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다운 것의 가장자리에서 묻다.
: 한살림, 그 끝없는 혁명의 가능성을 위하여
서동재*
“일을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 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 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레임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것 조차 과정임을 아는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 있기는 한걸까. 아직은 모를일이다.”

생협운동은 근원적으로 양가적인 속성을 가진 운동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이지만 동시에 시장에 발을 딛고 있는 이중운동적인 속성이 있다. 개인의 효용을 높여 조합원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과 동시에 집합적인 정치행동을 통해 윤리화에 대한 요구도 받는다. (엄은희, 2010 시장의 안에서 시장에 대응하는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정무역도 동일한 양가성을 공유한다.) 이러한 양가성은 생협운동이 가진 고유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가적 속성으로 인해 생협은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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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을 도출하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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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하기 어렵다. (한살림의 목적=목표) 목적(Why)과 목표(What)를 구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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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매한 사업적 포지셔닝, 정치적 스탠스를 유지하게 된다. |
한살림은 이러한 양가적인 속성을 잘 인지하고 있지만, 이것을 드러내지 않는 모순된 태도를 마주할 때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한살림를 지나치게 절대적인 가치로 고정해놓고 도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한살림구성원들의 운동성이 예전과 같지 않다, 탈정치화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살림의 많은 구성원들은 탈정치화된 것이 아니다. 정치의 도덕화를 이룩하게 된 언어의 문제다. 소위 우리는 이렇게 하면 한살림이고 저렇게 하면 한살림이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정치의 문제가 아닌 도덕의 문제로 전환해버렸다. 이는 구성원들에게 가장 재미없는 언어다. 그러한 비난은 도덕적 족쇄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그 도덕적인 언어는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패러다임처럼 작동하는 한살림언어는 프레임으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우주적 각성, 온 생명, 석유문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패러다임언어는 그 자체로 상수원이고 유의미하지만 생활자들과 강도 높은 의사소통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고, 담론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
“한살림답다는 것은 어떠한 답답한 느낌이에요.”
- 한류스타(한살림을 흐르게 하는 사람들), 김경자 활동가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양가적 속성은 한살림이라는 풍부한 토대위에서 변증법적 절합의 사유를 통해 보다 분명하고 활력 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오래전 변증법은 한살림선언에서 대립의 통일보다 투쟁의 역사가 가속되었던 점을 들어 모순을 용인하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변증법은 절합적 사유를 통해 모순을 드러내고 함께 발설하는데 그 핵심이 있다. 따라서 양가적 속성을 아우르기 위해 절합의 사유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절합이란 본래 음성학에서 발음 혹은 조음을 의미하거나 의학전문 용어로 2개 이상의 뼈가 움직일 수 있는 구조라 맞닿아 있는 부분인 관절 자체 혹은 그러한 결합 방식의 의미한다. (2010 엄은희) 심광현은 이 개념에 대해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공하는데 그는 관절의 특성을 인용하면서, 절합이란 하나의 몸체를 유지하지만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부분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이 가능한 독특한 연결방식이라 설명한다. 즉 생협의 양가성은 관절과 같이 절합적인 형태로 더욱 자유로운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것을 더욱 튼튼하고 자유로운 관절로 만드는 데는 절합되고 있는 연결부위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몇 가지 절합적인 물음을 통해 불화할 수 있는 몇 가지 물음을 스케치하겠다.
0. 한살림 정체성 논쟁이 촉발되길 바라며
한살림 안에서 느끼는 정치적 지향과 밖에서 바라보는 (원하는 시선)이 얽혀있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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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 공동체지향, 대안 만들기 운동, 중산층 운동, 촛불단체?, 정치적 행동 미비, 연대의식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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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생활세계변혁운동, 중간계층을 중심으로 한 물적토대를 기반으로한 운동, 공동체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시장에 기대어 있는 이중운동. 성과주의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 풀뿌리 정치에 관심 (진보정치-규모화에 포섭됨을 경계) 어소시에이션(결사체)을 기반으로 네이션, 스테이트차원의 문제를 다룸 - 시장경제, 공공경제의 대체 혹은 보완적 의미로서 사회적경제의 확충. - 동아시아 평화, 환경문제, 남북문제, 기아, 빈곤, - 이중운동특성상 구성원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공유. - 자급이라는 관점에서 진보적 농업정책에 대한 입장을 견지. (직거래 운동) - 딛고 서 있는 토대 = 급진 생태주의 (아나키즘, 사회생태주의, 근본생태주의적 경향) |
한살림이 내, 외부의 관점의 간극을 좁히고 고유한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서 세 가지가 더욱 명확해져야한다고 본다.
1. 풀뿌리 정치과 더욱 긴밀한 연관을 맺어감.
2. 의제를 가지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서 운신의 폭을 넓힘. (지역적 수준에서 전국적 수준까지)
3. 핵심적 가치를 중심으로 노선을 명확하게 정돈할 필요. 한살림이 가지고 있는 핵심가치가 시장에서 이미 통용되기 시작했으므로 신뢰도와 대사회적 영향력, 고유한 마켓형성 및 유지에 대한 제고가 필요. (현재 생협그룹의 정치적 스탠스가 온건한(진보적) 자유주의라면 한살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사회적 실질적 영향력을 갖출 것인가? <-> 시장의 보완적 기능에 만족할 것인가?
1. 한살림은 정치적 중립에 대해 우호적인가? 비판적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한살림이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관하여, 지역에서 진보적인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하나씩만 떠올려보자. 용산참사, 4대강.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먹을거리와 관련된 이슈들. 통큰치킨, 무상급식, 구제역, 피자30분배달제. 그 어느 하나 한살림이 제때에 독립된 목소리를 낸 것이 있었는가. 작년 6월, 난 팔당농민분을 만날일이 있었다. 그때 팔당농민분들은 내게 한살림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하시며 4대강과 관련하여 한살림이 어떤 입장이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4월에 성명서를 냈고 그 안에 4대강에 대한 입장이 있으나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한살림을 생명운동단체라고 호명한다. 한살림이 실천하고 있는 개인의 생태적인 생활실천과 로컬푸드를 유통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생명운동단체라고 했을 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왜 한살림은 다른 조직과 내, 외부의 개인에게 짝사랑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생명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살림이 살리고자 하는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다. 구제역으로 죽어가는 돼지의 생명, 피자를 30분 내에 배달해야하므로 급하게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임을 당한 청년의 생명, 마구잡이식의 인간사냥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노래를 부르다, 시나리오를 쓰다 죽어간 예술가. 이처럼 대상화조차 되기 어려운 소외된 많은 생명들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우리는 무엇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으며, 용기있게 포기할 수 있는가? 오늘날의 생명의 속성을 푸코는 ‘생명권력’ 이라는 말로 꽤 명확하게 집어냈다. - 고전적 주권론이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리'라면 근대 생명권력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리'- 오늘날 많은 생명은 자유의 공기 안에서 살게 만들어 배치되지만 동시에 죽게 내버려진다.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곧 절합적인 공간이다. 한살림이 생명으로의 지향을 계속해서 가지고 간다면. 운동의 공간과 사업의 공간이라는 가장 커다란 두 날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더욱 완벽한 균형이 되느냐 기만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지 않을까?
정치적 중립이란 무엇인가? 현재 정치적 중립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기관이나 개인은 많지 않다. (협동조합, 교사, 공무원 등) 생협법 제 7조에 따르면 생활협동조합은 공직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시되었있다. 이에 따라 생협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은 때론 생협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정치적 운신의 폭을 좁히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실 이는 지난 6.2 지방선거를 비롯하여 여러 사례를 통해 이미 깨졌고 여전히 생협의 활동반경을 축소시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협이 정치적 중립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협이 다른 여느 섹터와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즉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절합적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협동조합의 정치적인 중립은 협동조합의 원칙속에 들어가 있었지만 생활정치가 대두되면서 정치적 중립이란 것도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이 아닌가? 라는 반론으로 인해 폐기되었다. 특히 일본생협의 경우 그람시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진지전’의 유력한 물적토대로 상정하고 있다. (진지전은 야수선택과 비슷하다. 원아웃 주자3루, 타자가 3루 땅볼을 쳤을 때 3루수는 홈으로 던질 것인가 1루로 던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홈으로 던졌을 때 세이프가 되면 점수는 점수대로 주고 1루 주자와 함께 사기가 꺾이게 될 것이고 1루에 던질 경우 아웃카운트는 잡겠지만 점수를 주게 된다. 물론 홈에 던져 아웃이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생협운동은 점수를 주더라도 안전하게 아웃카운트를 하나 얻고 공수교대를 기약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경향은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기에 관점의 폭이 넓은 것이다. 역사적 관점이고 장기를 생각한다. 폴라니의 '이중적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생각하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적다.) 하지만 60년대 관주도로 농협이 제도화됨에 따라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당연시되어온 역사가 있다. 이것은 생협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으므로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한 제도개선은 주요 세 개의 생협이 연대활동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함으로서 가능할 수 있다. (생협법 재개정 및 협동조합 일반법 제정운동 등) 또한 일부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매니페스토식의 의제를 가지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례를 좀 더 조직 중심에 가져다 놓고 기획, 실행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온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선결과제는 연대의 심화이다. 한살림이 연대에 어려움을 가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한살림이 집중해서 대응해야 할 이슈에 대한 조직적인 합의과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당자가 가져야할 의제에 대한 방향과 입장, 의견이 취약한 구조다. 이러한 맥락은 한살림을 NGO와 NPO사이에서 정체성을 더욱 혼동하게 되는 문제로 드러나게 되고. 동시에 담당자가 가장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공유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진단하고 몇 가지 더 물음을 나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영향력과 정치, 경제를 함께 다루기 위한 한살림의 기초체력과 생태계를 확보하는데 연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시민사회(환경, 여성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조직적인 차원에서 3섹터(희망제작소, 사회투자재단, 아름다운가게 등)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단 여기서 한살림이 전유해야할 첫번째 태도는 필터링한 의제를 가지고 이용당할 준비와 동시에 적극적인 이익에 대한 관철,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속성을 극대화 하여 정체성을 드러냄은 물론이고. 사회-정치의 영역을 기반으로 경제의 전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한살림이 말하는 대안만들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동조합을 중심으로한 사회적경제모델에 대한 사회적 요구[사회적기업, 커뮤니티비지니스 담론의 확대, 정태인(참여정부 국민경제비서관)을 비롯하여 사회적 경제를 주목하는 진보정당의 정책연구가 본격화 되고 있음.]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살림은 응답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온당한 가치를 담아서 소비로 전유시키는 것은 생협의 고유한 아이덴티티이므로 급변하는 시장에 반드시 기민하게 대응해야할 부분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겠다.
“사회적 기업가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거나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산업 전체가 완전히 바뀔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 아쇼카 재단의 설립자 ‘빌 드레이턴’
2. 한살림은 세대담론이 있는가?
한살림 안에 흐르는 마음의 레짐(가치, 규범체계 및 실행절차)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까? 소위 지금 시대의 중추적인 마음의 레짐을 형성하고 있는 386세대는 현재 정치권, 시민사회운동권에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386정서의 핵심은 민주화의 강한 열망과 좌절, 냉소로 요약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서는 그 시대 대학을 졸업한 소수 엘리트에서 비롯된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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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적 진정성 : ‘도덕적’성격 - 개인의 충분한 성찰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책무나 책임의식이 선행. 개인을 도덕적으로 동원하는 양상으로 드러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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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적 진정성 : ‘윤리적’성격 - 내면의 공간, 자의식의 공간, 사소설적 공간이 문화적으로 확충 |
그렇다면 한살림에 흐르는 마음의 레짐은 어떠한가? 그것은 386과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진다. 386의 사회변화에 대한 강한 욕망과 계몽적 인식에 대응하는 체제밖의 정치적인 것들 (호혜성에 입각한 - 미학적인것들)에 대한 철저한 인식.(YMCA로 대표되는 시민사회단체나 재단, 자선단체의 자발적 운동,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운동) 협동조합운동, 농민운동, 장일순 사상으로 요약되는 평등에 대한 의지로 비동시성을 취하지만. 동시에 진정성이라는 화두와 386의 계몽적 인식의 틀이라는 한계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이 위에서 언급한 한살림의 패러다임 언어와 결합하면서 보다 다양한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마케팅, 정보화, 컨텐츠화에 필요한 언어개발)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세대별 중점사업이 있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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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 새로운 운동의 장 마련 (복지사업, 기금, 워커즈와 같은 자주경영, 커뮤니티비지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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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 아토피사업, 팜스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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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 생애 첫 생협으로서의 한살림, 대학생협과 연대활동 |
3. 한살림이 지향하는 노동과 조직문화는 무엇인가?
한살림의 노동은 실무와 활동의 영역으로 나뉜다. 이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살펴보자. 1) 실무와 활동의 규모가 커짐. 2) 활동가들의 실무적 결합도가 요구되는 공간이 있다. 3) 경영전문화를 위해 사업의 집중과 활동의 분화가 구분되어 나타나는 양상. 4) 남성중심적 실무환경. 5) 비민주적인 소통방식 잔존.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있어요, 군대조직을 연상하게 되고 채용과정도 공급으로 인한 남성실무자 중심이다 보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실무자 채용방식에 있어서 여성분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뽑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공급동승을 하더라도 채용을 늘려 나아가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2011, 한류스타, 장준걸 실무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가 노동자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살림 실무자는 권리에 대해 조금 둔감하지 않나 생각해요. 농협도 노조는 있거든요, 성향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무자 협의회가 있긴 한데 본인의 업무에 치여 사는데, 법에도 정해진 타임오프제를 활용해서 전문적으로 공부도 하고 월급인상만을 위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를 찾는 거죠.”
- 2011, 한류스타, 장준걸 실무자
노동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해 많은 것을 이곳에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한살림의 젠더편향성과 경직된 소통구조는 숙고할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본다. 흔히 사회적 기업을 포함하는 사회경제에 소속된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공통된 문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과 노사관계의 온정주의적 태도를 혼돈한다는데 있다. 이를테면 사회적기업은 노사간의 갈등이 없어야할 것 같은 느낌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개다. 앞서 밝혔든 평등의 지향은. 불화가 용인되는 상황 - 민주적 상황에서 더욱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한살림을 비롯한 사회경제 섹터에 포함된 노동자들은 충분히 제도적 장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평등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 단언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생협에서 특히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이다.
그 여느 상황보다 평등해야 하는 상황이 또 있다. 그것은 교육적 상황이다. 왜냐하면 교육이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효과가 발휘되려면 민주적상황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한살림교육의 두 가지 주요한 목표는 업무역량향상과 운동역학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별주체의 자기주도적 학습의 의지와 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된다. 곧 교육적 상황과 효과 - 민주적 상황 - 조직문화는 긴밀하게 연관을 맺게 된다. 이것이 선행되었을 때 우리는 삼성전자, 공무원, 구글, 시민단체의 노동환경에 대한 이미지에 유사성이 아닌 대응하는 고유한 노동환경,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담지한 공간은 어떤 디자인이어야 하는가? 까지도.
“공간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자유롭게 입을 때랑 정장을 입었을 때랑은 다르잖아요, 파티션이 딱딱 있는 것이랑, 풀이 주변에 조금 있는 거랑 다른 거잖아요?” - 2011, 한류스타, 박혜영 실무자
- 한살림 사무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 한살림매장은 마트와 어떻게 다른 공간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 쌈지농부와 같이 전문화된 컨설트, 아트디렉터의 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4. 한살림이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은 무엇인가 이에 수반하는 조건들은 무엇인가?
한살림과 같은 비영리단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평가인 것 같다. 평가의 기준을 무엇으로 둘 것인지, 비영리조직이 성장이라고 했을 때 성장, 발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가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확한 준거 없이 평가를 해나간다는 것은 한계가 또한 명확하다. 즉 사업의 목표설정에 명확한 준거가 없다는 것은 그 목표에 대한 평가의 합리성이 결여됨을 의미한다. 또한 어떠한 기획이건 그 기획에 따른 결제와 집행에 조직이 관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조직이 아닌 담당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평가가 위와 같이 준거에 따른 평가가 아닌 인상비평에 그친다면 다음에 같은 사업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부족분을 보완하여 진행하는데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에 기획력 부족이라는 조직적 부담을 개인에 전가하지 말고 전체기획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체성에 대한 담론형성과 이를 반영한 밑그림그리기, 정치에 대한 지향을 띈 언어개발연구, 지속가능한 경영, 사회경제에 대한 연구가 보완된 싱크탱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5. 로컬과 공동체라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한가?
지난 11월부터 구제역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1차산업이 흔들릴 때 국민들의 심리가 얼마나 불안해질 수 있는가? 에 대한 것과 그로인해 지역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로컬리티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앞으로 한살림이 사업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가까운 먹을거리운동을 통해 환경적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로컬은 단순히 이동거리를 줄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지리적 구획만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로벌 자본이라고 했을 때 글로벌이란 지구적 수준을 넘어서는 그 안에 담긴 운동역학이 있듯, 로컬이라는 단어에는 그 공간이 가진 성격, 방향성에 대한 벡터가 모두 담긴 그러한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로컬을 어느정도까지 급진적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고민이 생협연합회에 대한 고민속에 어느정도 담겨있다고 보이지만, 로컬과 사업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더욱 정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로컬과 사업이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는?, 로컬을 마케팅을 위한 수단, 운동으로서의 지향 이외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CSA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계약재배가 한살림인프라와 닿을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서. 로컬과 공동체라는 진보적인 가치가 시장에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다.
6. 기후변화대응을 통해 바라보는 양가적 속성과 이에 대한 해결방법
2007년 전 미 부통령인 앨 고어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이 지구온난화 문제에 기여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한 것은 오늘날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점에 대한 지구적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로써 기후변화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환경문제이자 행동의 변화를 통해 경감시키고 적응해야 할 지구적 과제로 ‘승격’ (Swyngedouw, 2010)되었다. 이러한 경고가 모두 실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2009)는 기후 변화는 지금까지 인류가 다루어왔던 문제들과는 규모와 수준이 다르고, 맞서 싸울 적도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비일상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소위 ‘기든스의 역설’에 빠져있다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범지구적으로 중요한 위협으로 인식하면서도 그로 인해 자신의 생활태도(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비행태)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엄은희. 2010)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고유하게 인지해오고 있다. (일본의 많은 생협들이 조합원활동, 복지사업, 환경활동을 주요한 활동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유렵의 소비자협동조합들은 2007년 이후 기후변화를 중요한 실천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유럽 대륙 차원과 개별 국가의 맥락 안에서 상당 수준의 조직적 기획과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엄은희, 2010) 이러한 움직임이 나아가 국제협동조합연맹 ICA의 기후변화 협의문의 채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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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대안적 <-------------------> 자본주의 우호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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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협동조합 |
집합적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결사체 |
사업적 성공을 통해 생존하고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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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소비 |
소비자체에 대한 규율(예: 총량으로서의 소비를 줄이기) |
상품의 기준에 대한 규율(예: 윤리적 상품소비를 통한 소비자 만족 높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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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소비자 |
집합적 정치행동으로 소비의 윤리화 추구 |
개인의 이해를 최대화하는 소비행위 (탄소상쇄) |
위와 같이 녹색소비가 ‘소비 덜하기’에서 ‘사려 깊은 소비’로 전환된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에서도 모순적 양가성이 드러난다. (엄은희, 2010) 유로코압은 식량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으나 2007년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식량정책에 비견될만한 새로운 우선 순위과제로 ‘기후변화’를 제시하였다. 2009년 유로코압은 ACT!프로젝트를 통해 10:10서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201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0%줄이자는 캠페인으로 구체적인 활동내용은 협동조합 기업, 조합원, 직원, 학교,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서명과 영화 상영, 교육 및 홍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ACT!는 기후변화 대응 행동의 네 개의 범주를 제시하는데 1) 생협자체 CO2 감축활동 2) 로비와 캠페인 전개 3) 조합원과 직원대상 교육 및 동기제공 4) 재생에너지 활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조합원의 자녀들을 위해 마스코트를 도입한다든지 기후변화 교육을 위한 교구를 개발하고 이를 일선 학교에 보급하는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9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제 15차 COP총회에서 소비자 영역을 대표하여 유로코압이 선도적 의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탄소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기업의 마케팅 캠페인의 사료로 소모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선택’(소비자의 소구력이 높다는 점)을 제공, ‘국제연대’의 목적에 부합, ‘홍보효과’로 인해 원론적인 비판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한국도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거래제 도입이 확정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의 노력이 생협에서도 필요한 상황이다.
한살림서울은 2010년 가까운 먹을거리 캠페인을 통해서 531,100,622g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했다. 이는 약 18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효과(에너지관리공단, 국립산림과학원), 한살림서울의 모든 조합원이 43번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과 같은 CO2 감축효과이다.(에너지 시민연대) 이처럼 한살림은 인프라를 활용하여 가까운 먹을거리 캠페인과 같이 물품사업 - 환경, 식생활교육 - 캠페인을 더욱 적극적으로 연관을 맺고 더욱 다각적으로 환경활동이 다른 영역과 넘나들 필요가 있다. 탄소가계부(명확한 준거에 입각한 활동-물품사업연계)를 작성한다거나 병재사용에 따르는 보상심리를 탄소포인트로 적립 - 복지기금으로 조성한다거나 하는 등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러한 물품소비를 통해 감소한 탄소배출량을 웹페이지 구축을 통해 전체 그림 속에서 소비자회원이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고 동시에 조직적으로 새로운 경영표준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 또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집합적 정치행동과 탄소상쇄와 같은 시장친화적인 행동의 절합지점에는 사전예방적인 성격이 강조되어야 한다.
마치며 - 결론을 대신하여
이 글은 한살림에 대해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물음 중 몇 가지 물음을 거칠게 정리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만 질문한다. 그리고 자유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묻는 한 자유의 힘은 질문안에 내재한다. 몇몇 질문들은 절합하고 있는 곳을 가리키려 하였고 그 절합의 구조가 더욱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우리는 어쩌면 한살림을 향해 “한살림은 맨얼굴이 참 예쁘니 맨얼굴로만 다녀야해“ 내지는 ”한살림은 화장을 한 모습이 예쁘던데 이번엔 스모키 화장을 해보자! 혹은 네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지? 그러니까 하지 않는게 어떨까?“ 라고 했지. ”넌 맨얼굴도 괜찮은데 화장을 하고 있구나 왜 그래야 했니?“ 라고 묻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986년 그때 그랬던 것처럼 질문을 공유하는 공동체이지 해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같은 질문을 던지는 공동체는 오래갈 수 있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해답에서 동일함을 찾으려다 결국은 돌아서고 찢어지는 것이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은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의 공유는 더 많은 다른 답들을 생산한다. (2010, 엄기호) 질문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다른 답들을 환영한다. 그것이 나에게 더 많은 영감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해답의 공유가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 폭력이라면 질문의 공유는 차이에 대한 생산이며 다른 것에 대한 절대적인 환대이다. 그러므로 우린 불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물음의 공유가 전제된 불화는 더욱 안정된 생태계를 만드는데 일조할 뿐이다. 그리고 불화가 없는 조직은 불평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바라본 마음의 레짐은 명백한 이행의 증거였다. 성명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선동의 정치보다 커피파티, 트위터인증샷 올리기가 새로운 선거문화로 등장했다. 우리는 계몽의 언어에서 평등의 언어. 놀이의 언어를 마주한다. 어쩌면 이제 정말로 협동조합이 세상의 언어에 응답할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언어는 '그래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시고, 살려야 한다고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살림의 재구성을 진정원한다면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곳이 바로 여기. 두 가지가 만나 날개처럼 접히고 자유로운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는 곳이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a!)
흔히 '이랑'이라 부른다. 한살림서울 교육지원팀에서 2년간 일하다 2011년 2월 말 군 입대를 위해 한살림 생활을 정리했다. 남들보다 늦은 군생활, 언제나 건-강,승,전 하길 바란다.







한살림다운것의 가장자리에서 - 서동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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