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있다면, 이분법적 인식이 바로 ‘보수’이다.
유정길 (에코붓다 공동대표, 한살림 자문위원)
사회주의가 붕괴한지 20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더욱 빈번히 등장하고 점차 양진영이 조직이나 정당으로 세력화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서로 편견에 가득 찬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 어떤 이는 좌파라는 말은 우익과 거울쌍을 이루는 이념적인 명칭이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좌파’이라는 말에는 항상 따라붙는 ‘척결’이라는 용어 때문에 그다지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는 대체로 우파와 좌파는 보수와 진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파는 항상 보수인가? 혹은 좌파는 언제나 진보인가? 우파는 수구세력이란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고 좌파는 친북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다. 이렇게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의 빈번한 사용은 결국 다른 한쪽을 배재하는 논리로 상용되며 결국 사회적 통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야기 시킨다.
이분법적 사유에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위를 자치하고 지배하려는 폭력적 질서가 존재한다’라고 말한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이항대립적 용어는 그 용어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논리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용된다. 버마나 태국 등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스스로를 소승불교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대승불교권에서 자신을 ‘대승’으로 규정하고 상대인 상좌부를 ‘소승’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바로 오늘날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적 사고의 바탕이기 때문에 생태주의자, 생명운동진영에서는 극복되어야 할 낡은 사고로 규정한다.
한때 우리는 계급적 관점, 민족적 당파성만 견지하면 진보로 간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사회운동까지 도도한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거칠게 규정한다면 진보세력은 ‘우리 편’이고 곧 ‘아군’이며 이러한 우리 편은 모두 ‘좋은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보수는 ‘남의 편’이며 ‘적군’으로 규정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나쁜 사람’으로 척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진보, 우리 편, 아군,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의 묶음과 ‘보수, 수구, 남의 편, 적군, 나쁜 사람’이라는 묶음은 정말 근거를 갖는 정당한 인식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실제로 각각 4개의 요소들은 독립적이며 서로 달리 메트릭스 될 수 있다.
진보주의자는 다 좋은 사람인가? 나쁜 짓 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 편은 모두 믿을 만한 좋은 사람인가? 그러면 보수는 다 나쁜 사람인가? 그리고 마땅히 적으로 간주되어 척결되어야 하는가? 진보의 입장은 모든 정책이나 방법이 언제나 정의롭고 옳고 지지되어야 하는가? 이 또한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만일 이러한 인식을 하고 있다면 과거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고 투옥하고 고문하며 탄압했던 권위주의 파쇼권력의 인식과 동일한 것이다.
계급적 당파성이나 민족적 이해는 의미 있는 기준이기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부분적인 의미를 갖는 진보’일뿐이다. 그것만으로 ‘통합적인 진보’라고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계급문제, 민족문제에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여성문제, 복지문제, 환경문제에서 제기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이해하고 체화하여 그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까?
노동문제에는 진보적 입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생태적 인식에는 ‘반환경적인 생태맹의 인식’을 갖고 있고, 여성문제에는 ‘반여성주의적 가부장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이 사람이 어떻게 통합적 진보, 보편적 정의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자기만이 배타적으로 정의롭고 정당하며 다른 사람이 틀리다는 인식은 그동안 사회정의를 주장해온 사람일수록 또 고통스러운 시련을 받은 사람일수록 강한 인식의 틀로 작용되었다.
불교의 신(神)중에서 (불교에서는 신(神)도 육도윤회하는 중생중 하나이다) ‘아수라’라는 신은 전쟁을 좋아하여 분쟁과 싸움을 일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의 아수라는 자기 스스로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선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신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물리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상대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쟁을 벌인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에 그 폭력을 더욱 잔혹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쟁과 폭력의 신이 되었다.
유일신만이 배타적으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이외의 것은 사탄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바로 모든 전쟁과 반평화의 원인이었다.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이 모든 분쟁의 원인이었다면 다양성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시각은 무엇이어야 할까?
(다음호에 계속)
현재 정토회의 에코붓다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90년초부터 지금까지 생태적 인식을 토대로 한 생명운동을 전개해 오셨습니다. 96년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생명민회)’의 실무책임을 맡아 활동하셨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환경연대 등의 창립준비위원장으로서 산파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토회의 보직순환의 원칙으로 2002년부터 3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긴급구호와 개발지원활동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5년부터는 남북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개발 및 실천기구인 ‘평화재단’의 기획실장으로 활동하면서, 환경운동, 생태적 대안사회, 지속가능개발, 국제개발협력, 남북문제의 생태적 해법 등을 화두로 활동해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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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서 전반부는 '지역살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다루었고 후반부는 '지역살림'을 함께하기 위한 주체, 과정, 방법을 제시했다. IFDFBEB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