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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을 시작하면서
2016-01-20 16:18:00

* 1987년 1월, 한살림 첫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한살림을 시작하면서

 

박재일 (한살림 살림꾼)

 

오늘의 세상은 너무나 많은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고 써버립니다. 많고 높고 빠르면 좋고, 편리하면 더욱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듯 보이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안심하고 믿고 도우며 건강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요?

숨 쉬는 공기나, 마시는 물이, 농사짓는 땅이 살아있는 제 모습을 잃어 갈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만듦이 있어야 쓸 수가 있고, 씀이 있어야 만듦이 필요하고 계속되지요. 원래 생산과 소비, 생산자와 소비자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요, 서로를 필요로 하고 돕는 사이인데, 현실은 서로 갈등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어요.

소비자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 내고 생산자는 누가 어떻게 쓰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건강과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물(먹을거리)을 생산하는 농업의 경우, 농민은 자기가 생산한 것을, 어디서 누가 먹는지 또 사는 형편은 어떠한지, 반대로 소비자는 자기가 먹는 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또 사는 형편은 어떠한지 알 수 없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는 양이 해마다 늘어만 가고, 물은 오염되고 땅은 토박해지고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지요. 농민은 농약중독으로 고통당하고 농산물은 독극물에 오염되어 먹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농약, 방부제, 착색제, 각종 식품첨가제로 뒤범벅된 식품이 범람하는 속에서,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건강한 식탁을 꾸며야 할 어머니들은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어서 불안합니다.

 

정말 안심하고 건강한 식품을 구해 먹을 수가 없을까요?

땅과 사람, 물건과 물건,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갈라지고 못 믿는 사이가 되는 삶이 살림의 삶일까요, 죽임의 삶일까요? 또한 농산물 값이 내려가면 농민은 울고 소비자는 좋아하고, 농산물 값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울고 농민은 좋아합니다. 이처럼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이 옳은 삶일까요? 특히, 농산물은 유통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여러 손을 거치기 때문에 값, 품질, 수량 등이 조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하지 않고 믿고 나누며 사는 길은 없을까요?

땅도 살리고 자신도 살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고 퇴비를 하고 김을 매고 땀 흘리며 정성들여 농사 짓는 농민도 있고, 그런 농산물을 고대하는 소비자도 많습니다. 다만, 서로 만나지 못하고 믿지 못하지요. 가족이나 친한 사람에게 줄 것은 정성들여 만들지요. 받는 사람 또한 고마워하지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나게 되고 친한 사이가 된다면, 정성과 고마움이 나누어지지 않을까요?

 

한살림은 생산자와 소비자들 만나게 하고 친한 사이가 되도록 하여,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이가 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또한 농산물의 유통단계를 줄여서 과다한 유통마진을 줄이는 직거래활동을 펼쳐서 농산물의 품질이나 수량을 믿을 수 있도록 하고 적절한 가격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땅도 살리고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이 생산되고 서로가 믿고 돕는 관계가 되고 모두의 건강과 생명이 보호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 일은 한두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더불어 해야 가능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해야 가능합니다. 이 한살림운동에 많은 분들의 이해와 성원과 참여를 고대합니다.

이 운동은 많은 농민(단체), 소비자(단체)가 협력하고 천주교 원주교구(지학순 주교)가 뒷받침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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