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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전환 이야기 (2015)
2015-03-12 09:31:00

주요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5, 320쪽

 

총체적인 위기와 극단에 내몰린 우리 생명의 활로를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전환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제안한다. 내 삶을 전환하며, 우리 사회를 전환하며, 마침내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모색과 실천 경험의 재음미, 그리고 새로운 사회,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절절한 생명운동의 전망을 담았다.  

 

 

■ 차례

 

I 전환, 깨어나기 다시 살기

호랑나비 애벌레의 깨달음

숨과 틈, 그리고 공모-자유시장의 제국에서 살아남기

반(半)백수로 다시 살기

몸 생명에 관한 명상

교황 프란치스코와 자본주의 넘기

 

II 전환, 사회적 중심 이동

생명평화와 문명의 전환

박애의 패러다임과 호혜사회의 비전

생명경제와 체제 전환

모심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생명정치와 민회운동

민회운동과 사회협약

 

III 전환, 열망의 유토피아

한국형 전환운동을 제안한다

전환이 개벽이다-동학혁명 2주갑에 생각하는 생명운동의 길

지금여기 전환이다-열망의 유토피아와 이매지널 네트워크

 

IV 보론 전환의 사회운동

한국 생명운동의 현재와 미래

무위당과 영성적 사회운동

동학혁명과 열망의 사회운동

 

 

■ 저자 소개

주요섭 __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시절을 좇아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1980년대 말 고향 정읍에 돌아와 지역공동체운동을 시작하고, 이후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지역’과 ‘생명’을 화두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0년대 말부터 한살림운동에 집중하는 한편, ‘전환’을 키워드로 새로운 삶과 사회, 문명의 실현을 위한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을 ‘상상’하고 있다.

『세계화는 지구환경을 어떻게 파괴하는가』(역서), 『녹색대안을 찾아서』(공저) 등의 책을 펴냈으며, (사)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반년간(半年刊) 생명운동이론지『모심과살림』을 만들면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왔다.

 

 

■ 출판사 서평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깨어나 다시, 중심이동하며 유토피아를 열망한다

 

긴장 타자 대한민국,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희극의 시대는 가고, 비극의 시대가 다가온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비극으로 한번, 희극으로 한번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러나 2015년 대한민국에서 역사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확장 과정은, 고난스러웠지만 결말은 희극이었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고난으로 점철된 생을 살았지만, 생의 마지막 대목에서 “아버지, 내 잘 살았지요!”라고 소리 칠 수 있었다.

다가오는 시간은?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하여, 비극의 막장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고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 생의 마지막,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일찍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비통하게 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낭만적인 읊조림이 아니다. 1920년대의 대공황은 파시즘의 발호로 귀결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지옥의 입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늬들이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아서” “늬들이 보릿고개를 겪어보지 않아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공포의 ‘D’(디플레이션)이든, 무지막지해 보이는 원전1호기 수명연장이 불러올 비상사태든, 우리도 훗날 ‘늬들이~’를 뇌까릴 수 있을 테니, 불행 중 다행인가? 적어도 4.16을 함께 목격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

 

통일대박론–한국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자백

전복당하는 배에서는 가만있으면 안 된다!

지금 광장에서는 또 한 번 ‘종북놀/몰이’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건 아니란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알면서 속이고, 속아 주는 거다. 단지 시간 끌기일 뿐인 온갖 작태에 짜증이 나긴 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호, 아니 어쩌면, 지구호 전체가 그런 놀/몰이에 몰두할 만큼 한가한 시점이 아닌 거다. 그러한 장난으로 돌 던지기 놀이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통일대박론을 내놓았을까? 시중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못해 냉소적이다. 씨도 뿌리지 않고 추수할 기대에 부푸는 건 고사하고, 상대방의 염장(전단 살포 방조)을 지르면서 입으로는 잘해 보자고 말하는 셈이니, 가야 할 길이 먼 북한이 “통일 대박론은 전쟁 대박론”이라고 격앙하는 건 북한으로서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무엇보다 통일대박론은 ‘섬나라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한국 경제는 미국의 경이적인 성장 국면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균형자는커녕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것은 어떤가. 그예, 북한이라는 미개척 시장에서 한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이 통일대박론이리라. 이제 그도 안 되니, ‘제2의 중동붐’ 운운하지만, 그건 또 쪽박난 제2의 자원외교 아닌가 의심케 된다. 이쯤에서, 대한민국호가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진정으로 실감해야 한다.

 

부자(父子)가 일자리를 다투며, 생식 욕구마저 차단당하는 사회!

질문은 단 하나!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수십만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한 진보정당은 허무하게 해산되고, 몰락에 몰락을 거듭해 가는 시민단체!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도도한 압박에 ‘을의 반란’을 꾀한다고 하지만, 겨우 깃털에 계란 얼룩이나 묻히고 마는 ‘갑남을녀.’ 눈에 보이는 갑은 갑이 아니다. 진정한 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 그들에게는 갑이라는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는다.

SNS 화면에서의 화려한 ‘을의 승리’를 만끽하고, 현실로 돌아와 보면, 아버지는 아들의 일자리를 탐하고, 아들은 일자리를 선점한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눈물바람을 하지만, 눈을 들어 미래를 보면,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우정과 집 한 칸은 온데 간데 없는 ‘오포세대’가 아들의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다. 희망은커녕 생식 욕구마저 차단당한 사회, 모든 을(乙)에게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 '바깥'을 상상하라!

혹은, 21세기에는 21시간 노동을!

이대로는 정녕 아니다. 탈출은 이미 시작되었다. 길이 있어서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다. 무작정의 액소더스, 생명 감각이 시키는 대로, 전복당하는 배에서 탈주하는 쥐떼들처럼이라도, 지금은 탈출할 때다. 예컨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진출에 목을 매는 대신, “반(半)백수 노동”이 정답일 수 있다. 한계비용 제로시대를 염두에 두어도 좋다. 과잉노동→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탄소(오염)→죽음의 과잉이 지난 세기까지의 삶의 방식이라면, 노동시간단축→나눔/돌봄노동의 증대→생명과 평화의 상생경제가 미래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만능열쇠가 아니라고 한다면,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죽음’의 계곡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징후도 없지 않다. 힐링 신드롬, 귀농귀촌-최근 귀농인구가 이농 인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협동조합, 인공지능 열풍은 전환의 구체적인 징조이다. 40년 전 <꽃들에게 희망을!>이 예견했듯이, 애벌레 무리를 밟고 올라서서, ‘최고의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비의 비상, “전환”이 답이다. <설국열차>가 예고했듯이, 죽음을 무릅쓰고 ‘머리칸’으로 전진하는 삶이 아니라, 열차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약, “전환”이 답이다.

 

열망하라, 생명 살림의 봄, 유토피아를!

내가 바뀌면, 바뀌어야만 세상이 바뀐다

정치경제적 불평등, 생태환경의 불균형, 영성과 영혼계의 부조화. 한마디로 오늘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삶·생명의 위기는 공허한 위기론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이다. ‘세월’을 견디는 어린이·학생, ‘열정페이’를 견디는 젊은이, ‘유리천정’에 갇힌 여성들, 빈곤의 절벽 위에 선 노인들, 누구랄 것 없이, 전환만이 희망이다. 1%의 기득권자를 제외하고 99%는 변화를 원한다. 아니, 이미 ‘전환’은 시작됐다.

전환에는 흔들림이 뒤따른다. 어떤가. 그 흔들림에 몸을 내맡기고 불안을 견디는 것은. 견딤의 그 시간을 ‘고치의 시간’이다. 무한경쟁 혹은 불멸의 식욕에 짓눌린 애벌레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의 시간, 무의 시간이 아니라 열망의 시간이다. 열망함으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숙성시키는 잉태의 시간이다. 바야흐로 때가 되었다. 그날, 죽은 겨울나무에서 새봄 꽃잎이 돋아나듯, 죽음 같은 욕망 아래에서 숨죽이던 열망의 약동으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이 책은 2013년 봄, 절망의 끝에서 전환의 시대를 예감하고, 2014년 봄, 동학농민혁명 2주갑 120주년의 봄에 전환의 시대를 공감하고, 2015년 봄, 전환의 시대의 약동을 절감하며 써 내려간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전환의 방법은 결국 고전적이다. 우리 시대의 전환은 “의식의 전환, 생활의 전환, 체제의 전환”이며 “주체의 전환, 가치의 전환, 운동의 전환”이다.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문명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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