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제116호 주제서평:맛있는 식품법 혁명(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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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체계의 정의로운 전환
<송기호, 맛있는 식품법 혁명, 2010, 김영사>

자본주의의 발전이란 것은 오랜 공동체적 관계의 고리들을 끊어 먹고 그 고리를 상품관계로 대체해온 것에 다름 아니다. 오랫동안 마을을 중심으로 삶의 기본필요(식ㆍ의ㆍ주ㆍ교육ㆍ의료)를 공동체적 관계로 이어왔는데 그 관계가 엷어지고 왜곡되고 단절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먹을거리의 생산(농)과 소비(식) 관계가 놓여 있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먹느냐는 문제가 한 사회를 규정하고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규정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한 사회의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과 제도는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안목과 꼬락서니를 보여주는 잣대인 것이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정점에 이른 21세기 들어 오히려 먹을거리의 양과 질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현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는 농-식의 관계와 거리를 단절시키고 확대시키며, 그 사이를 다국적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을 들어앉혀 ‘지구적 식량 체계(global food system)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다. 보이지 않고 파악하기도 어려운 거리로 멀어진 먹을거리 생산자와 소비자는 직접 관계를 맺을 일도 없고 맺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음식과 식사가 자연과의 소통은 고사하고 사회적 관계의 소통조차 이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때임을 알려주는 자명종이기도 하다. 먹을거리 체계의 전환은 생산과 소비의 공간 거리(글로벌푸드에서 로컬푸드로), 시간 거리(제철, 패스트푸드에서 슬로푸드로),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와 신뢰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배제시킨 법과 제도
≪맛있는 식품법 혁명≫은 우리 사회의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어떠한지, 어떤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지를 파헤쳐 왜곡되고 단절된 고리가 무엇인지를 짚어주고 있다. 나아가 먹을거리가 진정으로 먹을거리다워지는 전환의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또한 ‘식품법 100년이 숨겨온 밥상 위의 비밀과 진실’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지금의 식품체계가 왜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그렇게 드러난 모습은 단지 식품체계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체계의 왜곡된 자화상으로 비춰진다. 그 모습이란 먹을거리의 1차 생산자인 농민과 먹을거리를 조리하는 조리사와 건강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소비자가 막상 식품체계에서는 밀려나 있는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 사회가 먹을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땅과 바다에서 시작해 밥상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며,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용하는 사람과 자연의 살아 움직이는 연관체를 ‘식품체계’라 부른다.” 이 식품체계에서 정작 소농과 자작농, 그 토대인 자연과 순환의 이치, 그리고 선택을 위해서라도 알아야할 식품안전 정보를 접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를 식품법의 현황과 배경, 운영실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밀가루, 소주, 천일염, 개고기, 유전자조작 식품, 젤리, 사료 등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법률가의 안목으로 거침없고 명료한 분석과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그 실태를 알게 되면 ‘아니 정말 이 정도란 말이야’며 머리에서 열불이 나다가도, 앞으로 식품체계가 어떻게 가야할지 또렷한 목소리로 방향을 제시하는 대목을 읽다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쌀 중심의 전통 식생활을 그토록 끊임없이 영양학적으로 열등한 불균형 식단이라 비판했던 영양학은 결국 미국의 남아도는 밀을 들여와 불과 40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주식이 되도록 봉사했으며, 그 영양학계가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은 한식 세계화 추진단을 이끌고 있다”며, “영양학자들은 꿈을 이뤘고, 자작농의 쌀은 식품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기회를 빼앗겼다.”고 말한다. 마이클 폴란은 미국의 식품체계를 비판하며, 음식이 아닌 ‘영양’을 내세워 전문집단화하고 있는 영양학과 식품산업,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정치집단 및 저널리즘이 결탁한 ‘영양 산업 복합체’를 이른바 영양주의 이데올로그로 꼬집는다. 어쩜 이렇게 똑 같을까.
“본디 소주는 실로 오랜 기간, 지역사회의 쌀과 수수 등 양곡에 의존하여, 생태계의 공급 능력 안에서 제한된 알코올을 공급했다. 그러나 자연과 사람의 연계가 없는 희석식 소주는 이 땅의 생태계 순환과 조절의 질서를 거부한다. 1965년 소주 불법화 이후 1971년에 이르면 사카린을 첨가한 희석식 소주가 합법화되어 1989년까지 지배했다. 사카린 소주가 합법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술이 끊임없이 구조적으로 과잉 공급되는 극단적 체계로 내몰렸다.” 소주를 생태적 순환과 균형, 지역사회와 농업, 그리고 술 권하는 사회문제로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폭넓은 안목과 연관의 해석으로 먹을거리와 법제도를 살펴보는데 머물지 않고, 이를 매개로 사회와 과학적인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이는 무역과 환경, 법률을 공부한 저자의 폭넓은 안목과 농업ㆍ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법률회사의 대표 변호사로 있으면서도 농업관련 통상무역, 농민운동, 생협 관련 활동에도 열심히 역할하는 우리 사회에서 드문 지식인이다. 책을 읽다보면 식품체계의 난맥상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확인하는 법률가로서의 꼼꼼하고 성실한 면모도 온전히 드러나 설득력을 한층 더해준다.
필요한 대목만을 찾아 읽어도 좋을 만큼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간결한 표현들은 부담을 줄여준다. 자칫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법조문과 해석들도, 참고하면 되겠구나 표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체를 접하며 오래 준비하여 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식품체계의 방향을 제시하는 대목에서는 자칫하면 ‘~해야 한다’고 당위적이고 규범적인 표현들을 남발하여 지루해지기 쉬운데, 저자는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묵직한 목소리로 ‘~ 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힘주어 말해 확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식품체계의 난맥상을 짚는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 식품체계의 난맥상을 더 살펴보자. 식품관련법은 기본법 체계 조차 부실하여 담당 정부 부처, 관리체계가 분산되어 있는데, 이는 이른바 밥그릇 싸움 때문이기도하고 그 싸움을 부추기기도 한다. 여러 위원회의 관료주의적 운영과 구성 등은 일관되고 통합적인 관점이 필요한 식품체계를 더욱 규제위주로 관료화하고 밀실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앞선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영국의 부처 통합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유럽 나라들 가운데 농업 선진국은 아니지만 영국은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농산물 자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경험이 있다. 또한 1990년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축산업의 문제와 식품안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2001년 농림부와 환경부, 여러 산하 기구들을 통합하여 환경식품농촌부(Department of Environment, Food, and Rural Affairs, DEFRA)로 통합 개편하였다. 농업과 농촌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는 정책 패러다임의 수정이기도 했다.
여전히 사후약방문식으로 땜빵해온 식품체계 관련 제도의 정비를 위해서도 개발부처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농업, 환경, 지역행정 부처를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목표로 하는 통합부처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책에서도 제시하는 독립된 국가식품안전위원회도 이 부처와 협력하면 좋겠다. 사실 환경운동단체에서는 환경처 시절부터 당시 경제부처와 대등한 수준의 환경원과 환경부총리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나마 있는 환경부조차 토목건설사업에 면죄부를 발급하는 지경으로 후퇴하고 있지만, 실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농업과 먹을거리를 포함한 영국의 환경식품농촌부와 같은 통합적이고 책임있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지금의 식품체계처럼 품목별로 분산되고 목적과 기능의 빈틈이 많은 제도로는 책임있는 먹을거리정책을 펴나갈 수 없다. 저자도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정의로운 식품법은 식품체계의 흐름을 관료들을 위해 분리하지 않는다. 식품은 환경과 농업이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식품을 먹을 때 결국 환경을 먹는다. 환경이 오염되면 농업이 오염되고 밥상도 오염된다. 환경과 식품과 농업은 하나다. 환경과 식품과 농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 개념이 환경식품안전이다.”
방치와 무관심은 관료적 규제와 억압으로 나타난다. 책에 일부 언급된 메주 사건의 경우, 자치단체가 농가의 소규모 가공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신고가 되지 않아 문제라는 것을 파악하고서도 이를 처리하는데 우왕좌왕하였다. 상식적인 사고와 지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분과정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메주를 가압류하기까지 했다. 이는 잘못된 조치였음이 식약청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먹을거리, 농가 소규모 가공 등을 지원, 지도, 감독할 근거를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가지고 있으나, 지난 15년간 이 규정을 활용하여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지도하려는 지방자치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 친환경 무상급식과 식생활교육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몇몇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지역농업을 활성화하고 소농과 협동 가공을 지원하는 조례가 만들어지리라 기대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식품체계가 가지고 있는 식민지성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법령과 체계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 해방 후에는 밀 정책과 최근 한미 FTA에서 보듯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고 있다. 게다가 석유와 수입에 의존하는 농업과 가공 중심의 식품체계에 완전히 포섭돼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먹을거리를 식민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먹을거리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술이 대표적이다. 우리 먹을거리의 전통과 변화를 반영치 못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규정하는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나 미국 등에 그 기준이 없으면 스스로 설정해가지 못하고 미루는, 주인으로서 자기결정권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밥상혁명의 구체적 모습
생명운동, 사회운동에 몸을 담아 나름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사회운동과 제도의 관계였다. 몸담고 있는 ‘한살림’이 지금 ‘밥 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식품체계의 실체를 종횡으로 누비며 전모를 드러내고 있지만 제도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식품법 혁명’이 왜 필요한지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그 혁명을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제안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소농과 소비자라는 주체, 지역과 환경의 연계 등을 일관된 관점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미에 ‘선택하고 자치하고 연대하는 소비자’가 정의로운 식품체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치의 공간이 넓어지면 낡은 체계는 무너진다”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혁명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그 과정과 실천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참고서이지, 지침서는 아니다.
이 시대의 혁명은 대체가 아니라 전환이다. 전환은 저항과 대안, 파괴와 창조로 이루어진다. 운동은 제도의 틈바구니에서 싹터 제도를 새롭게 열고, 그렇게 열린 제도는 또 다시 운동의 기반을 다진다. 그 과정에서 제도의 운동에 휘말리기도 하고, 운동의 제도(조직체계와 문화)에 스스로 발을 묶기도 한다. 제도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우는 것만으로는, 제도의 틀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제도도 운동도 넘어서지 못한다.
한살림이 그동안 이룬 밥상살림은 대단히 소중한 자치의 공간이지만 기존의 식품체계에 이렇다 할 저항의 흠집도 내지 못했다. 자치의 공간이 넓어지면 낡은 체계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저절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최근 구제역 파동과 무지막지한 살처분의 경우처럼 산업형 축산을 극복하는 문제도 제도 혁신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창조의 운동과 저항의 운동은 함께 가는 것 아닐까? 한살림이 밥 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새해에는 이 책부터 공부하는 ‘식품체계연구모임’을 제안해봐야겠다. 아니 그냥 ‘밥 운동 공부모임’이라 해도 되겠다. 23만이 넘는 조합원가운데 함께 공부하고 ‘정의로운 식품체계’를 제도와 운동으로 챙겨갈 회원들이 분명 있을 거다. 잘하면 먹을거리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운동으로, 한살림을 넘어서는 모임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꿈꾸며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하는 데 따른 고민이 담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개념이 있다. 현재의 생산체계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속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러한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손실을 입게 된 노동자들에게 형평성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부문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고용 전환에 필요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 시기 동안에 수입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보다 더 본질적인 먹을거리 체계의 ‘정의’는 농산물이 농산물로, 농부가 농부로, 조리사가 조리사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로, 소비자는 소비자로 스스로 온전하게 서고 이미 연관된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농과 소비약자, 석유 농사로부터 벗어나려는 농부를 뒷받침하는 것이 식품체계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그 첫걸음에 놓인 이 책을 딛고, 우리 사회의 먹을거리 실태와 제도를 알고 이를 ‘맛있게 혁명’해 갈 때 ‘석유에 의존한 지구적차원의 지속불가능한 먹을거리 체계’를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 먹을거리 체계’로 전환해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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