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 공모전

김성연주부의 한살림일기

 

('나혜석주부의 한살림일기'를 감명깊게 읽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패러디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3월2일 토요일 AM 10:15

 

 매장안에 아기를 안은 엄마조합원이 들어왔다. 아기만 보면 어린이집에 있는 내 아이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서 시키지 않아도 아이에게 내 발걸음은 저절로 움직인다. 

냉동실안 소고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조합원님이 한우 1등급 소고기는 없냐고 물어보신다. 등급이란게 생각해보면 좋은 재료일수록 등급이 올라가야 하는데 소고기에 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식생활강사양성과정을 들어보니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단순히 몸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아닌 지구안의 생태계를 움직이고 있는 실세였던 것이다. 

원래 풀을 먹는 소는 더 좋은 더 많은 기름기가 흐르는 1등급 소고기가 되기 위해 곡물을 주로 먹고 있다. 넓은 들판을 뛰어 놀고 풀을 뜯어먹어야 할 소는 좁은 공간에 갇혀 옥수수를 먹으며 기름의 양을 늘리고 있다. 옥수수를 많이 먹다보니 간이 손상된 소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1등급이라는 최상위등급이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포장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1등급 소고기는 지방의 양이 20% 이상일 때 주어지는 등급이라고 하니 1등급 한우를 먹는 갓난아기를 생각하면 그 기름이 몸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 자못 궁금하다. 이유식을 먹일 땐 3등급을 먹이는게 오히려 좋다고 들었다. 안좋은 환경에서 안좋은 음식을 먹는 소를 가장 비싸게 사먹고 있다니 하긴 이게 어디 이것만에 국한된 일일까.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중 어떤걸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실천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난 넘쳐나는 정보로부터 나를 보호하기로 했다.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기.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굳이 하려고 하지 않기. 

그럼으로써 알고 싶은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의 질은 한층 높아졌다. 그래 정보에도 디톡스가 필요한거구나. 

매장에서 일하는건 참 재밌다. 

내가 궁금한 건 조합원님들도 궁금할 것 같아 설명을 적어 붙여놓고 정말 내가 주인인것처럼 매장운영고민을 하고 있으니 애정이 절로 간다. 

사장님이 있어 시키는 일만 하는게 아닌 내가 고민하고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신기하고 보람되다.

허나 아직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는 나는 새벽에 무심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려본다.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더럭 겁이 난다. 

미안하게도 아이의 아픔을 먼저 걱정하는게 아닌 출근을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한살림이 너무 좋아 매일 한살림을 만나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나로인해 매번 배려해주는 다른 활동가언니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일을 하기에 아직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을 겪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남얘기가 아니다. 

 

--------------------------------------------------------

 

2016년 8월16일 목요일 PM 10:30

 

 오늘도 어머니께서 텃밭에서 기른 갖가지 채소를 보내오셨다. 텃밭에 대한 로망은 있으면서 포대로 가지고 오는 채소들을 보면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옆집에도 나누고 친정엄마에게도 나누고 그래도 아직 다 소화할 수 없이 남아있는 채소들.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식들을 위해 본래 지으시는 농사말고 옆에 따로 텃밭을 가꾸신다. 쉬는 날 없이 일하시는 어머니.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다리도 많이 아프시지만 쉬시는 모습을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다. 식사도 상에 차려 먹을새 없이 후다닥 드시는 어머니. 

그렇게 생활하시며 5명의 자식을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 잘 키우셨다. 그러니 일 안하며 아이만 보는 팔자좋은 며느리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실까. 

처음 식생활강사양성과정 수업을 받을때 농약과 화학비료의 심각성을 알고는 어머니가 주시는 농작물을 먹기가 조금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며 어머니 혼자 힘으로 농지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어머니를 도와 농사지을 수 있는게 아니라면 그런 마음 먹는것 자체가 참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와드릴 수 있게 되었을때 조금씩 바꾸는 노력을 해야겠다.

일년농사 열심히 지어봤자 인건비는 커녕 여러 약재를 사고 농기계를 빌려 밭을 갈고 나면 남는게 없는 현실. 판로라고 해봐야 농협이 고작인 소작농들. 농협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웃고 우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농지를 유지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전부였던 밭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나면 농사가 아닌 공사를 하고 있다. 제주지역 어디를 가나 집과 관련된 현수막이 걸려있고 임대라고 써붙힌 수많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공사장으로 변해버린 시골. 더이상 농사를 해야할 목적을 잃어버린 농민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매일 먹고있다. 배불러 죽겠다 외치면서 먹고 또 먹고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밥상에 올라온 재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채 포장을 뜯고 요리를 한다. 어느 계절에 재배되는 채소, 과일인지도 모른채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도 의식하지 못한채 카트안에 담고 담는다. 아이들이 사달라는 물건들로 실랑이를 하며 한아름안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려서 배달시켜 먹는다. 

 하고싶은 많은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어내내가 해야하는 많은 것들을 간소화하기 시작하면서 장보는 것마저 고민하게 되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리던게 한살림을 이용하면서부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형마트에서 사야하는 물건은 기저귀, 고무장갑, 수세미로 한정짓고 여분을 준비하여 마트가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채소와 과일을 살때도 일일이 제철채소를 확인하지 않아도 국내산인지 친환경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매장안에 무화과가 나오면 “아.. 무화과 제철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가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는 것들이 있어 간혹 “제철인가?” 생각이 될때도 있지만 믿고 있으니 괜찮다. 다양한 요구들에 다양한 시도가 있는거겠지. 생각하게 된다. 시대의 요구가 있을때 소리높여 논의하며 물품에 반영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봐온터라 믿음이 있다. 

조합원이 목소리를 낼 때 한살림이 귀기울인다. 불만은 품고만 있는다면 어느 누구도 알수가 없다. 작은 의견 하나하나가 한살림을 만드는거라고 할 수 있다. 

아 이제 어머니가 주신 소중한 고추로 고추장아찌를 만들거다. 냉장고안에 있던 마늘도 넣어 맛있게 만들어야지. 

장아찌를 다 먹고나면 그 간장에 깻잎을 넣고 깻잎장아찌도 먹고 양파장아찌도 먹어야겠다. 귀한 간장 국물까지 다 먹어야지. 

 

숙성되는 3일을 어떻게 기다린담. 

 

--------------------------------------------------------

 

2017년 2월18일 일요일 AM 6:00

 

 알람이 울렸지만 좀 더 누워있고 싶어 눈을 감고 아이의 코에서 나오는 숨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그러다 5시30분 짝꿍의 알람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켠다.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어제 쌀 씻으며 받아놓은 쌀뜨물로 세수를 했다. 쌀뜨물도 물을 오염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허투로 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화분에도 주고 국도 끓이고 세수도 하고 있다. 쌀뜨물로 세수하고 사용하는 화장품의 갯수를 줄이고부터 온갖 트러블이 자리잡던 내 피부는 조용해졌다. 트러블을 없애기 위해 바른 수많은 값비싼 화장품이  오히려 내 피부를 망가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이런게 피부에만 해당이 되는게 아니었다. 

 필요할 것 같아 구입한 물품일 들이 예쁜 쓰레기로 전락하여 우리의 소중한 공간을 앗아가고 있었고 물건을 싸게 구입하려고 검색을 시작하면 너무나 다양한 물건들에 치여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새 소진되곤 했다. 

세상은 편리라는 이름으로 더 좋은 세상인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 삶의 질은 오히려 곤두박질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남과 비교하게 되는 갖가지 SNS는 내가 잘못 살고 있는것마냥 느끼게 했다. 

무엇이 잘못된걸까. 

동백오일과 스킨이면 충분했는데 나는 욕심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델들에게 돈을 퍼주지 않고 생산자님들에게 적정한 생산비를 줄 수 있으니 나는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생산자님들은 좋은 물품의 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한살림을 알기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이제라도 알아 다행이다.

몸단장을 마치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

갓난 아기를 키우며 24시간을 내내 긴장하고 있으면 어느새 우울의 그림자가 나를 둘러싸게 마련이다. 나만 우울하면 그만이지만 우울한 사람이 돌보는 가정은 방치되곤 한다. 우울의 바다에서 헤엄쳐 빠져 나오지 않으면 가정은 더 깊은 바다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나만의 시간.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면 나를 생각할 기회도 나를 다독일 시간도 없게 된다. 

그래서 난 오늘도 채소액과 함께 나만의 공간에 앉는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해봐야 좌식의자와 간이테이블이 전부지만 그래도 이 곳에 앉아있으면 주변이 나를 안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다. 

채소액을 마시고 있으면 정말이지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딱 그런 맛이다. 

채소액을 마시며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

여러 번의 출산과 육아로 면역력이 바닥을 칠 때 만나게 된 채소액은 나에게 구세주같았다. 

일어나는게 개운해졌고 잔병치레를 하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 

그런 채소액을 마시며 나는 일기를 쓰고 책을 본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 

 

----------------------------------------------------------

 

2017년 10월2일 월요일 AM 5:40

 

 고민고민끝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매장에서 일하며 모아놓은 돈이 좀 있어 저질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막내가 긴 비행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막내시누이가 봐준다고 해서 한시름 놓고 떠날 수 있다. 

언제까지 하고 싶어만 할거냐면 결정을 내리고 나니 의외로 담담해졌다. 영국에 있는 후배를 만나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대뜸 부탁이 있다고 한다. 생리대때문에 생리때마다 너무나 괴롭다며 면생리대를 사다달라는 것이다. 그런 부탁이라면 너무 반갑다. 

사이즈별로 한달 분량을 준비하고 포장까지 했다. 쓰레기가 되지 않을 이런 선물은 정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너무 좋다. 

여성이라면 한달에 한 번 거부할수도 피해갈수도 없는 일주일이 있다. 매번 그 기간동안 고통을 느껴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줄여주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허나 잘 활용만 한다면 오히려 비용면에서 들어가는 돈이 초기에 물건 구입할때 말고는 없으니 얼마나 실용적인지 모른다. 

나도 처음엔 끝나갈 무렵에만 사용하던걸 점차 사용횟수를 늘이고 있다. 이렇게 친환경적인 실천을 내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손빨래를 하는 번거로움을 이기고도 남았다.   

생리대 파동으로 한때 한살림엔 면생리대가 없어 판매가 안 될 정도였다. 

내 딸이 생리를 하게 된다면 면생리대를 선물로 주고 조금씩 시도해보게끔 잘 꼬셔야겠다. 

암튼 이번 여행 무탈하게 잘 지내다 돌아올 수 있었음 좋겠다. 

아이셋과 함께 하는 여행이 안봐도 비디오지만 그래도 여행 전의 설레임은 마냥 느끼고 싶다. 

 

--------------------------------------------------------

 

2018년 4월20일 금요일 PM 8:40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유팩 매장에 가져가 화장지 받고 오는 날. 

안그래도 좁은 집의 베란다라서 소중한 공간인데 우유팩에 잠식당하고 있어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짝꿍과 함께 큰 가방 가득 우유팩을 들고 자랑스럽게 매장에 갔다. 우유팩이 화장지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도 함께 갔다. 

우유병안의 우유를 먹고 싶지만 매번 버릴때마다(재사용할 우유병이 넘치고 넘쳐서) 너무 아까운 마음에 팩안의 우유를 산다.

우유를 먹고나면 그 안에 물을 받아둔다. 

그렇게 몇 개의 다먹은 우유팩이 모이면 화분에 물을 주는 날이다. 

우유의 영양가가 조금씩 발효되어서인지 그 물을 먹은 식물들은 정말이지 예전과 비교가 되지않게 무럭무럭 자란다. 

잘 자라는 모습을 보니 관심을 안가질 수가 없다. 

바로 선순환의 고리.가 된 것이다. 

이뻐해주고 이뻐해주니 잘 자라고 그리 자라니 더 이뻐지고.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더니 “어떻게 그 집에 있으면 아이든 식물이든 잘 자라냐”며 이야기 해주었다. 어찌나 고마웠던지 내내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살림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살리는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이웃에게 화학세제를 먹이지 않았다.”라고 일기를 쓴 한혜석 주부처럼 선순환의 고리를 확장시켜 나가고 싶다. 


--------------------------------------------------------

 

2018년 10월27일 PM 9:15

 

 오늘도 짝꿍이 준 살림봉투를 가지고 룰루랄라 한살림에 갔다. 일부러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말고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만 들고 매장으로 들어간다. 

며칠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식재료만 사용했더니 오늘은 먹을거리가 뚝 떨어져 돈을 많이 쓰게 될 것 같은 기분이어서 제한을 두려 한 것이다. 냉장고 속은 참 신기하다. 꺼내 먹고 먹어도 먹을것들이 나왔다. 소비를 지연하다보니 참 재밌었다. 그동안 냉장고 속에 저축을 이리 많이 했었구나. 뼈져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매장에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다 아는 활동가분들이라 보고 보고 봐도 반갑다. 하긴 서로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수다도 떨고 싶은 마음이지만 일에 방해가 될까봐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매장에 가면 눈 마주치며 인사해주시는 분들. 웃어주시는 분들.

노란 매장바구니를 들고 하나하나 살펴본다. 익숙한 물건들 속에 새물품이 숨어있진 않은지 꼼꼼히 보려한다. 

오늘 내가 사야할 건 맛간장, 달걀, 우유, 떡볶이떡, 쌀이다. 

사실 어린잎채소도 먹고 싶은데 플라스틱 용기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같은 이유로 망설이게 되는 홍합, 생미역. 물품의 품위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거 보면 뭔가 개선의 노력은 같이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행사장에서 제공되는 생수병으로 아이들 손을 씻기는 분을 볼 때가 있다. 넘치고 넘치니 소중하게 보이지 않는거다. 행사장에 널려있는 생수병은 이제 곧 채 다 먹지도 않은 상태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쓰레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자연을 병에 담아 돈을 받고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무리들을 생각한다. 소비가 대량으로 되고 있으니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훼손의 지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우리들. 

아직 어린 막내아이가 있어 병원에 가야할 일이 종종 있다. 같은 병원에 다니니 다니는 약국도 매번 같다. 그곳에 가면 여분의 덜어먹을 약병을 주지 않고 비닐도 주지 않는다. 한 두번 괜찮다 웃으며 말씀드리니 기억을 하신거다.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것과 함께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면서 정말 예쁜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약국안에 갇혀있는 생명체가 너무 불쌍하다 하시며 집에 가져가서 잘 돌보아주라고 부탁하셨다.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아이들이 그렇게 좋으냐며 묻고 묻는다. 

잘 가는 까페에서 말하지 않아도 머그에 커피를 담아 주는 것. 말하지 않아도 영수증을 주지 않는 것. 그래서 단골이 참 좋다. 

나에게 으뜸 단골은 단연 한살림.이다. 

한살림냉장고가 우리집 냉장고라고 생각하며 매일 드나든다. 어찌보면 놀러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되어질 정도다. 

지금 육지에 있는 몇몇의 매장에서 벌크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제주에서도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되어질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벌크판매가 되었을 때 매장활동가님들이 겪을 고충과 조합원의 생활실천(좋아보이는 물건만 쏙쏙 빼가는 일은 우리 조합원들은 하지 않겠지.라는 착각 아닌 생각)이 어떻게 어우러질지도 생각하게 된다. 

벌크판매가 시작된다면 우리 식생활위원회에서 비닐을 대신할 주머니를 만드는 신나는 모임을 기획해야겠다. 주머니앞에는 감자모양, 애호박모양, 사과모양을 새겨야지. 그 주머니들이 걸린 주방공간이 얼마나 이쁠까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온다. 이런 일상생활실천운동이 너무 힘들지 않은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활동안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지 못한다면 좋은 일이여도 지속되긴 힘들 것이다. 버리는 물건들은 한번 더 들여다보고 그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하면 버려지는 물건을 만들지 않을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의식은 습관이 되지 않으면 어느새 내 손안에는 쓰레기들이 넘쳐나게 된다. 

참 글은 쉽고, 말은 더 쉽다. 

나로부터. 를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하자. 

 

-----------------------------------------------------

 

2018년 11월17일 토요일 PM 5:20

 

 오늘은 모처럼 우렁각시 소모임에 다녀왔다.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몰라보게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지금의 강정은 불과얼마전과 비교해도 너무나 많이 변해서 갈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삼거리 식당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길건너 와 전혀 다른 풍경의 장소. 이 장소에서는 여전히 평화를 위해 일상을 사는 지킴이들이 밥을 먹는다. 해군기지가 세워진 마당에 그곳에 계속 도움을 줘야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해군기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연결고리의 평화활동들을 해내고 계신 분들이 그곳엔 아직도 많다. 

내가 하지 못하고 있는 활동을 해주시는 그 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한달에 한번 밥하러 가는 일. 근데 그 일마저 바쁘다는 핑계로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밥을 먹으러 오는 활동가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아쉬운 마음이지만 다른 곳에서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걸 알고있다. 

토요일이라 온가족이 출동했다. 손은 조금 보태고 밥은 한솥 먹고 온 것이다. 참 염치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니 활동가님들이 마구 반겨주신다. 아이들이 있는곳에 평화가 넘친다고 말씀해 주신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해주신다. 

내가 고맙고 고맙다. 건강해주셔서… 한결같이 웃어주셔서… 밥 맛있게 드셔주셔서. 

우렁각시 식구들과 있노라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게 참 많기도하다. 물품이 담겨져 있던거라해도 지퍼백처럼 재사용이 가능한 비닐은 허투로 버리지 않고 일회용컵은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으며 누가 일을 많이 하고 적게하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를 업고 달래며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러 온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차 속에서 찡찡대는 아이에게 어디에 가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같이 가줘 고맙다고 말할줄 아는 엄마들은 그 자체가 평활활동가이다. 누구하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들도 크레파스를 하나 쥐어주니 돌에, 길바닦에 그림을 그리며 헤헤 웃는다. 우리가 공동체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뽕잎밥, 잡채, 굴겉절이, 황태계란국, 콩나물무침 등을 먹었다. 이곳에서 요리를 하면 요리수업이 절로 된다. 알아서 역할분담이 되고 있는 지금. 난 여전히 썰기 담당이고 앞으로 십년은 있어야 양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 그때쯤이면 이 삼거리식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해군기지가 사라지고 평화기지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