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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협동조합 조합원 리더십의 본질을 묻다
2018-02-09 09:51:00

 

협동조합 조합원 리더십의 본질을 묻다

- 한살림 조합원 리더십에 대한 실천적 연구

 

 

 

양세진

소셜이노베이션그룹 대표. 철학(현상학)과 행정학(협력적 거버넌스)을 공부했으며, 실천적 연구자로서 최근에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ysejin21@hanmail.net

 

 

 

 

이 글은 협동조합으로서 한살림의 조합원 리더십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목적으로 수행된 ‘한살림 조합원 리더십 프로젝트’의 열매이다. 다만, 공식보고서와는 달리 필자 개인의 고민과 캐물음에 의해 정리된 글이다.1) 본 고는 첫째, ‘왜 ‘리더십’이 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중요한가?’, 둘째, ‘협동조합의 조합원 주체되기와 리더십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셋째, ‘현재 지역한살림의 리더인 이사(장)들이 갖고 있는 조합원 리더십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동조합 조합원 리더십 역량강화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리더십’이 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중요한가?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사람관계와 업무관리의 역량으로서 함께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공유된 비전이 현실화되도록 일련의 ‘역할, 장치, 자원’을 움직이는 힘으로, 다시 말해 ‘리더의 리드하는 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리더십에 대해 다양한 정의와 스타일이 존재하지만, ‘리더십이 있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문제, 상황에 대해 영향력으로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리더십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리더십은 의미가 없다. 또한 리더십은 더 높은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처해진 관계와 맥락 속에서 영향력으로서 어떤 힘이 작동되는 한에서 리더십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리더인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이사장이 누구인가?’ 또는 ‘조직의 실무책임자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조직의 리더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을 각각 지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영향력으로서 리더의 리드하는 힘’인 리더십의 최근 흐름은 리더의 탁월함에 의해 높은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경영관리나 혁신방법을 넘어, 조직 구성원들이 자기선택과 자기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코칭하고 자기주도성을 살리는 자기경영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지시에 따라 순종과 헌신으로 책임감 있게 성과를 창출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식경영의 주체가 되는 것, 열정과 창의로 내면화된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고성과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의 중요한 방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로 게리 해멀의 ‘꿀벌과 게릴라’2),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3), 프레데릭 라루의 ‘조직의 재창조’4), 브라이언 로버트슨의 ‘홀라크라시’5), 하비 세이프터의 ‘리더십 앙상블’6) 등을 들 수 있다.

 

리더십은 관계의 역량을 구비한 탁월한 개인이 조직의 비전을 임팩트 있게 실현하고 성과를 극대화하도록 구성원의 업무를 관리하는 역량이다. 이때의 리더십은 비록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의 자기주체성과 자기주도성을 강조하며 자기성장과 자기실현을 목표로 하고, 심지어는 자기경영 리더십을 표방한다 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조직의 성과목표와 관계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의 성과 목표와 분리해서 사람들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하고 특이한 존재의 몫을 향유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즉 리더십이 어떤 고결하고 우아한 가치를 이야기하든,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현실화하고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허락된 조건 아래에서만 그 효용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리더십은 더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을 리더로 여기거나 탁월한 역량을 가진 한 개인을 리더로 여기기보다는, 협동과 협력하는 단위(이사회, 위원회 혹은 팀 등)가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반 조직이 이해하는 리더십의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협동조합은 타자와 더불어서만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본래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활동거리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이다.” (A 이사장)

 

“협동을 통해 리더가 되고, 협동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한살림이라고 생각한다.” (B 이사)

 

자기경영을 강조하는 홀라크라시Holacracy 모델에서도 리더로 불리는 개인이 아니라 셀cell로 표현되는 각 단위가 리더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하고 있지만, 그러한 설계의 목적이 무엇을 위함이냐는 물음과 관련해서 차이를 보인다. 기존 리더십 모델은 조직이 우선이고 개인은 수반되는 관계로 설명된다. 조직의 가치에 어떤 변화가 없다면 개인의 가치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즉 조직의 변화로부터 개인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개인의 변화가 조직의 변화를 주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리더십은 조직과 개인 사이 상호공속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상호공속적인 관계란 마치 ‘닭’과 ‘알’처럼, 어느 한쪽이 없이는 다른 한쪽이 존재할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기존 리더십에서도 한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격려하고 지지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직의 성장과 연관해서만 가능하다. 조직은 영속적이고 개인은 흘러가는 것으로 본다. 개인은 영속적인 조직에 중간에 승차했다 중간에 하차하는 주체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 리더십은 설령 개인이 조직에 한시적으로 관계한다고 할지라도, 조직의 목표나 성과를 위해 개인을 도구화하거나 수단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을 위해 조직이 희생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 조직과 개인은 상호공속적 관계로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필요충분조건으로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리더십이 지향하는 바는, 조직에 참여하는 각 개인은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존재의 몫을 추구하며, 조직과 모든 구성원은 각 개인이 존재의 몫을 향유할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공동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자마니는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에서 협동조합이란 “시장경제 안에서 시민인 소비자가 시장에서 주권적 주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즉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선택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지향하는 연대체”7)라고 설명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경제에 대항하는 대안경제공동체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또한 협동조합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주체들 각자가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존재의 몫을 추구하며, 그 자체를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공동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조직형태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사장의 리더십은 이사장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이사회에서 마을모임이 더 잘 되게 하려면 생산자와 연계를 갖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의견은 이사장인 내가 제안한 것이 아니라 이사회 토론의 결과였다.” (C 이사장)

 

이러한 관점에서 협동조합인 한살림이 ‘리더십’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 주체되기와 리더십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앞서 협동조합인 한살림이 리더십의 물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했는데, 이 절에서는 특히 협동조합의 조합원되기, 조합원 주체되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협동조합은 본질적으로 주체적인 삶의 힘을 가진 구성원들이 협동하는 조직모델이다. 기존의 조직모델은 조직의 유지, 보존, 성장을 우선하는 조직 중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서 개인은 언제나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단순히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조직을 구성하는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는 조직 모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조합원을 주체로 보는 관점이 조직의 유지, 보존, 성장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과 조직이 서로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는 상호공속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본질적 특성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본래적인 ‘삶’8)의 의미를 캐물어보면, ‘삶’이란 곧 ‘협동하는 삶’이기에 ‘협동하는 삶’으로서 협동조합 조직이 얼마나 인간의 본래적인 삶과 깊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치 ‘경제’란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경제’임을 말하는 것과 유사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래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협동하는 삶은, 타자와 더불어서만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존재의 몫을 살아가는 것을 공동의 몫으로 지향한다. 협동하는 삶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자기관계 및 타자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 속에는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듯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조건 아래에서나 항상적으로 작동하는 힘이 존재한다. 이 힘을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협동조합 조직이 왜 ‘리더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동안 리더십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제기했던 ‘어떻게 공유된 비전에 정렬해서 사업을 실행할 것인가?’, ‘어떻게 조직의 모든 주체들이 열정을 갖고 자기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하면 마침내 정말 성취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기능적인 물음들은 다음과 같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우리 자신과 타자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과 타자가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삶을 각자도생, 자력갱생, 사적인 삶의 몫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모두의 공동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이를 리더십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현재 한살림 이사(장)들이 갖는 조합원 리더십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한살림 지역생협에서 이사장, 이사와 지역운영위원, 분과위원 등의 역할로 헌신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점은, 자기 자신을 ‘리더’로 인식하면서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가’, ‘어떻게 리더십을 잘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적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을 ‘리더’로 인식하지 못하고 ‘리더십’을 어떻게 잘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해서 리더가 아니거나 리더십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본질적으로는 이미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이사장 역할로 적합한가, 하는 고민이 있는데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D 이사장)

 

이 절에서는 한살림 지역생협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리더인 이사장과 이사, 위원들의 본질적인 고민을 3가지로 압축해서 소개하고자 한다.9)

 

조합원 주체성 강화하기

 

한살림운동은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을 본질적인 가치로 두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살림운동의 본질적 가치는 ‘협동조합 조직’이라는 근거에 뿌리를 두고 실천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핵심 원칙에서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을 강조한다.

 

즉 협동조합은 조합원 중심주의 혹은 조합원 주권주의에 기초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협동조합 - 레이들로 보고서』에서도 “법인이든, 결사체든 협동조합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조직형태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법적 형태를 갖든, 어떤 규모의 크기를 갖든 협동조합은 조합을 이루고 운영하는 주체인 조합원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10)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조합원의 관여는 협동조합의 생명줄과 같고, 이것이 결핍하거나 약해지면 그 조직은 쇠퇴한다”11)고 이야기한다.

 

“한살림운동은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계기, 그런 질문을 받는 계기를 어떻게 만들지가 고민이다.” (E 이사장)

 

즉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조합원의 주체성이 협동조합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할 때, 협동조합 조합원은 자신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책임진다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마니는 ‘책임짐’의 의미에 대해서, 일반 조직의 사람들은 ‘주어진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반면,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과업’만이 아니라 ‘그 일의 목적’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12). 그러나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살림 조합원 리더들은 조합원들이 제한된 역할과 영역 속에서만 책임을 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향후 조합원 리더십의 중요한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조합원 대표를 선출하는 일에 모든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데 조합원을 한살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F 이사)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한살림 조합원 리더들의 고민은 ‘조합원 주체성을 어떻게 온전하게 회복하게 할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사장들끼리 모이면 우린 좀 허수아비가 아닐까라는 말을 가끔 하는데, 그렇다면 이사장조차도 한살림의 주인이 아닌 것이 아닌가?” (G 이사장)

 

“조합원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진짜 주인이다. 조합원이 주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는 조합원만의 책임은 아니다. 가입할 때부터 한살림의 조합원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H 이사장)

 

일각에서는 고작 가입비 몇만 원으로 조합원을 주권적 주체로 보는 게 무리가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경제체제에 물들어 있고 예속되어 있는지를 강렬하게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합원을 주권적 주체로 보는 것은 주권의 일의성13)의 맥락에서 조건 없는 주체되기, 각자의 고유성과 전체로서의 복수성이 상호공속적으로 연결된 주체되기의 의미이다. 이러한 조합원 주체성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사(장)들 스스로가 조합원 관점으로 의사결정을 하려는 부단한 자기노력과 자기실천이 필요하다.

 

“조합원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도 조직적으로 조합원 중심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있다. 조합원 중심적인 사고로 판단을 하는 프로세스가 복잡하더라도 해야 한다. 조합원의 생각과 목소리 반영이 우선시되어야 하는데 너무 결여되어 있다. 아울러, 이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한살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을 늘 해야 한다.” (G 이사장)

 

매장을 조합원 활동의 진실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운영하기

 

한살림 매장은 공급을 중심으로 하던 30년 전부터 한살림운동의 본질적인 공간이었다.

 

“한살림농산에서 박재일의 하루 일과는 출근과 함께 가게 한쪽 구석에서 석발기를 돌려 쌀에 섞인 돌과 뉘를 골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동안은 주문 전화가 걸려오면 직원들과 환호성을 지르며 쌀 한 말 계란 한 판이라도 서울 시내 어디든 배달을 해주었다. 공급 업무를 전담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중에 일이 바빠지면서 박재일도 직접 쌀을 배달했다. 박재일이 스승으로 모시던 장일순은 동냥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거지에게 거리의 행인이 하느님이듯, 가게 주인에게는 찾아오는 모든 손님이 하느님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박재일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밥을 먹는 모든 사람이 한살림운동을 함께해야 할 하느님이고 한 식구라고 생각했다.”14)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매장이 증가하고 매장을 중심으로 물품을 이용하는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매장은 조합원이 한살림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매장만 이용하는 조합원’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성숙한 조합원은 매장만 이용하지 않고 생산지 방문 등 다양한 조합원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이라고 구분지어 말하기도 하지만 한살림의 많은 조합원 리더들은 매장을 한살림운동의 핵심적인 활동의 장으로 보고 있다.

 

“물품이 생명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용하면 그 사람이 한살림의 주인이다. 내 건강을 위해서 물품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생명살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가 주인이고, 그것이 조합원 활동이다. 매장은 물품을 통해 조합원이 주인이 되게 하는 공간이다.” (H 이사장)

 

“한살림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물품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한살림을 실천하는 일이다. 물품을 구매하는 조합원들에게 그 행위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려주는 활동이 중요한데, 사실 그 부분은 현재 잘 하지 못하고 있다.” (I 이사장)

 

현재 한살림 조합원 리더들은 조합원이 한살림의 주인으로 성장하고, 주권적 주체의 힘을 키우는 데 있어서 매장이 ‘진실의 활동장’이며 ‘물품’과 관계하는 ‘진실의 공간’임을 인식하고 있다. 조합원 주체되기에 있어서 활동의 장으로서 매장에 대한 재인식을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조‌림의 주인으로서 주권적 주체로 인식하고 성장하는 학습의 장

② 조합원이 한살림의 리더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경험의 장

③ ‌한 리더가 조합원들과 만나고, 말을 건네고, 경청하는 소통의 장

④ 한살림운동의 활동과 사업이 공존하고 통합되는 진실의 장

 

“우리 지역에서는 매장을 조합원 활동공간으로 만들자는 고민을 하고 있다. 마을모임이나 소모임을 매장에서 하는 형식이 아니라, 매장을 거점으로 조합원 활동을 재정렬하는 접근을 통해 조합원이 주체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매장에 한살림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출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매장 조합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J 이사)

 

 

협동조합을 협동조합답게 운영하기

 

생활협동조합의 특성상 여성들이 대부분의 조합원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조합원 리더가 많아야 한다. 가장 훌륭한 리더에게 협동조합은 목표 자체가 아니라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조합원 리더들이 없이 사업가와 기술전문가인 실무자만 있다면 그들은 협동조합을 기업이 지시하는 대로 판단하고 이끄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협동조합이 당면한 긴급한 문제가 실무 사업가와 기술전문가만의 배타적 전유물이 되지 않고 일반 조합원의 관심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15)는 레이들로 보고서의 강조는 조합원 리더십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살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협동조합은 전문가인 실무책임자와 비전문가인 조합원 리더의 협력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협동조합 운영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조합원이 주체인 협동조합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발생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매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합원 활동을 경험한 조합원 리더들이 이사가 되고 이사장이 되면서, 조직운영과 사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안목의 부족으로 인해 자기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정된 임기(2년 혹은 4년)로 인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조합원 리더 스스로 자기검열과 자기배제의 선택을 통해 ‘위임’이라는 명분으로 실무책임자에게 의존하거나 예속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살림이 굴러가는 것을 알아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텐데 잘 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무에서 제공한 자료가 한눈에 파악되지 않으니 이해하기가 힘들다. 실무책임자가 설명해 주지만 한번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설명할 때 과거 등 비교 자료를 주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 요구하기도 한다.” (K 이사)

 

“조직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사회에서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슈들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실무진은 이사회에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슈를 그 상태로 설명한다. 조합원의 관점에서 쉽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무진이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무력감과 답답함이 들 때가 많다.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L 이사)

 

물론, 그 반대의 경우로 조합원 리더들이 사업에 대한 엄밀성을 구비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실무자의 업무에 간섭하는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캐물어야 할 것은 협동조합을 협동조합답게 운영하기 위한 본질적인 방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연합이사회에서 이사장들이 (스스로를) 들러리처럼 여기게 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료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임 이사장들에게는 이전의 자료들까지 정리해서 공유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알아서 자력갱생,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이사장 역할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M 이사장)

 

리더십은 ‘리더의 리드하는 힘’이다. 그 힘은 ‘①본질적인 가치를 이해하고 지키는 힘, ②본질이 드러난 미래방향을 설정하는 힘, ③미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기 자신과 타인을 관계하는 힘, ④미래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을 어떻게 발현할 수 있는가? 협동조합 조직으로서 한살림은 지역이든 연합이든 조합원 리더들이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협동조합 조합원 리더십 역량강화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한살림 조합원 리더십 연구 과정 속에서 한살림 조합원 리더는 한살림 활동과 ‘더불어’, 한살림 활동 ‘속’에서 성장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살림 조합원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살림 활동의 경험을 통해 조합원 리더로 생성16)’된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조합원이 한살림의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은 ‘속성의 기술과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숙성의 시간과 활동’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으로서의 활동 경험은 어떠한 경우에도 압축되거나 생략될 수 없는 자연적인 시간을 반드시 필요로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향후에도 한살림 조합원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조합원들이 다양한 활동의 장에서 역할과 경험만 하면 되는 것인가? 지금 현재 상황을 지속해도 괜찮은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한살림운동은 일상의 혁명이기에, 일상에서 한살림을 살아가며 다양한 조합원 활동의 경험을 갖는 것이 조합원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본질적인 과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향후에는 지금까지 실천하고 활동해왔던 다양한 활동과 교육 과정을 ‘리더십의 관점’에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살림 조합원 리더십 프로젝트’의 결과로 도출된 조합원 리더십 역량강화를 위한 6가지 요소를 매개로 조합원 가입시기부터 리더십의 관점에서 실천적 소통을 하고 조합원 활동과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참여하는 조합원의 경우에도 일상의 조합원 활동 경험이 자신을 한살림의 온전한 주권적 주체로 성장시키는 과정임을 인식하고 그 힘을 전면적으로 자기화하기 위한 자기실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살림 조합원 리더를 세우고 리더십 강화를 위한 6가지 역량

① 한살림의 가치, 정신을 자기화하고 실현하는 힘

② 시대의 성찰과 비전을 제시하는 힘

③ 한살림 전체를 보는 안목과 통찰의 힘

④ (영역 간.주체 간)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으로 협동하는 힘

⑤ 조합원이 자기주체가 되게 하는 힘

⑥ 차기리더의 성장을 돕는 힘

 

한살림운동은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되는 운동이다. 그 운동의 중심에 조합원 주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소비주체를 넘어 주권적 주체로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협동조합 조합원 리더의 본래적인 역할임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한살림 회원조직(지역생협) 이사장들과의 1:1 인터뷰, 지역 이사회 및 위원회와의 간담회, 각 지역 생협에서 참여한 조합원 리더들로 구성된 연구파트너와의 집중 워크숍, 지역생협 이사와 위원 등 211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 등 다양한 과정과 경험을 통해 수행된 조합원 리더십 프로젝트의 결과는 모심과살림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게리 해멀, 『꿀벌과 게릴라: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혁신』, 이동현 역, 세종서적, 2015.

3) 게리 해멀,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방영호 역. 알키, 2012.

4) 프레데릭 라루, 『조직의 재창조』, 박래효 역, 생각사랑, 2016.

5) 브라이언 로버트슨, 『홀라크라시: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경영 시스템』, 홍승현 역, 흐름, 2017.

6) ‌하비 세이프터 & 피터 이코노미, 『리더십 앙상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강미경 역, 세종서적, 2003.

7) 스테파노 자마니 외,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송성호 역, 북돋움, 2013, 26쪽.

8) ‘‌삶'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는 비오스bios이다. 비오스로서 삶이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죽음이란 자연스럽게,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다’이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맺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행복을 또는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세계-내-존재’로 표현하든, ‘공동체-내-존재’로 표현하든 ‘타자와 더불어 함께하는 삶’인 한에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삶’일 수 있다. 따라서 ‘삶’이란 곧 ‘협동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협동조합은 특별한 형태의 조직이나 삶의 형식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9) ‌한살림 조합원 리더들의 본질적인 고민 전체에 대한 내용은 「한살림 조합원 리더십 프로젝트 보고서」(모심과살림연구소, 2017) 참고.

10) 레이들로, 『21세기의 협동조합 - 레이들로 보고서』, 91~94쪽.

11) 위의 책, 139~141쪽.

12) 스테파노 자마니 외, 앞의 책, 77쪽.

13) 주‌권의 일의성(一意性. univocity)이란 ‘국민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조건과 관계없이 헌법1조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따라 주권적 주체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14) 김선미, 『한살림 큰 농부』, 한살림, 2017, 202~203쪽.

15) 레이들로, 앞의 책, 205~206쪽.

16) ‌생성(生成, becoming: 지속적인 운동의 흐름 속에서‘제거-보존-창조’가 반복되는 과정(생명의 본래적인 존재방식)

 

 

* 『모심과 살림』 11호(2017-18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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