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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참사랑 동물복지농장, 생명폐기처분에 반대하는 우리 모두의 현장
2017-06-05 12:29:00

  

참사랑 동물복지농장, 생명폐기처분에 반대하는 우리 모두의 현장

 

글·사진 김현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KARA) 정책팀 팀장. 생명이 존중받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농장동물 복지증진, 길고양이 보호, 개식용 철폐, 동물보호 관련 법제도 개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말 못하는 동물들을 위해 뛰고 있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프리랜서 기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시민사회에 입문했다. arqus@ekara.org

 

 

 

지난해 11월 한반도를 강타한 조류독감AI으로 지금까지 가금류 3700만 마리 이상이 죽음을 맞았다. 3700만이라는 수치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 정도이니 만약 3700만 명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국내 인구 74%에 버금가는 수의 생명들이 이번 조류독감으로 인해 살처분되었다면?

 

누적 숫자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 것인가. 국내에서 2003년부터 시작된 조류독감으로 8,201만 마리가 살처분당하는 등 2000년 이래 구제역과 조류독감만으로 총 8,591만 7,468마리가 살처분되었다. 반복되는 생명 폐기처분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숫자에 무뎌지듯 생명 폐기처분에 대해 무뎌질 일은 아닌 듯한데 말이다. 농가의 울음과 농장동물의 비통함, 청정 지위와 경제적 계산, 죽임과 살림에 대한 결정, 죄책감과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등이 한데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속에 인간의 반성적 성찰이란 어느 대목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런데 이번에 들통 난 방역 실패는 방역 정책의 방향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민들 스스로를 ‘사고’하게 만들고 있다. 가축전염병이 뭔지 잘 몰랐던 일반인들에게 구제역이며 조류독감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인 것 같다. 그해 말 구제역으로 이듬해 4월에 이르기까지 소와 돼지 350만 마리가 아비규환 속에 생매장, 살처분되었다. 살아있는 돼지들이 구덩이로 떨어져 살고 싶다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당시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 역시 외상후스트레스PTSD 장애와 같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조류독감이 발발하여 닭과 오리들이 또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2011년 상반기 조류독감으로 희생된 게 647만3천 마리. 이제는 모두가 구제역이 무엇이고 조류독감이 무엇인지 안다.

 

처음엔 방역상 살처분에 대해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려니 했다. 그만큼 가축전염병의 파죽지세는 꺾기 어려운 것이며 살처분은 추가적 희생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 모두는 오늘날 감내해야 하는 대 사회적 재난인 가축전염병을 함께 극복하여 물리쳐야 한다고. 구제역과 조류독감은 무시무시한 공동의 적이며 당국은 바이러스와의 대전쟁을 치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우리는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방역을 믿었고 그에 따른 생명 폐기처분을 힘겹게 수긍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가축전염병 대란 속에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살처분 전 안락사 매뉴얼’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같은 가축전염병인데 왜 유독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이 죽이고 있는지. ‘예방적’ 살처분 결정은 어떠한 근거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것이 정말 옳은지. 왜 한국은 늘 초동방역에 실패하여 피해가 커지는지. 살처분되는 동물의 숫자가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건지. 정부가 종식을 선언하는데도 가축전염병은 왜 자꾸 터지는지. 생명 폐기처분을 반복하는 죽음의 축산이 과연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는지.

 

배터리 케이지 속 생명들

 

조류독감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케이지 사육은 동물복지를 일절 고려하지 않는 대표적인 공장식 축산 형태다. 닭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수익 창출 면에서 본다면 케이지들을 가로 세로로 쭉 연결하여 6층, 7층, 8층으로 높게 쌓아올릴 수 있는 ‘배터리 케이지’ 형태가 단연 최고다. 크게 품 들이지 않고 농가당 10만, 20만, 30만 수 사육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아마도 배터리 케이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착취당하는 것은 말 못하는 동물들이다. 배터리 케이지는 동물의 고통이 매우 크고 문제가 많다 하여 세계적으로는 금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은 나라별로는 훨씬 이전부터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한 곳도 있었지만 2012년 1월 1일부로 28개 국 전체에서 모든 배터리 케이지를 폐지했다. 반면 공장식이 여전히 축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는 국내 달걀 생산의 대부분을 배터리 케이지가 차지한다.

 

배터리 케이지 사육 방식의 농가에 가보면 외관상으로도 공장이 따로 없다. 햇볕 한 줌 바람 한 줄기 들지 않는 폐쇄된 공간의 인공조명 아래 닭들이 케이지에 이중, 삼중으로 갇혀 수두룩 빽빽 들어차 있다.

 

<사진> 배터리 케이지 사육시설  ⓒ카라

 

케이지 한 칸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50cm인데 이 좁은 공간에 닭 5~6마리가 주어진 평생을 견뎌야 한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보통 닭 1마리당 공간을 환산하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 용지의 2/3 크기 안팎이다. 몸뚱이만 있기도 부족해 보이는 답답한 환경에서 평생 기계처럼 알만 낳아야 하는 닭들의 고통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허락된 공간도 이 정도인데 몸이 아프거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닭들이 돌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케이지 닭들은 자연스러운 습성을 일방적으로 억눌림당하기에 만성스트레스로 큰 고통을 받는다. 날개도 펼칠 수 없을 만큼 좁고, 단조롭고, 쉴 수 없는 환경에 정신이 나갔기 때문인지 옆에 있는 동료를 공격하는 비정상적 행동인 ‘카니발리즘’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병아리들이 사람으로 치면 손가락 잘리는 아픔에 비견되는 부리 잘리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은 사육환경 개선은 않고 소위 이 카니발리즘의 피해를 줄여보겠다는 인간의 발상에서 비롯됐다.

 

 

왜 감염되지 않은 닭들을 죽여야 하는가

 

유소윤 씨는 전북 익산에서 가족과 함께 참사랑농장을 운영하며 달걀을 얻기 위한 닭, 산란계를 키워왔다. 참사랑농장은 축사 안 바닥에 닭들을 풀어 키운다. 2015년 동물복지농장으로 정부의 공식 인증도 받았다. 한국에서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곳은 아직 소수다.

 

참사랑농장에 사는 5천 마리 닭들은 공장식 환경, 즉 케이지 사육이 아니기에 행복하다. 땅도 밟을 수 있고 두툼히 깔린 깔짚 위에서 탐구활동을 할 수도 있다. 비록 실내이지만 어떤 산란상자에 알을 낳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횃대가 설치되어 있어 원한다면 푸드득 좀 더 높은 곳에 올라 홰를 칠 수 있다. 급수기를 톡톡 건드리면 상시 목도 축일 수 있고 배가 고플 땐 곳곳에 설치된 급이기를 찾으면 된다.

 

그러나 3700만 마리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조류독감의 검은 그림자는 참사랑농장을 비켜가지 않았다. 닭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근 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발하자 참사랑농장도 방역권 속에 편입되었다.

 

<사진> 참사랑 동물복지농장, 유소윤 씨

 

인근에서 조류독감이 최초 발생한 것은 2월 27일이었다. 참사랑농장에서 2.1km 떨어진 하림 계열의 육계 농장이었다. 육계란 고기를 얻기 위한 닭으로, 국내 육계 산업은 하림과 같은 대기업이 농가에 사육만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료뿐만 아니라 병아리까지 기업에서 정해주는 대로 해야 한다. 참사랑농장이 위치한 익산 일대는 하림의 육계 하청 농가들이 즐비하다.

 

이튿날인 2월 28일 참사랑농장은 조류독감 감염 여부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국은 참사랑농장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3월 5일 인근 농가에서 조류독감이 추가 확진되었다. 확진 농장은 첫 발병농장보다 더 먼 거리에 있었지만 가축방역협의회는 참사랑농장에 대해서도 ‘예방적’ 살처분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익산시는 참사랑농장에 3월 10일까지 살처분을 이행하라고 통보했다.

 

참사랑농장의 닭들은 조류독감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건강했다. 하지만 닭들이 감염되지 않고 팔팔하다는 사실도, 이 농장이 복지축산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예방적’ 살처분 명령의 예외 사유가 되지는 못했다.

 

방역권은 현행법상 발병 농가로부터 반경 500m, 3km, 10km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500m 이내이면 최대 위험구역인 ‘관리지역’이 되고, 500m~3km 사이에 있으면 위험이 확산될 수 있어 예의주시해야 하는 ‘보호지역’, 3km~10km 사이는 ‘예찰지역’이다. 위험도로 치면 관리지역>보호지역>예찰지역 순인 셈이다. 조류독감이 터지면 관리지역의 경우 살처분이 이뤄지고, 보호지역의 경우 가축방역협의회가 살처분 여부를 필요에 따라 결정한다.

 

참사랑농장의 경우 방역권상 ‘보호지역’에 속했다. 당시만 해도 ‘예방적’ 살처분은 없어도 되었지만 두 번째 발병 농가가 생기자 가축방역협의회는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참사랑농장이 속한 보호지역에 대해서도 ‘예방적’ 살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유소윤 씨는 당국의 명령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 꼬꼬들은 건강합니다… 왜 아프지도 않은 아이들을 죽여야 합니까?”

 

조류독감 살처분은 농가별 감염 여부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발병 농가가 나타나면 방역권에 따라 일괄 결정된다. 즉 양성 또는 음성 판정과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적’살처분에 대해서 계속 문제가 제기되어 온 터다. 참사랑농장에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것은 조류독감 음성 판정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게다가 관리지역도 아닌 보호지역 방역권에서의 살처분 결정이었기에 더욱 억울했다.

 

유 씨는 닭들이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도 ‘예방적’ 차원에서 미리 애먼 생명들을 죽여야 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살처분을 하지 않으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벌이 따르기 마련이고, 보상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유 씨는 경제적 손실을 마다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길을 택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의 경우 음성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살처분을 한다면 1.5배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런 계산은 애지중지 닭들을 아끼며 길러온 유 씨의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살처분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하는 ‘예방적’ 목적이라면… 닭들을 잠복기가 지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키면 살처분을 할 이유도 없어지겠구나!’ 잠복기를 잘 넘기면 닭들을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유 씨 가족은 소독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버텨보기로 했다.

 

다행히 닭들은 항원 음성 판정을 받은 데다 매우 건강했다. 그러나 익산시가 살처분 기한으로 통보한 3월 10일이 지나고 나서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디디는 듯했다. 언제고 살처분 조가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불안했던 참사랑농장은 살처분 강행으로부터 닭들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먼저 관청을 상대로 살처분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살처분 명령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유 씨는 참사랑농장에 대한 살처분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본격적으로 따져보는 소송을 제기하고 살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집행정지란 가처분신청과 흡사하게, 명이 집행되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가 우려될 경우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해당 명의 집행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고, 유 씨는 즉시 항고했다.

 

 

무의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참사랑농장의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 종교계도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의미 없는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국가공무원노조 농림축산식품부 지부에서도, 설령 익산시가 중앙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이 있을지라도 중앙정부가 참사랑농장 사태를 방관하지 말고 전향적으로 해결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던 사이 조류독감의 최대 잠복기인 21일이 지났다. 현행법에 따르면 방역권에서는 마지막 살처분 집행 등 방역조치가 마무리되고 나서 21일이 지나면 관리지역이나 보호지역도 예찰지역으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참사랑농장이 살처분 명령을 받은 원인이 된 농가의 감염일이 3월 5일이었다. 인근 농장 가운데 참사랑농장을 빼고는 이미 모두 살처분이 진행된 상태였다.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 촉구 기자회견

 

최대 잠복기가 지난 뒤 참사랑농장은 감염 여부 검사를 위해 제일 먼저 전북 동물위생시험소 북부지소를 찾았다. 이상이 있는 개체나 아픈 닭은 없었다. 하지만 검사를 통해 확인을 받겠다는데도 위생소 측은 “살처분을 거부하고 있는 농장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면 시비에 걸릴 수 있다”하여 검사에 응해주지 않았다. 유 씨가 방역기관이 아닌 충남대 서상희 교수 연구실에 직접 검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3월 29일, 연구실에서는 조류독감 음성 판정을 내렸다. 닭들은 잠복기가 지난 시점에서도 조류독감에 감염된 바 없이 여전히 건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유 씨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익산시는 참사랑농장에 대한 살처분 명령을 철회할 수 없다며 강행 방침을 고수했다. 이미 떨어진 명령은 집행해야 하며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당국은 참사랑농장을 제외하고 발병 농가 반경 3km 내에 있던 모든 농장에서 살처분이 진행되었다며, 감염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인근 농가와의 형평성을 논했다.

 

당국이 말하는 ‘형평성’이란 다른 농장의 닭들이 살처분되었으니 참사랑농장의 닭들도 죽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였다. 최대 잠복기가 지나도록 조류독감에 감염된 바 없는데도, 살처분을 하지 않은 대가로 모든 경제적 부담을 농장주가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죽이지 않겠다는데도, 익산시는 변함없이 “살처분 하라”고 했다.

 

한편 참사랑농장에 대한 살처분 명령을 철회할 수 있는 주체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서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게임이 시작됐다. 법규상 가축방역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지자체가 살처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아무도 살처분 명령 철회를 자기 몫으로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전라북도청과 익산시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주문 없이는 명령 철회가 어렵다 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역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서로 책임을 피하고 있는 상황. 여전히 계속되는 핑퐁 게임 속에 농장주의 가슴만 까맣게 타들어간다. 한편 익산시는 살처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리어 참사랑농장주를 고소한 상태다. 곧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 유 씨의 심경은 어떨지.

 

이미 명분을 잃은 살처분을 아직도 강행하라는 것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5천 마리의 생명을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이 옳은가, 한번 내려진 명령이라 해도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방향을 잃었다면 살처분이 처음에 왜 필요했던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주변에 어떤 살아있는 닭들도 없는 지금, 참사랑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병하지 않는 이상 살처분을 강행하려 하기보다는 소독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지역 전체의 조류독감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5천 마리 닭의 생명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폐기처분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명 폐기처분에 저항하자

 

“봄이 되었다고 우리 꼬꼬들이 알을 더 많이 낳았어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사랑농장의 닭들은 알을 더욱 많이 낳고 있단다. 이미 창고에는 10만여 개의 달걀이 쌓여 있는 상황. 아직 예찰지역 전환도, 달걀 이동제한도 풀리지 않은 터라 그 달걀을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처분 명령이 철회되고 달걀 이동제한도 제때 풀리게 되면 달걀 또한 폐기처분되지 않고 귀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환경운동연합은 무의미한 살처분으로부터 참사랑농장의 5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생명달걀> 모금에 돌입했다. 참사랑농장의 상황을 곳곳에 알리는 한편 닭과 달걀은 쉽게 폐기처분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다. 달걀 배송이 즉시 이뤄지긴 어렵지만, 그리고 이후 상황에 따라 달걀을 영영 배송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생명을 지켜달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모금액은 전액 참사랑농장에 전달된다.

 

참사랑농장에 쌓여가는 달걀들

 

 

 

케이지 사육을 하지 않는 동물복지 축산과 유기 축산은 국내에 극소수다. 대개는 신념에 따라 양심적으로 축산을 하는 분들이다. 공장식 축산이 99%인 상황에서 정부가 지속가능한 축산을 고민한다면 1순위로 지원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한데 이 분들은 지원은커녕 곳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았는데 어떤 차별성도 없이 방역권에 따라 일괄적으로 내려진 살처분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하면, 인간과 동물의 유대관계도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차단 방역만 제대로 된다면 복지축산과 유기축산에 대해서는 ‘예방적’ 살처분 범주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욕심 없이 살뜰히 동물을 아끼며 돌보아왔던 양심적 축산인들이 조류독감 음성 판정을 받은 닭들을 살처분하며 음지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천안에서 평사 사육으로 산란계를 키우는 꼬꼬란 농장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번 조류독감으로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도 닭들을 모두 죽여야 했다. 관련하여 꼬꼬란 농장주는 자신의 블로그에 ‘키우던 닭을 모두 가슴에 묻었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잠복기까지 감염 없이 넘긴 익산 참사랑농장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살처분을 이행하라 외치는 당국의 태도는 지금까지 ‘예방적’ 살처분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근거 없이 이뤄졌던 것인지만 드러낼 뿐이다.

 

방역을 살처분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해서는 안 된다. 이동제한과 소독 등 기본 매뉴얼부터 철저히 지키고, 야생 철새 등 면피식 조사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교훈을 얻어가야 한다. 그동안 획일적으로 살처분에 의존해왔던 방역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여 전국적인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했다. 희생된 생명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죽였고 더 이상 똑같이 죽여서도 안 된다.

 

익산 참사랑농장주의 저항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 폐기처분에 저항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 현장이 되고 있다.

 

 

* 『모심과 살림』 8.5호(2017 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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