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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에 담긴 마음
2016-06-03 10:51:00

* 원불교 100주년 기념 생명평화활동가대회 중 "밥과 삶, 그리고 영성" 세션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빈그릇에 담긴 마음

현희련 (에코붓다 사무국장)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기아, 질병, 문맹의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념에 따른 갈등, 분쟁,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문명의 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전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환경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환경문제의 근본 뿌리는 소비주의에 있습니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쓰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가치관, 세계관 위에 그동안 우리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대량소비를 통해 대량폐기물이 나오고 그 결과 공해라는 환경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원고갈과 폐기물 문제가 함께 올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폐기물 문제로 인한 환경오명 문제가 먼저 오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하면 물과 공기 등 삶의 질 문제로 예전에는 공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만의 건강문제였는데, 이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삶의 질 문제를 넘어서 생명의 문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생명의 존립 기반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결국 환경문제는 우리 삶의 붕괴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원고갈 문제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어 자원가격이 폭등하게 되고, 부자들만 자원을 갖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소비를 하지 못하는 ‘풍요 속의 빈곤’ 문제로 빠지게 됩니다. 돈 있는 나라가 자원을 선점하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면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 시스템 -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사는 삶, 행복한 것이라는 의식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에코붓다는 80년 후반부터 의식을 먼저 깨우려고 생태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운동을 시작했고 두 번째로 90년 후반부터는 실제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쓰레기제로 실천운동으로 운동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쓰레기제로. 동물들도 먹고 싸는데 산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삶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 것은 자연파괴가 아닙니다. 300평에 소 한 마리 방목하면 풀 먹고 똥 누고 해서 그냥 풀밭보다 토양이 비옥해집니다. 이러한 삶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쓰레기 제로라는 것은 무조건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자연이 정화하는 범위 안에서 쓰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밥 한 톨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쌀뜨물을 모아서 설거지를 했고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소나 돼지 등 가축들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요리 과정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도 그대로 가축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가축이 못 먹는 것은 마당 앞 퇴비장에서 두엄으로 만들어 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고 쓰레기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삶의 질이 향상되어 음식은 이제 끼니의 문제가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풍요와 여유를 상징하는 음식문화는 ‘맛’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변화했는데 우리의 가치관은 아직 ‘푸짐한 상차림’에 머물러 있습니다. 옛날 빈곤의 시대에는 많이 만들어 나눠먹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영양 과잉이 문제가 되는 풍요의 시대에는 조금 모자란 듯이 준비해서 남김없이 먹는 것이 미덕이라는 가치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음식에는 인간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맛에 탐닉해서 막 먹으면 내 에너지를 함부로 쓰기 쉽습니다. 영성이 깃든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기 위해 약간 모자란 듯 음식을 담습니다. 정갈하게 담은 음식들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립니다. 이 세상 배고픈 이들 모두 배불러지기를, 내가 이 음식을 먹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발원하며,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습니다. 다 먹고 난 다음 뭇생명을 생각하며 미리 국물에 헹궈 그릇 한 곳에 둔 김치 한 쪽으로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 먹습니다. 물을 부어 숭늉 마시듯 마시고 난 그릇은 반짝반짝 깨끗하게 빛이 납니다. 깨끗하게 닦여진 그릇만큼 내 마음도 상큼하고 행복합니다. 밥 먹는 시간마다 내 마음, 내 욕구에 깨어 나를 살피고, 배고픈 이들이 배불러지기를 기도하고, 이 음식을 먹고 이웃과 세상을 위해 내가 잘 쓰여지기를 발원하니 내 마음이 좋고 행복해집니다. 밥 한 끼로, 빈그릇으로 이렇게 세상과 내가 하나로 연결됩니다.

 

나에게도 좋고, 너에게도 좋고, 뭇생명에게도 좋은 빈그릇운동

먹을 만큼 덜어서 남김없이 먹으니 적게 먹게 됩니다. 적게 먹으니 비만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건강에 좋습니다. 적게 먹으니 욕구를 다스리고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어 쓸 수 있으니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적게 먹고 적게 쓰니 자연환경도 덜 파괴하게 됩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작은 실천, 빈그릇으로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미래세대를 살리고, 자연을 살립니다. 빈그릇운동은 나에게는 수행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사회정의와 평화를 이루게 되고 환경적으로는 자연을 보존하게 됩니다. 수행과 사회정의, 환경운동은 하나로 통일이 됩니다.

빈그릇에 담긴 마음, 나와 너가 둘이 아닌 하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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