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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삶의 공간으로 바라본 농촌
2017-11-08 11:14:00

 

삶의 공간으로 바라본 농촌

 

 

김용달

솔뫼농장. 2000년에 귀농해서 건달 농사를 지어 왔으며, 올해부터 마을 이장일을 하며 없어지지 않는 농촌 마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kyd3225@hanmail.net

 

 

 

글을 부탁하는 이로부터 글 속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아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농촌의 현 주소, 농촌에서의 좋은 삶의 모습, 보다 나은 삶과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은 무엇이 있을지 등에 대하여 정책뿐 아니라 공동체적/자치적 측면을 아울러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생각과 의견, 제언.’ 늘 고민하던 내용이기도 해서 덥석 원고 청탁서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글을 써야 한다는 고민을 거의 매일 떨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자리에 앉지는 않으면서 그저 고민만 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아침부터 어쩌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긴 시간 고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쓰기에는 너무 벅찬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해보고 싶다는 바람과 실제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격 차이에서 오는 고통을 짊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경우가 바로 그런 상황이겠지요.

 

사실 약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농촌에 살다보면 누구나 농촌이 겪고 있는 아픈 현실을 금방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아픈 현실을 보았다 해서 그 문제에 쉽게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청탁을 수락한 것은 아마도 농촌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고, 글을 쓰지 못한 채 고민만 한 이유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접한 어떤 글이나 강연도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내는 여러 현상들의 강렬한 자극과 폭력적 행태에 반대하는 선언적 구호만을 들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던 일 치우고 농촌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눈치 보며 적응하느라 애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마을의 이장 일을 맡아서 보고 있습니다. 마을의 책임을 맡기 전에도 그저 조용히 지낸 것만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또는 마음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하여 지역에 도움 되는 일이라 여겨지는 짓을 한다고 꽤 나부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 지나 돌아보니 뿌듯하게 자부심이 느껴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아쉽고 때로는 원통해서 가슴을 치는 일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될 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보고도 이런 저런 관계를 고려하느라 용기 내어 바로잡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일은 더욱 힘듭니다. 이제는 농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 자위하며 한 눈 질끈 감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듭니다. 농촌에서 생활한 지 5년이 안 지난 시점에 원고 청탁을 받았다면 큰 고민 없이 쉽게 글을 썼을 것 같습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농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도 아니면서 실제로는 이것 저것 재는 것만 많아진 닳고 닳은 건달 농사꾼의 이야기가 될 듯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나라의 농사와 농촌, 농민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는 또 다른 선언 정도일 것입니다.

 

 

현주소

 

제가 살고 있는 이 지역(솔맹이)은 행정리가 10개인 곳입니다.(두 개 행정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속하고, 나머지 8개 행정리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속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4개의 초등학교와 한 개의 중학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에는 1개 초등학교와 1개 초등학교 분교장, 그리고 중학교 하나가 남았습니다. 물론 학생 수도 3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그나마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보다 초·중학교 통합 계획이 1년 늦다는 점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2000년대 초부터 계속되어온 교육청의 초·중 통합 시도에 반대하며 꾸준히 귀농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귀농자들과 그 자녀들이 만들어가는 지역의 모습은 활기가 있습니다. 학교 통합을 반대하며 제가 얻은 교훈은 학교가 살아있어야 지역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행정 측면에서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끊임없이 작은 학교를 없애고 있습니다. 저는 충북도교육청의 작은 학교 살리기와 관련한 어떤 위원회의 위원으로 있는데, 회의에 앞서 교육청 관계자가 ‘시골의 작은 학교 40개를 없애야 도시에 큰 학교 1개를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들은 후로는 그 위원회 회의에 가지 않습니다. 저출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시에 싼 노동력으로 팔려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농촌의 학교는 없어지거나 성격이 다른 학교 간의 통합을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30년 전만 해도 제가 사는 곳에서 청주시까지 오가는 시외버스가 시간당 한 대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세 번 정도만 다닙니다.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자기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시외버스의 운행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를 소유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 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농촌에 버스를 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런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꽤 먼 길을 걸어와서도 바로 버스를 타지 못하고 이따금 오는 버스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는 마을 어른들이 사실은 이 땅을 지키고 이 나라의 경제를 풍요롭게 하신 주역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장 일을 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농촌에 살고 있다 해서 모든 사람을 농사꾼으로 보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행정관서인 면이나 군에서 전달되는 공문을 통해 보면 우리 동네에서 농사에 전념하는 가정은 몇 가구 안 된다는 사실이 금방 파악됩니다. 농업과 관련된 각종 보조금이나 자재 지원 내역을 볼 때 전체 가구의 20% 정도만 전적으로 농사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업으로 농사일을 하는 분들을 뺀 나머지 주민들의 생활 모습에 대해서는 이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분들의 소득이 별로 높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집에 품을 팔거나 자식들의 도움으로 살아가시는 듯합니다. 반면 농사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가정의 경우는 주로 돈 되는 농사인 시설 채소를 짓습니다. 옛날에 많이 했다는 품앗이나 협동을 통한 농사보다는 부부의 노동력에 품 파는 이들의 노동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돈 되는 농사를 짓기 때문에 수입은 많다고 알려진 편이지만 실상은 대개 빚을 지고 있습니다. 농기계나 자재 등의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농업 회계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해서라고 언뜻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의 주축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대부분 농촌의 핵심 일꾼에 해당되는 이른바 58년 개띠 형님들을 마을에서 만나면 늘 일 좀 줄이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새벽에 나와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는 것을 보면 참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일 안 하면 술밖에 더 마시냐?” 형님들보다 연세가 더 드셔서 전업 농업에서 은퇴하신 분들은 대개 화투로 빈 내기를 하며 소일을 하십니다. 철마다 다녔다는 천렵은 이제는 말뿐인 전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술과 빈 내기 화투 아니면 티브이 시청 정도가 생활 문화로 자리 잡은 현실에 마음이 쓰입니다. 

 

마을의 이장씩이나 보는 자의 눈에 비친 농촌의 현실은 아무리 안 그러려 노력해도 비관적입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또한 감안하여 판단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삶의 모습

 

어떤 사회 형태가 최선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회를 일굴 수 있을까요? 몽상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시골로 오면서 꿈꿨던 우리 지역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국가가 시행하는 권역사업이라는 것에 도전하여 70억짜리 사업을 따오기도 했습니다. 그 계획서에 포함시켰던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 농촌에서의 좋은 삶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없어지지 않는 농촌을 만들 것인가’였습니다. 지속가능한 마을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농사, 교육, 복지, 문화, 의료의 다섯 가지 주제로 압축해 정리했습니다. 실제 사업 과정에서 그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것 없이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말았지만, 우리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면 이장 일을 맡고 있는 우리 마을에서만이라도 하겠다는 그 생각만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닐 온실과 인삼 재배지가 많습니다. 그나마 돈 되는 농업에 속하는 농사가 시설채소와 인삼이라서 그렇습니다. 이 두 농사가 돈은 좀 될지 몰라도 농자재의 대량 투입과 환경 학대 농업의 전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제가 생각하는 농업은 지속가능하며 생태적인 유기농업입니다.

 

교육은 평생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주민 교육과 학교에서의 교육을 계획했습니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 제일 큰 고민은 아이들이 줄어드는 데 있습니다. 학교를 유지하는 일이 지역을 위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다닐 학생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귀농인에 대한 지원이나 농촌 유학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민 교육에 있어서는 농촌에서의 복된 삶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돈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 물신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육, 잘못된 언론 보도의 맹신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뉴스 읽어주는 일 따위를 해보려 했습니다.

 

복지는 먼저 떠나실 어른들과 다음 세대를 이을 아이들을 우선에 두었습니다. 고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복지가 아닌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절기와 함께 진행해왔던 농촌 문화 중 우리 지역의 것을 되살리는 일과 능력자들의 재능 기부를 통한 어울림 문화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돈 내고 하는 연명치료가 아니라 예방차원의 의료 및 집집마다 찾아가 모셔오는 의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바람이 실현된 농촌마을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산업의 한 축으로 기능하는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하는 생태적인 유기농업을 지역 전체가 실천하고, 학교가 살아 있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늘 들리며, 젊은이가 나이 드신 어른들을 섬기고 모시며 마을 구성원 모두가 아이들을 키우는 마을. 절기에 맞게 진행되어 왔던 놀이문화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누리며, 몸과 마음에 병이 들기 전에 예방하고, 혹시라도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이 든 사람이 있다면 지역에 상주하는 의사가 마을 공동 의료시설에 모셔다 치료하는 마을. 그래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살고 싶어 하는,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 농촌 마을.

 

 

조건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과거 4천 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느 때에 비록 하루라도 농업을 하지 아니하고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의 첫머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혀 농민의 나라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현재를 살펴볼 때에 전 조선 인구의 10분의 8이 논에 밭에 산에 나서고 있으니, 온 세계를 통틀어 본다 하더라도 우리 조선과 같이 철저한 농업국은 다시없습니다. 오늘날 조선에 있어서 총생산 18억 원 가운데서 농산물이 13억 원을 차지하고 있어 이것 때문에 우리의 목숨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것 하나가 농민의 손과 발이 가지 아니하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2천5백만 인구가 논에서 밭에서 산에서 귀중한 땀을 철철 흘리면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윤봉길 선생이 1927년 야학을 위해 쓴 <농민독본>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를 옮겼습니다. 인구 10명 중 8명이 농민이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인구 10명당 1명도 안 되는 사람들만 농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담당하던 농업 생산이 지금은 3% 정도입니다.

 

다음에 인용할 글은 농림부 홈페이지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산업화·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농촌의 인력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농가가 늘어나고 학생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는 등 지역사회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반면 도시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주택, 교통, 도시빈민 발생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업의 구조개선과 함께 농촌에 대한 복지후생시설의 확충을 통해 농촌을 동경하고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농촌으로 돌아오는 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농촌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쾌적한 삶의 공간을 제공하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농업은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을 사전에 방지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쾌적한 삶의 공간을 제공하고 문화의 토양을 배양하는 등 농촌지역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어떤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농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농촌이 생산지가 아닌 쾌적한 삶의 공간을 제공하는 무대가 될 것이며, 농촌에 사는 사람이 단순한 생산자가 아니라 그 쾌적한 삶의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농촌과 농민에 대한 지속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산업 또는 금융 자본주의하에서는 농업, 농촌, 농민이 사회적 안정에의 기여, 자연 경관의 보전, 종 다양성의 유지, 지하수 생성, 대기 정화 등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엄청난 역할을 함에도 그저 농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생산물의 가격만을, 그것도 공업 생산을 통해 얻어지는 생산물과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의 가격으로 교환함으로써 오늘날 농업 농촌의 피폐화가 불가피했음을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인정하고, 그를 통해 얻어진 부당한 이윤을 농촌과 농민에게 지속적으로 되돌려 주라는 것입니다.

 

둘째, 농산물의 생산, 소비, 분배의 권리를 국가와 생산자,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는 1992년 결성된 세계 농민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개방 농업정책 때문에 농업은 축소되고 농민의 숫자는 감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는 농업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수 다국적 농식품 기업체가 농업 생산 및 분배를 독점하면서 국가의 농업 정책을 무력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인권에 해당한다는 것을 비아 캄페시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량 주권’이라는 말을 씁니다. 훨씬 많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사람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굶지 않을 인간의 생존권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천한 자본주의 체제의 극단적 병폐입니다.

 

셋째, 통일시대를 대비한 농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분단의 역사에 기록될 가장 끔찍한 비극은 반쪽의 동포가 나머지 반쪽 동포들이 굶어죽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같은 또래 남과 북 아이들의 키를 비교하면 10센티미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살과의 전쟁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키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고 몸무게가 미달되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통일농업을 통해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쌀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10만 헥타르의 논을 줄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농업은 농업 생산 이외의 여러 기능을 담당합니다. 논은 그 자체로 댐 역할을 해 홍수를 예방하고, 대기의 온도를 낮추며, 생물 종 다양성을 유지하고, 지하수를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쌀값 폭락이 우려된다면 논 면적을 우선 줄일 것이 아니라 남는 쌀을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면 됩니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그냥 퍼주는 것이 아니라 논이 쌀 생산 이외의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농업과 공업 생산물 사이의 부등가 교환으로 발생한 부당이윤을 환수하여 그 돈으로 쌀 생산 농민에게 정당한 쌀값을 주고, 그렇게 사서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넷째, 생각의 전환을 통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농촌과 농업을 바르게 할 외부의 조건을 말하는 일은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활방식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없다면 그런 주장이 그저 선언에 그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공적인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우리만 살다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때로는 물질적 이익을 포기해야 하고, 동시에 다시금 새로운 윤리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 윤리는 늘 자율과 연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지를 살피는 윤리여야 합니다. 새롭게 세울 윤리는 숲과 같은 자연에서 그 모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숲은 나무 하나하나와 같은 각 구성체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구성체 간에는 경쟁과 협동이 있습니다. 더 많은 양분과 빛을 얻고자 하는 경쟁이 있는가 하면, 가을에 낙엽을 떨구어 숲 전체의 양분을 풍요롭게 하는 협동이 있습니다. 봄부터 열심히 광합성을 통해 만들고 키워낸 자신의 생산물을 기꺼이 숲에 떨구는 낙엽 지는 나무들에게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들어 알기로 낙엽 지는 나무는 자신이 만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낙엽을 통해 숲으로 되돌린다고 합니다.

 

 

사족

 

다시 윤봉길 선생의 이야기를 빌려 글을 맺습니다.

 

“농사는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 진리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식량품을 비롯하여 의복 주옥의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다리지 않는 것이 없는 이만치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은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농민의 세상은 무궁무진합니다.” (<농민독본> 중에서)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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