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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통일을 위하여 (김지하, 1981)
2012-03-02 16:48:00

 

김지하 이야기 모음『밥』

 

 

 

■ 창조적 통일을 위하여 - <로터스상> 수상 연설

 

감사합니다.

 

저같이 별볼일 없는 사람, 이 세상에서 쫓겨난 초라한 사람을 위해 '로터스상' 수상에 애쓰는 분들, 수상을 결정하신 분들, 그 동안 상을 보관해오신 분들, 그것을 전달해주신 지학순 주교님과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교구 형제들, 그리고 오늘 여기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이번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人權賞)' 수상을 결정한 '크라이스키 인권상 위원회'에도 똑같은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로터스상' 수상 결정에 접한 것은 1975년 가을, 감옥에서였습니다. 그때의 저의 심경은 한마디로,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위대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결정을 수락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그 참담한 심경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이번 크라이스키 인권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별볼일 없는 사람, 이 세상에서 쫓겨나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의지가지할 데 없이 떠도는 초라한 한 광대의 넋이요, 살아 있는 중음신(中陰身)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주(周)나라의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음식을 버리고 수양산 고사리를 뜯어 먹다 굶어 죽은 대쪽 같은 선비도 아니요, 뜨거운 피와 무지개빛 나는 강철로 이루어진 영웅적인 투사는 더욱 아닙니다. 저는 그저 바람이 불면 눕고 바람이 그치면 일어서는 한낱 풀이요, 그 풀들의 넋일 뿐입니다.

 

그러나 수상 결정은 두 경우가 다 일치하게 저 한 사람만이 아니라 저와 똑같이 별볼일없는 무수한 사람, 이 세상에서 쫓겨나 가없는 고통의 바다를 헤매이는 수많은 살아 있는 중음신들, 그렇지만 바람이 불면 눕되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이 그치면 일어서되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지혜롭고 끈질긴 민중, 바로 우리 민중의 그 고통과 그 슬기와 칠전팔기의 완만하면서도 줄기찬 그 불가사의한 생명력에 가득 찬 삶을 향해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의 슬픈 운명은 바로 우리 민중의 슬픈 운명과 일치하며 또한 저의 운명과 일치합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의 그 깊이 모를 지혜와 그 끈질긴 투쟁은 바로 우리 민중의 지혜와 투쟁에 일치하며 또한 저의 삶도 거기에 일치하고자 노력해온 것이었습니다. 이 일치를 바탕으로 저는 감히 수락을 결단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은 유럽인들이 강요한 수세기에 걸친 비참과 죽음의 암흑 한복판에서 비참과 죽음의 암흑 그 자체를 그대로 뒤집어 유럽인까지도 포함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에 찬란한 부활을 가져다 줄 세계사적인 대전환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동서 양 블록을 막론하고 유럽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강요해온 것은 물신(物神)숭배와 소비숭배와 속도숭배와 폭력숭배였으며 요소론(要素論)과 이원론(二元論)과 욕망의 체계와 생명경시사상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제 3세계적 반응의 하나인 국수주의적 경향마저도 그러한 강요의 결과이며 또한 그 강요된 내용의 되풀이입니다. 특히 일본 국수주의, 제국주의, 신식민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의 가장 악성적인 것만을 골라 흡수하여 더욱 악성적으로 발전?심화시킴으로써 제 3세계 민중에 대한 새로운, 거대한 악마로 나타나고 있는 전형이며, 우리는 앞으로 일본에 대한 특별히 예리한 준비를 해야 할 필요 앞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민중의 세대를 거듭하여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소외되어왔으며 학살당해왔습니다. 매스미디어와 비인간화된 교육제도의 악마적인 위력 아래 전면적, 지속적으로 세뇌당해왔으며, 민중의 정신적 및 사회적 생활 전면에서 온갖 형태의 기괴한 상대연기(相對緣起), 즉 악순환이 심화되어왔고 이제 그것은 절정에 달한 듯이 보입니다. 민중의 정신적 및 사회적 생활 전면에서 주체가 상실되고 뒤얼크러진 혼효(混淆) 현상이 보편화하여 분열, 오염, 신경질환, 무기력, 개성 상실, 그리고 가학(加虐), 피학(被虐) 등 폭력적인 인간관계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혹독하게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되고 대지의 생명과 인간생명이 똑같이 살인적 노동과 무절제한 소비와 무제한한 속도와 무한정한 폭력에 의해 소모되고 병들어서 세상은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이 삼악도(三惡道)를 방불하는 문자 그대로 나락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민중은 대지로부터 뿌리뽑히고 그 가족은 해체되어 오대양 육대주의 황야와 바다와 어두운 도시들을 방황하는 유령으로, 살아 있는 중음신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 과학기술과 정치, 경제, 사회 제도들은 그 자체가 지닌 바 인류와 자연생명의 해방?완성을 위한 본래의 사명과 기능을 잃어버리고 생명을 반대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악마적 경향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참과 죽음의 암흑 한복판에서 그 암흑이 지닌 양면성(兩面性), 암흑의 의미, 그 모순의 신비를 발견함으로써 비참과 죽음의 암흑 그 자체를 그대로 뒤집어 유럽인과 모든 형태의 민중의 적(敵)마저도 포함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에 찬란한 부활을 가져다 줄 세계사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걸머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존엄한 생명의 존중과 사랑'이라는 보편 진리를 생활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새롭고도 폭 넓은 세계관을 창출해내야 하며 영성적(靈性的)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인간과 자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결정적인 친교와 평화를 성취시킬 생명의 세계관, 생명의 존재양식을 출현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민중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3대륙의 별볼일없는 무수한 사람들, 이 세상에서 쫓겨나 가없는 고통의 바다를 헤매이는 수많은 살아 있는 중음신들, 그러나 바람이 불면 눕되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이 그치면 일어서되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지혜롭고 끈질긴 민중이 그 자신의 축적된 고통과 그 고통으로부터 획득한 지혜를 담보로 하여 치러내야 할 역사의 몫입니다.

 

한(恨)의 축적이 없는 곳에서는 한의 극복도 없습니다. 축적된 한의 그 엄청난 미는 힘에 의해서만 한 자체는 소멸합니다. 굶주린 사람이 밥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이, 어린아이가 어미 찾듯이 부처를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마음, 부처를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그 깊은 한이 없이는 참된 해탈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역설적인 전환은 한의 반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슬기로운 단(斷), 영성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단, 즉 결단을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합니다.

 

결단은 용기입니다. 참된 용기는 밤을 받아들이는 용기, 진흙수렁을 받아들이는 용기, 고통과 절망과 퇴폐마저도 받아들이는 용기. 흙이 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게 결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용기를 민중은 이미 용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로터스'는 우리말로 연꽃입니다. 저 한 사람, 그리고 여러분, 전체 우리 민중과 제 3세계 전체 민중, 전 인류와 전 중생의 생명의 연꽃은 진흙수렁 속에서만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비참한 죽음의 암흑을 있는 그대로 둔 채 그것을 뒤집는 부활을, 예토(穢土) 속에서 예토 전체를 그대로 정토로 변화시키는 해탈을, 탁류 속에 들어가 오래 기다려 그 탁류 전체를 스스로 맑아지게 하는 도를 말할 때 그것이 다름아닌 연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요, '부드러움', 즉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수동적 적극성'입니다.

 

'수동적 적극성'이야말로 참된 용기요 참된 결단이며 생명을 본래 있는 그대로 살아나게 하는 생명 자신의 가장 생명다운 활동양식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로터스', 즉 연꽃입니다.

현대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이며 음개벽(陰開闢)의 때입니다. 이제까지의 인류문명사는 선천(先天)시대였고 음과 양이 갈등하는 시대, 즉 양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남성지배의 역사였고 가부장적 문명이었으며 원한과 상극이 지배하는 때였습니다.

 

억압, 착취, 차별, 고문, 학살, 모략, 음모, 갈등, 파쟁, 전쟁, 반란, 혁명이 지배했으며 권모술수와 남성적 용기, 잔혹한 패도, 독살스런 항거, 공격력, 정복욕, 명예, 속도, 물량, 재산 등이 지배적 가치였고 무자비한 탄압, 교묘한 조작과 무장투쟁, 테러리즘, 집단적 보복, 폭력적 인간 지배와 보편적인 생명말살의 악순환이 압도하는 역사였습니다.

 

강약부동(强弱不同), 남녀부동(男女不同), 귀천부동(貴賤不同), 빈부부동(貧富不同)은 당연시되었습니다. 이 양의 원리가 패권을 쥐고 이룩한 문명이 바로 유럽 문명입니다.

 

오늘날 후천개벽의 시대에는 음과 양이 조화하는 시대, 즉 음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시대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대동을 이루는 것, 즉 '여성적인 것'이 그 지배를 넓혀가는 역사이며 새로운 형태의 모권(母權)이 중심으로 되어가는 문화의 때요, 해원과 상생(相生)의 때입니다. 평화, 화해, 친교, 대동, 통일, 일치, 자유, 평등, 사랑, 자비, 해방,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되 여성적인 부드러움, 너그러움 관용, 갈가리 찢어진 채 조용히 미소짓는 인내, 악마적 경향에 사로잡힌 자를 때리는 일이 참으로 불가피하다면 끝까지 참은 끝에 눈물을 흘리고 자기 가슴을 치며 때리는 사랑의 채찍, 폭력 비폭력의 분별이 이미 소멸된 새로운 사회활동, 그리고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과 사랑이 압도하기 시작하는 역사입니다. 강약평등, 남녀평등, 귀천평등, 빈부평등이 이 시대에는 당연한 것으로 될 것입니다.

 

이 전환은 선천 속에 '숨은 채 드러나는' 후천을 선천의 틀 안에서 확장시킴으로써 근본적으로 선천을 넘어서는 '수동적이면서 적극적'인 전환입니다.

이 전환이 곧 부활이요, 이 전환이 곧 단(斷)이며, 이 전환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 민중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이 수행해야 할 세계사적 책임의 내용입니다. 이 대전환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신개벽, 즉 문화적 대변혁을 전제로 합니다. 전환과 변혁의 주체는 물론 민중입니다. 그리고 민중은 이미 그 자신이 선천의 틀 안에 후천정신, 후천생존을 숨기고 키워왔습니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작가, 예술가, 지식인, 과학자와 종교인들의 임무는 민중 자신이 주체적으로 '존엄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 보편 진리를 모든 가치관의 기초로 한 영성적이며 공동체적인 생존양식, 즉 민중 자신 속에 이미 숨겨져 있는 후천을 새롭게, 자각적인 형태로 드러내고 확장하는 일에 민중의 일원으로서, 민중의 입으로서 그것을 표현하고 발전 심화시키며 거기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임무의 즉각적 적극적 수행이 곧 정신개벽, 문화적 대변혁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비록 바람에 부대끼는 한 포기 들풀처럼 보잘것없고, 이 세상에서 쫓겨나 구만리장천을 떠도는 초라한 광대의 슬픈 넋쪼가리에 불과한 저입니다만 개벽을 향한, 부활을 향한 우리 민중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의 고통에 찬 전진 속에, 제게 주어진 진흙창의 삶, 연꽃, 남에게는 쉽사리 이해받을 수 없는 저만의 십자가를 지고 저는 언제나 거기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자주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는 1950년대 후반 '반둥회의' 당시 반둥에서 결성되었고, 동경대회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 예술가 회의'로 확대, 개칭되었다. 각국에 지부가 있고 사무국은 카이로에 있다.

'로터스(LOTUS)상'은 이 회의에서 3년마다 제3세계 작가, 예술가, 지식인, 과학자, 정치인들에게 주는 상느오 김지하는 1975년도 '로터스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특별상 수상자는 수상과 함께 해당 연도 비동맹회의에서 개막 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으나, 김지하는 당시 투옥중이라 수상과 출국, 연설 등이 불가능했다. 그후 지학순 주교가 상을 보관해오다가 1981년 12월 2일에 원주 교구 가톨릭센터에서 수상했다.

이 자리에서 오스트리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위원회'가 주는 1981년도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동시 수상했다.

당시 상황과 시간 관계 등으로 연설 원고의 앞 부분만 일부 연설했을 뿐 전문은 원고로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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