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위기 시대, ‘생태근본주의’를 위한 변명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와 운동가들이 다가올 생태학적 재난을 경고해 왔지만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다. 다수의 국민들이 재앙적 사태를 우려하고 있지만 떳떳이 ‘살리기’라고 강변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개발사업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4대강 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가치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가 맞부딪힌 의미심장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후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가 주목된다.
4대강을 포함해서 오늘날 환경과 생명이 당면한 위기의 원인은 현실을 지배하는 주류 가치와 제도,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작동이 원인이라면 부분적인 교정으로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익숙해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치와 시스템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원인 진단과 해결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총체적 생명위기 시대를 맞아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전환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발과 성장의 낡은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모색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개발사업에 대해 지금 종교계를 중심으로 울려 퍼지는 생명과 평화의 목소리는 공존과 상생의 새 시대를 향한 의미 있는 전환의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 보다 많은 사회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관련해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수년 전부터 생명가치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자연 생태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싸잡아 ‘생태근본주의’라고 비판하는 경우들이 자주 발견된다. 4대강 살리기에 앞장선 종교계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거슬러 올라가 새만금을 지키기 위한 65일간의 삼보일배 순례 때도, 도룡뇽 서식지인 천성산을 보호하고자 지율 스님이 100일간 목숨 건 단식을 했을 때도, 사람과 생명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희망의 길을 찾아 나선 124일간의 오체투지 순례 때도 ‘생태근본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들은 어김없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생태근본주의’ 딱지 붙이기는 종교인들이 중심이 된 생명운동 영역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귀농운동, 생태공동체 운동, 유기농 직거래에 기반한 생활협동운동 등 다양한 대안운동의 영역들에까지 ‘생태근본주의’로 얽어매는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생태근본주의’라는 비판의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 토건국가를 지탱하는 개발론자들 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위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알려진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인식들이 발견된다. 최근 인하대 철학과 김진석 교수는 지금 환경운동이 처한 무기력한 현상을 생태근본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고, 또 경북대 경제학과 김형기 교수는 ‘녹색성장’이 이명박 정부에 선점당한 것도 진보진영이 생태근본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렇게 보면 ‘생태근본주의’라는 것이 상대를 효과적으로 규정해버리는 데는 꽤나 약발 있는 비판 담론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주장하는 ‘생태근본주의’의 정체와 그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근본주의’라는 말 속에는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고, 과거 회귀적이고, 자족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더구나 근본주의가 종교적 의미와 결합되면 진리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과 이로 인한 공격성을 띠게 된다. 그러니 이런 근본주의에다 생태를 붙여놓은 생태근본주의의 의미가 좋게 다가올 리 없다. 따라서 결국 누군가가 생태근본주의로 규정 되는 순간 그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아매면서 무슨 도룡뇽, 백합, 쑥부쟁이나 지키려고 하는 대화가 힘든 고집불통 사람’이 되거나, 또는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시대로 달려가고 있는데 유기농, 소농, 자립 공동체나 이야기 하는 비현실적 낭만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태근본주의’라는 말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이야 말로 현실에 대한 심각한 인식의 오류에 빠져 있거나, 근본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에 철저하지 못하거나, 또는 생명가치에 기반한 대안운동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매도하려는 것으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이들이 사용하는 생태근본주의 개념에서 ‘생태’는 근본주의를 수식하는 의미 정도로 머물러 있다. 그러다보니 생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환경, 생명, 생태가치를 중심으로 한 현실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도 놓칠 수밖에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영성적 생명운동 조차도 성찰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의 생명운동 현장에 세대와 계층, 이념의 벽을 넘고, 종교 간의 울타리를 넘어 얼마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해 왔으며, 당면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이웃과 미래세대의 삶을 걱정하고 뭇 생명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열린 가치운동을 해 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생명 파괴적인 개발행위에 대한 환경, 생명운동 영역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하고 여론을 수렴해서 자연을 신중하고 지혜롭게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법에서 정한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편법을 동원해서 일방통행식으로 사업을 강행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고 생태근본주의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런 행태는 새만금 때도, 천성산 때도, 이번 4대강 때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언어도단(言語道斷) 그 자체다.
획일화 된 가치에 기반한 맹신과 독단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경향은 현실의 환경, 생명운동 영역보다는 물신주의, 양적성장주의, 속도주의, 목표달성주의를 바탕으로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을 추동하고 있는 집단들에서 오히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들이다. 4대강 개발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무지’의 탓으로 돌리면서 대국민 홍보를 강조하고, ‘비록 지금 반대해도 나중에 결과를 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업 추진 세력의 배타적 저돌성이야말로 개발이 종교화 된 개발근본주의의 대표 사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