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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동향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3차 정기포럼] “사회적경제와 정치” (8/25)
2016-10-27 17:50:37

 

주제 발제 (각 15분)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사회적경제와 생태적 사회전환

신지예 (녹색당 정책의원) : 사회적경제를 향한 녹색당의 시선과 실천

김기수 (대구 농부장터 협동조합 대표) : 사회적경제와 지역

 

전체토론 및 질의응답 (1시간 20분)

 

 

□ 토론1 : 김현우

 

“사회적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의미

 

저는 사회적경제의 위상과 역할, 의미가 세 가지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의 ‘자구책’이다. 연대가 됐든 위로가 됐든 머리 맞대고 등 부비면서 무언가 수를 내보자는 것이다. 사실 노동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도 시작은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러한 의미가 크다고 본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파열구’ 내지는 점진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진지’로써의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전면적 의미라기보단 그러한 의미와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진데, 사회적경제 영역과 조직이 제도화 되다보니 신자유주의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은근슬쩍 ‘공공서비스의 대행자’ 내지는 정부책임의 떠넘기기 수단으로써 사회적경제가 자리매김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듯하다. 저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우리의 현실이며, 나름의 합리적 논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논의를 그쳐선 안 되고, 사회적경제가 어떤 맥락에서의 운동성 내지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데 ‘지도 그리기’가 될 수 있을지 이야기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둘러싼 논리

 

“사회적경제와 정치”를 이야기 할 때 관련법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특징은 다양성과 유연함이라 생각하는데, 사회적경제기본법(이하 기본법)의 지원을 받으려면 뭔가 규격화되고 요건에 맞추고 서류에 종속되면서 우리끼리의 편법 같은 것이 횡횡할 것만 같은 우려가 든다. 현재 기본법 논의는 진영 논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소야대에서 통과 시키지 못하면 사회적경제의 판로가 닫히니 일단 법부터 제정하고 보완해나가자는 쪽이 있는 반면 사회적경제 법제화는 헌법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기에 세금을 퍼줄 이유가 없다, 유승민과 박원순의 싹을 밟아야 되기 때문에 저지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 보완이 필요하다면 무엇이 필요하고 우려가 있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예방 또는 제어할 것인지 논의해야 할 텐데, 지금은 법을 제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정치적 기회

 

이러한 현실은 이미 사회적경제의 실현 강박을 스스로들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법이나 조례가 없으면 사회적경제 조직이 존립할 수 없고, 기존 제도 정치에 의탁해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경제는 기존의 경제와 정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영역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기존 정치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 방식과 표현들을 모색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회적경제 특유의 불온함이 보이지 않고, 우리조차도 사회적경제를 신자유주의의 보완제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생태적 사회전환은 다른 정치를 통해 가능하다.

 

다음으로 “생태전환과 사회적경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리겠다. 하나는 지금의 에너지 수급 체제는 대의제와 대통령제, 양당 구조에서는 의제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생산과 관련하여 전력 수요 예측은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연구자 몇 명이 만들어내고 산업부에서 그것을 가져다 쓴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이 과정에 관여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하는 시늉 정도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밀양 송전탑 때처럼 밀양 주민들의 표가 얼마 안 된다고 여겨지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에너지 전환마을 운동은 굉장히 작은 단위의 정치로써 여러 환경 문제를 드러내고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며 파급 효과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의미는 갖지만, 국제기후 에너지 거버넌스 쪽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예전 사회주의권처럼 국가적 체제를 동원하여 에너지 수급 및 소비 문제를 집단적으로 논의하고 계획하며 민주적으로 책임을 나눠 맡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기후 변화의 대응과 해법이 지금처럼 시장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수준부터 마을 수준까지 지금과는 다른 정치와 경제 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정치 방식을 요구할 것인지, 여기서 사회적경제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는 다른 정치를 필요로 하고 다른 정치를 제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기존의 법제도에 종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 제도를 바꿔서 사회적경제를 살아남게 할 것인가라는 논의보단 사회적경제에 부합하는 정치를 어떻게 실험할 것인가부터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적경제 진영 내부의 논의와 동력이 충분치 않다고 여겨지면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법제도 마련은 좀 유보하고 근본적인 자기 점검부터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토론 2 : 신지예

 

“초개방 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가능하려면 공동체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의 기반은 공동체

 

사회적경제를 가능케 하는 여러 상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요새 한국은 초개방 국가 또는 초개방 경제라 얘기해도 될 정도로 에어비엔비, 우버, 카카오톡과 같은 거대 자본을 쥔 기업이 지역과 국가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걸 계속해서 보게 된다. 이것을 나라 단위에서 이야기하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시를 예로 들어보겠다. 서울에는 정말 많은 대형마트가 있다. 제가 살고 있는 마포구 망원동 근처에는 합정역과 월드컵경기장역 두 곳에 홈플러스가 있다. 조금 더 떨어진 수색역과 응암역엔 이마트가 있고, 동네 곳곳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와 같은 대형 유통 매장의 소규모 체인점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제 아무리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고 예산을 퍼부어도 한계가 굉장히 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들어가는 예산이 한 해 2조에 가깝다지만, 그 결과는 굳이 말 안 해도 아실 거다.

 

망원동엔 서울 5대 시장 중 하나로 불리는 망원시장이 있다. 5년 전쯤 합정역에 홈플러스가 입점한다고 해서 지역의 공동체 단체들과 망원시장 상인들이 함께 대규모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지역 경제의 붕괴를 막자는 목적으로 꽤 오랫동안 시위를 진행했고 그 과정이 언론에 꽤나 보도됐지만, 그럼에도 홈플러스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망원시장 주변은 두 집 건너 술집이고 네 집 건너 카페다. 주거지역이었던 연립주택 한 동이 전부 허물어진 자리에는 상가가 들어섰고, 지역 안에서 작은 형태로 이어져 오던 소규모 자영업자들 역시 솟아오르는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해 지역을 떠났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회적경제는 전적으로 공동체와의 관계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소수 자본가들의 의지와 욕망을 국가 차원에서 재현해오던 유사 시장이었다는 것을 사회적경제를 통해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북한에서 이주한 의사 출신 노동자가 빌딩 청소를 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포스코가 설립한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2014년 고용노동부 장관상도 받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기업에서 안전사고가 났음에도 관리자인 포스코 출신의 상무는 유족이 사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대화를 거부했고, 빈소에 와서는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다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대기업들이 사회적기업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사회적기업이 뭐냐’라는 상 자체가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 재정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에서 순환되는 관계기반의 사회적경제로

 

우리 사회는 80%가 넘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2년 반 정도 거주하고 이동하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비정주민들이 정주민보다 4배나 높게 많은 곳이 서울이고, 이런 곳에서 주거를 기반으로 공동체 감각을 만드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제 친구 중 하나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사는데, 직업이 파도를 타는 ‘서퍼’다. 언뜻 봐서는 돈을 못 벌줄 알았는데, 부업으로 사진을 찍어 번 돈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하더라. 동네의 여러 주민들, 상인들과 친구 관계를 맺고 살다보니 그가 찍은 사진을 지역에서 소비해주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친구는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친구들 가게에서 쓴다. 즉, 그가 벌어들인 돈이 그들 관계망을 벗어날 확률이 매우 적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히 그 친구가 속한 그룹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역 커뮤니티 문화로 자리 잡혀 있다고 한다.

 

저는 순환 중심의 사회적경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의 핵심은 경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를 다루는 정책에서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어떻게 공동체적 관계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 관계를 어떻게 확장시키고 다음 세대로 넘겨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고 본다. 사실 올해 녹색당이 선거에 나오면서 사회적경제와 관계된 세부과제를 정책적으로 채택했었다. 지역 순환 경제를 구축하자, 그것을 바탕으로 녹색 일자리와 사회적기업을 확대하자,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영역을 풀뿌리 지역형 사회적경제 조직 육성자금으로 만들자,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 안전망 구축과 사회 서비스를 그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조직들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 등의 안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이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진 못한 것 같다.

 

우리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일자리 창조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은 ‘스머프 마을’이다. 사회적기업을 나온 후, 지역에서 청년들과 ‘창직(직업 창조)’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청년들은 직업이 없다. 아예 직업 자체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들끼리 스머프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스머프 마을은 누군가는 빵을 만들고 누구는 나무를 베는 등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을이잖나. 스머프 마을에서는 그들끼리 살아가다보니 빵 만드는 친구가 빵을 못 만들어도 그 빵만 먹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맛없던 빵도 계속해서 만들다 보면 당연히 잘 만들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굉장히 커다란 스머프 마을이다. 역할은 한정되어 있는데 스머프는 너무 많다. 다들 장인이 될 수 없는 시대에서 의자 뺏기 싸움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제 주변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건 우리끼리 스머프 마을을 만들어서 각자가 잘 하는 일들을 맡고 각자가 창직해서 우리끼리 이 안에서 소비를 해보자는 것이다. 저는 이 그림이 사회적경제 속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 토론 3 : 김기수

 

“사회적경제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제대로 된 주체를 형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회적경제를 위한 정치는 어떤 사회를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

 

87년 6월 항쟁부터 약 20년 간 정치 조직에 있으면서 15~6년동안은 정치를 전업 삼아 살았다. 그런데 지금 정치 이야기를 하려니 막상 정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정치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들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정치 같은데, 그럼 그게 어떤 정치냐는 것은 결국 그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추구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제가 사회적경제에 깊은 관심 갖기 시작한 것은 정치를 떠날 때쯤이었다. 그때가 아마 2007년 쯤이었을 것이다. 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이후 정당도 만들고 2,000년에 진보정당 일도 했다. 당시 진보정당은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이나 전농, 전빈련 등 이런 조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나는 이 점에 대해 평가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었는데, - 요즘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만들자 말자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기반한 조직이 각각의 다른 사회의 비전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조직을 갖고 있었나? 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평가와 반성을 하고 있었을 때 당시 핵심 화두가 ‘지역’이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지역이라는 화두가 결국 지역에서 뭔가를 찾아내자는 이야기인데, 이 논의가 조금 더 진척되었더라면 지역 살림살이 경제라고 하는 사회적경제와 관련한 실천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 정당 조직들은 지역에서 사업을 하자고 하면서도 사실 지역에서 사업은 하지 않고 지역에서 사업을 하자는 캠페인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그 때 하나의 붐이었던 ‘민중의집’도 새로운 의제를 찾거나 지역에서 대중들을 조직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운영원리를 갖춰 나가며 좀 더 지역에서 발전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

 

결국 정치는 정당이 해야 하는 것이고, 정당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생각이 비슷한게 아니고 국가나 사회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후 사회의 상에 대해 토론하면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자기훈련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예전에 진보정당을 구성했던 민주노총 같은 조직들은 제가 보기엔 전문집단들한테 자기 정치를 위탁했던 것 같다. 그래놓고 나중에는 그 전문가집단들이 자신들을 소외시켰다고 하고...

 

결국 정치란 생각이 같은 다수를 만드는 과정이고,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운영원리를 체득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면,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경제 활동은 대중적으로 주체들을 형성해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사회적경제조직이 제대로 된 로컬푸드를 가능하게

 

제가 하는 일이 로컬푸드인데 농림부에서 이렇게 규정했더라. ‘농업에 있어 보조적인 수단’. 이건 사회적경제하는 사람들하고 완전히 다르다. 실제 우리가 농촌 농업 문제를 보면서 이 방법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느냐? 경험상으로 보면 다른 대안이 없다. 이런 유통형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조직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농협도 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적경제조직이 아니면 로컬푸드를 제대로 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정책을 제대로 하려면 사회적경제조직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자체의 역할

 

사회적경제를 하면서 지방정부를 외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올 해 농부장터를 확장해서 개소식할 때, 대구시장님이 오셨는데 그때 말씀드렸던 것이 있다. 시에서 제발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물건 팔아주겠다고 하지 말고, 사회적기업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업할 수 있도록 정책이나 시정나 제대로 된 조례나 이런 제도적 틀을 만드는데 집중해주시라고 했다.

 

지금은 사회적경제 주체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할 때

 

현실적인 문제를 좀 이야기하자면 90년대부터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도적인 민간단체가 계획과 기획에 기반해서 자기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사회적경제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정부와 관계를 논할 만한 주체가 있을까? 저는 현재 없다고 본다. 그러면 지방정부나 지방 정책과 관련해서 사회적경제조직이 역할을 하려면 지금은 제대로 된 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우리가 현장에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특정 지역 차원에서 지방정치에 참여하고 그들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간헐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우선 그러한 사업들을 논할 만한 사업주체들을 최소한 만큼이라도 먼저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질의응답 및 토론

 

김신양  김현우님께 질문 드린다. 앞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진영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있으니 그러한 문제 예방과 보완을 위해 개입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김기수님은 아직은 지역에서 사회적경제와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를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두 분의 이야기가 모순되진 않지만, 우리의 능력과 재정이 한정된 상황에서 사회적경제와 관련하여 우선된 게 무엇이고 무엇부터 집중해야 하는지 추가적으로 얘기해주시길 바란다.

 

 

김성기  정치는 세력의 결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저는 사회적경제 진영의 세력 결집의 세 가지 시스템에 대해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민 주도로 사회적경제의 흐름을 만들자고 해서 ‘당사자 협의회’가 많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이 당사자 협의회가 일반 산업 부문에서 당사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형 협의회 조직하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결국 ‘민’은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면서 ‘민관 거버넌스’를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잘 아시겠지만 민관 거버넌스가 잘 작동 되려면 민도 힘이 있어야 한다. 민이 힘이 없는데, 민관 거버넌스가 작동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민관이 거버넌스를 해야 하니까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메커니즘이다. 요즘은 기업보다 중간지원조직, 협의회가 더 많다고 얘기될 정도다. 그래서 저는 이 세 부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왜 이러한 문제가 생겼는지, ‘사회적경제와 정치’가 민 주도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성희  저는 사회적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본래의 고유 가치를 버리고 왜곡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자기 고유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고 시장과 국가의 작동 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즉, 사회적경제 조직이 자신의 길을 충실히 갈 때 자연스럽게 정치화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보육 정책에 개입해 들어가는 것, 민달팽이가 주거 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결국 자기 영역의 확장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가 정치 세력화 된다는 것이 꼭 정당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자기 조직이 갖고 있는 사회적 아젠다를 깊게 파고들면서 정치 이슈화, 정책화 시켜나가는 것이 사회적경제 정치화의 가장 핵심 요소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정당화 되는 것은 그 고유 원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안병일  김기수님께 질문하고 싶다. 과거 진보 정당에서 운동하셨는데, 농부장터 협동조합의 직원과 조합원들을 포함하여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실 의향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그럴 의향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기수  먼저, 김성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가 제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지금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실제로 현재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실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은 아까 말씀하신 협의회와 같은 조직일텐데, 그 조직들이 제대로 조직화 과정을 거친 당사자 조직인가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할 것이냐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리고 저는 사회적경제의 정치화, 정당화와 같은 개념보다는 사회적경제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느냐, 그 조직들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제가 진보 정당을 했기 때문에 그 프레임에 빗대어 말씀드리면, 저는 대중이 진보적이어야 진보정당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경제 조직 과정에서 공유와 참여, 민주적 운영과 같은 훈련이 대중적으로 제대로 되어야 그 이후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간접적인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정치 활동이나 정치 이슈에 대해 협동조합 내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사실 농업 문제를 이야기 하면 그게 바로 정치 이야기다. 농부장터 네이버 밴드를 열어보면 지금 사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왜? 성주가 우리 지역과 30분 거리에 있고 농부장터 생산자들이 쫙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활동하는 과정이 곧 정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냥 에피소드로는 이런 게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제 정치 경력을 숨겼다. 배추 장사하는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한 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런데 올 초에 우연히 대구의 한 일간지 주간 섹션 3면에 걸쳐 ‘김기수와 로컬푸드 이야기’가 기사화 됐고 내 이력이 다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이것이 농부장터 조직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의외로 거부감이 없는 거다. 대구라는 보수적인 지역에서도 대표자의 전력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신뢰의 계기가 만들어지는 측면이 됐다.

 

김현우  저는 지금 발의된 안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되면 사회적경제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짜 궁금하다. 당연히 현장에 도움 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방향성에 대하여 점검하고 논의할 여유가 없어질 것 같다. 당장 지원 서류 준비하고 그 규격에 맞도록 각 조직의 인력과 사업을 셋팅 하느라 바쁠 거라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가 사회적경제 진영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의아스럽다. 사회적경제의 원칙들이 지금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고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기 확인과 세력 규합이 우선이라 생각하는데, 제도가 앞서가거나 강한 규정력을 발휘할 경우에는 기초적인 공동체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신지예  실제로 우리에게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 또는 정치라고 얘기될 만한 토양이 있을까. 우리가 정치 세력화를 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꽃피울 수 있는 지역과 공간이 있을까. 그나마 잘 된다고 하는 성미산 마을에서도 한계를 여실히 느끼는지라 이 질문에 회의적이다. 정치 세력화를 한다고 하면, 다양한 이해집단이 각자의 이해를 상충시키면서 정치력이 생겨나야 하는 건데, 지금은 그런 공간 자체가 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처럼 물리적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는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회적기업 또는 협동조합의 집단들과 정당 혹은 지역 공동체, 지역 정치를 하는 그룹이 어느 정도 상호 연계를 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창규  아까 신지예님이 스머프 마을에 빗대어 서울에서 지역 순환형 경제를 나름대로 실험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셨는지, 실제로 대도시에서 지역 순환형 경제가 가능할지 질문 드린다.

 

신지예  사실 서울에서 지역 순환형 경제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대기업 대자본이 골목에까지 침투해서 빵집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집어넣는 일이 없도록 규제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는 사실 기득권자들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사회적기업 주체들이 사회적기업 만이라도 대기업들이 못 들어오게 하자, 사회적기업은 지역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그림이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신양  김성기님이 ‘사회적경제와 정치’의 민 주도성을 어떻게 살리고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질문을 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우리에게 그 ‘민’이라는 주체가 있냐는 것이다. 저는 민이라고 하는 것의 정확한 주체가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대개 조작된 민, 민관으로서의 민은 존재하는데, 주체로서의 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경제와 정치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의 방식대로 살아보지 않았고 그걸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냐는 것이다. 민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민관 거버넌스를 얘기할 수 없고 법을 만들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사회적경제와 정치를 고민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알고 깨쳐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 것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이 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 그럼 그것은 누가 할 것이고 어떤 장에서 만들 것인가를 우리의 문제로 끌어당기고 토론해보자는 거다. 민이라는 주체는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세울 거고 각자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할 건가를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박성희  저는 ‘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미산 마을만 하더라도 ‘민’들의 사례가 곳곳에 많다. 규모가 작아서 지방자치단체가 이야기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치 않다. 사실 사회적경제는 다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거의 다 정치다. 저는 사회적경제가 너무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무기를 많이 못 쓰고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경제는 엄청난 가능성들을 곳곳에서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현우  박성희님 말씀에 동의한다. 김신양, 신지예님의 이야기 들으면서 사실 의아했다. 왜 이렇게 비관적인가.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뿐 아니라 다른 체제가 뜬다 하더라도 사회적경제, 공동체 경제는 보완적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크게 봐서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발전될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게 확산의 동력을 잘 잡아가고 있나를 봐야 할 것 같다. 망원동 사람들만 해도 정치 조직화는 아니지만 현재 사회적경제스러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한 활동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것이 사회적 보이스로 느껴지고, 위상을 점검하면서 점차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비해 너무 일률적인 해법을 추구하는 제도화가 앞서나가는 게 아닌가 그것이 우려스럽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이재기  ‘사회적경제와 정치’에서 정치를 ‘정치의식’이라고 한다면, 사회적경제 활동은 정치의식을 상당 부분 다양화시키고 공동체 지향성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저는 민주노동당 건설 시기부터 진보신당, 노동당까지 정당 활동을 쭉 해왔는데, 그것은 권력 투쟁의 정치, 중앙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였다. 그런데 지금 <작은손적정기술협동조합>에서 적정기술 운동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활동에 참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이전엔 캠페인과 선동으로써 정치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제가 만든 제품을 두고 이게 왜 좋은지 설명하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다. “이거 뭘로 만든 거예요?” “예, 버려지는 파레트로 만듭니다.” 이렇게 이야기 나누다보면 상대방이 제가 폐자원을 가지고 만든 제품에 대체로 호의를 갖더라. 그러면서 이 제품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등을 알게 되면서 기본적으로 그 사람 기저에 있는 정치의식이 변화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물론 이것이 이 사회를 뒤집어엎을 만큼의 속도를 언제 낼 건가는 아직 미지수다.

 

황덕순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사실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어떤 논의를 하든지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바꿔나가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럼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출처]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웹진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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