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를 묻으면 생명의 싹은 저절로 트지
저자: 강대진
출처: 경향신문

저자: 강대진
출처: 경향신문

사진설명:다시 걷기 시작한 탁발순례단
이제 다시 걷는다. 잠시 한숨 돌리려 내려놓았던 바랑을 다시 걸머진다.
계절은 한여름을 휘돌아 벌써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 그렇게 강렬했던 뙤약볕도 한결 수그러든 모습이다. 1년 반을 걸었다.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지금까지 1만여리를 걸었고 4만여명을 만났다. 길 위에서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내디딘 걸음걸음 염원했던 고귀한 생명정신과 평화로움의 씨앗은 어디선가 싹을 틔우고 있을테니.
도법 스님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중순 전북지역을 끝으로 잠시 휴식에 들어갔던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지난달 30일부터 경북지역을 다시 걷고 있다. 순례의 첫걸음은 지역인사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길 위에서 자고 얻어먹는 동냥아치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주었고 쌀 한톨을 데워 개다리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생명평화의 마음을 다 얻지 못한 것 같다.”
후회일까, 아쉬움일까, 아니면 욕심일까. 아마도 스님의 간절한 기원의 다른 표현이리라. 그러면서 스님은 “왜 굳이 걷는가”라며 걸음이 갖는 의미를 말했다. 지금까지 좀처럼 말하지 않았던 걸음의 가치. 스님은 걸음은 한마디로 ‘자기성찰의 다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그럼 왜 ‘성찰(省察)’이어야 하는가. 성찰은 곧 진실과 통하며 진실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되돌아 봄, 거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시작되고 변화의 씨앗이 발아한다는 것이다.
“모든 군더더기 다 빼고 뼈대만 추려보자.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한 고요.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정작 왜 사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게 우리의 자화상인가.
스님은 “평화로운 생명의 연장과 유지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생명의 평화로움을 위해 군더더기로 필요한 것이 돈이요, 권력이요, 밥이요,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군더더기에 머물러 있을 뿐 한꺼풀을 걷어내면 나오는 단순한 진실에 눈뜨지 못하고 있다”며 “그 진실에 눈뜨게 하고, 진실로 움직이게 하고, 진실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 이 걸음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럼 생명평화를 실천하는 길은 먼곳에 있는 것인가. 1년 반을 걸으면서 그렇게 땀 흘리고, 신발이 헤지고, 발바닥이 터져나가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스님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나’를 뛰어넘는 것이 곧 생명평화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인류사회의 모든 갈등과 고통, 전쟁은 ‘나로부터 파생된 나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됐다는 것. 그 대표적인 것이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스님. 스님은 “만일 부시와 같은 힘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시처럼 휘두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우리 한번 솔직해져 보자”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인의 모습, 베트남인을 상대했던 파병군인들, 세계수위를 달리는 가정내 성폭력, 이런 쓰레기 같은 문제들을 주변에 깔아놓고 살아가면서 과연 미국 부시를 욕하고, 일본을 탓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스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런 일상을 만들어 놓고도 그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설사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전쟁 속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바로 그런 남에 대한 끝없는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이 이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스님 뒤로 내걸린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30일 오후 3시. 경북순례의 첫 출발지인 고령군청 앞. 스님은 고령지역 참가자들과 함께 군청 앞을 출발했다. 늘 그랬듯 환영 받거나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님은 ‘생명평화 탁발순례’라는 문구가 새겨진 띠를 두르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주민들은 웬 낯선 스님의 걸음을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은 시골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들을 향해 “안녕하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걸음은 대가야의 혼이 숨쉬는 고분군으로 향했다. 주산 위에 죽음처럼 엎드린 고분군을 지나치는 생명평화의 대열. 죽음이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생명. 스님은 오늘도 그 ‘생명의 평화’라는 화두를 들고 걸어간다. 어쩌다 한번쯤 스님을 만난다면 먼저 “안녕하세요, 스님”하면서 손을 흔들어보자. 혹시 모르지 않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생명평화의 싹이 자라날지.
경향신문에서〈고령|글 배병문·사진 김대진기자 bm1906@kyunghyang.com〉
이제 다시 걷는다. 잠시 한숨 돌리려 내려놓았던 바랑을 다시 걸머진다.
계절은 한여름을 휘돌아 벌써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 그렇게 강렬했던 뙤약볕도 한결 수그러든 모습이다. 1년 반을 걸었다.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지금까지 1만여리를 걸었고 4만여명을 만났다. 길 위에서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내디딘 걸음걸음 염원했던 고귀한 생명정신과 평화로움의 씨앗은 어디선가 싹을 틔우고 있을테니.
도법 스님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중순 전북지역을 끝으로 잠시 휴식에 들어갔던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지난달 30일부터 경북지역을 다시 걷고 있다. 순례의 첫걸음은 지역인사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길 위에서 자고 얻어먹는 동냥아치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주었고 쌀 한톨을 데워 개다리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생명평화의 마음을 다 얻지 못한 것 같다.”
후회일까, 아쉬움일까, 아니면 욕심일까. 아마도 스님의 간절한 기원의 다른 표현이리라. 그러면서 스님은 “왜 굳이 걷는가”라며 걸음이 갖는 의미를 말했다. 지금까지 좀처럼 말하지 않았던 걸음의 가치. 스님은 걸음은 한마디로 ‘자기성찰의 다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그럼 왜 ‘성찰(省察)’이어야 하는가. 성찰은 곧 진실과 통하며 진실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되돌아 봄, 거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시작되고 변화의 씨앗이 발아한다는 것이다.
“모든 군더더기 다 빼고 뼈대만 추려보자.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한 고요.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정작 왜 사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게 우리의 자화상인가.
스님은 “평화로운 생명의 연장과 유지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생명의 평화로움을 위해 군더더기로 필요한 것이 돈이요, 권력이요, 밥이요,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군더더기에 머물러 있을 뿐 한꺼풀을 걷어내면 나오는 단순한 진실에 눈뜨지 못하고 있다”며 “그 진실에 눈뜨게 하고, 진실로 움직이게 하고, 진실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 이 걸음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럼 생명평화를 실천하는 길은 먼곳에 있는 것인가. 1년 반을 걸으면서 그렇게 땀 흘리고, 신발이 헤지고, 발바닥이 터져나가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스님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나’를 뛰어넘는 것이 곧 생명평화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인류사회의 모든 갈등과 고통, 전쟁은 ‘나로부터 파생된 나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됐다는 것. 그 대표적인 것이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스님. 스님은 “만일 부시와 같은 힘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시처럼 휘두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우리 한번 솔직해져 보자”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인의 모습, 베트남인을 상대했던 파병군인들, 세계수위를 달리는 가정내 성폭력, 이런 쓰레기 같은 문제들을 주변에 깔아놓고 살아가면서 과연 미국 부시를 욕하고, 일본을 탓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스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런 일상을 만들어 놓고도 그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설사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전쟁 속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바로 그런 남에 대한 끝없는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이 이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스님 뒤로 내걸린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30일 오후 3시. 경북순례의 첫 출발지인 고령군청 앞. 스님은 고령지역 참가자들과 함께 군청 앞을 출발했다. 늘 그랬듯 환영 받거나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님은 ‘생명평화 탁발순례’라는 문구가 새겨진 띠를 두르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주민들은 웬 낯선 스님의 걸음을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은 시골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들을 향해 “안녕하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걸음은 대가야의 혼이 숨쉬는 고분군으로 향했다. 주산 위에 죽음처럼 엎드린 고분군을 지나치는 생명평화의 대열. 죽음이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생명. 스님은 오늘도 그 ‘생명의 평화’라는 화두를 들고 걸어간다. 어쩌다 한번쯤 스님을 만난다면 먼저 “안녕하세요, 스님”하면서 손을 흔들어보자. 혹시 모르지 않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생명평화의 싹이 자라날지.
경향신문에서〈고령|글 배병문·사진 김대진기자 bm190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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