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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⑩] 서로의 베품으로 풍요로운 무소유 사회를 구상하다
2017-01-05 12:11:58

 

 

 

서로의 베품으로 풍요로운 무소유 사회를 구상하다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장  


 

 


 


“20세기가 낡은 집을 무너뜨린 거라면, 21세기는 새로운 집을 지어야 되는 시대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투신했던 이남곡 님은 지금 새로운 문명과 무소유를 말하고 있다. 2005년 전북 장수에 정착해 연찬문화연구소를 연 그는 많은 이들과 인문학을 주제로 대화하며 자본주의 연착륙을 모색하고 있다.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집은 물신의 지배에서 벗어난 무소유의 시대이다. 단지 화폐를 소유하지 않는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다. 서로가 선물이 되는 존재, 서로 기꺼이 나누어도 부족하지 않은 사회를 꿈꾼다.
낡은 집을 무너뜨리던 20세기, 그의 청년 시절은 뜨거웠다.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스스로를 ‘사회주의 혁명가’로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4년간 복역하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실패와 한계를 본 후 문제는 인간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무소유를 추구하는 야마기시 공동체(경기도 화성)에 들어가 8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그에게 한계로 느껴졌다.  
이남곡 님이 강조하는 개념은 ‘기쁨’과 ‘베품’이다. 낡은 집을 붕괴시키는 동력은 분노였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출현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 포섭된 사람들이 그 결과였다. 노동권과 환경을 외치는 이들도 물신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구호를 외치는 현장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물신의 해방과, 자기중심성을 넘어서야지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기뻐야 진짜”이고 “생산력으로 바뀌어야 진짜”다. 그는 인문적 토대를 강조하지만 지적 만족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만들어지는 생산력이 이윤 추구의 동기와 경쟁에 의한 생산력보다 떨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새로운 사회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건 무소유 사회이다.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어. 무소유는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주는 것만으로 성립하는 사회야.” 그가 꿈꾸는 사회는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의 사회이다.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인문운동가로 전환한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문, 자본, 무소유 등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구술자의 원래 말투를 살려 높임체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었습니다.

 



 
@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장



 

인문학의 유행, 인간의 길을 묻다

모심: 선생님을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인문운동가’라고 소개가 되어 있던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인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인문학’의 그 ‘인문’인가요?  


이남곡: 그 차이를 말하는 게 내가 이야기하는 인문운동의 뜻이 될 거예요. 내가 말하는 인문운동은 인문적 교양을 넓히거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하고는 달라. 두 가지가 내가 하는 주 테마야. 하나는 물신의 지배, 그러니까 돈의 지배지. 인간이 주체를 뺏기고 있는 것이 물신의 지배인데, 이건 사람들이 관념적으로는 많이 받아들여. 물신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 그런데 지금은 거의 집단중독 상태에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 노동운동,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집단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해.  아무리 머리에 띠 두르고 싸워도 다시 물신의 지배 품 속에 안기는 형상이야. 이건 단지 물신의 지배, 돈에만 관련된 게 아니야. 온갖 산업들, 육체가 연결되어 있어.
또 하나는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인간 의식의 진화야. 이건 이해를 잘 못할 수가 있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당연한 본성으로 보고 있어.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의 진화는 성인들이 추구했던 세계야. 2500년 전 예수, 석가, 공자 등 우리 정신세계의 축이 되어온 사람들이지. 그래서 그 시대를 축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사람들의 축은 모두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거야. 그러니 지금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이건 성인의 세계인거지. 인간이 인간화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동물로부터 진화한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거야. 그 인간의 특성이 바로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거지. 예전에는 이 문제를 하나의 윤리적 명제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테마로 보고 있어. 이걸 넘어서지 못하면 인류는 결국 존속하기 어려워지거든.

 


모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제 중 물신의 지배, 즉 돈에 지배 받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인간 의식의 진화는 한 단어, 한 단어가 어렵게 다가옵니다. 자기중심성을 넘어서지 못하면 인류의 존속이 어렵다는 것은 산업화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인간 관계, 자연의 위험성을 인지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남곡:  흔히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지금까지의 문명은 너무 인간중심적이었다. 자연을 약탈했다는 거지. 자기중심성을 넘어서자는 건 많은 생태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견해야. 그런데 제일 안타까운 건 인간이 자연에 대해 인간중심적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통감을 하는데, 인간들 사이에서 아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못 느낀다는 점이야. 사람과 사람사이의 자기중심성이 아집이거든.  
예를 들어 협동조합운동이면 자본주의 안에 사업체로서의 기능과 새로운 문명을 추구하는 운동체로의 기능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아집이 강하면 넓혀가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그래서 자기중심성을 넘어선다고 하는 것은 현재 문명의 위기를 넘어서고 존속을 위한 테마일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 소통의 바탕이 돼. 이렇게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의 진화 그리고 물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보는 거지.

 


모심: 실천적이고 자기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는 인문운동은 지적인 만족을 얻거나 스타 인문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이남곡: 나는 인문학자가 아니니까 잘 몰라. 인문학의 전체적인 건 잘 모르지만 필요한 부분을 인문운동의 도구로 쓰는 거야. 인문학 열풍이 부는 건 좋다고 생각해. 그런데 거기에 머물러버리는, 지식을 넓힌다거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야 돼. 인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수요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왜냐하면 인문운동을 하기 위한 기초거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인문운동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거든.


인문운동이란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

 


모심: 인문학에서 ‘운동’으로 나아간다고 하셨는데요, 기존의 시민운동과 비슷한 운동으로 이해하면 될런지요?

이남곡: 기쁨을,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하는 운동이 바로 인문운동이야. 강의 듣는 건 초기 단계야. 인문학적 가치와 운동이 내부에서 결합해야 돼. 예전 시민운동, NGO는 사명감, 소명을 갖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야. 기쁨이 있어야 돼. 그런데 이제는 돈 버는 기쁨 외에는 기쁨을 잘 못 느끼고 있어. “그건 허망한 거야”라고 말해도 통하지 않아. 물신의 지배라는 것에 집단중독이 되어 있거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안 돼. 그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터부나 금지령으로 이야기하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아.
인문과 현실이 접목되는 운동체들이 우선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생활운동이 되어야 해. 밖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하고 집에 가서는 물신의 지배 속에 들어가는 삶이 아니야. 밖에서 슬로건 내걸고 반대운동하는 것보다 자기 삶에서 그 슬로건이 체화가 돼야 해. 그래서 내가 요즘 내거는 구호가 “생활 없이는 발언권 없다”는 거야.  

 


모심: 운동(movement)이 단지 운동에만 머무르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걸로 이해가 되는데요. 그동안 소위 운동이 이슈를 자신들의 일상에는 들여 놓지 않았다는 걸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남곡: 원불교 초기, 소태산 박중빈이 26살에 득도를 해. 그 득도한 사람이 무엇을 했냐? 저축조합운동과 간척사업을 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 “왜 크게 깨달은 사람이 설법이 아닌 저런 운동을 하는가?” 그리고 호세 마리아 신부도 생명을 걸고 전장 한복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평화운동을 하는데, 마침 협동운동에 뿌리를 내리잖아. 물신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아집을 넘어서는 게 종교의 목표야. 거기서 호세 마리아 신부 같은 협동운동을 하는 거야.
더 중요한 건 생산력으로 전화가 되어야 진짜야. 인문적 토대가 생산력으로 전화해야 진짜라는 거야. 기뻐야 진짜고, 생산력으로 바뀌어야 진짜야. 무엇을 아무리 해도 기쁘지 않고, 생산력도 떨어진다고 하면 진짜가 아닌거야.

 


모심: 생산력으로의 전화, 그리고 기쁨.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일을 구하지 못하거나, 일을 하고 있어도 기쁨보다는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더 많죠. 이 점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구요.

이남곡: 그것이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어. 사회주의가 실패한 최대의 원인이 그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거야. 전시 같은 위기에는 일시적으로 생산력이 나타나. 그 예가 러시아 스타하노프(Stakhanovskoe dvizhenie) 운동과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야. 지금은 이런 건 안 되고 있지. (웃음)
권력이 아닌 자유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돼. 자기중심성을 넘어서고 물신의 지배에서 해방된 인간이 오직 기쁨에 넘쳐서 자기 실현을 위한 일에 참가할 때, 그 생산력이 자본주의의 이윤동기와 경쟁에 의한 생산력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새로운 사회가 가능하게 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애써도 도로 물신의 지배라는 품 속에 안긴다니까.
*스타하노프 운동: 소련의 제2차 5개년 계획 중 경제 전반에 걸쳐 전개된 노동생산성 향상운동 (출처_두산백과)


모심: 한병철이라는 분은 현 사회가 성공과 생산성을 만들기 위해 개인이 자발성을 갖고, 자기착취를 만든다고 분석했어요. 예전에는 기쁨이 밖에서 주입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기쁨을 느께게 하면서 자신을 계속 소진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인문학이 자기개발과도 엮여서 소비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남곡: 그건 진정한 자발성이 아니야. 내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르지. 자기의 생명력이 신장되는 것이 자발성이고 기쁨이야. 자기의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게 어떻게 자발성과 기쁨이야? 그건 큰 착각이야.
 


모심: 사실 시민운동,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 일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할텐데요.  

이남곡: 기쁨에 넘치는 자발적인 활동가가 사라져가고 실무자만 있으면 빨리 벗어나야 돼. 실무자=활동가 좋아. 아내가 민우회 생협 활동 할 때, 홍성에서 배추를 싣고 오는 차가 넘어져 그걸 주워 담은 후 배달하고 오느라 새벽 2시에 온 적이 있어. 그때는 그런 열정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열정을 가진 선배들이 자신들이 가진 의식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는 이랬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이제 이건 안 통하는 시대야. 돈은 많이 못 주더라도 여기 오면 뭔가 탁 뚫리는 느낌이 생겨야 되는데… 운동체 안에서 동력, 동기가 바뀌어야 돼.
 


모심: 그런데 대부분의 단체들이 초창기에는 자발성과 기쁨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 록 그 부분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대신 가치만 강조하게 돼요. 이렇게 되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더 높여주거나 제3의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고민이 됩니다.

이남곡: 물신의 지배로 들어가는 인센티브는 안 되지만 보상 그 자체를 부정하면 안 돼. 그리고 그 문제를 금기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그러다 보면 어떤 길을 찾게 될 거야. 특히 활동가들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이게 가장 중요한 테마일 거야. 그리고 보상이 물질로부터 오는 보상에서 다른 기쁨이 오는 걸로 되어야 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졌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소진시키는 자기 착취는 진정한 기쁨과 자발성이 아니야.


서로 베품으로 풍요로워지는 무소유 사회

 


모심: 선생님의 다른 인터뷰를 보니 “무소유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요, 단순히 자본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는 아닐 것 같아요. 무소유에도 여러 형태가 있잖아요. 아예 화폐가 없는 삶을 사는 야마기시즘도 있고, 마음의 소유욕을 줄이는 무소유도 있구요. 또 요즘에는 미니멀라이프라고 해서 생활용품을 버리는 것도 유행인데, 무소유의 일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선생님이 언급하신 ‘무소유’는 어떤 실천을 담고 있나요?

이남곡: 내가 야마기시즘이라는 무소유 사회에서 8년 간 실제로 살았어. 그런데 소공동체 성격으로는 보편화하기 힘들다고 본 거지. 하지만 자본주의가 평화적으로 연착륙 할 때 무소유 사회로 하는 것이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야. 자본주의가 타도, 투쟁에 의해서 붕괴하는 건 경착륙인데 그렇게 되면 무소유 사회로 진행이 안 돼. 연착륙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하는 거야. 이건 제도, 시스템, 그리고 눈에 안 보이는 사람들의 의식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이행하게 돼. 그리고 무소유를 해도 생산력이 떨어지지 않아야 돼.
 


모심:  조금 이해되긴 하는데요, 선명하진 않습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남곡: 예를 들어 기부, 자원봉사가 씨앗들이야. 나는 자원봉사라는 걸 야마기시부터 자유노동이라는 형태로 해봤어. 자유노동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 우선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하는거야. 누가 시켜서 하면 자유노동이 아니야. 두 번째는 프리(free), 즉 보답이 없는 거야. 그냥 내가 주는거야. 내가 관여한 <익산 희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데, 이곳에서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를 한 친구들의 감상문을 보고 놀란 점이 있어. 자기들이 봉사를 했지만 더 큰 것을 받은 건 자신들이라는 거야. 엄청난 기쁨인거지. 핵심은 자발적 자유의지와 페이 없는 것에 대한 기쁨, 그 자체가 확산되는 것이 무소유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점이야.
성적의 대상이 되는 자원봉사는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자발적 자유의지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장애요소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지식이 시험문제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비슷하게 되어버리는 거야. 화석화 된다니까. 화석화 된다는 건 생활과 유리된다는 이야기야.

 


모심: 무소유 사회로 가는 여러 길이 있을텐데요, 그럼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남곡: 기본소득에도 무소유 사회로 진행할 수 있는 씨앗이 있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지금까지 양극화, 자본주의 모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심각한 모순이 나올거야. 이제 과학적으로는 주당 다섯 시간 일하면 되는 시대가 오는 거야. 그 나머지는 뭘 할 거야?  그 많은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는 인문적 토대가 없으면 공황 상태에 빠져.
무소유 사회로 가까워지는 것에 기본적인 요소는 물적 기초와 정신적 기초야. 예를 들어 100만 원을 지급하려면 물적 기초가 필요하잖아. 즉 100만원 씩  주고도 붕괴를 안 해야 돼. 세금으로 이게 가능한데, 지금 한국에 세금을 몽땅 물리면 해외로 다 나갈 가능성이 많아. 그리고 돈,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그걸 준다고 하더라도 기쁨에 넘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는 생산력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물적 기초뿐 아니라 정신적 기초가 중요해. 나는 그 정신적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 인문운동이라고 보고 있는 거야.



모심: 무소유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물질적 토대 위에 여러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보면 될까요? 상당히 어려운 길일 수 있겠네요.

이남곡: 그리고 기부. 사실 우리는 기부가 제대로 발전이 안 된 나라야. 미국은 대단히 위험한 사회를 형성하면서도 그 문화가 상당히 발달돼 있어. 기부는 주는 거야. 공자의 최고 이념이 박시제중(博施濟衆)이야. 박시(博施)는 넓게 준다, 베풀어서 대중을 구제한다 이런 뜻인데 요새 말로 하면 기브 앤 테이크(Give&Take) 문화가 아닌 거야. 최고의 박시(博施)는 대상이 없어.
그 다음에 불교의 최고 바라밀이 보시 바라밀이야. 내가 누구한테 무언가를 해줬다는 의식이 있으면 복이 없어. 그래서 금강경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계속 말해. 의식 없이 주는 거야.
현실적으로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자원봉사와 기부야. 그런데 지금 기부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니잖아. 가끔 익명으로 기부하는 것이 뉴스가 되지. 이게 좀 넓어져야 돼. 즉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주는 것만으로 성립하는 사회, 이것이 무소유야. 그러니까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내가 못 먹고 사는 게 아니야. 돌아오게 되어 있거든. 무엇보다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어.

 


모심: 이제 이해가 됩니다. 소유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군요. 주고 싶은 마음, 줄 수 있는 것을 기쁨으로 나누는 것, 이를 통해 소유에서 벗어나는 삶이 ‘무소유의 시대’군요. 그런데 지금 사회는 경쟁과 돈에 매몰되는 것이 파국으로 가는 것인지도 알면서 멈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남곡: 불교에 보면 재보시(財布施)와 법보시(法布施)라는 게 있어. 그런데 깨닫지 않아도 보시할 수 있는 게 있어. 그걸 무외시(無畏布)라고 해.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인데, 이를 테면 아침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미소 같은 거지. 이건 엄청난 보시인거야.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 보면 미소를 보내기는커녕 ‘저 놈이 나를 어떻게…’ 이러거든.
사실 각자도생의 차가운 이기주의와 물신의 지배가 좀 더 세력을 떨칠지 몰라. 그래도 낙관적으로 보는 건 사람들의 의식이 어느정도 가다보면 의식적으로 전화하는 사람들이 점점 생겨나고 그런 욕구가 생겨. 그런데 이 욕구를 담을 그릇들이 없어. 그래도 나는 앞으로 30년은 사람들이 변해간다고 보는 입장이야. 왜냐하면 이렇게 변하지 않으면 망할거니까. 난 예전에 사회주의자였어. 자본주의가 망하기만 바랬어. 자본주의가 붕괴하면 기회가 온다? 천만에. 지금 망하면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아예 기회가 없어져. 지금 망하면 진정한 새로운 문명추구자들에게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게 현실이야.


새로운 집을 짓는 시대에 필요한 ‘사랑의 에너지’


 

모심: 중간에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새로운 세상의 비전과 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남곡: 새로운 30년이라고 하는 건 한살림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주어져 있는 결정적인 시간이야. 문명 전체가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야 돼. 내가 사회주의 혁명운동에서 전환하면서 가졌던 테마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이야. 이 세 가지는 아주 엉켜있어. 어느 게 먼저인 것이 아니거든.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어느 것이 먼저인지 조금씩 바뀌는거지. 결정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나는 지금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중요성이 더 켜졌다고 봐. 물질이나 제도보다 사람들의 의식, 정신의 역할이 더 커졌어.
예전에 내가 운동할 때는 물질이 토대였어. 그런데 지금은 의식이 토대야. 상대적인 비중이 달라졌다는 거야. 동력이 의식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보는거지.

 


모심: 의식과 정신이라는 문제로 다시 돌아오게 되네요.

이남곡: 협동운동이나 사회적경제는 정신적 성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운동이야. 지금 협동조합이 유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이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에 견학을 가장 많이 가는 나라라고 들었어. 가보면 좋은 점이 눈에 보이지. 그런데 오랫동안 축적된 건 눈에 안 보여. 인문학이 도움이 되려면 현장에서 동력화 되어야 해. 다시 말해서 협동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신적인 것들이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돼.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모든 운동체들의 과제야.
 


모심: 지금은 경제, 일자리, 환경 등 다양한 분야가 난관에 닥친 반면 또 협동조합운동이나 작은 소모임으로 인간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좀 더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남곡: 나는 낙관적으로 보는 게 있어. 다들 비관적으로 보지만, 90퍼센트의 비관적인 것이 있다고 해도 10퍼센트 낙관이 있으면 그것을 발전시켜 가야 해. 그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들이 생긴다고 봐. 물질이 풍부해지고, 어느 정도 부패도 경험해보니 ‘이게 행복이 아닌데’라는 의식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 프레드릭 뷔흐너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 “소명은 자기 내면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허기가 만나는 것이다.” 난 지식이나 자기 생각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인문운동과 결합하고 싶은거야.



모심: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 “20세기는 낡은 집을 무너뜨리는 거라면, 21세기는 새로운 집을 지어야 되는 시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새로운 집을 만들 때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무엇이며 국가는 어떻게 구상되어야 할까요?

이남곡: 새로운 집이라는 건 새로운 문명이야. 낡은 집을 붕괴할 때의 동력은 주로 투쟁이야. 이를테면 민주화, 독재를 무너뜨린다는 거지. 그 투쟁을 하는 동기들은 분노야, 분노. 그 다음에는 그런 악에 대한, 구조적인 악과 거기에 결합된 사람들에 대한 증오. 분노나 증오를 찬양했던 시기가 있어. 이걸 무너뜨리긴 해.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상이 출현하지는 않는다고. 사회주의의 실패를 그렇게 보고 있어. 새로운 세상을 출현시키지 못한 거야. 결국은 흡수되어 버리거나 자본주의에 포섭되거나.
내가 말하는 새로운 건설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를 연착륙 시키는 거야. 나는 21세기를 자본주의가 새로운 사회로 연착륙하는 시기라고 보고 있거든. 이게 안 되면 인류가 존속하기 어려워. 연착륙화 시기의 동력이 뭐냐, 사랑의 에너지야. 분노, 증오로는 안 돼. 주는 것이 기쁜 것. 이런 에너지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동력이 되어야 해.

 


모심: 네, 오늘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 일자 : 2016년 6월 22일
인터뷰 장소 : 장충동 <카페 105>
면담자 : 김이경(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만조(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구술자 : 이남곡(연찬문화연구소장)
정리 :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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