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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다른 삶, 다른 시대로의 이행을 위한 삶의 기술, 삶의 토대
2018-02-05 17:13:00

다른 삶, 다른 시대로의 이행을 위한 삶의 기술, 삶의 토대

 

 

 

안연정

스스로를 제작노동자라 생각하며, 2010년부터 목재 업사이클링 제작소인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rangsalon@gmail.com

 

 

 

 

생각하는 손들의 공공지대 만들기

 

‘생각하는 손들의 공공지대 만들기’는 문화로놀이짱이 2013년 리처드 세넷의 『장인』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슬로건입니다. 공터와 옥상 등을 전전하며 제작 기술과 도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다 ‘마포석유비축기지’라는 활용이 멈춘 시유지 내 유휴공간을 점유한 지 3년째 되던 해입니다. 목재 재활용과 자립의 기술, 공유 공간 만들기를 키워드로 2010년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을 설립했고, 저는 설립 멤버입니다.

 

버려지는 재료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대 후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면서부터입니다. 버려지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조금 손을 봐야 하는 것,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왠지 곧) 필요할 것 같은 것, 내 친구에게 필요한 것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어딘가 보관할 곳이 있다면, 수리하거나 리폼할 수 있는 공간과 도구가 있다면 좋겠다는 욕구가 생겼고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과 공터에 모여 작은 시장을 열고 재료와 도구를 공유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출발이자, 지난 십 년 제가 이 활동을 지속하게 된 계기입니다. 당시 제게 버려지는 재료들은 이야기가 있는, 사용가치가 있는, 시간을 품고 있는 멋진 소재였으며. 공유한 도구들로 삶에 필요한 사물들을 제작하는 경험을 통해 생활의 문제해결력을 키웠습니다. 제작을 위한 손노동은 몰입의 기쁨, 협업의 즐거움, 작지만 강렬한 성취감도 주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소비로 해결하는지, 공급되는 것들에 길들여진 채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화로놀이짱 내 재료 창고. 버려진 사물들을 수거 후 해체해 보관한다. 

유해성분이 긴 시간 동안 빠져나가 건강한 목재들이다. ⓒ문화로놀이짱

 

대량으로 생산되고 폐기되는 사물들을 보며, 이 시스템 속에서 불안해하고 상처받은 저를 발견했어요. 사물들을 재구성하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손노동을 통해, 제가 속한 사회의 토대가 극대화된 효율추구를 통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손노동의 기쁨이 불안과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내 리듬으로 세계를 만들 수도 있겠단 자신감까지 키워주었습니다. 개인의 문제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회적인 문제였고, 스스로 해결하고 구성하게 된 삶의 에너지가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친구들을 찾고 싶었고 나답게 살기 위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을 궁리하다보니 제작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시도하고, 실패를 허용할 수 있는 지대가 필요했어요. 이것이 버려진 공간을 찾아 업사이클링 작업장을 만든 이유입니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만들기를 꾸준히 실현하며 토대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생명들의 지대를 만드는 일 말입니다.

 

 

스스로 조직하는 삶

 

유휴공간에서 활동한 지 5년째 되던 해, 서울시는 이곳의 활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를 비축해 두었던 다섯 개의 석유탱크를 새로운 쓰임으로 전환시키는 도시재생 사업입니다. 개발이 유보된 땅에서 5년간 진행된 실험을 통해 배운 것은 ‘스스로 조직하는 삶’에 대한 감각입니다. 대화하는 기술, 기다리는 기술, 독려하는 기술, 자리를 내어주는 기술, 여기와 저기를 넘나드는 기술, 묵묵히 밀고 가는 기술, 초대와 환대의 기술, 싸움의 기술, 땅을 일구는 기술, 자치의 기술 등 수많은 기술들을 익혔습니다. 지난 8년 문화로놀이짱이 마포석유비축기지 내 유휴공간 실험을 지속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지대’를 함께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지대’가 다음 세대, 다음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이양되고,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제게 이 활동이 중요했던 것은 시민들이 각자의 계발(성장하고픈 욕구, 바라는 사회적 변화) 욕구를 발의하고 우리 힘으로 개발해보는 ‘지대’와 ‘경험’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경로를 만드는 일입니다. 아주 작은 사회적기업 하나가 스쾃에서 시작하여 8년을 그곳에서 살아남았던 에너지와 자부심, 하나의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며 활동을 지속해 온 과정들이 그렇습니다.

 

 

제작 공간 모습. 마포석유비축기지 내 방치된 관리사무소를 점유해 제작소로 활용했다. ⓒ문화로놀이짱

 

2014년 가을, 이 상황을 공유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유휴공간의 활용 역사를 지키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공유지를 만드는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행정적 위기들을 공동으로 대응하고, 공유지 활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자치 활동을 지속하며 ‘시민’과 ‘자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이 공간에 도시농부, 농부시장을 기획하는 사람들,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영상작가, 사진작가, 회사원, 연구자, 지역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이 지대와 활동에 ‘이행기’란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행기지, 이행기 활동이란 ‘불안정한 토대’를 받아들이고 넘나드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맞서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합니다. 성장이 멈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과도하게 통제되고 기획되는 공간이 아닌 학습과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공간, ‘과정’이라는 개념이 허용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확정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내버려둘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일구고 싶은 자리, 일굴 수 있는 자리로써의 ‘빈 공간’을 남겨 놓고, 삶을 일구는 감각과 방식의 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에너지를 확산할 수 있는 토대로써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간들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고 실행하며 ‘틈’을 만들고 ‘틈’을 벌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유휴공간을 지켜내고 ‘비빌기지’ 라는 이행기지를 함께 만든 선생님들과 동료, 우리와 함께해준 시민들을 통해 배운 것들입니다. 탈성장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도 이러한 공간과 시간, 기술과 사람들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과정이 ‘부족이 형성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라고 상상해보았습니다.

 

2010년 벽돌건물살이를 시작하고 다음해부터 조금씩 늘려간 모습.

공유 제작소와 도서관, 작업실이 있다. ⓒ문화로놀이짱

 

 

 

종족과 부족

 

얼마 전, 청년들의 커뮤니티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의 심사에서 만난 청년들 이야기를 잠시 하려 합니다. 이 사업은 3인 이상이 모여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참’ 비용을 지원합니다. 여기서 ‘참’이란 일을 하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에 먹는 간식에서 따온 말입니다.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공공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잘 먹고 안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 사용료 등이라 판단하고, 이에 대한 활동비용을 지원하며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1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고, 커뮤니티 활동 내용이나 성과 등을 평가하진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3인 이상의 청년들이 스스로 설정한 활동 내용을 다른 커뮤니티와 공유하는 대화자리가 심사의 전부입니다. 저는 이 사업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어요. ‘세 명 이상이 모이면 하나의 사회가 된다’는 사업의 출발점이 아주 좋았어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세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 이런 작은 사회를 1년에 300여 개 정도 지원하는 사업. 300여 개의 다양한 이야기. 이 사업에 지원하는 청년들의 커뮤니티 결성 동기와 활동 내용을 보면, 아주 다양한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읽혀요. 이렇게 다양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고 지원하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 같은 안도감도 생겨요. 누군가에게 문제를 전가하지 않고 커뮤니티 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와 에너지가 아주 멋져요. 커뮤니티들의 결성 동기 또한 ‘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공통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과정과 해법도 아주 다양해요.

 

저는 이곳에서 두 명의 비보이를 만났습니다. 십대부터 줄곧 같은 학교에 다니며 비보잉을 해온 이들은 자신들을 ‘종족’이라 소개했어요. 춤을 추는 경제활동이 아니라 춤추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춤출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춤추는 자신들과 동료들을 ‘정말 멋지다’라 소개할 수 있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종족과 부족에 대해 생각했어요. 마치 춤추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던 두 명의 청년들을 만나며 그들이 스스로를 ‘종족’이라 표현하게 된 이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연상되었고, 상황들에 단련되고, 향상심을 갖고 몸과 기예를 단련했을 그들의 시간과 공간들이 상상되었습니다. 그런 이 청년들의 요즘 고민이 몸에 힘을 빼는 거란 말을 듣고 ‘형님!’이라 부를 뻔했고요.

 

 

힘을 빼는 기술

 

최근 저에게도 몸의 힘을 빼는 일이 최대 관심사입니다. 손노동이 주는 무아지경을 좋아하고, 기술을 사용할 때 몸의 힘이 빠진 채 일정한 리듬감으로 재료를 다듬고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의 느낌을 몸과 머리는 기억합니다만, 일상에서 제 몸은 긴장 상태입니다. 불안을 물리치고 상황에 맞서는 기운을 만드는 데 집중하다보니 힘을 빼는 법을 잊었나봅니다. 힘을 주려면 힘을 뺀 상태가 선행되어야 할 텐데요, 늘 힘이 들어가 있으면 그것은 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계속 상황에 휘말리다보니 내가 무엇을 하려 했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잊곤 합니다. 가만히, 조용히 생각에 집중해보면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만 느껴지고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힘을 빼는 기술 중 제게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호흡법입니다. 제가 배운 호흡법은 먼저 숨을 내 발끝으로, 땅으로 향하며 끝까지 내뱉어요. 그런 다음 숨을 들이쉬는 것이 아닌, 숨이 내 몸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몸을 열어주는 상상을 합니다. 내장 하나하나까지, 근육과 뼈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부분까지 숨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주는 상상입니다. 점점 더 숨을 채울 수 있는 몸속 공간들이 커져감을 느낍니다. 들이쉬고 들이마시고를 정성껏 하다 보니 그간 무심했던 것들이 발견됩니다.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이 느낌과 발견을 단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단련이 필요하겠지요. 꾸준히 하는 것, 그냥 하는 것, 연결을 발견하는 것, 긴장을 풀고 배에 힘 꽉 주어 똑바로 서는 연습을 저는 지금에서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몸에 충격을 주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운동을 통해 몸의 한계와 만날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몸의 단련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때마다 포용할 수 있는 능력,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가 생성됩니다. 성장을 넘어서는 삶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내 몸을 단련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크기를 키우고 넘나들 수 있는, 엮어줄 수 있는, 밀고 나갈 수 있는 상상력과 체력을 갖추어 가면, 다시 생명 가득한 존재들이 보입니다. 생명 가득한 기운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이 기운으로 다른 삶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며 손 내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추천합니다. 힘 빼기 기술을요. 방법은 아주 다양할 테니 나에게 맞는 힘 빼기 단련을 해 보셔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언젠가 또 만나요.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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