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포럼
"사람, 사회, 그리고 사회사업"

- 일시 : 2009년 12월 17일 오후 6시30분
- 장소 : 한살림 5층 회의실
- 강의 : 한덕연 (사회사업가)
- 녹취 : 김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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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사회사업가 한덕연입니다. ‘자연주의 사회사업’운동을 하는 사람임. 자연주의 사회사업은 사람을 돕되,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자연력으로서 복지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임. 복지를 이루는 일은 당사자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지역사회가 공생하는 사람살이가 되게 하는 것이고, 자연스런 사회가 되게 하자는 것임. 자연주의 사회사업은 두 가지 의미에서 특징이 있음.
첫째, 수단이 자연력이라는 것임. 당사자의 자연력과 지역사회의 자연력. 그 자연력으로서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임. 22년 넘게 사회사업을 해왔는데, 돈이 필요한 사회사업은 보지 못했음. 어떤 사업에 돈이 필요할까는 구체적으로 토론 시간에 나눴으면 좋겠음. 소개하시면서 어떤 분이 지역아동센터를 하신다고 했는데, 저희 동료들이 하는 사회복지 사업은 프로포절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지 않음. 기본적으로 사업비가 필요 없음. 복지를 이루되 사회사업가가 복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자연력으로서 복지를 이루게 함.
두 번째 특징은 복지를 이루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게 하는 것임. 전문가의 복지가 아니라 당사자 그 삶의 복지여야 함. 이웃 간의 사람살이가 되도록 풀어내는 것이어야 함.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음. 우리 지역에, 혹은 우리 마을에, 아니면 우리 골목이나 단지에 반찬을 못 만들어서 영양에 어려움이 있는 분이 있다면 어떻게 도울까요? 사회사업가든 풀뿌리운동가든, 기존 복지운동 주류방식으로는 이런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 복지제도를 만들자고 하거나, 그 분들에게 반찬을 공급할 사업비 예산을 확보하자거나, 이런 사업을 투명하게 하자고 운동하거나, 이런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들의 근무개선을 하자는 운동이 주류일 것임.

제가 하는 운동은 사회사업 가치를 살려내는 방식으로, 사회사업 이상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사회사업 철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반찬문제를 해결하자는 운동임. 우리가 하는 방식은 복지관이든 교회든 운동단체든 뜻있는 분들이 어려운 분들의 반찬을 서비스하자고 해서 돈을 끌어다가 반찬을 만들어서 배달해 드린다거나, 지역에서 모금을 한다거나, 공동모금회나 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하는 등 외부자원을 끌어 모아 특별한 사람들에게 반찬을 만들어주는 그런 방식은 아님. 이런 방식은 현재의 주류적인 방식임. 복지관 등의 방식은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배달을 해주는 것임.
그런데 이런 방식은 어르신께 요즘 반찬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이번 주 식단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지 등의 의견을 여쭙는 것이 아님. 대체로 여쭙지 않음. 일방적으로 배달하는 방식임. "어르신, 그냥 주는 대로 잡수셔" 이런 의미와 다르지 않음. 고맙긴 한데, 인격이 없음.
복지관이든 교회든 단체든 일방적으로 반찬을 배달하면 돌아오는 것은 빈 접시임. 자기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금으로 반찬 만들어 갖다 드리면 고맙다고는 하지만 계속적으로 무엇을 담아주시지는 않음. 빈 접시만 보냄. 외형적으로는 빈 접시지만, 이 접시에 소중한 것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평소 당신 손으로 잡수셨던 당신의 반찬 생활을 반납하는 것과 마찬가지임.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만큼 드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통제하는 반찬 생활임. 기관에서 갖다 주는 서비스에 생존하는 것임. 당신 삶의 자주성을 반납하는 것임. 자기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의존하고 생존 연명하는 의존적 인간이 되어버림.
또 하나, 빈 접시에는 아주 의미 있는 것이 담겨져 옴. ‘관계’가 담겨옴. 그 전에는 어렵더라도 멀리 사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찾아와서 반찬 만들어서 가져왔지만, 기관이나 시설에서 반찬 배달을 한 후 이런 관계가 약화됨. 반찬에서 만큼은 지혜가 많으실 텐데, 굽실거리며 어른다움을 잃어버리심. 어른다움의 당당함을 내려놓게 됨.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다움을 생각하고 사람답게 도우려는 데서 사회사업의 가치도 이상도 철학도 방법도 풀려나오는 것임.
사회사업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됨. 사람은 인격이 살아야 사람이고 관계가 살아야 사람임. 그래서 인격적 존재고 사회적 존재임. 인격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살려서 도와야 사람 사는 일임. 인격적 존재라고 할 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으로서의 도리, 뜻을 쫒아서 사는 것, 그래야 도리임. 사람으로서의 염치 뜻을 놓아버리면 금수에 가까운 것임. 인격적 존재는 사람으로서의 뜻을 놓으면 안 됨. 구차하게 더 받으려 하고 욕심내는 것, 이런 존재는 사람이 아님. 두 번째 인격적 존재는 살아가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임. 주체성을 내려놓으면 기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자립하자는 뜻이 아님. 자기 삶에 대해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함. 그래야 자기 삶인 것임. 이것이 인격적 존재임.
따라서 관계를 살려서 도와야 함.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떼어버리고 따로 돕는 것은 그 사람의 관계를 약화하는 일종의 폭력에 가까움. 그런데 이 반찬사업을 보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반찬을 만드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것은 당신의 삶을 반납하고 복지서비스에 의지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임. 당신 삶의 주체성을 내려놓은 것임. 반찬 때문이라도 그 나마 미미하게 이어져오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게 됨. 관계가 살아야 사람임. 관계가 약해지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회가 사회다움일까?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노인은 노인끼리,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관에서 데려가고, 이렇게 분리하는 사회가 과연 사회다운 사회일까? 이런 반찬사업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만들고 어떤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에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제가 사회사업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을 파괴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

방법은 아주 간단함. 자연주의 사회사업의 관계는 걸언(乞言)임.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것. 사람다움에서 사람이란 인격적 존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주체성을 도울 것인가? 그 사람에게 여쭙고 의견 구하고 부탁하고 거들어드리는 것. 사회적 존재라고 했을 때 관계를 살려서 도와야 함. 지역사회에 걸언해야 함. 우리 동네, 우리 지역에, 우리 단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지역사회에 동네에 물어보고 부탁하고 거들어드려야 함. 간단함. 지역사회에 걸언하는 방식으로 반찬사업을 보면, 먼저 여쭙고 의논해야 함. 그래서 어르신이 괜찮다고 하면, 지역사회에 부탁하고 논의하고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여쭈어야 함.
후원자나 봉사자로 책임지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 반찬 만드실 때 조금 더 나누시면 어떨까요, 차가 있는 분에게 이 어르신이 필요한 것을 사다 주시면 어떨까요, 이 어르신 과 함께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혹 반찬 만들 때 이 어르신 모셔서 함께 만들면 어떨까요, 이렇게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드리는 것임. 돈이 드는 일인가? 우리 지역에 반찬 필요한 분이 10명이라고 했을 때, 실제로 꼭 만들어줘야 하는 것은 5명도 안 됨. 나머지는 생사람 잡는 것임. 사업비를 받아내려면 부풀리게 할 수밖에 없음.

선뜻 나서지 못하지만 누군가 주선하게 되면 반찬을 나누게 되고 관계가 형성됨. 무엇을 조금씩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음. 함께 하는 정이 소통될 수 있음. 관계를 소통하면 모든 것이 소통됨. 외출 도우미 서비스 할 필요가 없음. 동네에서 관계를 만들도록 주선해주면 이런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옴. 그러면서 감사하게 됨. 지역사회 두루 다니면서 인사하고 여쭙고 부탁하는 것. 이렇게 하는 반찬사업은 돈이 필요 없음.
당사자들에게 한 50가정 지원하는 지역에서 해봤는데, ‘반찬 마실’을 제안했더니 15명이 나왔음. "반찬 배달해 드리는 어르신께 여쭙고 해서 같이 만들 분"들 했더니 15분의 어르신이 오셨음. 그 중에 시내로 장보러 가는데 7분의 어르신이 자원했음. 당신 하실 수 있는 만큼 하셨음. 그렇게 반찬 만들어서 점심 드시고 당신 원하시는 것 가져가시고 사정이 있어 못 오신 다른 분 것까지 가져 가셨음. 이 과정에서 평소에 대화할 사람이 없었던 분들이 하루 종일 말씀을 나누었음.
당사자에게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해서 그 분들이 하시게 하되, 약한 만큼만 거들어드리면 됨. 기력이 약하시면 우리 차로 모셔 드리고, 당신들이 선택하고 통제하고 주체가 돼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시는 것. 당신의 반찬 생활을 하는 것임. 돈들 일이 없음.

몇 년 전에 섬 지역에 대한 사회사업을 하기 전에, 지역아동세터 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김장기치 후원해주세요’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음. 생색내는 일이기도 함. 김장은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의 인격을 살리고 아이들의 자주성과 공생성을 살릴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구실이고 기회인데, 아이들과 상관없는 곳에서 얻어먹으려고 하고 있음. 아이들의 인격을 세운다고 해놓고 아이들의 인격을 없애고 있음. 이 문제도 간단함. 두 가지 방식이 있음. ‘우리 마을 김장 잔치’를 할 수 있음. 우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함. 아이들을 대상화해서는 안됨. 무엇이든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그것으로 묻고 의논하고 당사자인 아이들이 주체가 돼서 부탁하고 약한 만큼 거들어주면 됨. 아이들이 당사자이기 때문에 먼저 설명함. 그것으로 묻고 의논하고 부탁함. 동네잔치 방식도 당사자에게 먼저 걸언함. 그리고 이웃에 부탁함. 그러면 아이들은 신나함. 아이들은 연습(교육)은 싫어하는데, 연습이 아니라 진짜는 뭐가 됐든 좋아함. 아무리 추워도 추운지 모름. 아이들이 김장을 얼마나 신나게 하는지 모름. 이와 같이 하면 동네잔치가 됨. 김장을 도와주면서 사람들은 동네 공부방을 보게됨. 그동안 관계가 없어서 안 보이게 되었는데, 그 분들이 주체로서 김장 하시도록 했더니, 그때부터 아이들이 보임. 그 다음부터는 뭐라도 더 갖다 줌. 염려해주시기도 함.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주는 것은 얻어먹는 것이고,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 주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임. 외부에서 얻어먹는 것은 구걸임. 아이들의 자존심을 구걸하는 것이기도 함.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이들의 자존심을 살아나게 하는 것임. 아이들과 동네와의 관계가 살아나는 것임.

지역아동센터 하는데, 왜 사람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지 모르겠음. 우리 어렸을 때 선생님이 프로그램 짜줘서 놀았나? 아님. 우리는 그냥 규칙정하고 재밌게 놀았음.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이 아님. 겨울 프로그램의 경우, 우리가 하는 방식은, 일단 설명회를 열어 공개강좌를 함.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것을 듣고 수강신청을 함. 이게 당사자의 삶임. 내가 선택하고 내가 주체가 돼서 만들고 누리는 활동이 되게 해야 함. 아이들이 내 손으로 만드는 활동을 기획하고 준비하도록 거들어주면 됨. 어떻게 설명해서 아이들이 기획하도록 하는 것. 우리는 기획하는 양식이 있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기획함. 그렇다고 아이들이 기획했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님. 이렇게 아이들이 만드는 활동이든 선생님이 만드는 활동이든 지역사회에서 하는 것임. 공간이 필요 없음. 공간도 재료도 아이디어도 다 살아남. 왜 우리가 사업비 가져다가 점심 줘야 하는가? 아이들은 가져올 수 없는가? 아이들에게 묻고 부탁하고 약한 만큼 거들어주면 하지 않을까?
전문가 많고 돈 많을수록 당사자의 자주성 공생성을 헤치기 쉬움. 걸언하면 거의 대부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음.
(발제문, 30쪽-31쪽 설명. 사회사업의 개념/가치/이상/철학 등)

반찬이든 김장이든 도서관이든 이것을 구실로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것이 사회사업임. 사회사업은 내 일상과 직업을 떠나 특별히 복지를 이루어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당사자와 이웃이 하도록 거들어주는 것. 사회사업가의 윤리는 바로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이 핵심가치임.
따로 만들지 말자, 장애인 점자도서관을 따로 만들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에 이들이 필용한 시설을 만들어 놓을 수 있음. 왜 장애인용 공중전화부스를 따로 만드는가? 약자와 가난한 사람, 아이들을 위한 것을 따로 만들지 말자. 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어내자. 방법은 걸언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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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

문 :  왜 우리는 기관 중심의 사고를 버리지 못할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기관들의 생존전략인 것인지. 또 하나는 한덕연 선생님은 1년에 50일간만 돈 벌고 나머지는 공부하고 여행하고 활동하고 하신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답 : 두 가지 다 어려운 질문인데, 기관에서 왜 지금도 그럴까? 제가 보기에 사회복사는 바쁘기만 하고 잘 모르는 것 같음. 프로포절 내느나 바쁘고 아이들 인솔하는데 너무 바쁨.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것 처럼 사회사업 방식으로 하는 데도 많음. 그런데 이 경우 동료들은 할 일이 크게 없음. 얼마나 쉽고 편하고 재밌는지 모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음. 예를 들면 청소년 문화활동에 지원하는 단체가 농촌 지역에 많은데, 조금만 신경 써서 기획서를 만들면 사업비 타는데 어렵지 않음. 그러면 담당자는 먼저 돈 구해오기 위해 기획서를 쓰고, 돈 받고 영수증 챙기는 일이 많아짐. 그런데 저희는 간단함. 아이들에게 이런 공연이 들어왔는데 하고 물어보면 됨. 그리고 부모들에게 이웃에게 찾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면 어떨까 물어보게 됨. 철암사례가 그러함. 아이들에게 묻고 걸언했더니, 사회사업가가 책임지고 바쁘게 주관하는 활동이 아니라 그냥 우리 마을 문화가 된 것임. 그 후로 매달 마을 사람들의 ‘우리 가족 문화생활 하는 날’로 자릴 잡게 됨. 이 방식 이야기를 듣고 모 지역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적용해 보니, 그 전에는 힘들었는데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함. 할머니가 아이 먹을 거 다 챙겨오고, 나중에 오히려 선생님께 고맙다고 함. 당신이 다 힘들게 준비했으면서 선생님께 고맙다고 함. 부모 자식간 관계가 살아나고 이웃의 관계 살아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께 예를 갖추게 되고, 큰 아이들이 동생을 챙기게 됨. 정이 소통하게 됨. 그렇게 하니까 사회사업가는 할 일이 없음. 따라다니면서 누리면 됨. 그래서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 같음.
87년부터 93년까지 기관에서 일을 했음. 그 이후부터 아이티 프리랜서로 일했는데, 1년에 50일 하면 년 수입이 3천-5천정도 받았는데, 그러면서 주로 사회복지운동을 했음. 지금은 돈 버는 일은 안함. 2001년에 끝냈음. 지금 활동비는 친구의 도움을 받고 있음.

문: 얼마 전에 인천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하루짜리 사업을 해봤음. 자비부담해서 했는데,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돈을 내고 음식을 싸오고 다 좋아했는데, 우리는 계속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만, 활동가들이 그 중간에 걸언을 해야 하는데, 걸언하는 것이 선뜻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음. 아무리 좋아도 부담이 되었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음. 이렇게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내가 왜 어려워하는 거지? 하는 부담이었음. 어떤 점을 넘었을 때, 걸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까?

답: 우선 나들이는 계속하면 좋겠는데, 관련해서 철암의 사례가 좋음. 걸언은 해보면 쉬움. 걸언하기 전에는 누구를 만나야 할지,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막막한데, 한두 명 만나다보면 알게 됨. 보이게 되고 듣게 됨. 자연스럽게 됨. 이게 걸언의 매력임. 어떻게 하면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냥 해보면 아주 쉬움. 무엇보다 자신이 피곤하니까 걸언할 수밖에 없음. 여행을 예를 들면, 겨울방학에 가족여행을 동네 사람들과 간다고 상상해보면, 동네 사람들과 기획회의를 하는데, 적절하게 정보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함. 여행정보를 찾는데 어렵지 않음. 우리가 대신할 필요가 없음. 아이들과 이웃들이 찾도록 도와주면 됨. 여러 차례 걸쳐 회의 준비를 하고 이웃들과 얘기하면 상당히 재밌음. 아이들은 여행경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게 됨. 아이들이 계획하고 여행경비 마련하는 방법을 찾게 됨. 여행을 구실로 아이들과 아이들, 아이들과 부모들의 공생관계를 살리는 기회가 됨. 저는 인격이 없는 사회사업은 하고 싶지 않음.

문: 걸언이 쉽다고 말씀하셨지만, 주류의 사회는 대부분 그런 경험을 안해 봤음. 말씀하신 대로 누구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긴 호흡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의 미션이나 철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갖고 있음. 풀뿌리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일방적으로 뭔가 제시하려 하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됨. 해서 자치적이거나 협동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다고 봄.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면 가혹할 수도 있다는 느낌도 있음. 그러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겪는 게 '우리끼리만' 남게 되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듬. 

답: 걸언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일해 왔지만, 어려운 점이 없었음. 제가 하나 제안을 해보면, 시루떡을 해서 아파트 라인에 돌려보면 어떨까? 빈대떡 붙여먹으면 어떨까요?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합시다, 이런 캠페인을 몇 달 동안 했더니 사람들이 점차 인사를 하게 됨. 복지요결을 보면 지역사회를 통째로 복지적 환경으로 바꾸는 전략 네 가지가 소개되어 있음. 도시에서 공동체적 사회로 바꿔낼 수 있는가? 예를 들어 강북구에 모든 복지관계 시설 등 총동원해서 한 달에 한 나절만 모든 복지기관 문 닫고 총 동원해서 가가호호 방문해서 홍보한다고 해보면 어떨까. 유인물에는 삽화 몇 컷, 돕는 방범 몇 줄, 한 달에 주제 하나를 정해서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지역에서 구체적인 변화들이 나타날 것임.

문: 걸언이 어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제 경험으로는 너무나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이 있는 것 같음. 저는 걸언이라고 하는 자체의 행위를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자기의 문제, 자기의 주장,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부터 실마리를 잡아가야 한다고 봄. 걸언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음.

답: 녹색삶에서 하는 일들이 다 걸언이었다고 봄. 내 안에 근본적인 요소가 따로 놀지 않는 것이 정합성이고, 자기 정체성임. 견해가 각각 다를 수 있는데, 적어도 자기 안에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봄. 걸언이라는 방법은 그냥 효과적이라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는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임. 지역사회에 걸언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살려낼 수는 없음.

문: 사회사업으로서의 철학이나 가치, 방법 등은 매우 공감하고 있음. 다만, 빈곤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근본문제가 존재할 텐데, 예컨대 사회양극화를 조장하는 신자유주의나 자본의 문제 등을 건드리지 않고서 사회사업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측면이 있을 듯함. 따라서 이들과의 연대정신도 필요할 듯싶음.

답: 저의 사회사업의 지향으로서 이상은 두 가지인데, 약자와 공생할 수 있는 사회, 약자와 공생할 수 있는 사회임. 전체 사회를 바라보고 하는 운동도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하는 운동도 필요함. 만인의 복지를 위한 사회사업도 또한 복지임. 이웃과 인정이 살아 있는 사회임. 혼자는 아닌 세상. 그런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회사업의 이상임. 사회사업의 이상은 세상에서 그런 문제를 다 해결하도록 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바탕, 가치를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함.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이 엮이는 것임. 인생과 사람살이에서 한 축을 제거해버린다면 항상 반드시 좋은 것인가, 양극화를 없애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개인적으로 사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제거할 자신이 없음. 가난을 해결해줄 자신이 없음.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회사업의 이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 짧아 보임. 연대는 큰 틀에서 운동하는 분들이 구체적인 참여 방법을 제안하고 사회사업이 지향하는 일을 손상시키지 않은 선에서 하면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제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을 놓칠 수 없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살리고 인정이 소통되는 것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

문: 사람들을 사람답지 못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봄. 과거가 관계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당시 또 다른 질곡도 있었다고 봄. 관계도 지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지역의 고통을 유발할 수도 있음. 예를 들어 코카콜라를 같이 먹는 행위는 좋은 것이나, 그것으로 인해 제3세계 빈민들의 고통이 있을 수 있음. 관계 속에서도 가치가 녹아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답: 우리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복지활동들은 다른 것을 헤칠 만큼 안 됨. 자연력으로 살아가는 것임. 그래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그 이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림이 무엇인가? 제가 하는 사회사업은 사람답고 사회다운 것에서 분명한 그림이 있음. 물론 사회 전체를 담아내는 그림이 아닐 수도 있으나 사회사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을 담아내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함. (발제문, 8쪽/17쪽을 중심으로 설명)

끝.

2009/12/21 18:02 2009/12/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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