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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사회적경제와 복지정치
2017-02-07 11:41:00

사회적경제와 복지정치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의 등장과 확산은 자활사업과 사회적기업의 제자리를 탐색하기 위한 반성적인 성찰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현대 서구에서 사회적기업이 사회적경제를 토대로 성장한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발전은 복지정책의 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복지정책의 공공전달체계가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복지전달체계가 온전히 시장에 떠넘겨지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자주적인 사회적경제 주체로 서지 못하고 정책의 전달체계로서의 역할에 그칠 위험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29일에 열린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제4차 정기포럼에서는 사회적경제와 복지의 관계를 탐색하며 특히, 복지정책을 넘어서 정책을 형성하는 주체적 실천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자 했다. 본고는 포럼의 발제를 맡은 노대명 회원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정리: 기은환(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시아사회정책연구센터장. 프랑스 파리2대학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했다. 실업과 빈곤에 관한 정책을 생산하고,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에서도 활동 중이다. 『한국사회적경제의 역사』, 『좋은 정부의 제도와 과정』 등을 함께 썼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성장과정은 서구 사회와는 좀 다른 특이한 경로를 거쳤다. 서구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이 오랜 시간 진행된 이후 침체기를 겪었고, 다시 부활의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한 경로를 거치지 않고 오히려 국가와의 협력 관계 내지는 복지 서비스를 전달하는 공급자 중 하나의 형태로 사회적경제가 발전해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의 사회적경제는 국가와 밀접한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적경제와 복지’를 주제로 지난 4년간 강의를 해왔는데, 주 대상은 공무원들과 민간의 사회복지단체, 사회적경제 조직이라는 상반된 청자였다. 공무원들이 바라보는 사회적경제는 민간단체에 정부가 돈을 주는 것이기에 관리를 잘 해야 하는 사업으로 인식되었고, 민간 사회적경제 조직에서는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지자체가 자꾸 간섭하고 틀어막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두 집단을 동시에 놓고 강의했던 적이 있는데, 도무지 어떠한 합의점에 이를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처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8년 전쯤 제주도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초대로 강의를 하러 갔었는데, 그곳의 지부장님이 강의 시작 전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당신이 오늘 하는 발표를 후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모은 그 돈은 제주도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이 수십 번 사람들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얻어온 것이다. 서울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면 대기업들이 몇 억씩 턱 내놓겠지만, 제주도는 마땅한 대기업도 없고 그저 사람이 한 걸음 한 걸음 찾아가서 그 돈을 만들었다, 이 돈을 쓸 때 어떻게 쓰면 좋을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이걸 받은 당신도 강의를 잘 해주길 바란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날의 이야기가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각인되었는데, 내가 쓰는 이 돈을 어떻게 만들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내가 들인 고생과 정성은 얼마만큼인가가 그 돈을 쓰는 데 나의 머리와 마음을 투입하는 근거가 되겠구나 싶었다.

 

요즘 시민단체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사업이 한창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사회적경제 조직이 어쩌면 대상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지역사회의 주민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조직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돈을 정부에서 받고 그 돈으로 주민들을 지원하니, 지역의 주민들이 내가 모시고 그 욕구를 이해해야 할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내가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적경제 조직에게 쓴소리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러한 생각들이 이 발제문의 행간에 담겨 있다.

 

당신에게 사회적경제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사회적경제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동시에 나에겐 사회적경제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사회적경제를 통해 얻거나 추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우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그중엔 시민으로서 국가와의 관계, 일터에서 노동자로서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밖의 많은 시간을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저는 그게 일상생활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우애’라고 생각한다. 우애의 관계는 시장이나 국가, 일터에서의 관계와는 다른 것 같다. 경쟁을 가정하지 않는 우애의 관계가 사회적경제를 추동해왔던 원칙이지 않나 한다.

 

질문 하나. 사회적경제는 복지를 먹고 자란다?

 

약간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사회적경제와 복지국가는 상충 관계에 있다. 보통 사회적경제가 복지국가의 빈 공백을 메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복지국가가 제대로 될수록 사회적경제의 입지가 무척 좁아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몸이 아플 때 큰 의료비 지출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에 들고, 실직했을 때 돈이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실업보험에 들고, 늙어서 생활이 어려울까봐 연금에 들지 않나. 건강보험, 고용보험, 연금 이 세 가지는 사회보험의 중추다. 그런데 과거에 이러한 사회보험 제도가 없었을 때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참 다양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사회적경제가 그 당시 권력의 억압, 시장의 무질서에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했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몸이 아플 때 서로 의료비를 내주는 공제조합의 역할도 했을 것이고 그 밖에도 수많은 역할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생겨나면서 사회적경제는 그 기능이 굉장히 위축되었다.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담보하지 못하는 것들의 자부담을 덜기 위해 공제조합에 가입한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보험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공제조합 대신 삼성생명과 같은 큰 영리보험 기업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삼성생명이 개인 회사가 아니라 사회적경제 조직이라면 어떨까.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사회보험의 민영화된 체계를 대체한다면 어떨까. 사실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꾸 기존에 정해진 틀 안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을 보면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입지를 개척해나가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경제와 복지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는데, 복지는 굉장히 제도화되고 경직된 측면이 있다. 많은 정치가와 관료들은 복지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가능하지 않다. 복지의 굵은 손으로는 사람의 고운 숨결을 다 어루만질 수가 없다. 사회적경제는 그런 면에서 아주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회적경제는 복지국가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겐 복지국가가 갖고 있는 아주 거친 것의 숨결 고르기 같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는 자발성과 창의성이 있으며, 국가가 갖고 있는 지시 체계와는 달리 약간 전복적이기까지 한 영역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질문 둘. 사회적경제가 제도화를 보는 눈

 

사회적경제 제도화에 대한 사회적경제 내부의 반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에 대해 ‘제도화가 필요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부에서 자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관련법을 만들어 왔는데, 과연 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주체였던 적이 있었을까.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이 제도화를 끌고 그 핵심을 만드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까?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가 오늘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법제화를 하던 시기가 사회적경제 당사자 조직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할 정도의 독재정권시대였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어떤 경우엔 방임했고 때로는 이해관계에 편승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 드는 생각은 사회적경제 조직 스스로 자기가 할 역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제도화를 요구할 때 자신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할 수 없다면 그 제도화는 의미가 없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여러 관점들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로는 새누리당 내에도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는데, ‘사회적경제는 사회주의자들의 가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사회적경제는 그냥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의원도 있다는 것이다. 즉, 상반된 이해관계의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거다.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보면 사회적경제 안에 이러한 모습들이 모두 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경제가 발전해온 19세기를 생각해보면, 사회적경제는 혁명적이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도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여러 가지 새로운 대안과 관련되어 있다. 수익이나 이윤에 궁극적 목적을 두지 않고 다른 대안적 경제의 원리를 추구한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도발적이다. 이 점이 바로 대안적 경제 체제, 다른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고, 또한 노동이나 실업 등 수없이 다양한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생산성이 끊임없이 발달하면 인간이 노동해야 할 구속의 시간을 줄여갈 수 있고, 그럼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할 텐데, 생산력이 늘어도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오히려 노동 내부에 벽을 만들어서 누군가는 죽어라 일만 하고 또 누군가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러한 질서가 만들어졌다. 이런 세상에서 ‘기본소득’을 지향한다는 건 사실 노동이 갖고 있는 의미 자체를 굉장히 다른 각도로 풀어주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지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라 기존에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정리해가면서 기본소득을 펼치기는 간단치 않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한국 또는 유럽에서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제도의 정교함, 정치적인 복잡함을 모두 담아내어 제대로 된 기본소득 안을 낸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기본소득은 그것을 해내려는 야심만큼이나 정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이 제도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 단순한 발상만으로는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기본소득은 멋지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은 반면, 사회적경제는 그리 멋지지 않으나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관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사회적경제가 분명히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굳건히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확신을 갖게 된 이유는 유학 생활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해외에서 유학할 때 조그만 동네에 시민단체가 꽤 있었는데, 시장들이 그 단체에 와서 인사를 하는 걸 보며 막연하게 시민단체들이 지역에서 활성화되면 그만큼 정치적으로 강한 조직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의 존재 방식을 보면, 지자체와 얼마나 관계를 잘 맺고 자금 지원을 잘 받는가가 조직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떤 시민단체의 대표가 ‘우리는 지자체로부터 한 푼도 안 받고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단체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갖는 의미와 무게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을 받고 지시를 받는 시민단체 조직은 시민단체 역할을 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는 후발 복지국가의 보완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요즘 돌잔치에서 실패를 놓는 것 외에 새로운 게 생겼는데 그게 공무원증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삶의 가치에서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이 중요해진 거다. 우리의 가치가 바뀐 만큼 사실 사회적경제 조직들도 공공부문화되고 안정적인 소스를 갖는 게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사실 사회적경제의 어떤 부분은 복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인지 의문을 던지고 싶다. 사회적경제가 복지국가를 전복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경제가 어느 정도까지 복지국가의 큰 틈을 메우고 국가를 긴장시킬 수 있을지가 우리의 중요한 고민사항이 됐으면 한다.

 

사회적경제의 두 전선

 

사회적기업도 생협도 시장에서 영리기업과 맞서 싸우면서 사회적경제를 구축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만 막지 않으면 후원금도 내고 사회적 기여도 하겠다고 한다. 사실 사회적경제 기업이 이윤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 개인의 이기심에서 발동한 집요함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또한 우리는 과연 사회적경제가 접한 시장과의 싸움을 어떻게 끌고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는 생협이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적경제를 육성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순진한 기대였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한국에서 국가와 사회적경제 조직의 접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좋지 않은 징후들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장과의 싸움, 국가와의 싸움에서는 싸움의 성격과 해야 하는 전략의 선택이 다르다. 그 싸움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고민 지점이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저는 계속 이렇게 얘기한다.

 

‘국가로부터 벗어나라.’ 그런데 사회적경제 자활을 했던 분이 그러시더라. “너희 연구자들은 이런 제도 만들 때 뭐하고 자꾸 우리보고 그러냐,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사회적경제 조직을 만들었겠냐, 우리가 무슨 기반이 있어서 이걸 했겠냐, 우리한테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말고 연구자들도 연구자가 질 책임을 져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새삼 반성이 됐다. 국가와의 관계, 기업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까 계속 고민해보게 된다.

 

결국 시장과 국가와의 관계가 사회적경제의 형태를 특징짓는데, 복지가 큰 나라, 비영리 부문이 갖고 있는 규모가 큰 나라는 사회적경제가 담당하는 역할이 다른 것 같다. 사실 비영리라고 표현했지만 좀 더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사회적경제 영역을 가진 나라에서는 그 자체가 정치에 대한 굉장히 강한 비전을 갖는다. 우리처럼 목청 높여 악다구니를 해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작은 움직임에도 권력이 반응하는 큰 힘을 갖는다. 사실 사회적경제의 규모를 경제 규모와 정치 규모로 나눠본다면 경제 규모 못지않은 것이 정치 규모이고, 여기에 대해 주목해볼 만하다. 현실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정치 규모가 경제 규모와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적경제가 어느 정도의 인력을 부양하게끔 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예외성

 

벨기에에서 사회적경제가 다시 움틀 때 가서 본 느낌은 복지국가와 사회적경제의 관계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복지국가는 그 기능이 약화되면 공공부문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민영화를 시키는데, 벨기에에서는 그 부분을 민간 영리기업이 아닌 사회적경제 조직에게 넘겼다. 그런데, 사회적경제 조직에 편입된 과거의 공무원은 월급이 늘었을까, 혹은 고용 안정성이 나아졌을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사실 복지국가에서 사회적경제의 성장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은 좀 이례적으로, 복지 영역에 사회적경제 조직이 들어와 커가는 것에 큰 저항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로서 공공적인 것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아원도 민간이 운영했고 많은 것을 민간에게 맡겼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공공화의 문제는커녕 영리화를 막아내는 것이 굉장히 시급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가 그나마 복지국가의 확장과 선순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선순환적인 관계가 계속 유지되려면 사회적경제의 건강성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적경제의 정치지형을 보면 구 사회적경제 조직은 저발전된 상태로 이것이 영리기업인지 관변조직인지 잘 모르겠고,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정부에 비판적이긴 하지만 점점 빠른 속도로 정부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사회적경제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사회적경제는 정부가 굳어있을 때 그 굳은 신경을 풀어주는 충격이자 참신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자활사업이 빠르게 복지부에 의해 제도화될 수 있었던 건 자활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실무자들이 산동네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돌보며 헌신했던 과정을 지켜본 당시 공무원들의 감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기업은 운영의 위기가 오면 수익을 남기기 위해 사람을 자르고 비용을 사회로 전가시키는데, 결국 그 비용은 정부가 책임지거나 가족이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경제는 그 상처들을 찔끔찔끔 모아서 기부도 받고 자원봉사도 하며 헤쳐 나간다. 이러한 사회적경제의 면면이 그리 우아하진 않지만, 그 모습이 사실은 상처를 보듬어 안는 굉장히 큰 힘이다. 사회적경제가 이러한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경제 경제총량 키우기

 

마지막으로,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경제총량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그럼 경제총량을 키워가는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이 정부의 지원금이 쌓여서 사회적경제 조직이나 기관이 건물을 사고 차를 몇 대 더 갖는 것을 의미하는가? 발상을 전환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국은 사회적경제가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사회화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가진 나라다. 물론 그 사회화의 과정은 참 어려울 테지만 우리나라는 그만큼 민주화되었고 광장에 모인 수많은 목소리가 있는데 무엇인들 못할까 싶다.

 

개인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제도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면 여야도 사회적경제를 추동하는 민간의 요구를 크게 거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제가 보기에 요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상당히 관변화되어서 자신감을 잃은 상태다. 요즘 많은 사람의 심리 상태이기도 한데, 지금 사회적경제가 다시 한번 일어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너무 비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텐데, 이것이 사회적경제를 증오하는 어느 관변학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회적경제에 애착을 많이 가진 학자의 쓴소리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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