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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살아 있는 공간, 살리는 공간
2018-02-21 09:46:00

살아 있는 공간, 살리는 공간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사)도시와삶 이사장. 도시재생, 공공성,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현장과 이론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ybreigh@hanmail,net

 

 

 

도시 패러다임의 변화

 

20세기 도시의 거대함은 개발과 성장의 원동력으로써 눈부신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더불어 증폭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개발시대의 도시들은 ‘체질개선’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이상 부수며 새로 짓는 양적 팽창의 패러다임이 도시 성장의 방향타가 되지 못하고 저출산·노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의 위기 속에 도시는 쇠퇴의 국면에 들어섰다. 그 결과 부풀려졌던 자본의 공간은 잉여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투기적 개발과 소유의 욕망으로 인해 한순간도 시간의 역사가 쌓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도시들이 도처에서 성장시대의 후유증을 드러낸다. 쇠퇴도시를 살리고 지역의 정주성을 높이기 위해 도시재생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선도사업 대상지를 선정하고 엄청난 재정을 쏟아붓는다. 게다가 짧은 시간 내에 지역재생의 효과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성공 사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조바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다시 살려서 쓰는 재생의 가치가 오히려 부작용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띈다.

 

지역재생의 성공사례처럼 회자된 서촌이나 연남동, 가로수길, 성수동과 같이 특정지역 소비공간은 지나친 자본의 경쟁으로 인해 임대료 상승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오랜 세월 지역을 일군 임대세입자 상인이나 동네 터줏대감격인 가게들이 쫓겨나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 한편에서는 임대료가 치솟는데 바로 옆 동네에서는 빈집이 속출하는 공간 불균형 문제도 심각해진다. 이런 도시 공간의 양극화 현상은 저출산·노령화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주민들이 도시의 특정지역에 몰려 살면서 생기는 다문화의 게토Ghetto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태원의 개방적 다문화 양상과 다르게 폭력과 범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가리봉동의 이국적 풍경은 사회안전망Social Security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분명 자본주의라는 단일 가치가 지배했던 기제Machine로서의 도시가 아닌 복합적인 양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시가 재구조화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도시의 미래가 불확실한데 도시에서의 삶을 둘러싼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도시에서의 삶, 그 삶은 과연 무엇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것일까?

 

<사진> 서울 익선동 골목길의 상업화

 

 

사람이 주인인 도시, 살고 싶은 도시를 꿈꾸며

 

숙명적으로 도시에서 살면서 언젠가는 벗어나길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도시란 정글에 갇혀 버린 삶의 진정한 해방구는 무엇일까? 탈출할 수 없는 도시가 어쩌면 해방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갇혀 버린 그 도시를 우리가 살기를 꿈꾸는 곳으로 바꿔 봐도 좋지 않을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실천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먼저 스스로에게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과연 우리가 살기를 꿈꾸는 도시인지 물어야만 한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가 꿈꾸는 도시인가란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속에 담긴 희망의 도시는 어쩌면 평생 그곳에서 살고 싶은 도시, 살면서 사람이 주인 되는 도시, 그런 도시일 것이다. 사람이 주인인 도시는 결국 ‘삶’의 문제이고, 정주定住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죽는 그날까지 떠나지 않고 살고 싶은 도시는 ‘터’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우리가 꿈꾸는 도시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삶과 터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자의 삶과 함께 사는 삶의 문제, 그리고 그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터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삶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개인 삶의 만족도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터 안에서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동시에 터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 함께 사는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장소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 둘이 서로 다르지 않고 한 몸이 되어 삶과 터의 관계망을 잘 엮어 낸다면 삶이 터를, 동시에 터가 삶을 서로 보듬어 도시가 공유와 공존의 더불어 숲으로 성장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공공성의 가치로 재구성하자

 

도시와 삶이 이어져 살고 싶은 도시를 일구어내고, 그 도시 안에서 사람이 주인인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가치가 바로 공공성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공공성은 사유와 사유의 사이, 사유와 공공의 사이, 공공과 공공의 사이 등과 같은 중간 영역에 존재함으로써, 삶의 다양성이 공존하며 이를 기반으로 함께 사는 삶의 가치가 공유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공공성은 세대와 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윤리이기도 하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가치의 양면성을 갖는 공공성은 개인이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사적 권리이기도 하고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공적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도시건축 영역에서의 공공성은 후자의 성격이 매우 강해 흔히 공권력의 상징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래서 공공성의 역할이 개별적인 이해관계의 충돌과 갈등을 조정하는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와 도시는 빠르게 변화하고 그 안에 내재된 사적 이해관계는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무엇으로 도시건축 영역에 내재된 다양한 삶의 공존과 가치의 공유를 꿈꿀 것인가? 예측 불가능한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하는 도시의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함께 사는 공동체적 삶의 기본가치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적 활동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공적 가치로 작동하는 공공성의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공공성을 삶 속에서, 그리고 삶과 삶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가치로 만들 수 있을까? 공공성은 없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면 불편해진다. 또한 공공성은 공동의 생활 방식과 공용의 공간에 개입된 사회적 윤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공공성에 주목하고 이를 도시공간에 구현하는 방식은 법규나 제도에 근거하기보다는 생활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제할 수도 없고 자발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사유의 영역에 맡길 수도 없는 딜레마로 인해서, 법과 제도에서 출발한 최소한의 공공성이 어떻게 생활문화를 담고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법규적 공공성의 최소한을 넘어서 생활 속에서의 공공성으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제도와 사업을 통한 강제보다는 공공성이 자율적으로 진작될 수 있는 공간환경의 토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일상공간에서의 공공성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지는 곧 사회 속에서 삶을 매개로 공동체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어나갈지에 대한 고민과 같다. 따라서 공공성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공간을 통해 재생산되는 지배적인 가치나 사회가 추구하는 거대담론으로 인해 억압되고 불편해진 삶의 영역을 개인의 생활공간을 통해 보다 풍요롭게 열어나가기 위한 디자인의 사회적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성은 완성된 가치로 제공되기보다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의해 체험되고 재창조되는 가치로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공공성을 담는 공간언어 역시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과정형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공간의 여지를 가져서 사용자가 창의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 이제는 공공성의 내적 강도Intensity가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이처럼 형식보다는 내용에서의 공공성의 밀도를 높여 공공공간의 생명력이 끊임없이 재생될 때 공공성은 생활 속에서 지속가능하게 된다.

 

<사진> 연남동 경의선공원과 도시공공성을 통한 시민들의 일상의 재구성

 

 

미래도시의 과제는 도시 회복력의 향상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의 고령화사회 진입속도로 인해 전국의 도시는 향후 지금까지 겪지 못한 새롭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도시는 사회 변화를 껴안을 수 있는 내적 관용Tolerance을 지니고 있을까?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인구축소와 같은 내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위기와 같은 외부의 충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인 도시 회복력Resilience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도시재생은 행정이 주도하는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시민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획득하기 어렵다. 재생의 가치가 정주성의 향상에 있다면, 정주의 주체인 주민, 그리고 좀 더 넓게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을 파트너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과 공동체, 그리고 협력적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이 등장하면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단면이 변화하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 경의선 폐선부지에 들어선 늘장, 해방촌의 빈집공동체 등과 같이 시민사회의 참여, 그리고 시민공동체의 자발적인 노력과 다양한 시도가 오히려 거대재정을 앞세운 행정 주도의 도시재생보다 훨씬 더 높은 설득력과 가치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다양성의 가치가 설 땅을 잃고 도시개발의 획일화된 가치만이 도시를 지탱한 데 대한 성찰이 서울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성찰만으로 도시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손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를, 다른 한 손에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들고 몸부림쳐보지만 도시가 지금 이 순간 직면한 과제들은 결코 한순간에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강조되는 개념이 바로 ‘회복력’이다. 세계경제를 주도했던 뉴욕, 도쿄, 런던 등 세계도시를 중심으로 한 버블경제의 몰락은, 내재된 도시의 회복력을 바탕으로 도시 창조성을 유지하는 작은 도시들의 교훈을 세계가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태리의 볼로냐, 일본의 가나자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등이 21세기의 새로운 도시모델로 급부상하였다.

 

에너지가 넘친다는 표현이 있다. 공간에 에너지가 넘친다는 표현은 그 공간에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삶이 북적대고 있음을 증거한다. 삶이 있는 한 공간에는 저마다의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의 성격이나 크기가 다를 뿐이다. 도시가 살아서 생명을 키우는 텃밭이 되려면 에너지의 총합이 큰 공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건물의 규모가 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고 입주된 상점의 매출이 크다고 에너지의 크기가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을 유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자신을 통해 발생되는 에너지가 큰 공간, 즉 사용된 에너지의 크기보다 유효한 사회적 잉여 에너지를 많이 만드는 공간이 에너지가 큰 공간이다. 자본에 의한 공간에너지보다는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삶에 의한 사회적 에너지가 많이 분출되는 공간이 바로 공간에너지가 큰 공간이다. 여기에서 도시의 회복력이 나온다.

 

우리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쫓아다니며 돌아보는 세계의 문화도시나 환경생태도시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사회적 에너지가 자생적으로 재생될 수 있는 회복력으로서의 도시환경을 갖고 있다. 사회적 에너지는 자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부가가치를 양산해내는 힘으로 작동한다. 자본에 의한 공간에너지가 큰 대표적인 공간이 쇼핑몰이다. 쇼핑몰의 경우 그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쇼핑몰에서의 소비적 삶을 통해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모되는 간접적인 공간 에너지의 소비량 역시 엄청나다. 반면 인간에 의한 공간에너지가 큰 공간인 광장이나 공원은 상생이 가능한 사회적 공간이다.

 

 

공동체적 일상의 광장이야말로 살리는 공간이다

 

도시는 늘 일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일상을 만들어내는 주연배우로서의 도시 소시민들의 삶은, 그 삶을 연출해내는 주체의 다양성과 삶이 드러내는 역동성을 통해 도시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살아 숨 쉬는 도시 속의 일상은 연출된 수많은 장소와 장면을 통해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묘사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도시를 가득 메운 바로 그 삶을 살아가는 가치와 태도를 되짚어 보고 깊이 생각하게 한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도시의 여정 역시 늘 희망적이진 않다. 구성원 개개인의 삶과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의 지나친 집착은, 도시를 우리 모두에게 열려 함께 공유하는 광장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갇힌 공간으로 만든다. 스스로가 타인들에게 문을 닫은 결과가 결국 도시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아니 스스로가 자기가 꿈꾸는 영역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는 자폐성 공간으로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숨을 헐떡이는 도시를 세상 밖으로 인도해 낼 수 있을까?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 고유의 밀실이 필요하며,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개성적인 삶을 담아주는 밀실과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광장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서로의 상호 관계와 작용 속에서 균형을 이룰 때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 형성되며, 그럴 때 비로소 개개인의 삶의 과정은 한 사회의 역사적 조건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 있다. 밀실로서의 개인의 삶과 광장으로서의 사회의 열망이, 그리고 개인의 열망과 사회의 삶이 하나 될 때 도시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밀실과 광장을 모두 껴안는 도시의 희망은 도시적 일상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네 삶이 서로 희망을 나눌 때 도시도 희망을 갖는다.

 

<사진> 공공공간의 사적 전용을 통한 일상의 광장화

 

 

작은 공간과 작은 공동체에 주목하자

 

공간을 통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도시. 이념적 방황에서 자유롭고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된 도시. 이런 도시에는 삶에 의해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작은 공간들이 가득 차 있다. 작은 디자인을 통해 큰 공간을 만드는 것은 이처럼 작은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공유될 수 있는 공간은 사적이나 공적으로 전용되는 공간의 중간 틈새에 존재하는 비워진 공간이고 순간의 필요에 따라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전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적으로도 공유되고 공적으로도 공유되는 공간. 사적인 공간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간.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공간. 이런 것들이 바로 공유의 장치를 갖는 공간들이다. 공간의 공유는 도시의 숨구멍이다. 숨구멍이 호흡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사적 공간의 공적 공유 가능성을 높이는 일, 공적 공간의 사적 전용 가능성을 높이는 일, 그리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교류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공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다양한 방식을 담아주는 공간은 오히려 비어 있는 공간이다.

 

 

공간 공유를 통해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자

 

공간의 사회적 공유는 개인적 체험의 극화劇化를 보장한다. 절제된 공간의 언어 속에서 개인적 체험이 극화되는 장소를 대저 사람들은 사랑한다. 그리고 유럽으로 향한 배냥여행의 발걸음에서 간혹 여행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은 이런 장소들을 발견하고는 ‘아’ 하는 짧은 감탄을 내뱉는다. 골목길 안에 살짝 들어앉은 ‘ㅁ’자형 건물의 마당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머리 위로 열린 파란 하늘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눈앞에 보이는 낯선 풍경도 살갑게 보이고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잊고 오래 머물고 싶은 편안함을 맛본다. 공간에 담긴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생활이 다르지만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사회적 공유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건축학자인 얀 겔Jan Gehl은 그의 저서 『건물 사이의 공공 공간에 담긴 삶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에서 외부공간에서의 사람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이러한 외부공간의 활동은 외부공간의 질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질적으로 우수한 외부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으며 이때 도시의 공공성이 확보된다고 본 것이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질의 문제는 외부공간의 물리적 질보다는 그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의 사회적 질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때 민주적 공공성이 확보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의 사회적 공유가 가능하다. 진정한 공간의 사회적 공유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공간체험은 극히 개인적인 극화를 보장하는 사적인 공유의 성격을 갖는다. 즉 모든 이들에게 공유되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사유화될 수 있고, 개인적으로 극화되는 체험이 사회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양방향의 소통을 가질 때 공간은 사회적으로 공유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공간의 사회적 공유는 공간의 물리적 공유뿐만 아니라 공간 안에 담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다양한 가치와 관계가 공유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공간의 사회적 공유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고, 내발적 재생의 잠재력이자 도시의 회복력으로 기능한다.

 

 

    

모심과 살림 10호(2017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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