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9호] 사회적 농업,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
2017-11-14 17:52:00

 

사회적 농업,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장. 최근에는 가족농, 농촌의 사회적경제, 귀농 등의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jskkjs@krei.re.kr

 

 

 

사회적 농업이라는 말

 

 

언론 보도, 학술 문헌, 관청 문서 등 여러 매체에서 어떤 말이 반복 등장하면, 그건 사회가 무언가 잃어버려서 앓게 된 질병의 증상이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그러한 부재 상황은 관형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세계는 당연히 계속 발전하리라는 믿음이 흔들리자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농업은 원래 인간이 환경-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유기물을 추출하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그 조화로운 관계가 위태롭게 되자 ‘친환경’ 농업이라는 말이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농업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의 쟁투에 이제 막 끼어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용어가 있다. ‘사회적’ 농업이다. 이 역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개똥철학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 아닐까? 본디 사회적이어야 할 농업이 더 이상 사회적이지 않게 된 것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이라는 말의 뜻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는 개인의 반대편에 있다. 허름한 추리닝 차림의 동네 백수 청년 다섯이 골방에 둘러앉아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을 나눠먹는 풍경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독재자와 수하들이 저택에서 요리사가 준비한 고급 요리를 굳은 표정으로 각자 먹는 풍경을 상상해 보자. 전자는 비록 궁색해 보일지라도 후자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건강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라면의 풍경은 그 풍경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면발의 자유와 국물의 평등, 그리고 김치의 박애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1) 또 다른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농가월령가 3월령이다. “점심밥 풍비豐備하여, 때 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처자 권속妻子眷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農村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여기에서도 식食과 농農이 ‘사회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농업은 본디 사회적이지만, 특별히 ‘사회적 농업’이라는 말을 쓸 때는 범위를 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하게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는 농업 실천을, 즉 사회 통합social inclusion을 지향하는 농업 실천을 일컬어 사회적 농업이라 한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지적·신체적 장애자, 재소자, 약물 중독자, 농촌 지역의 어린이·청소년·노인 등을 대상으로 치료, 재활, 사회통합social inclusion, 교육,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식물이나 동물 등의 농업 자원을 활용하는 활동이다.”2) 이를 다시 구분하면, 가령 일자리가 없는 이를 농장에서 고용해 영농에 종사하게 하는 실천을 ‘노동통합 사회적 농업’이라 하며,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에게 농업의 치료적 요인과 결합된 돌봄care 및 치료theraphy 서비스를 농장에서 제공하는 실천을 ‘돌봄 사회적 농업’이라 한다. 직업이 필요하지만 기술·지식 등 능력이 부족한 이에게 혹은 농업이나 농촌을 접한 적이 없는 도시의 아동·청소년 등에게 농사를 가르쳐 직업을 얻거나 농업·농촌을 포함한 전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 돕는 실천은 ‘교육 사회적 농업’이라 한다.

 

 

사례 : 돌봄형 사회적 농업과 교육형 사회적 농업

 

현재 한국에 사회적 농업 실천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 통계치로 뽑을 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한다. 노동통합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은 대략 100~200개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될 뿐이다. 이에 비해 돌봄이나 교육 분야의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은 그 수가 아주 적다. 몇몇 사례들이 일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사회 통합과 연대를 지향한다는 정신을 공유하면서 방식이나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는 차이를 갖는 다양한 실천들이 출현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돌봄 사회적 농업과 교육 사회적 농업 사례 하나씩을 소개한다.

 

“행복농장” -‌ ‌만, 장애인, 취약계층을 돌보고 재활에 힘쓰는 사회적 농장

 

농장은 크지 않다. 농지 1,000평 남짓에 올려놓은 비닐하우스 다섯 동이 전부다. 여러 가지 허브와 꽃, 상추를 재배한다. 농작물을 돌보는 것이 농업이라면, 훌륭한 농민은 사람을 돌보는 데에도 뭔가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농장은 스스로 제작한 자료에서, 농장 설립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마음을 돌보고, 몸을 돌보고, 세상과의 관계를 돌보는 농장입니다. 농작물뿐 아니라 사람을 돌보고 치유하고 키우는 따뜻한 확장이 시작되는 터전입니다. 행복농장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농장의 원천적 기능과 함께 농업이 가지고 있던 돌봄과 성장의 역할을 사람과 함께, 지역과 함께 복원하고 펼쳐 나가려 합니다.

 

행복농장은 2016년 한 해 동안 복지관 또는 기관에 소속된 만성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체험과 기술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립이 가능하게 돕는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를 ‘자연구시 프로그램’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미혼모, 탈북자녀, 청소년, 노숙자, 자살유가족 등 다양한 대상의 심리적 치유와 자립을 위해 농업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과 목공, 요리 등을 운영하는 ‘행복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였다. 프로그램들을 체계화하여 한 해 동안 운영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에는 ‘자연구시 프로그램’만 운영하기로 했다. 우선은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으로서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연구시 프로그램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4박 5일간 진행되는 ‘일반 자연구시’ 프로그램이 행복농장에서 제공하는 돌봄 농업 활동의 기초다. 작년 한 해 동안 2~3회 진행하였고, 매회 10~12명이 참여했다. 충청남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3)에서 참여자를 모집했다. 참여자는 기간 중 오전 시간에는 충남정신건강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전과 오후에 각각 2시간씩 농장의 농업활동에 참여한다. 저녁 시간에는 충남정신건강센터에서 면담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희망자 4명을 선정해 2~3주에 걸친 자연구시 심화과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심화과정에서는 농업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정신건강 측면의 프로그램은 비중이 줄어든다. 행복농장은 2016년에 심화과정을 거친 사람들 가운데 3명을 고용하였다. 두 명은 정식 고용이고 한 명은 인턴 자격으로 일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인턴 급여를 지원한다. 말하자면, 보잘것없는 농장에서 3명의 사회적 약자가 직업재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는 것이다.

 

자연구시 프로그램 같은 돌봄농업 실천은 만성 정신질환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 측면에서 어떤 좋은 효과가 있을까? 행복농장의 실무 책임자인 최△△ 씨나 옆에서 항시 일을 돕는 젊은협업농장의 정□□ 씨는 정신과적 측면의 효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농민이 진단을 할 수는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자연구시 프로그램 참가자 대부분은 보호시설에 수용된 이들인데, 시설에서는 아침에 눈을 뜨면 딱히 할 일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농장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농업이 지니는 재활 기능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공장에서 단조로운 작업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농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농작업에 참여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본다. 정신질환 증상이 완화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자연구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곳에 고용되어 일한 지 1년이 지난 이를 보면 ‘처음보다 인상이 많이 환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처음에 왔을 때에는 주변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사도 자연스럽고 손님이 오면 응대하는 등의 태도 변화를 곁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럭저럭 농장을 차려놓고 농업활동을 하면서 불편한 이들에게 돌봄의 손길을 제공할 수 있으니 사회적 농업이라는 게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끝난다면, 현실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것이리라. 행복농장이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만성 정신질환자들을 고용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행복농장의 경험 그 자체가 한국에서 사회적 농업 실천이 아주 초기 단계이며 숱한 난관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 농촌에서 사회적 농업, 그중에서도 돌봄농업을 실천한다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는 힘든 길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첫째, 농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려운 일이다. 행복농장을 예로 들어보자. 비닐하우스 다섯 동이 전부인 이 농장의 규모로 볼 때, 최적의 노동력 투입은 2명이다. 재배기술이나 마케팅 등 여러 조건이 평균 이상 수준에 도달했다고 가정한다면, 비닐하우스 다섯 동에서의 원예작물 재배는 부부가 가족노동으로 꾸려갈 수 있는 최대 규모다. 남편과 부인이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에서 일해야 대략 4,000만~5,000만 원쯤의 농업소득을 얻을 수 있는 규모다. 즉, 이곳에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농작업만 해야 한 가족이 먹고살 만한 소득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자연구시 프로그램 같은 것을 운영하면 당연히 농업노동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프로그램 참가자 2명에 농장 직원 1명이 곁붙어서 보살펴야 한다. 더구나 인턴 등으로 고용한 이들의 농작업 속도나 양은 평균적인 농민 수준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행복농장의 연간 농업소득은 약 2,000만 원 정도에 불과한데, 아직 판로가 안정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돌봄에 많은 시간과 인적 자원을 할애한 탓이 크다. 그 같은 돌봄 서비스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가령, 만성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는 장기요양시설은 국가로부터 이러저러한 급여를 받게 되는데 대략 1인당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농장의 자연구시 프로그램은 그 같은 요양급여 제도의 직접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는, 충남정신건강증진센터가 조직한 프로그램의 한 참여자일 뿐이다. 이 프로그램은 홍성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원을 토대로 운영되는데, 행복농장에는 ‘강사비’ 항목으로 금전적 대가가 돌아온다. 참가자 수에 관계없이 1일 3만 원 정도다.

 

둘째, 시설 및 인적 자원 부족 문제가 있다. 비닐하우스 몇 동과 행복농장의 고정 인력 3명으로는 자연구시 프로그램 참여자 10여 명을 돌보기 어렵다. 자연구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행복농장에서 10명 이상이 동시에 농업활동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 인근에 있는 다른 농장들과 협력하는 것이었다. 행복농장에서는 두세 명만 농작업을 진행하고, 한두 명씩 다른 농장에 분산 배치하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농장이 여섯 개쯤 된다. 오전에는 각 농장마다 한두 명을 배치받아 농작업 활동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다시 모여 충남정신건강센터 측에서 나온 직원이 진행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다. 농장에 고정 인력으로 정신보건 분야 전문가나 사회복지사가 취업해 있는 상태가 이상적일 테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네덜란드의 돌봄농장 가운데에는 사회복지 전문가가 직원으로 고용된 경우도 있지만, 한국 농촌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결국 지역의 사회복지 혹은 보건복지 분야 직능 종사자나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 네트워크로부터 부분적으로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셋째, 농촌 마을 공동체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사회적 농장이 단지 농업이라는 포장지를 둘러쓴 또 하나의 사회복지 시설일 수는 없다. 즉, 사회적 농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사회적인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교류일 수도 있고, 농장에 고용됨으로써 갖게 되는 직업적 관계일 수도 있다. 사회적 경험은 재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렇게 본다면 농촌 마을 주민들의 상당한 이해와 용인이 전제되어야 사회적 농장이 폐쇄된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자원동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농촌 마을 공동체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행복농장의 사례를 보자. 농장이 터를 잡은 농지는 마을 주민에게 임차한 것이다.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실내 공간은 마을 내 오누이권역다목적회관을 빌려 사용한다. 인접한 곳에 자리 잡은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이 행복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매하지 않으면 행복농장은 경영 측면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섯 농장들이 자연구시 프로그램 참가자를 받아 농업활동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지 않았다면 행복농장의 프로그램 운영은 크게 제약되었을 것이다. 4박 5일 일정 동안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데에는 도산리 부녀회 등의 협력이 있었다. 이 같은 공동체의 협력이 행복농장 운영의 바탕을 이룬다. 마을에 있는 영농조합법인, 협동조합법인, 주민 등이 조합원이 되어 협동조합 형태로 행복농장을 설립한 까닭이기도 하다.

 

“젊은협업농장” ‌- 청‌년 농민을 키워내는 농장

 

행복농장이 있는 곳과 같은 마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에는 “젊은협업농장”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이 있다. 홍동면에 있는 풀무학교는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인데, 졸업 후에 계속 농사를 짓는 졸업생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이는 지역사회의 몇몇 사람들에게, 그리고 풀무학교 안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풀무학교를 나오든 홍동면으로 귀농했든, 농업에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 결국 농민으로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농사를 짓지 않느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농사를 시작할 만한 자본이 없고, 농사를 지으면 먹고살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농사일에 참여해 본 경험이 없이 완전히 새롭게 농업에 진입하려고 시도하는 젊은이들에게 농업은 아주 힘든 일이다. 

 

지역사회 안에 ‘진짜 농장을 만들어 파종에서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농사를 배우고 지역사회를 이해하여 정착할 수 있게 돕자’는 것이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을 설립하게 된 목적이었다. 풀무학교 졸업생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귀농 목적지가 되어 지역을 찾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장소-플랫폼이 필요했던 것이다. 홍동면과 장곡면 지역사회는 또한 그 자체로 젊은이들이 필요한 상황 아니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뜻을 같이하는 농민 몇몇이 협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장곡면 도산리에서 땅을 빌리고 비닐하우스 서너 동을 만들어 쌈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지역에 튼튼하게 자리 잡은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과 도산리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은 젊은협업농장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사들였고, 처음 시작할 때 영농과 관련하여 여러 부분을 도와주었다. 또한 도산리의 고령 농가들이 땅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젊은협업농장을 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사회 외부에서도 든든한 도움이 있었다. 삼선장학재단의 후원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농촌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매월 30만 원씩 2년 동안 지급하는 ‘청년 인턴십 장학사업’으로, 젊은협업농장에서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한 청년 몇 명이 이 후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의 조합원은 45명인데, 흥미로운 것은 조합원 대부분이 홍동면과 장곡면 주민이라는 점이다. 즉, 협업농장의 일꾼과 ‘교육생’만으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이 아니다.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이사진을 보더라도 풀무학교 이사장,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 대표, 도산리 이장, 젊은협업농장 생산자(2명)로 구성되어 있어, 젊은협업농장이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협동조합임을 알 수 있다.

 

젊은협업농장은 2017년 현재 비닐하우스 8동에서 쌈채소를 재배한다. 이런 농사에서 얻는 소득은 연간 1억 2,000만 원 정도이지만, 대체로 11명 정도의 젊은협업농장 사람들(교육생)이 농사짓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많은 소득은 아니다. 규모를 확대해 농업소득을 더 올릴 수는 있지만, 젊은협업농장은 고소득을 추구하지 않는다.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농업 수입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젊은협업농장은 기본적으로 ‘돈을 많이 벌자’는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지역에 필요한 청년 인재를 기르자’는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협업농장에 들어온 청년들이 하루 종일 농사일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농사일은 오히려 제한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오후 4시를 지나면 농작업은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그 이후 시간에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이나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11명의 신규취농 준비자가 젊은협업농장에 머물고 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6명, 30대가 3명, 50대가 2명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마을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젊은협업농장을 졸업(?)한 후 정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 높이고 있다. 농장일을 하면서 인근의 장곡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강사로 나서는가 하면, 젊은협업농장이 소재한 도산리 일대 권역개발사업 운영위원회의 사무장 일을 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방문객이 많은 홍동면과 장곡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한, 지역 안내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자본이 아주 많은 대농의 영농승계자라면 영농기술과 농업경영체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익힘으로써 농업을 영위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오로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일 뿐인 청년 소농에게 마을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도시의 월급쟁이에게도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농촌 생활에서 그 중요성은 차원을 달리한다. 직장인은 몸만 회사에 가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농민은 몸뚱이만 있다고 제 노릇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토지, 농기계 등 생산수단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모조리 내 돈 주고 살 수 없으니 빌려야 한다. 농산물을 판매할 때에도 이웃 농민에게 얹혀서 팔아야 할 때가 잦다. 그러려면 인간관계와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 같은 관계의 밀도는 대면접촉 빈도에, 즉 이웃과 어울린 시간에 비례한다. 청년 농민이 이웃과 얼마나 자주 어떻게 접촉하느냐는 문제는 뜻밖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젊은협업농장은 농사일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마을 행사 등 농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청년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농업과 마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알아야 정착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농업의 세 측면 : 사회 통합, 사회적경제, 사회 혁신

 

사회적 농업은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다. 어딘가에서 어느 농민들이 예전부터 실천하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세상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경쟁, 성공, 성장 등의 말이 낯익으면서도 피곤한 세상살이 지침이 된 지 오래다. 그게 아예 강박이 되어버린 사회의 병증을 다스릴 약이 필요하다는 게 사회적 농업 담론 확산의 가장 큰 이유일 테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개인적 성공보다는 더불어 사는 연대를, 넘어지지 않으려면 쉼 없이 밟아야 하는 성장의 페달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성숙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대열에 합류한 농업이 사회적 농업이다. 즉,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끌어안는 사회 통합의 매개로서 농업이 기능할 때 우리는 그런 실천을 사회적 농업이라고 부른다.

 

어느 한 사람의 농민이 자신의 농장에서 자선사업 형태로 사회적 농업을 실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실천은 그 자체로 힘겨운 일이면서 ‘사회적’이라는 말에 내포된 공동체 혹은 연대 혹은 협동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다.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들이 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 조직 형태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사회 문제에 대응하려고 혁신적인 해법과 새로운 조직 형태,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을 발전시키는 것을 사회 혁신이라고 한다. 사회적 농업은 일종의 사회 혁신 기획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돌봄 사회적 농업을 통해 농민과 사회복지 또는 보건의료 부문 실천가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보통은 농촌 지역사회에서 협력해서 어떤 일을 추진할 개연성이 아주 낮은 이질적인 분야의 종사자들이, 사회적 농업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에 바탕을 두어야 사회적 농업 실천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1) 김영민, 『봄날은 간다』, 글항아리, 2012, 137쪽.

2) I‌acovo, F. and Deirdre O’Connor, Supporting policies for Social Farming in Europe: Progressing Multifunctionality in Responsive Rural Areas. Toscana: ARISA, 2009, 21쪽.

3) 이‌하 '충남정신건강센터’로 줄여 쓴다. 몇 년 전에 장곡면에서 가까운 홍성군 홍북면에 충남정신건강센터가 설립되었다.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