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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생명문화네트워크의 필요성과 활동방향에 관하여
2015-03-08 17:25:00

 

(가)생명문화네트워크의 필요성과 활동방향에 관하여

 

1. 한살림운동에 대하여

 

‘생명운동’을 내건 최초의 운동이었고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제시하는 대안운동이었으며, 개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크고 작은 실천양식에도 철학적, 정신적 밑돌에서부터 경제, 정치기획까지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던 총론적인 사회운동을 꿈꾸고 실현하려 했고, 여전히 시도해 나가고 있는 운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살림운동의 뿌리와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고, 현시점의 한살림운동을 평가하는 작업은 앞으로 운동의 방향을 전망하고 운동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으로 보인다.

 

(1) 운동의 뿌리

 

1) 원주의 사회운동

한살림운동의 뿌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1960년대 후반 이후 형성된 원주지역의 다양한 협동운동이었다. 원주지역은 서울의 기독교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격렬하게 독재정권에 저항한 운동의 중심체였다. 그것은 비단 반독재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농촌, 광산, 빈민, 문화 등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협동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원주지역의 운동은 1972년 남한강 유역 대홍수를 계기로 착수한 강원도 지역의 농촌개발운동은 생산협동, 신용협동, 기계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이용협동, 나아가 생활물자를 공동구입하는 소비협동 등의 협동운동, 협업운동과 마을 민주화운동이었다. 하지만 이 운동들은 농업정책, 경제정책, 급격한 사회변화 등으로 농민이 농촌을 떠나게 되고 농촌의 공동체 삶과 공동체문화가 붕괴되면서 와해된다.

사회적 조건, 외적 조건의 변화가 운동의 와해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운동 주체들의 이 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생명의 그물망으로서의 세계, 즉 인간과 자연, 우주의 유기적 연관이라는 생명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를 배태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원주지역에서 주도한 농촌개발운동은 마을을 단위로 물적인 자원을 외부에서 집중적으로 투입하면 자립이 가능하리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인데, 몇 년 동안 농기계, 가축, 자본 등 아무리 많은 자원을 투여해도 협동을 통한 자립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었다는 한계에 직면한다. 이것은 마을의 자연적 토대, 마을간의 관계, 소비지와의 관계라는 생태적 연관성, 생명계의 물질과 에너지, 정보의 이동과 순환을 무시한 요소론적 운동이었다는 각성으로 이어지고, 사람이나 마을은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또한 농촌개발운동이 지향하던 ‘도시적’ 풍요에 대한 반성을 통해 검소하고 소박한 농적(農的)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이 경험이 한살림운동의 초기 실천 형태인 유기농산물을 통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와 협동이라는 생활협동운동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2) 민중문화운동

한살림운동의 또 한 뿌리는 1960, 70년대 돌진적 근대화와 뿌리뽑힌 삶의 현실 상황에서 전통시대 민중들의 공동체문화가 지니고 있던 생명력에 주목한 민중문화운동이었다. 민중문화운동은 1960년대 대학가(심우성, 조동일, 김지하, 채희완 등)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희구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그 잃어버린 공동체성의 회복을 통한 독재정권에 저항할 근거이자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다시 말해, 민중문화운동은 전통사회의 민중예술이었던 판소리, 탈춤, 가면극, 무속, 대동굿, 두레노동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민중들의 저항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켰는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저항의 에너지가 민중들의 대동성, 공동체성, 생명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의 민중예술은 대개 생산노동과 “노래와 춤으로써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과 문화를 창조하는(유동식)” 현상이었다. 민중들의 공동체적 노동인 두레, 혹은 공동체의 노래와 춤을 통해 체험하게 되는 신명은 우주 생명력과 교합된 상태로 확대된 자아를 말하며, 우주 생명이 인간 내부에 지펴들어 자기 안에 우주가 확대되어 나오는 영성적 체험(채희완)이다. 즉, 전통사회에서 신명은 예술과 일상의 삶,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 여정을 매개로 우리가 생명의 그물망으로서의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조화된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침략과 근대화, 산업화의 20세기를 거치며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분열되고 도구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명과 영성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상실해 버린 신명의 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바로 민중문화운동이었다.

19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된 민중문화운동은 민중문화가 지녔던 생명력을 부활시키고, 그 문화의 기반이었던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의 공동체성을 되살리려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 기획이 의도하고 있던 본래의 의미가 약화되고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도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현장(생산현장, 지역현장)과 문화운동의 통일을 기하려던 시도가 바로 한살림운동의 한 뿌리로 이어지게 된다.

 

3) 두 이야기의 합류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1960년대, 70년대 추진했던 경제개발은 서구사회를 모델로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려는 물질적 성장을 위한 근대화 프로젝트였다. 도시화, 산업화, 자본주의화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프로젝트는 내재적으로는 지역공동체, 농촌공동체의 와해에 따른 민중들의 뿌리뽑힌 삶으로 드러나고, 외형적으로는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노동문제, 인권문제, 환경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게르만의 대이동에 비견할 만한 근대화 과정 속에서의 한국사회의 이농현상과 그것이 가져오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띄고 있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 공동체의 해체와 뿌리뽑힌 삶은, 그 과정이 몇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서구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여타 제3세계와는 동일한 양상을 띄고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희구’라는 생명운동의 정서적 기반을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

근대화 프로젝트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에 대한 반성, 풍요의 기반인 자연파괴, 인간파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등장하는 서구 생태주의 운동, 녹색당, 히피운동, 공동체운동 등의 문제제기에 주목하고, 1980년대 중반에 전향적으로 등장하는 고르바초프의 자연 인식(생산관계뿐만 아니라 생산력, 생산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을 통해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인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 무르익을 수 있었다.

원주지역의 현장 경험, 정서적 뿌리가 된 민중문화운동이 근대화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이라는 세계사적, 사회적 변동에 창조적으로 결합하고 대응하면서 한 살림이라는 우리 사회 생명운동의 선언이요, 실천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한살림운동의 역사적 의미

 

1) 생명운동의 문화기획

한살림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이념의 틀은 생태적 사유와 모심의 철학이라는 두 가지 사유의 역설적 결합에 있다.

우선 ‘나와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모든 생명의 유기적 연관을 강조하는 생태적 사유를 기본적 틀로 갖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원주지역의 현장운동 경험과 더불어 서구 녹색운동과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와 ‘이천식천(以天食天)’, 되먹임의 원리(반포지교) 등 동학에 나타난 생태적 사유를 이어받고 있다.

두번째로는 ‘시천(侍天)’이란 동학의 사상을 현대화한 ‘사람 안에 모셔진 우주생명’을 들 수 있다. 근대적 의미로는 ‘개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근대적 개인을 넘어서 인간의 몸/이성/감성을 포함한 전인적 개인에 대한 이해(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와 이에 대한 존중과 공경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이념 틀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역설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데, 둘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한다면, 이른바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이 두 이념 틀 중 어느 한 측면만의 강조는 운동의 지향이 에코파시즘으로 전락하거나 뿌리 없는 탈근대적 인간에 천착해 버릴 우려가 있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지향했던 것처럼 유토피아 지향의 미래 혁명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이념의 틀을 한살림은 지금, 여기(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 내가 서있는 현장에서 실천하고 공동체(성)을 실현해 나가는, 전생애에 걸친 영속적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이념의 틀을 갖고 있는 한살림의 사상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한살림선언이 발표되었던 것이 1989년이었다. 이 무렵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틀이 균열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회주의의 붕괴 조짐이 드러나고 자본주의의 승리, 역사의 종언 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이 두 세계가 기초하고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이를 기초로 한 기술적 산업주의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것을 꿰뚫면서 ‘생명’이란 화두에 기초한 참여, 자치, 공생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기획하려는 선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한국 상황을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였다. 군사독재 정권의 돌진적 근대화를 토대로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국사회가 대중소비사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는 지점에서 생태적 고려가 부재한 턱없는 낭비적 소비문화 확산의 한계를 지적하고, 또한 동시에 민주화, 정보화의 조짐이 등장한 시점에서 생명의 세계관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인간 이해, 사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와 타, 물질과 정신의 분리에 근거하여 생산력주의와 객관적 법칙으로서의운동 이념을 중심으로 하던 맑시즘, 주체사상 등 변혁운동이 중심이었던 80년대 중후반에 자연에 대한 생태적 이해를 토대로 운동주체인 인간은 사라지고 법칙만 남은 기존 사회운동의 몰개성화에 경종을 울리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복권시킴으로써 새로운 사회운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한살림의 실천양식의 기본은 ‘살림’으로 넓은 의미의 문화운동인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를 위한 협동적 삶의 실천, ‘밥’, ‘농산물’을 매개로 한 생활협동운동을 실천의 단초로 삼았다. 주목할 것은 구체적인 생활, 삶의 문제 내지는 개인을 매개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바꾸어나가는 운동방식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한울님이다. 밥이 한울이다. 역사의 시간과 세계의 공간이 지역 안에 있다.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 기존의 운동이 역사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화된 생활세계,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고, 한국 사회에 그 이후 소개된 포스트모더니즘, 신사회운동의 이론과는 달리 구체적인 실천양식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선진적이었다.

문제는 환경운동, 시민사회운동 등 일반 사회운동에 ‘생명’ 담론의 확산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운동으로서 총론이 아닌 각론의 프로그램이 부재했다.

 

2) 생명운동의 경제기획: 생명경제론

실천양식의 하나인 생활협동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를 통한 지역의 자립, 자족적인 생명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었다. 욕망의 조장을 통한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자연과 공생하는 경제 시스템, 물질 이동의 영역을 생태적 지역에 기반하여 설정하는 등 지역경제학, 생명경제학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단선적 성장론에 대한 확산진화론).

모든 생명의 유기적 연관이라는 생태적 사유를 토대로 하고 있었기에 자급자족의 코뮨식 공동체를 지향하기보다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열린 유기농업 생산공동체와 지역의 생활공동체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며 공동체를 구상하는 협업이었는데, 초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대구 한살림의 공생두레농 등 계획적인 생산공동체에 대한 암중모색이 지금도 진행중이지만 전망이 밝지는 못하다. 협업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홍천의 명동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을의 생태공동체화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적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공동체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밖의 경제기획으로 신용사업의 새로운 발상을 전개하고 몬드라곤을 처음 소개했지만 프로그램화하지는 못하였다. 지역의 생활공동체는 농산물을 매개로 한 생활공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정치기획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한살림의 경제 기획은 협의경제, 지역경제, 생태경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선, 국가 소유와 규격을 토대로 한 계획경제, 사적 소유와 가격에 바탕한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모델로 협의경제를 제시(생산자와 소비자의 협의시스템)하고 있다. 생활협동운동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한 것도 당의 결정이나 주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결정하는 계획이나 시장 경제와 달리 신뢰를 통한 사람 중심(1인1표제)의 협의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고,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이 빠지는 한계를 생산자, 소비자의 공동 참여 시스템으로 극복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조합의 한계에서 노정되듯이 생산과 소비의 연대가 유통부문을 중심으로 한 기능적 조합운동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 일본 생협의 사례를 참고하고 있었기에 자본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운동 없는 사업만으로, 즉 풀무원의 사례처럼 적절한 정치기획, 사회적 전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유통의 거대화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경제, 협의경제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유기농업이라는 생태적 요소만 남게 될 위험성도 많다. 운동 전반의 사회적 전망, 정치기획에 대한 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업이 운동이고, 운동은 사업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는 교육 과정이다.

기존의 경제학이 재화의 생산과 분배를 초점으로 인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한살림은 실천양식인 생활협동운동을 통해 전지구적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과 이동을 토대로 생산과 소비, 폐기를 생명경제학적인 차원에서 재규정하고 있다. 또한 실천양식인 생활협동운동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단순한 직거래가 아니라 직거래의 매개가 되는 ‘밥’(농산물, 각종 생산물)을 바람, 공기, 물, 별, 흙, 태양, 벌레, 농민의 땀과 주부의 살림 등 우주적 협동을 통한 창조의 산물로, 소비를 이 ‘영적(靈的)’ 창조물을 거룩하게 모시는 행위로 재규정하였으며(以天食天), 경제행위를 일상을 성화(聖化)시키는 매개로 삼았다는 점에서 초보적 형태이기는 하나 ‘영성 경제론’의 단초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 이외의 부문에 대한 생산/소비 시스템에 대한 모색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협동생산시스템을 지원하는 신용부분의 금고(저축조합)가 구상에 그쳐버린 아쉬움도 남는다. 이는 현재 한살림의 실천 기반(농산가공과 친환경물품의 개발)에 대한 판단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구상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생명운동의 정치기획

한살림의 핵심적인 화두는 ‘협동’이었다. 생명운동에서 ‘자치’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1년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에 한살림모임 인사들이 참여하면서부터였고, 그후 1993년 생명민회가 생기면서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한살림 활동은 처음부터 지역에 사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생활공동체(소공동체)를 문화, 경제, 정치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사적 영역)를 소공동체라는 대화의 광장을 통해 공공화시키는 정치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일상사를 매개로 해서 생명사상과 문화, 경제를 담론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기에 지역자치의 의미를 실천양식에 이미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생명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생명운동의 실천적 토대는 지역, 그리고 지역적 삶에 대한 구상은 생명운동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운동의 주체 면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있었던 여성, 주부들을 지역운동, 살림운동의 주체로 복권시킨 점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문제는 지역사회에 열린 프로그램이 담보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활동이 자족적인 조합주의에 빠져버릴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운동에서 거들떠보지 않았던 ‘일상’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일상에 들어와 있는 산업문명의 구조를 자율․자치에 기반한 ‘일상적’ 실천을 통해 해소해 가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日用行事 莫非侍天主也). 이런 의미에서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다양한 생활상의 문제(교육문제, 육아문제나 환경문제, 지역문제)를 생활공동체(사랑방) 내에서 공론화하고 이 공론화된 내용들을 지역정책화하거나 지역살림의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생활공동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차원의 공론의 장(지역민회) 형성에 대한 전망도 앞으로 치밀하게 구상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운동의 주체인 지역주민, 특히 주부에 대한 자율적인 학습, 의식화 과정이 부재하면 앞에서 이야기한 ‘자족적인’ 공동체에 머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의 보완은 여러 가지 방향이 있겠지만, 결국 교육, 훈련과정 프로그램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동’이란 화두만 강조하면 빠지는 한계 아닐까, ‘자치’라는 테제와의 결합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3) 한살림이 던지는 화두들

 

① 생명사상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실천프로그램의 질과 깊이는 이것에 좌우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일상적 실천 안에도 사상과 문화, 경제, 정치 기획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비추어볼 때, 일상적 실천에 대한 지속적 의미 부여의 활동이 필요하다. 삶은 철학과 문화,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통합한다. 따라서 아직 큰 얼개만이 잡혀 있는 생명사상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사회적 의미를 짚어가는 작업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② 또한 동시에 아무리 뛰어난 사상과 내용을 가진 운동이라도 그것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는 프로그램, 실천과정이 빈약하다면 그 운동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한살림모임의 한계가 여기 있었던 것은 아닐까.

③ 한살림운동은 운동주체를 확장하였다. 부문별 운동이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농업생산자, 소비자를 포괄하는, 즉 삶을 통합하는 지역주민으로 주체를 확장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살림’을 강조하면서 여성, 주부를 운동의 주체로 부각시켰다는 점도 그렇다. 앞으로 생명운동에서 주체로서의 여성과 지역주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④ 또 하나 강조해야 할 것은 운동과 사업을 연계한 점이다. 생협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운동이 곧 사업이었고, 사업과정이 운동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이 운동 주체의 교육과정이었다. 즉, 운동은 먹고사는 문제와 별개가 아니다. 한살림이 먹고사는 것 자체(경제)를 ‘뜻’을 가진 운동으로 의미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⑤ 생명운동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속한 지역과 하위문화의 특성(인적 자원, 생태적 자원, 물적 자원, 인프라)을 활용하여, 그 특성에 맞는 나름의 운동 방향과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진화는 단선적일 수 없다. 생명은 각자, 각 지역, 각 문화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사방팔방시방으로 확산진화한다.)

⑥ 공동체운동이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적 연관, 생태적 연관, 문화와 정보 교류에 열린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차원적 개방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네트워크(지역민회), 분야별 네트워크, 메시지 네트워크 및 자치운동의 네트워크, 넓은 의미에서 생명문화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이다.

⑦ 생명운동론의 재정립: 삼재론을 빌어

생명의 세계는 생명의 다차원적인 자기조직화(무궁진화) 과정의 그물망이다. 그 생명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생명 그 자체인 우리의 삶도 전일적이다. 우리는 우주/영적인 삶(天), 생태적 삶(地), 사회적 삶(人)을 내 몸으로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안의 창조적 영성을 살리는 영성문화운동, 자연생태계와 뭇생명을 모시고 길러 살리는 환경생태운동,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일구는 자치운동이 조화롭게 전개되어야 한다. 자치하는 삶, 예술적인 삶, 생태적 삶이 내 몸 안에서는 분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도식은 존재의 범역을 가리키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존재론에 머물게 되면 요소론적 한계에 매몰되어 매우 단순하고 위험한 도식이 될 수 있다. 생명론이 배태될 당시부터 견지하고 동양사상의 전통이 그렇듯이 관계론 차원에서 천지인 삼재의 유기적 관계론을 토대로 생명운동의 사회적 전망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天(우주생명)

地(지구생명)

人(인간생명)

관계

신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삶의 모습

우주․영적 삶

생태적 삶

사회적 삶

특성

영성

감성

이성

관계 방식

종교․예술(문화)

노동(경제)

정치(사회)

운동영역

영성․문화 운동

생태․생활경제 운동

자치․상생체 운동

윤리

敬天

敬物

敬人

* 삼재론으로 본 생명세계의 삶의 본래면목(주요섭)

 

(4) 과거 한살림모임과 현재 한살림운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

 

1) 한살림모임

- 이념의 내용을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하는 데 실패했다. 인적인 풍성함을 사업으로 구체화하지 못해 자립적인 기반을 갖지 못한 데 어려움이 있었다.

- 생명운동의 토대를 형성하는 독자적 실천양식이었던 유기농 직거래운동, 생활협동운동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식인 그룹과 실천그룹 사이에 위계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한 점도 큰 문제점이었다.

- 실천 프로그램의 빈약함으로 인해 잠재력 있는 풍성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확장시키지 못했다.

 

2) 현재 한살림

- 유기농산물 직거래라는 사업을 중심 축으로 농촌 생산자들의 생산협동․생활운동, 도시 지역 소비자의 생활협동운동, 지역만들기운동 그리고 이 양자의 연대라는 실천에 집중하여 어느 정도 사업적, 운동적 토대를 다져놓았다. 즉, ‘생명’이라는 추상적, 이념적 내용을 탄탄하게 현실적 실천으로 정착시켰다.

- 하지만 실천양식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사상적 기반을 만들고 그것을 대사회적인 메시지로 발신하고 토론하는 문화운동적 전망이 취약하다. 특히 위기로 치닫고 있는 산업문명에 대하여 대안을 만들어가는 전문가 자문 그룹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내부적인 실천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어 대사회적인 역할이 미비하다. 그리고 사회적, 시대적 변화와 전환에 능동적인 대응을 하는 데에 이념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다. 생명살림, 생명나눔의 활동이 역학적, 생태학적 관계망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여나가야 한다.

- 생명운동의 사회적 의미,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 운동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문화운동적 전망을 가져야 한다.

 

 

2. (가)생명운동연구소의 필요성과 의미

 

(1) 현단계 ‘생명운동’의 지형

 

1) 한살림이 태동될 때와는 달리 ‘환경운동’과 차별적으로 ‘생명운동’이란 용어가 상당히 일반화되었고, 또 이를 표방하는 상당히 많은 단체들이 형성되었다. 현재 ‘생명운동’은 일반적으로 귀농운동, 생태공동체운동, 생협운동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환경운동의 경우에는 ‘계약’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구적 시민을 모토로 시민들의 ‘권리회복’에 초점을 둔 시민운동 차원의 환경운동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대개 이들의 운동방식은 사회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이슈화시켜 해결하거나 정책 개발, 사회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과거 운동의 관성과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의 획득에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부분적으로는 ‘생태공동체’, ‘백두대간 지키기’, ‘생태감수성 교육’ 등 생명운동의 성격을 갖는 운동들이 병행되고 있다. 또한 문화운동적 측면에서는 

<녹색평론>이 생명운동의 전담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또한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달리 지역청년 주체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생명민회 등 젊은 그룹들이 부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 생명운동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계의 환경운동이 대체로 생명운동의 경향성을 띠게 되거나 생명운동을 표방하고 나선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시민운동이나 기존의 환경운동이 사회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이나, 정책,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생명운동은 기존의 사회체체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수정하기 위한 인간의 전면적인 변화(회개, 각성, 깨달음)를 요구하며, 그것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영성’에서 찾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단계에서 이들 종교계의 환경운동은 ‘영성’의 내용을 ‘생태적 감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예로는 기독교생명운동연대, 한국생명학연구원, 천주교의 생명문화연구소, 불교환경교육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원불교 천지보은회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생명사상, 생명운동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불교환경교육원(정토수련원과 연관된)의 역할과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화엄광장(이념적 토대 정립의 토론장), 귀농전문학교, 작은학교, 실상사농장, 생협 등 다면적인 운동이다. 그밖에도 자연과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춘 대안학교(중고교 과정의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녹색대학 등의 움직임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각종 대안문화운동 그룹 등도 생명운동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다.

 

3) ‘자연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는 생명운동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명운동이 포괄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회복이라는 사회정치적 전망, 인간과 자아의 관계 회복이라는 문화적 전망을 총괄하는 운동으로서의 자기 의식화 경향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종교의 생명운동 - 특히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 그리고 인드라망의 ‘비파사나’ 명상 등은 영적인 삶을 실현하려는 실험으로 환경생태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으나 개인 차원에 머물러 있고 우리 전통의 신명이 지니는 ‘공동체적 영성’의 개발에는 적극적이지 못하고, 종교가 갖고 있는 위계적 구조로 인해 사회정치적 전망의 면에서는 약점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는 조직적 취약성이 있기는 하나 생명민회의 ‘지역적 삶’, ‘자치’에 대한 강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가)생명운동연구소의 필요성

 

앞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현재 한살림은 생명운동의 철학적, 사상적 기반을 만들고 그것을 대사회적인 메시지로 발신하고 토론하는 문화운동적 전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 위기로 치닫고 있는 산업문명에 대하여 대안을 만들어가는 전문가 자문 그룹을 형성하여 현장 실천운동과 상호소통하면서 사회적, 시대적 변화와 전환에 능동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생명운동연구소는 크게 다음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① 한살림의 이념 정립, 정책 개발(연구소): 생명문화운동의 관점에서 한살림 내부 활동의 의미부여, 활동의 재조명, 평가, 정체성 확립의 필요

 

② 한살림운동(생명운동) 주체의 양성(연수원): 개발된 이념과 정책을 바탕으로 생명운동의 주체를 교육하고, 훈련해 나가는 실천의 장을 펼칠 필요

 

③ 대외적으로는 생명운동의 연대(생명문화네트워크): 문제는 생명운동의 대외적 연대 부분인데, 현재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환경교육원, 바람과 물 연구소, 강화 그룹, 부산의 문화그룹, 천주교/원불교 환경운동 등, 귀농운동본부, 대구 녹평, 녹색리포트, 녹색대학, 삼남네트워크, 토지문화재단 등 생명운동 단체나 그룹들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만약 이들을 묶어나갈 연대의 틀이 갖추어져 있다면 생명문화 영역에서 한살림이 여기에 참여하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그것은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현재 가시적 활력을 지니고 있는 환경운동 중심으로 연대의 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고 있는 한살림이 주축(중앙의 개념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주체라는 의미에서)이 되어 생명운동의 지속적인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는 듯하다: 다양한 생명문화운동 그룹들의 연결, 연락의 복덕방, 같이 할 수 있는 테마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만남과 연대, 정립 필요.

 

(3) (가)생명운동연구소의 활동

 

① 공론의 장(민회) 형성: 우선 ‘생명’을 화두로 한 대내외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산업문명 전반이 지니고 있는 ‘삶의 위기’에 대응하는 전문가, 실천활동가 공동 토론의 장을 만들어 삶의 현장에서의 운동을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토대로 하면서도 세계사적 변화와 사회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위기를 파악하며, 운동의 방향을 잡아나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생명문화운동이란 이러한 공론의 장을 통해 환경, 생태문제와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생명문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운동, 정신/철학/사상/감수성의 정신적 운동을 확산된 생명운동 단체들과 공동으로 진행시켜 사람들의 마음과 가치의 기준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명과 평화, 지역적 삶/농적 삶, 지역문화연대: 문화정책+지역생태와의 결합, 문명의 치유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② 전문가 집단의 형성과 교류의 장 마련,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실 구축, 자료 축적

 

③ 교육훈련의 장 마련: 대내외적 교육, 연수의 장을 마련한다. 한살림 내부, 생명운동 진형, 더 나아가서는 생명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는 청년운동이 필요하다.

 

④ 동북아 네트워크: 우선적으로 일본 생협, 더 나아가 동북아를 중심으로 대안 문명을 추구하는 그룹과의 결합을 통해 생명문화운동의 가능성을 마련해 나가도록 한다.

 

⑤ 이러한 사업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기금/재단’의 형식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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