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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좌담]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현실과 이슈
2017-02-05 16:17:00

[좌담]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현실과 이슈

 

 

참석

문보경 (한국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

윤형근 (한살림성남용인 상무이사)

이무열 (마케팅-커뮤니케이션협동조합 ‘살림’ 대표)

정영화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조직총괄부장)

 

진행

김신양 (편집위원장)

 

 

김신양 > 협동조합 현장에서는 민주적 운영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며 돈이 드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잘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맡긴다거나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협동조합의 민주주의가 일반 기업과 다른 좋은 특징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렇게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규모가 큰 협동조합이나 생협의 경우 대의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제대로 대표되고 대의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다뤄보자는 취지로 자리를 마련했다. 우선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라는 이슈에 대해 각자 생각하시는 바를 얘기해주시면 좋겠다.

 

문보경 > 우리가 흔히 얘기하지만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것이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과정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논리다. 이게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협동조합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얘기일까? 분명한 건, 주식회사라는 오너십이 강한 조직의 운영체계에 비해서라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이 경영 위기에 강할 수 있었던 이유가 보수적 운영이다. 조합원의 필요에 부응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충분히 논의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한 이슈와 그렇지 않은 것이 각각 조직에 불러일으킨 경제적 손실, 조합원 조직화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측정된 어떤 것이 있을까? 비용 문제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자료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일부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경우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같은 사람이 대표를 하고 있다. 정말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키우지 않는 것은 아닌가? 리더십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은 민주주의 문제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고 본다. 한 조직의 대표가 장기집권한다는 것은 단면적으로 그 조직의 민주주의가 상실됐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이무열 >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가 맞는 민주주의인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어려서부터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한 표를 갖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배우는데, 협동조합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보면 대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를 1/n 민주주의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너와 내가 하는 게 동등하고, 그걸 벗어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데서 오해가 생겨나는 것 같다. 다양성, 배려, 존중 같은 게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그건 잊어버리고 모두에게 각자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뭉뚱그린 말로 이야기되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말하자면 정관과 조례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불편하고 돈이 든다는 것은 비용으로만 환산된다는 얘기기도 하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거꾸로 ‘과정이 있는’ 민주주의가 지금의 시장상황에서 오히려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본다. 마케팅 모델 중에 ‘선형적 관계’라는 게 있다. 원인에서 결과로 갈 때 중간 과정에서 경험한 것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선형적 모델’이 등장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 기획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케팅에서도 최근 선형적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결과’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정 하나를 거친 게 결과지 맨 끝만 바라봐서는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

얼마 전 이노비즈 글로벌 포럼에서 크리스 앤더슨(『롱테일의 법칙』 저자)이 허락의 문화와 용서의 문화’를 얘기했다. 저는 용서의 문화보다는 ‘인정의 문화’라고 하는데, 그렇게 나누어 봤을 때 우리는 ‘허락의 문화’라는 거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자발성이 없이, 개개인이 하나의 개체적 존재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활동성이 없다면. 지금 20대들은 장년층과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납득이 안 되는 것을 자꾸 하라고 하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하려고 한다. 반면 용서의 문화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그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문화이다. 이것이 협동조합 민주주의의 내적 모습이 아닐까?

 

정영화 > 협동조합의 목적에 따라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다를 것 같다. 저희는 비용 문제보다도 자발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시민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나?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는데 협동조합에 와서 갑자기 해야 하는 거다. 요즘은 나의 욕구를 기반으로 협동조합에서 그것을 실현하려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 협의해서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여기에서 실현되길 바라는 욕구에 기반해서 오시기 때문에 조율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그걸 자꾸 생략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저희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경우 초기(90년대)에 조직 생활 경험이나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들 중심으로 시작했다. 예전에는 협의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방향이라는 지향점이 명확했고, 토론하고 논쟁할 지점이 분명했다. 지금은 나의 욕구를 위해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선택할 때 내 욕구 중심으로, 공통분모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내’가 중요하게 되니까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우리 세대보다 더 경쟁에 익숙한 세대들이 성인이 되어 협동조합에 합류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윤형근 > 그 지점에는 토론거리가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민주적 운영의 어려움은 돈과 시간일 거다. 시간이 돈인 사회기 때문에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조직인데, 다른 조직과 비교해서 돈이 많이 든다고 설정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른다. 자꾸 비교급으로 얘기되니까 대응해서 항변의 논리를 만들면서 이런 논의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자칫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본질을 흐려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완성형’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조직이 민주적이다”라고 얘기하는 순간 거기에 멈춰버릴 것 같다. 생태민주주의에서 입이 없는 것들이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구조나 내용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 조직이 어느 부분에 말을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살피면서 같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대적으로도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이유가 그런 지점에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운영 가치가 경쟁력이 되는 전략이 필요”

 

김신양 > 공통적으로 의사결정 비용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지금처럼 전 국민이 투표하는 제도는 예전 체육관 선거에 비하면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지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이고 발전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비용이 들지만 우리는 운동 조직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는 이론이 유포되고 있다. 당위론적인 담론을 넘어서 더 설득력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문보경 님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민주주의와 리더십 문제를 교차해 생각해볼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한 명이 오래 해서 독재가 될 수도 있고 안정적으로 될 수도 있는데, 그럼 좋은 사람은 오래 하고 나쁜 사람일 때는 교체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좋은 리더가 심어주는 것일까? 하는 문제도 같이 제기된다.

또 다른 문제는 세대 간 차이인데, 사회를 생각하고 조직을 고민했던 게 앞 세대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 요즘 세대들이 볼 때는 꼰대라고 한다.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는 딜레마가 협동조합 안의 세대 문제에도 있는 것 같다.

 

윤형근 >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협동조합과의 관계가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사회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협동조합을 하기 힘들다. 협동조합이 ‘민주주의 학교’로서 존재하면서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진화하는 것인데, 사실 이 부분이 어렵기도 하다.

 

이무열 > 국가의 민주주의보다 조직의 민주주의에 대한 체감도가 더 높다. 협동조합이 민주주의 경험의 장으로서 역할을 잘 해내야 하지 않을까. 협동조합이 만 개가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그 만 개의 모습들이 역으로 사회의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든다. 비용이나 시간이 든다는 데 대해서는 마케팅이나 경영 쪽의 관점도 바뀌고 있다. 일반기업도 효율관리와 기회비용을 예전과 같이 측정하지 않고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오히려 과정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문보경 > 일반 기업들의 변화 동기는 이윤이다. 이윤이 창출되지 않으면 굉장히 빨리 바뀔 수밖에 없다. 반면 협동조합은 돈을 얘기하지만 한편으론 돈을 무시한다. 논리모순적인 게 있다. 주식회사가 자랑할 거리는 경영학이나 여러 가지 검증된 게 많은 반면 협동조합은 그만큼 역사가 축적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자기들의 자랑거리가 뭔지 모르고, 방어하기 바쁜 것 같다.

최근 만 개 협동조합 중에서 성공 확률이 굉장히 높은 비즈니스로 정착되겠다 싶은 게 유통구조를 줄이는 방식이다. 택시 같은 수수료 기반 사업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으로 바뀌면 성공할 수 있다. 이윤과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들이 많다. 협동조합에서 이념이 경제적 이윤으로 어떻게 표출될 수 있는지가 강조되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남들은 이윤을 얘기할 때 우리의 아름다움만 얘기하는 것은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단 생각이 든다.

몬드라곤 스타일의 지배구조를 확립하려는 실험들과 일원화된 체계로 조합원이 직접 총괄하는 형태 중에서 개인적으로 전자에 관심이 많이 가 있다. 결사와 사업 두 가지를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지의 문제에서, 무게중심이 사업에 많이 가 있는 지배구조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서다.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후자는 조합원의 민주주의가 반영이 돼서 연차수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사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비즈니스 쪽은 사업(경영) 책임자에게 독점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긴다. 이사들이 전문경영진을 뽑아야 하는데 정보량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여러 모델들을 보더라도 정보량 격차가 나면 당연히 민주주의가 안 된다. 그 때문에 조직을 쪼개고 최소화하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이무열 > 중간 유통과정을 줄이거나 불합리한 과정들을 정리하면서 이용자에게 더 많은 이득이 되게끔 하는 사업이 협동조합의 기회가 될 수 있겠단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어떤 게 협동조합에 좀 더 좋은 기회이고 사업적 모델이 될까를 보고 있다. 마케팅 관점으로 보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에선 적절치 않다. 고객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지점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볼 때 이용자의 리스크가 큰 사업이 협동조합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생협도 마찬가지다. 리스크가 있다. 저는 한겨레상조가 협동조합으로 나왔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당시 상조회 문제들이 불거졌는데, 그럼에도 상조는 공동체에 분명히 필요한 사업이니까. 이렇게 리스크가 큰 사업들은 신뢰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된다. 협동조합의 신뢰는 아까 얘기한 지속가능성과 사업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협동조합은 그런 부분을 일반 이용객들에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윤형근 > 한살림도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1인1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으로”

 

문보경 > 선배님 중에 한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퇴직을 일찍 한 분이 있는데, 그분이 대안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협동조합 모임을 같이 가게 됐다. 그분이 제일 먼저 물어본 게 ‘근속년수가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동일하게 1인1표를 할 수 있는가.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거였다. 1인1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그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되살펴보니 여러 문제가 보였다. 조직 내 민주주의에서 평등이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라면, 출자금액과 그 사람의 위치에 따라 한 표의 무게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는 거다. 이건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좀 더 구조적으로 보장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은 든다.

양과 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꾸 예외가 만들어지고 예외가 일반이 되어버리는 상황들이 생긴다. 정말 실질적인 공동소유, 공동운영, 공동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일까? 1인1표라는 게 너무 신화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질에 근거해서, 자기 책임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면, 소유권에 더해서 의결권이라든가 최종 의사 결정권 등으로 좀 차별화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인1표가 굉장히 훌륭하다고 하고 역설적으로 주식회사를 공격할 때도 쓰이지만, 한편으로는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신화화와 그에 따르는 교조주의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면, 능력 안 되고 감당 못할 사람들에게 과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거다. 현장에서 보면 자활기업이나 사회적기업, 노협 중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는 데가 있다. 그런데 출자 목표치도 없고, 자기 혼자 다 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말리는 편이다. 이런 방식은 참여를 넓히는 게 아니라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책임감을 담보할 수 없는 조합원 참여 방식과 제도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낳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어렵게 만든다. 자신들이 책임 지지 않아도 되는 조합원이라는 걸 알고 시작한다면 잘 될 수가 없다.

 

김신양 > 중요한 문제 같다. 많은 곳에서 구색을 맞추는 식으로 억지로 이사를 시키고, 그러면서 책임이 희석되는 구조가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갖는 폐단이 그대로 나타나는 거다.

 

윤형근 > 말씀하신 것들이 대체로 역사나 사회 상황과 맞물려서 얘기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로치데일 시절에는 1인1표가 너무 당연한 부분이었고 양과 질이 균질한 사람들의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이었다. 그 시대가 지나고 양과 질이 다른 사람들의 협동을 전제로 하는 시대의 협동조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하신 참여 확대와 책임 희석 부분과 관련해서, 그런 사례들 같은 경우는 결사를 안 하고 한두 사람이 의도해서 만든 조직 아닌가? 의식 있는 소수가 ‘당신들 이거 하면 좋다’, ‘참여해서 표 하나 가져라’ 하는 방식은 생각해야 할 지점이 많다. 신세대 협동조합에서는 참여 정도에 따라서 표를 주는, 1인1표 원칙까지도 깨 버리는 모델이 나온다.

처음에 말씀하셨던 기계적 민주주의나 기계적 협동을 극복하는 게 사실 작은 경험 속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한살림 초기에 공동체공급이라는 걸 할 때는 대표를 한 사람이 맡고 주문을 같이 해서 일주일에 한 번 물품을 받으면 나누어 갖는 방식이었는데, 그러면서 협동을 실제적으로 경험했고 그 경험이 한살림이나 생협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대표를 돌아가면서 했는데, 어떤 사람이 배가 불러서 곧 애를 낳는 상황이라면 기계적으로 당신이 다음 번 순서라고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때는 두부가 판으로 왔는데 자르다 보면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아지고 그러니까 눈치도 보고, 그러면서 거기에서 협동을 배웠다. 기계적 협동만으로 안 된다는 걸 느끼는 거다. 배려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지점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살려서 나갈 것인가? 무임승차 문제는 협동조합에서 계속 나오는 거고,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저도 해답은 없다.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민주적 운영의 요소

 

김신양 > 세부 주제로 들어가서, 우선 민주적 운영은 무엇을 의미하며 조직의 어떤 측면을 봐야 하는지 얘기해보면 좋겠다. 앞서 정보량의 차이가 의사결정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그를 통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하는가?

 

윤형근 > 경영자가 통제할 수 있다. 정보가 많은 사람이 그걸 유통하는 과정에 차단하는 부분이 생겨서 ‘경영자 지배’라는 표현이 나오는 거다. 일본이나 유럽생협 가운데 경영자 지배로 횡령 등 문제를 겪은 사례가 여럿 있었다. 특히나 생협은 그럴 가능성이 많다. 한살림에서는 논쟁사를 통해 민주주의 문제를 정리하면 흥미롭다. 어떤 시스템을 새로 만들 때 논쟁 지점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매장을 낼 때는 공동체공급과 매장 논쟁이 있었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개인 공급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중심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한살림에서 제일 치열했던 건 이른바 명태 논쟁이다. 쿼터제가 조정되면서 연해주에서 잡아온 명태가 러시아산으로 구분되니까 이걸 취급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설탕 취급 논쟁은 한 10년 끌었다. 시간 문제로만 보면 경영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한 상황이다. 또 한 가지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갖고 있던 원칙과 조합원 의사가 다르다는 점이다. 조합원들의 70-80%는 설탕을 취급하자고 하는데, 국내산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자기원칙과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는 거다. 조합원들의 참여 정도에 따라서 논쟁 지점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고민스러운 것은, 조합원 참여의 의결구조와 경영자의 재량 범위를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문보경 > 현재 정보는 어떤 식으로든 제공되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알아들을 수 있는가이다. 사람에 따라 똑같은 정보를 입수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나 방식 등 전달 과정의 문제가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그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갖추게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초기에 이것을 극복하려면 교육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각자 수준에 맞게끔 계속 개발할 필요가 있는데, 일례로 웹 기반을 활용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조합원들에게 대차대조표 교육이 아니라 인터넷 사용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이걸 자체적으로 다 할 수 있을까? 저는 좀 어렵다고 보는데, 그래서 한편으로 또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무열 > 루미오 같은 의사결정 플랫폼을 협동조합에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플랫폼을 사용해서 어떻게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지, 정치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내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정보 격차가 갈등과 소외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사전이나 사후나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김신양 > 앞서 정관이나 규정에 의해서 민주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것을 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표준정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제로 사업(조합원의 참여와 활동까지 포함)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구조, 각각의 역할과 책임, 권한을 주는 기준이 불명확하다. 정관에서 부족하다면 내부 규칙이나 원칙으로 계속 논의해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너무나 미비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다 보니 이사와 대표 선출이 형식화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무열 > 정관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의존성이 너무 강하다는 거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정관이나 규정에 의해서 갈등이 또 유발된다. 정관에 근거해 강제나 패널티 등이 부과될 때 협동조합의 공동체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관이 짧을수록 좋은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한다. 협의해서 조정할 능력이 있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정관 항목을 또 만들면 된다.

 

문보경 > 미국에 협동조합법이 없는 주의 택시회사 규약을 봤는데, 업무 지침에 해당되는 것까지가 다 업데이트 돼 있었다. 법이 없다 보니 매번 다 논의하고 결정하고 반영하는 건 좋은 것 같지만, 조직에서 실험을 못한다. 민주주의는 실천적 관점에서 보면 실험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완성된 것은 없다. 이번에 이렇게 했다가 아니면 다르게 하면 되는데, 계속 보전 논리로 가다 보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 변화 시점에서는 재무적 손실까지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이런 실험들을 못 할 거다.

 

김신양 >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고 동의를 통해 함께 갈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번에 살림의료사협이 통합 이전할 때 3억 원을 증자 했는데 그 과정에 대의원들과 조합원 50명 정도가 참여노동을 했다. 소모임 같은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조합을 알고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많은 협동조합들이 이런 것들을 실무자들에게 다 맡긴다. 이것은 법적 문제라기보다는 실제 협동조합의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와 연결된다. 임금노동화된 협동조합의 모습으로 인해 드러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윤형근 > 한살림의 경우에도 공동체가 있었을 때 참여노동, 협동노동이 가능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실무(직원)노동화 되고 사업 시스템 속에서 조합원의 참여구조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다만 그게 전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무열 > 규모에 의해서 참여 단위와 수준이 달라지고, 그래서 분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최근 기업 전반에서도 셀 단위로 분리시키는 이유는, 규모가 커지면 자발성과 참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곳은 어떻게 지역이나 작은 단위의 활동성을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단위에 권한과 책임을 줘야 그 단위가 일을 할 수 있다. 조직 구성에서도 그러한 방향성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운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를 저는 혁신성이라고 본다. 보수적인 집합은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다. 국가나 작은 단위나 마찬가지다. 혁신성이란 건 새로운 의견들이 얼마든지 나오고 받아들여지는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볼 수 있겠다.

 

김신양 > 정영화 님이 계신 공동육아 쪽은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사협)으로 전체적으로 전환했는지?

 

정영화 > 80여 개 조직이 있는데, 규모는 작다. 보통 스무 가구 정도, 더 적은 곳도 있고, 많은 데가 40가구쯤 된다. 절반 정도가 사협으로 전환했다.

 

김신양 > 그 안에서 학부모, 교사, 다른 이해당사자 간의 지배구조나 민주적 운영도 중요한 문제다. 사협의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정영화 > 저희는 원래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이다. 그런데 어린이집 인가 유형 때문에 이름이 부모협동어린이집이어야 한다. 그래서 공동육아협동조합보다는 부모협동어린이집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들어온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부모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교사는 일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서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사협으로 전환하면서 예전에 교사, 아이, 부모가 3주체라고 얘기했던 것을 다시 공유하게 됐고, 교사들도 노무출자에 더해서 현금출자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게 된 것 같다.

 

김신양 > 구성원이 가진 이해와 책임, 주인으로서 조합원이 갖는 책임이 배치되는 측면이 있는데 부모협동조합이나 공동육아도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정영화 > 저희는 사협이기 때문이 아니라 3주체라고 얘기하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교사를 채용할 때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어떤 조합은 교사와 부모 비율을 동일하게 구성하는가 하면 어떤 조합은 이사 다수에 교사 한 명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때 교사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스스로 약자라는 인식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현상적으로 보면 그렇게 단순히 나뉘진 않는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갈등이 무척 많았고 크게는 조합 해산까지 여러 경우가 있었는데, 양상을 보면 결코 소수 대 다수로 벌어지지 않고 두 갈래로 자연스럽게 나뉜다. 본인의 이해나 서 있는 자리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것 같진 않다. 좀 특이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이념지향적인 조직이라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신양 > 민주적 운영을 하고 그것을 정관에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스템도 중요한 것 같다.

 

문보경 > 박재천 선생님께서 논골신협이 잘 되고 좋다고 얘기하시는 걸 들었다. 재무적으로 어렵고 조합원도 축소됐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 거냐고 여쭸더니 그분의 기준은 딱 하나다. 이사회에 조합원 이사들이 잘 나온다는 것.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함축적 표현인 것 같다. 자가척도 중 제일 중요한 게 참석률 아닐까? 불만이 있든 지지하든 나와서 얘기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가 전제되는 거다. 그런 걸 다 아울러서 참석률은 굉장히 명료한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모임 개수다. 모임이 많다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선택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조합원들에게는 참여가 교육 과정이다. 운영에 참여하면서 자기 관심사 외에 숨은 이슈들이 많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아는 게 책임성으로 가는 것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실험이라고 표현했는데, 달리 얘기하면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갖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리더십

 

김신양 > 어떤 곳이 민주적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다. 오히려 역으로 비민주적인 사례를 통해서 비추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무열 > 한 조합의 경우 이사장님의 경영자 마인드에 의문이 있었다. 내부 문제도 정관에 의한 다툼보다는 조합원과 이사장, 임원진들의 합의 안 된 결정이나 일방적 통행이 나타나는데, 공론화되면 더 크게 아픔을 겪겠다고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조합원 두 명을 이사회가 임의로 탈퇴시켰다고 한다. 위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데, 그게 더 강해지면 밑에서부터 문제가 발생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영화 > 저희 경우는 처음에 이사진을 능력제로 뽑았다. 그런데 점차 ‘할당’처럼 되면서, 누구는 의무로 하는데 누구는 안 하고 졸업하는 게, 말하자면 꼴 보기 싫은 거다. 그래서 벌금을 매긴다든지 6개월만이라도 하게 한다든지 의무할당제로 간다든지, 그런 1/n 문화들이 어느 새 많이 들어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기계적으로 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은 있다. 어떤 해는 다행히 소통을 잘 하는 분이 이사장이 되면 활발하게 운영이 되고 새로운 실험도 하고 그러다가 보수적인 분이 되면 하던 대로만 하는 경향이 있다.

아까 참여 기회가 교육 기회라고 얘기하셨는데, 민주적 운영에 있어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건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소모임도 교육 기회이고, 토론에 참여하거나 총회 한 번 참석해보는 것도 교육 기회다. 거기에 참여하면서 본인이 뭔가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하던 대로만 하게 되면 그럴 기회들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리더십과 교육이 연관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이무열 > 말하자면 ‘복불복’이라는 건데, 사실 그 기저에도 성과주의가 들어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느 이사장이 하는 게 예전과 다르다는 것은 예전의 기준에 맞추는 거다. 그게 아니라 그 사람 식으로 하는 것이고 옆에서 지켜보고 지원해주면 되는데, 하나의 롤 모델을 만들어놓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맞지 않는 것 같다.

 

정영화 > 잘 된다는 건 협동조합의 원리에 맞게 잘 되는 것을 말씀드린 거다. 의견 수렴을 잘 하는 이사장이 있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추진하는 이사장이 있을 때, 그것이 성공의 척도라는 뜻이다.

 

이무열 > 의견을 못 모으는 분들의 경우도 거기서 배우는 게 있다. 그런 것들이 자꾸 공론화되고 얘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꾸만 3자적 시점에서 평가하려고 하는 시선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정영화 > 말씀하셨다시피 의견수렴을 잘 안 하면 조합원들이 가만 있지 않는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얘기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문제제기 한 사람이 이사장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균형을 잡아가는 것 같다.

 

김신양 > 리더십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 리더의 방식에 따라 조직이 휙휙 변하면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하는 문제도 같이 있는 것 같다.

 

문보경 >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제비뽑기를 해서 돌아가면서 해본다거나. 훈련된 리더와 그렇지 않은 조합원들의 판단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날까? 다만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단독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일종의 안전장치가 된다. 그러면 리더십의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영화 > 리더십만이 아니라 팔로우십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차에 따라 선출된 이사라면 믿어줘야 하고, 결정에 대해 존중하고 참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문보경 > 우리에게 공동리더십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외국의 성공한 기업들 보면 대부분 원톱 체제가 아니다. 인간은 비이성적, 비합리적 존재라는 전제에 더해서, 저마다 소양과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불완전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결국 공동리더십으로 나온다. 똑같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서 서로 보완 구조가 될 수 있다. 공동리더십이 꼭 공동대표라는 타이틀로 있어야 할 거 같진 않다. 업무분장을 통해서, 또는 권한을 나누는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독박’ 써야 되는 자리에 누가 들어가려고 하겠나. 공동리더십, 넓게는 집단리더십 체계를 대안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윤형근 > 생협에는 비영리법인 문제가 있는데 신협이나 농협은 이중등기를 한다. 이사회 의장과 지배인으로 책임을 나누는 거다. 생협 같은 경우 이미 사업 규모 등이 결사로서의 지점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어서 이중등기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경영책임 부분에 있어서는 법적으로 전무이사나 대표이사, 지배인 등 이중리더십으로 간다고 해도 실은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있다.

 

김신양 > 법적 책임이든 아니든 리더십 문제는 책임과 연동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공동리더십의 의미가 잘 정리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권한에 대해서도 보통 총회와 이사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마치 피라미드 조직처럼 돼 버렸다. 실제 각각의 업무를 담당하는 팀도 많은 권한을 갖고 곳곳이 권한을 갖는 조직이 되어야 하지 않나.

 

문보경 > 협동조합 성격에 맞는 회사 방식이 지주회사 방식이라고 보는데, 그게 집단리더십을 갖는 구조다. 법률적 소통 문제가 하나 남아 있는데, 오래되고 규모화된 곳들은 지주회사와 접목시켜 전환하는 것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무열 > 지주회사 방식은 조직 운영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포괄적·수직적 구조의 그룹 형태가 지금 시대의 전문성과 세분화된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글로벌기업들은 각각 시장의 접점들을 만들어놓은 회사들을 연결시킨 네트워크 사업, 지주회사 구조로 분화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일반기업도 마찬가지고 협동조합도 아직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개별 협동조합이 자기 사업을 분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협동조합들 간의 관계성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나갈 필요가 있다.

 

문보경 > 협동조합 간의 협동도 이런 방식으로 될 수 있고, 다르게 표현하면 사업자협동조합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컨소시엄 같은 게 활성화되면.

 

이무열 > 원칙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런 식의 변화의 흐름에 맞게 조직과 내용을 계속해서 맞춰가는 게 중요하다. 어느 시점에서 멈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빨리 바꿔야 한다.

 

김신양 > 그러면서 또한 중요하게 얘기되는 게 소양 문제다. 민주주의가 제도로서만 되는 게 아니라면 거기에 필요한 자세와 품성은 어떻게 갖춰지는가. 단지 개인의 성격이나 자질만이 아니라 학습과 서로배움을 통해서 어떻게 갖춰지고 축적되고 공동의 것이 되어 가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이무열 > 말씀하신 공동대표성도 교육과 연결시키면 소양과 인성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조합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조직 설립, 재정, 마케팅을 잘해도 학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조직 정체성을 생각한 대로 끌고 가는 데 어려움이 있고 공동대표나 공동체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이 그 성격을 유지하면서 운영되고 발전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학습 프로그램 자체의 점검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한 사람’이 보이는 민주주의

 

김신양 > 마지막 주제다. 협동조합은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조합원의 다양성은 필요의 다양성일 수도 있지만 이념과 가치의 다양성일 수도 있다. 그것이 민주적 운영에도 어려움을 주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자꾸 대의원제도로 가면서 필요와 열망이 오히려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

 

윤형근 > 협동조합의 궁극적 모습은 사회적협동조합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한다. 아주 이념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한살림(지역 조직)의 기반은 소비자 조합이다. 소비자 조합이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생산자 쪽이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소비자들의 의사결정만 중요하냐,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저 지점의 의사결정도 중요한 거다. 생태주의에서 다음 세대의 의사결정을 지금 반영하자는 것처럼, 우리가 연결된 지점, 보이지 않는 ‘입이 없는 것들’의 얘기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측면에서 모든 협동조합은 사회적협동조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소비조합이라고 해서 일하는 사람의 문제를 방관할 게 아니라 어떤 식이든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체계가 존재해야 하고, 이걸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이념형이라서 어떻게 전달하고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는 쉽지 않다.

또 하나, 한살림에서 30년 비전 작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보는 지점이 조직이라는 ‘묶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커진 규모 속에서 어떻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복원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데 온전한 존재로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게 다양한 존재들의 결사로서의 그림이다. 예전에는 동질적인 하나의 묶음으로 봤다면, 온전한 존재로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조직의 원리로 만들 것인지가 앞으로 방향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이무열 > 결사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조합 내에서 어떻게 발언할 수 있는지, 그들의 비전이 조합 내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연결시켜 주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방법적으로는 기준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커뮤니티디자인 방식을 보면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사업은 늘 시작한다는 원칙이 있다. 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정리되거나 합해지거나, 그러면서 앞으로 나간다. 지금 기존 제도를 가지고 필요와 열망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한 존재에 의해서 다른 존재를 끌어들이려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기준을 해체시켜서 각자의 사업, 각자의 생각들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방식이 고민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김신양 > 제가 속해 있는 어떤 협동조합에서는 별로 도움을 주진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게 있다고 하면 다 해보라고 한다. 물론 예산 문제 등이 있으니 기준을 안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뭐든 얘기할 수 있고 시도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참 좋았다. 내 필요와 열망을 누가 대신 실현해준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이 ‘각자 자기가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벨트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두레생협 조합원이면서 한살림 조합원이 되었을 때 약간 고민을 했는데 어떤 활동가가 참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 내 안에서 잘 협동해 보라고. 그런 의미에서 우선 나 스스로 내 안에서 협동이 되고 나 스스로가 협동조합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무열 > 말씀하신 부분도 시대상황에서 보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한다. 지금 20-30대의 사고방식은 앞 세대와 정말 많이 다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는 협동조합을 준비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건 1인이 될 수도 있고, 아까 얘기한 지주회사 성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신양 > 오늘 소중하고 알찬 얘기를 많이 나눈 것 같다. 감사드린다.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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