해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바깥의 다른 곳과 같이 하는 거예요. 미술관에서 음식교육을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이런 게 새로운 먹을거리 교육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기욱  한살림운동이 1980년대부터 계속 확산해왔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왜 바깥과 섞이지 못할까를 봤더니 약간 젤리처럼 돼 있는 것 같아요. 점점 굳어지는 거죠. 어떻게 보면 풍선처럼 막도 있고요. 젤리든 풍선이든 지금 시점에서 여러 시도를 통해서 터뜨렸으면 좋겠어요. 외식사업도 그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정영미  지금 지역마다 식생활교육센터가 있는데 이 센터들은 그 젤리를 뚫고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미 조합원 교육과 학교 교육을 넘어서 지역의 보건소 등 다양한 곳에서 수업 의뢰가 오는데 그 내용을 잘 갖추고 밖으로 나가는 게 숙제인 거죠.

 

백기욱  그런 접점이 되게 소중한데 이미 그렇게 넘어서고 있다면 다행인 것 같아요. 그렇게 뚫고 나갔을 때 10년 뒤를 상상해본다면, 다른 장이 마련돼서 다른 사람들과 혼재될 수 있다고 봐요. 그걸 우려하기보다는 한살림의 색으로 물을 더 들이는 정도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생산자분들이 마음껏 생산하시고 그게 보편화돼서 모든 사람들이 좋은 식재료로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는 게 우리가 바라는 일이니까요.

젤리처럼 굳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조합원들은 곳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뭔가를 만들어오고 계셨어요. 실패하거나 잘 안 보였던 거죠. 그 힘이 있어서 계속 지속돼오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한살림운동의 목표를 한 줄로 표현하면 ‘생명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인데, 그건 달리 말하면 혁명이죠. 진짜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 한 줄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덕분에 동네도 바꾸고 거리도 바꾸고, 그렇게 조만간 다른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 『모심과 살림』 8.5호(2017 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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