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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한국 민간 협동조합운동의 맥락 해독하기
2017-12-05 17:00:00

한국 민간 협동조합운동의 맥락 해독하기

 

 

이경란

공동육아협동조합과 생협, 마을 활동에서 협동조합의 즐거움과 민주적 운영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게 된 이래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의 역사를 연구해왔다.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 일한다. onl-nana@hanmail.net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김소남 씀, 소명출판, 2017

 

 

 

한국 협동조합 역사 연구의 새 길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란 단어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지 햇수로 6년째이고 1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신설되었다. 새 정부는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를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농협이나 수협 또는 축협과 같은 금융기관들을 보면서 ‘이것도 협동조합이구나!’ 하고 새롭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협동조합이 많이 있고,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동시에 고민도 생겨난다. 놀랄 만한 속도로 만들어진 협동조합들 중에는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곳이 많다. 협동조합을 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확산되기도 한다. 협동조합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 방법을 가지고 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농협이나 수협 또는 축협을 두고 ‘그것을 진짜 협동조합이라고 봐야 해?’라는 질문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들은 1950년대 이후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는 기구로 기능했다. 그러다보니 ‘관제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농민들의 협동기구라기보다는 금융기관’으로 인식되었으며, 내부 운영에 있어서는 ‘비민주적 조직운영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평가받았다. 따라서 사회개혁과 민주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협동조합다운 것일까? 한국 사회 속에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는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민간의 자주적인 협동조합운동은 없었고, 2012년에 이르러서야 민간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협동조합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아야 할까? 많은 질문이 일어난다.

 

그동안 협동조합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략적으로나마 민간의 자주적 협동조합의 역사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민족해방운동과 연결되었으며, 해방 후 분단시기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밝혀왔다. 특히 홍성의 홍동면과 원주는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지역이다. 작은 면단위인 홍동면은 지역 대부분의 농민들이 풀무생협의 조합원이 되었고 문당리처럼 마을단위 영농조합이 마을의 생활생태계를 만들기도 했으며, 농협도 다른 지역과 달리 농민들의 조직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유기농업이 확산되면서 도시와 협력하는 생협운동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풀무학교가 있었다. 홍동면은 교육과 협동조합을 축으로 하여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한편 영서지역의 중심인 원주에서는 일찍이 신협운동이 성장했고, 한살림이라는 걸출한 생명운동조직과 생협 또한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의료생협처럼 생활에 필요한 협동조합들과 갈거리협동조합 등 경제적 약자들이 함께하는 조합, 그리고 노인협동조합까지, 생산과 소비와 복지 그리고 세대에 걸쳐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협동조합의 메카라 불린다. 또한 협동운동의 새로운 담론을 가장 먼저 제안하는 곳으로서 원주는 항상 주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활동들을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 위치 지으면서 깊게 파고들어 어떤 집단이나 지역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내밀하게 살펴본 연구는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김소남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은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쓴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만나면 그 방대함에 놀라고 성실함에 다시 놀라게 될 것이다. 742쪽에 달하는 분량 속에서 당시 원주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을 키워낸 원주그룹의 주요 구성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모심과살림연구소, 무위당기념사업회, 국사편찬위원회가 함께 진행한 2년에 걸친 구술작업의 성과를 알차게 활용하였다. 그리고 가톨릭원주사회복지회에서 보관하다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70년대 재해대책위원회와 사회개발위원회의 보고문서를 비롯해 여러 단체와 개인이 소장한 자료들이 제자리를 잡았다.

 

다른 지역의 활동 내용 또한 이러한 과정을 밟는다면 충분히 복원해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협동조합사 연구가 나아갈 방법을 제안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자들의 협동조합 연구가 계속해 이어지길 기대한다.

 

 

협동조합에서 생명운동으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따라서 원주 지역의 사회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생명운동으로 진화해 갔는가를 살핀다. 총 4부로 구성된 흐름을 따라 저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제1부 ‘원주 지역사회의 전통과 협동조합운동의 개시’는 일제하부터 1960년대까지 원주 지역의 사회운동이 갖는 특성과 원주그룹의 대표자인 장일순의 사상적 특징 및 활동, 그리고 천주교 원주교구의 창설과 원주그룹의 형성을 다룬다. 저자는 원주그룹을 두 가지 사상적 축이 만난 결과라고 본다. 바로 장일순과 지학순 주교의 만남이다. 원월드운동과 사회대중당활동을 했던 장일순의 사상은 해방 후 좌우대립을 넘어 평화공존을 모색했던 여운형, 평화통일을 지향한 조봉암과 이어져 있었다. 한편 가톨릭원주교구에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가톨릭교회의 자체 혁신운동을 꾀했고, 교구 내 평신도운동과 신협운동 등을 장일순을 중심으로 전개하도록 추동하였다. 덕분에 지역의 사회운동가들과 청년학생들의 관계망이 형성되었고 원주그룹이 구성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들의 사상적 경향은 “상호대립과 갈등, 분단과 전쟁, 독재 등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역에 기반한 민의 자발적· 자주적인 조직의 결성과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던 중도파세력”이었다고 본다. 장일순은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비폭력운동과 종교우회론에 입각해 사회운동을 전개했고, 원주를 중심으로 한 소도시거점론을 토대로 지역운동을 추진했다. 지역사회공동체를 만들어가려 했던 원주그룹은 계급운동이 아닌 협동운동을 기반에 두었다. 원주그룹은 1960년대 한국의 민간협동조합운동을 대표하는 신협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신협운동이 가톨릭을 배경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2부 ‘수해복구사업과 부락개발운동’은 1972년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홍수 후 파괴된 남한강 유역 농촌의 복구와 부락개발사업을 추진했던 재해대책위원회(이하 재해위) 활동과 그 성격에 집중한다. 원주그룹은 농촌과 광산 지역의 구체적인 현실과 만났고 단순한 수해복구만이 아니라 부락단위 협동활동과 신협운동을 결합한 부락개발운동을 진행하였다. 원주그룹은 교육을 통해 농촌과 광산의 지도자들을 성장시키고, 스스로 협동조직체인 작목반과 부락총회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과정이 매우 꼼꼼하고 생생하게 정리되었다는 점에 있다. 재해위는 모든 자료를 명료하게 정리해 남겨 놓았고, 저자는 그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재해위의 운영과 교육 내용, 교육 이수자의 상황, 교육 이수 후 각 부락에서 추진된 활동의 양상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이런 구체성 덕분에 당시에 진행되었던 박정희정권의 새마을운동과의 차별성을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재해위가 부락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가졌던 사업 원칙을 보면, 지원자금은 수해를 가장 많이 입은 영세농민부터 배정하고, 가능한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으며 부락민의 협동 활동을 통해 추진하는 사업을 선정하며, 소득증대사업은 협동조직체를 통하는 한편 부락총회라는 부락 전체 조직을 결성해서 전체를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특성이, 농민들의 주체화보다는 관이 주도하여 유신체제 안정에 동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환경개선사업과 마을금고사업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새마을운동과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라고 평가한다.

 

제3부 ‘농촌과 광산지역의 신협운동’에서는 재해위의 신협활동에 집중해서 살펴본다. 각 지역 신협의 설치, 부대사업과 구판사업의 전개, 광산소비자협의회 창립과 소비조합의 육성 과정, 나아가 광산 지역에서의 노동운동까지 연결되는 과정을 살핀다. 이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다. 각 마을마다 신협이 자리 잡는 과정은 새마을운동으로 추진된 마을금고를 설치하는 움직임과 경쟁·대립하는 관계에 있었고, 신협의 임원들이 부락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주도권이 바뀌는 ‘혁명적 경험’ 과정이었음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각 부락의 신협이 협의체를 구성해가면서 부락들 간 상호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들이 농민조직과 광부조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원주그룹의 협동조합운동이 단순히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것을 넘어 농민과 노동자가 주체가 된 협동과 호혜, 지역자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협동조합이라는 그릇 안에서 ‘생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한다.

 

제4부 ‘생명운동으로의 전환과 소비조합운동’에서는 유신체제의 해체 이후 1980년대 재해위가 사회개발위원회로 전환되면서 생명운동론이 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농촌소비조합협의회와 한국소협중앙회, 신협 광산지구협의회와 광산노동운동, 유기농업과 한살림운동의 전개과정을 추적하는데, 그 속에서 원주그룹의 방향이 1980년대 초부터 생명운동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1982년 발표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제목의 일명 ‘원주보고서’는 “죽음의 먹구름이 온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인류의 근대 산업문명과 지구상의 생명계 전체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 원주 지역의 반독재투쟁과 부락개발운동에 기반한 협동조합운동을 되돌아보고 근대산업문명의 현실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면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지향의 확대를 위해 생명운동을 제시하였다. 이들의 시선에서 분단시대의 한국 사회는 가장 적나라한 생명파괴와 반생명현상이 보편화된 곳이었다. 저자는 원주보고서가 한국 민중 자신들의 집단적인 노동체험과 지혜의 전통 속에서 일체 생명 모두를 하나의 총체적이고 통일된 생명체로 보는 영성적·공동체적 생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전 사회적, 전 우주적인 협동적 생존의 확장 가능성을 보았으며, 그러한 민중적 세계관과 생명의 세계관을 토대로 제3세계 민중연대 속에서 한국 사회의 생명파괴현상과 분단시대를 극복할 해결책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들이 1988년부터 한살림모임을 준비하면서 변혁운동론에 기반한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해 성찰하며 한살림운동의 방향과 활동을 설정해가는 진행 과정을 촘촘하게 설명한다.

 

 

책을 권하는 마음

 

4부에 걸쳐 저자는 일제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원주그룹의 형성과 재해위를 중심으로 한 협동운동, 반독재투쟁 속에서 싹트는 ‘생명’ 인식, 1980년대 초반부터 구체화되었던 생명운동론과 한살림모임에 이르기까지 원주그룹의 활동을 다각적으로 밀도 있게 서술하였다.

 

분단체제라는 좌우의 극한 대립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평화적·중도적 정치경제사상을 가진 집단이 농촌과 광산이라는 민중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활동했으며, 그 사상과 조직이 어떻게 진화해갔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나아가 이 책은 원주그룹의 생명운동이 근대 산업문명에 기반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명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생활공동체운동’과 ‘생명문화운동’을 통해 진정한 사회혁명을 이룰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사회혁명이라는 것이 새로운 삶과 변화를 전제하되 혁명대상조차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는 긴 안목의 통찰 속에서 국가주의를 넘어선 민초들의 자립과 자치를 지향”한다는 저자의 말은 장일순에서 저자로 이어진 울림이기도 하다.

 

더불어 책의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망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원주그룹이 구성되는 과정도 그러하지만, 지역 내 농촌과 광산조직화와 농민운동(가톨릭농민회), 사북노동운동으로 발전하는 광산신협운동의 관계망, 원주그룹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현장조직과 연구자그룹(농업문제연구회, 노연), 1990년대 한살림모임과 연결되는 우리밀살리기, 흙살림, 우리농촌살리기 등 다양한 농업·농촌·생명운동이나 녹색평론의 생태담론, 자치와 민회를 중심으로 생명정치를 탐색한 생명민회, 귀농운동본부, 불교환경교육원의 불교생명사상, 기독교환경연대 등 다양한 연결망이 보인다. 이는 한국의 사회운동이 1990년대 생명을 기반으로 한 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조직적이고 지적인 바탕이 꽤 오랫동안 내적인 성장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너무 방대해서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틈나는 대로 조금씩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협동조합운동이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민간에서 자주적인 협동조합의 흐름이 도도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흐름이 꽤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데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성찰하고 새로운 사상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가 좌절과 슬픔과 고통의 역사인 그 순간에도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삶이 어려워 힘겹고 길을 못 찾겠다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서평을 쓰면서 이 책의 한계나 다른 접근의 방향을 언급해야 하겠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원주 지역의 그 내밀한 속내를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협동조합을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해야 할지를 은근히 가르쳐줘 좋다고, 지금 하는 우리의 운동이 사람과 온 생명을 살리는 길로 가고 있으니 괜찮다고 위로해줘 마음 놓인다고.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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