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생명사상 기행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찾아가는 한일 공동여행

 

지난 봄 생명사상 기행에 이어 가을에는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찾아가는 한일 공동여행을 진행했습니다. 3년째를 맞는 한일 공동여행은 과거를 바로 보는 여행을 통해 한일 시민들의 상호이해와 교류협력을 다지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올해도 역사학자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와 박맹수 교수(원광대학교 교수, 한살림 연구기획위원장)가 여행의 길잡이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재해와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명의 시대로 나아갈 위로와 성찰, 갈망과 열정의 기운을 함께 나누고 얻는 소중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일정 전체 일정 ; 2011111() ~ 116()

11

일 정

1()

일본 참가자 도착

2()

       ▶ 오전 경복궁, 덕수궁, 중명전(을사조약 강제체결장소)

한일 참가자 교류회 (저녁 6, 장충동 한살림 5층 교육장)

숙소 : 캐피탈호텔(일본 참가자), 공간*공감(한국 참가자, 아래 약도 참조)

3()

       ▶ 서울 출발 (전세 버스) 청일전쟁 전적지(성환) 보은 북실전투지(농민군 학살지), 동학기념공원 (* 출발 시간 장소는 2일에 안내드립니다)

       ▷ 보은 지역 교류회 (저녁 630, 인근 식당)

숙소 : 레이크힐스 속리산호텔(일본), 속리산 인근 숙소(한국)

4()

       ▶ 전주 지역 전적지 ; 고창 무장기포지, 정읍 사발통문모의탑, 무명농민군위령탑,황토현전투 전승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봉준고택, 만석보 등

숙소 : 전주 리베라호텔(일본), 전주 한옥마을 ㅇㅇ (한국)

5()

       ▶ 익산 지역 ; 백제왕궁터, 미륵사지 등 (오후 전주에서 자유시간)

       ▷ 전주 지역 교류회(예정)

숙소 : 전주 리베라호텔(일본), 전주 한옥마을 ㅇㅇ(한국)

6()

       ▶ 완주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역사광장 대둔산 전투지 공주 우금치 전투지 서울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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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전적지 답사의 첫번째 장소는 충북 보은 지역입니다. 1894년에 보은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이 떨쳐 일어섰고, 계속해서 북진하여 오자, 이를 막기 위해서 청나라군이 배를 타고 아산만을 통해서 들어오고,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게 됩니다. 동학 농민군을 막을 힘이 없는 조선에 침입한 두 열강. 아산만에는 청나라군이, 평택에는 일본군이 진을 치고 이곳 성환에서 일전을 치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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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간척이 되어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아산만으로부터 바닷물이 들어와서 위에 보이는 사진의 다리 넘어까지 물이들어 찼다고 하는데, 7월달에 장마가 시작되면서 많은 일본군이 익사하고, 또 한여름 뜨거운 햇빛에 일사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끝내 일본군은 도강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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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당시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안성천 길을 따라 우리의 조선 민중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일본군은 이들의 집을 부수고 이를 이용해서 뗏목을 만들고, 또 일부 사람들은 강제 징집되어서 전쟁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전쟁을 피해 도망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환은 남쪽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 중 하나로서 주요한 거점이었고, 월봉산에 진을 치고 있던 청나라군을 새벽에 포위 습격하여 전쟁에 승리한 일본군은 이곳에다 전승 기념비를 세우고, 이 지역을 일종의 성지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철로가 지나가면서 고등 역장을 두게 되고, 도시 계획에 반영하고, 성환배가 유명해지는 등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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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북실지역으로 갑오년 전쟁 당시에 동학군이 정부 및 일본의 신식무기 아래 열세에 몰려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패하고 지친 동학군 2600여명이 전사 및 몰살된 지역이라고 합니다. 쌓이고 또 쌓인 전사자들, 그렇게 스러져간 그들의 피로 땅이 붉었다고 하며, 그 시체를 자양분으로 다시 초목이 자라고, 또 다시 후세가 태어나고...
부패한 관리, 무능한 왕, 삼정의 문란 등 제도의 폐해, 전염병의 유행, 흉년, 외세의 침입과 같은 총체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났지만 그 뜻을 다 피지 못하고 가버린 선조들을 위해 합동 묵념을 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뒤에 설치된 조형물은 솟대인데, 동학혁명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보은지역 동학문화운동 단체인 삶결두레 아사달에서 박달한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뜻을 모아 설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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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군을 관군이 매장한 곳이라 합니다. 지난 1992년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10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유골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지만, 흙 속에 포함된 인 성분 함량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검증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진달래 능선에 가지 마라'는 등의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왔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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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입니다.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는데 국화향이 물씬 납니다. 왼쪽 사진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역에서 노력해온 박달한님이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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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취회가 열렸던 터입니다. 2만이 넘는 동학인들이 전국에서 모였다고 하네요. 지리적으로 평야가 넓게 발달해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상업과 물산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벼베기가 끝난 곳에 장승 둘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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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지역의 동학문화단체 및 생명운동가들과 교류회 시간입니다. 준비해온 선물도 주고 받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시도 낭송했습니다. 일본 분들이 단체로 부른 고향이라는 일본 동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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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4 15:29 2011/11/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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