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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말들 삼경론(三敬論): 경천, 경인, 경물
2014-11-02 16:37:44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는 전통적인 관점인 삼재론(三才論)에서 해월 선생님의 삼경론(三敬論)이 나왔습니다. 삼경론(三敬論)은 삼재의 천지인(天地人)을 잘 모시고 공경하자는 생명운동의 윤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천(敬天) 

현대사회는 천지인이 모두 심하게 훼손되고 파괴되어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靈的) 세계, 만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천(天)은 서구 근대 세계를 만들어냈던 이성(理性) 중심, 그리고 물질 중심?경제 중심의 사회가 정착하면서 철저하게 무시되었습니다. 신(神)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천(天)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만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축소된 종교의 영역마저도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적 세계의 파괴는 인간성의 파괴, 소외로 나타나며 정신적 아노미와 직결됩니다. 물질 중심의 현대 사회에 정신병이 가장 만연되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가장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글라데시, 인도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하늘에 대한 공경은 민중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파종 때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추수의 기쁨을 하늘에 고했던 것도 모두 하늘에 대한 공경의 자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인간이 잘나서 풍년이 되었다는 오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주만물의 근원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공경했던 것이죠. 

?녹색평론? 창간호에서 김종철 교수가 오늘의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 더 큰 존재를 하늘(天)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하면서 동시에 공경하는 생명문화의 회복입니다. 

경천(敬天)은 생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윤리 덕목 중 하나입니다. 

경인(敬人) 

삼경론(三敬論)의 두 번째는 ‘경인(敬人)’입니다. 

생태주의나 녹색운동에서는 인간 중심의 사회라고 비판하고들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 혹은 산업문명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인간이 철저하게 도구화되어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그저 생산이나 소비의 도구나 수단 이상이 아닙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돈으로 사람의 귀함과 천함을 정하는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에 생명문화운동은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우리 삶의 선택 기준으로 만들어 가는 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박현 선생의 이야기를 빌자면, 아름다움이란 ‘알움’답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말 그대로 ‘알’은 타고난 본래 모습을 뜻하고, ‘움’은 싹이 튼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제대로 싹트고 발현되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것이지요. 한 인간으로 치자면, 그 사람이 본래 갖고 있던 개성이 가장 잘 실현되어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 등의 가치에 지배받지 않고 그 사람이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삶이 실현되는 것이지요. 대안교육에 대한 실험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대안교육은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긍정, 나아가서는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 바탕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타고난 모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는 것이지요. 해월 선생님이 “어린 아이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때리지 말라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운동도 해월 선생님의 이 말씀에 근거해 있었습니다. (소파 선생은 동학의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교육은 생명운동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회에 이야기되겠지만, 대안교육만이 생명운동의 교육적 대안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모습을 실현하도록 도우려는 교육방식이 생명운동의 교육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생명운동이 바라는 삶의 모습은 다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사람마다 본래 태어난 개성을 꽃 피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 공경하고 모시면서, 이 모든 사람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사람들의 그물로서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 바탕에는 바로 경인(敬人)이라는 생명윤리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경물(敬物) 

어린 시절, 우리의 할머니들, 어머니들이 쓰고 남은 비닐봉지를 물로 깨끗이 닦아 햇볕에 말리던 모습이 여러분들에게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비닐봉지뿐 아니라 어떤 물건이라도 섣불리 다루지 않았습니다. 어루만지고 닦으며 정성 들여 대하는 그 물건들은 그 분들 마음이 담겨 긴 세월과 함께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사십 년 전 시집올 때 장만하셨던 돌절구, 뒤주, 다듬이 돌, 학독, 재봉틀 따위를 여지껏 사용하십니다. 지금도 나는 그것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 어머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어른들의 손길이 닿은 하찮은 물건 하나도 세월과 함께 사람 몸의 일부가 되고 삶이 되고 때로는 자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풍요가 흘러 넘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물건을 쉽게 쓰고 버립니다.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정성껏 다루지도 않습니다. 거리에 쏟아지는 물건처럼 정보도, 사람도 흘러 넘칩니다. 만남의 기회는 많아졌지만, 희소성이 없어서일까요, 사람이든 정보든 건성으로 대하기 십상이고, 사람도 정보도 한 순간의 도구 이상이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 잠시잠깐 선택한 대상일 뿐, 부담 없이 순간적으로 접했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거리낌없이 내버립니다. 만남은 가볍고 순간적이고 즉흥적입니다. 의미와 감동, 내지는 책임을 질 필요도 없습니다. 물건처럼 사람도, 정보도 잠시 쓰고 버리면 그만입니다. 돈과 속도에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 같은 이런 우리의 모습이 욕망의 도시, 21세기 생태 위기의 현장 뒤편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물건을 대하던 마음처럼, 물건이든 사람이든 정보든 정성껏 어루만지며 감촉을 느끼고 씻고 닦고 쓸고 비비고 애무하면서 손때를 묻히고 마음을 담을 수 없을까요. 한 물건과의 만남이, 한 사람과의 만남이, 하나의 정보와의 만남이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만남이 하나의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만남을 준비하는 내 영혼이 깃들어 둘 사이에 교감이 일어야 합니다. 가슴 설레며 손을 잡고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는 접촉의 과정, 어쩌면 그것은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과정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가장 원초적 감각이며 자연의 감각인 접촉. 접촉에는 삶의 의미, 감동, 무게, 책임 같은 것이 따라다닙니다. 

들녘의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벼와 농부의 만남과 접촉이 결국 알곡을 영글게 합니다. 벼를 돌보는 농부의 마음, 정성어린 손길과 교감하며 한 해 농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보면서 그저 지나치는 수많은 정보와 물건과 사람들이 아니라 내 정성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고 감촉을 느끼고 비비고 애무하는 정보와 물건과 사람들이 내 삶의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물건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물건 하나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습니다.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따위의 미신적인 생각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과학이라는 ‘현대적 미신’이 가져온 오늘의 위기를 생각할 때, 전통적 사고가 얼마나 깊은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는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물(敬物)의 윤리는 정확히 이런 전통적 삶의 지혜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쓰고 버리는 시대’가 가져온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임을 굳이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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