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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마음에 대해 묻다
2017-03-31 11:33:00

 

민주주의, 마음에 대해 묻다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요즘 들어서 민주주의가 새삼 큰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영국의 EU 탈퇴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정치가 민주주의 자체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가 퇴행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수개월간 광장을 채운 촛불 집회는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민주주의의 희생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과, 그 민주주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깨지기 쉬운 만큼 정성껏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 이후 대선과 개헌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일정들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불안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이 지도자를 새로 선출하고 제도를 개선한다고 해서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정치적 대리인을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하는 수준을 넘어서 시민들이 온전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단계로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제도를 넘어 마음의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더 깊이 있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다.

 

관련해서 작년 11월 한살림 30주년 대화마당을 개최하면서 성장을 넘어 성숙사회로 나아가는 전망을 찾는 차원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마음의 풍요,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주제로 열린 자리에서 에코페미니스트이자 신학자인 정현경 교수의 주제 발표 내용에 필자의 의견을 조금 보태 소개하고자 한다.

 

 

스스로를 살림이스트(salimist)로 부르는 정현경은 ‘살림’이야말로 새로운 문명과 사회 변혁을 꿈꾸는 세계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힘 있고 가능성이 있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총 쏘거나 쇼핑하는’ (Shoot or Shop)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죽임의 문명에서 생명을 살리고 키우고 돌보는 살림의 문명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면서, 전환의 비결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지금의 세계질서는 사람들의 탐욕(貪)과 분노(瞋)와 어리석음 (癡)을 자극해 결국 모두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진단한다. 무한생산, 무한소비,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의 탐욕에 기반해 사회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면, 전쟁 무기를 팔아먹는 군산산업체는 미움과 분노를 자극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으며, 지금의 언론과 교육은 왜곡된 정보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이런 삼독심(三毒心)을 해소하여 마음의 풍요를 찾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꽃은 ‘열린 마음’이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낯선 자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 성숙된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인내’ 를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은 협동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자기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민주주의자는 물론 협동운동가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협동하는 마음과 성숙한 민주주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는 1인1표의 원칙에 머물지 않는다. 협동조합과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다양한 생각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아 서로에게 든든한 삶의 의지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정현경이 한살림에 제안한 내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몸과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사람, 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장 힘없고 연약한 생명들이 스스로 찾아들고 삶의 의지처가 되는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나감으로써, 개인과 사회 그리고 지구를 크게 살려내는 아름다운 한살림운동이 되기를 제안하였다. 작년 말 30주년 기념식을 통해 새로운 30년을 맞이하는 한살림의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는 한살림’, ‘혁신하는 한살림’, ‘미래를 준비 하는 한살림’이 되자고 한 의미를 함께 새겨볼 필요가 있다.

 

* 원주한살림 소식지 87호(2017 3-4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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