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명, 농업, 환경을 위한 생명운동의 태동과 향후전망
저자: 이정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1. 들어가기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생명운동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필요성이 있다. 2만달러시대, 기업도시문제, 행정수도이전, 지방분권과 권력분산의 문제, 새만금 및 천성산의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갈등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올바른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
전통적인 기득권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신개발주의와 경제중심주의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에 대별되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사회운동권의 저항운동의 역사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문민정부이후 10여년이 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사회운동의 위상을 ‘저항과 대안'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발전시켜가야 할 시점이다.
생명운동은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불의에 저항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운동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이 아직까지 뚜렷하게 하게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회의 여러분야에서는 지금까지의 민중운동 및 시민사회운동과는 차별성이 있는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대안운동 혹은 생명운동 등으로 명명되고 있는 일련의 흐름에 대한 대략적인 맥락을 짚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생명운동에 대한 보다 나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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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명운동의 태동 배경

1) 민주화운동과 가치의 다양화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반유신운동과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87년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를 향한 도도한 흐름으로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을 아울러 대부분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토양이 되었다. 생명운동도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화운동은 사회의 모든 세력들을 민주주의 가치로 깨어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민주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가치의 다양화가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가치를 발화시키는 촉매제였던 것이다.
민주화운동으로 민중들의 활발한 사회참여가 시작되었다. 민주주의 가치가 사회의 중심가치로 되면서, 각계각층의 대중들이 세상의 ‘주인’으로 나서는 긴 장정에 들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전쟁과 군부독재의 긴 터널속에서 억눌렸던 대중의 사회경제적 욕구는 전투성을 띄면서 제기되었다. 80년대는 전투적 민중들의 사회경제적 요구가 분출되었던 시기라면, 90년대는 시민사회의 정치사회적 요구가 전투적으로 분출되었던 시기였다.

2) 전투적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생명운동의 분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투적 민중들의 사회경제적 요구는 ‘민중연대’라는 사회‧조직적 전망을 가지면서 뚜렷하게 사회적으로 정립 되었다. 이것의 극적인 정치적 표현이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나타났다.
2002년을 지나며 전투적 시민들의 요구는 ‘시민사회연대’라는 조직적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적 전망은 이러한 전투적 시민사회의 요구를 일부는 행정부와의 파트너쉽의 형성으로,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합법정치세력화 시키는 과정을 밟기도 하였다.
90년대 후반기를 거치면서 생명운동은 전투적 시민운동 및 민중운동과는 차별적인 흐름을 갖기 시작했다.
현 시기를 문명전환시기로 규정하면서 사회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담론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대안문명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나로부터의 각성’을 위한 ‘성찰과 영성’의 문제를 대중운동의 영역으로 가져온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전투적 민중운동 및 시민운동과는 일면 궤적을 같이한다. 그러나 일면 차이를 가진다.
생태생명운동은 현대사회의 위기를 ‘산업문명의 욕망구조와 산업사회의 세계관’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 위기를 헤쳐나갈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산업사회의 성찰자들’이 생겨나야 함을 강조한다.

3. 생태생명운동의 발생영역과 원인

새천년의 세계는 격동했다.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점점 더 노골화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IMF지원 충격이후 본격적인 ‘저성장 고실업’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토목공사와 제국주의적 전망’을 가지고 풀어가고자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명이 불안정하게 되었다. 대중들은 끝없는 경제위기의 터널을 넘어서지 못하고 실업으로 인한 빈곤 그리고 가정파괴로 내몰리고 있다. 남북관계는 불시에 ‘50년대의 정세’로 돌아가서 남북 민중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우리의 생태계는 ‘경기부양’을 위한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 국토의 환경지수는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 매연의 도시는 점점 더 도가 심해지고 있으며, 농지는 좁아지고 있고 전국의 산은 골프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더 많은 골프장은 대기하고 있다.
우리의 목숨이 도처에서 저울질 되고 있으며, 우리 생명의 터전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투적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위기와 자연의 위기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의 해결에 적극 나서는 입장이 필요하다.
생명운동은 인간과 자연에 닥친 위기의 문제를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을 모색하는 흐름이다. 생명운동은 생명을 불안하게 하고 직접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진단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을 일컫는다.

1) 저항의 영역 - 생명의 불안정성과 그것의 역작용

(1) 평화운동속에서 - 제국주의 전망을 넘어 초록평화국가로!

생명운동의 가장 커다란 주제는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에 저항하는 일이다. ‘모든 목숨있는 것’은 ‘살기’를 원한다. 인류는 많은 노력을 통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목숨에 대한 위협을 제거해 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아직도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이고 그러면서도 가장 세련되게 목숨을 위협하는 장치로서 ‘제국주의’를 두고 있다.
각국에서 자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제도적 폭력과 정치테러, 인종테러 등에 대해서는 대중적 저항에 부닥쳤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인종과 국가를 울타리로 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군사력에 의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위협은 두 가지를 넘어서야 한다. 하나는 남북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제국주의 국가화’이다. 첫 번째의 것은 남북평화의 시대를 향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뒤의 것은 점점 더 내적요구가 커가서 새로운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큰 부분이다.
우리사회가 장기적으로 고실업을 유지하면서 대안의 성장동력산업을 찾지 못한다면, 설혹 그런 산업을 일시적으로 찾았더라도 그러한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부국강병과 군사주의적 재무장이라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갈 수 있는 토양이 되는 것이다.
한-미-일로 연결되는 미사일방어체제와 극동의 군사동맹의 한축이 튼튼해 질 것이며, 북-중-러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군사동맹의 한축을 자극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이 위험은 우리사회가 중장기적으로 현재 제기되는 ‘고실업과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체계’를 만들어 가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운동은 평화운동의 한 부류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전평화의 문제를 지금까지의 ‘저항적 평화’를 넘어서 ‘적극적인 평화’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는 외부의 세력인 제국주의로부터 전쟁을 방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나라가 평화를 국시로 하는 ‘초록평화국가’에 대한 전망을 잡아나가는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적인 고실업과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산업을 찾지 못한다면,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향한 걸음이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지속적인 동북아의 군사주의노선을 막아내는데 우리나라가 힘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신에 우리나라가 제국주의적 전망을 찾아서 이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경향이 더욱 세게 나타날 것이다.
세계평화와 동북아의 평화질서체제를 원한다면,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위한 사회경제적 토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타국을 침략(국가경쟁력이라고 한다!)하여 내국의 안을 살찌우는 노선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생명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위기에 대하여 ‘유기농업혁명, 생태생명산업의 육성, 대안에너지산업육성’등을 통해 ‘초록평화국가’의 토양을 만들고, 향후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나라가 기존 제국주의 국가와의 대등한 관계(자주화)로 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에 의거한 집단안보체제를 향한 과정에서도 필요한 토대이기도 할 것이다.

(2) 환경운동속에서 - 신개발주의를 넘어, 초록의 민주주의로!

박정희 정부식의 개발주의와 현 정부의 신개발주의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 경제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중앙정부 중심의 개발독재를 진행하였다면, 현 정부는 개발의 대상을 지역의 산과 들로 엄밀하게 하고, 개발주체를 지역토호들에게 맡기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지방화, 분권화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정부로 분산하는 일과 지역정부의 일을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의 각 부문의 자치민주주의를 올리는 일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을 넘어서면서 전국의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은 현 정부를 ‘반환경, 반생명정부’로 규정했다. 현재의 국면을 ‘환경비상시국’으로 규정하면서, 전면적인 대정부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주민자치와 생태적 지역공동체, 평화와 공동체의 가치교육 등이 수반되지 않는 경제적 가치창출은 위험하다. 그것은 기득권자들의 자기혁신 논리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가 초래하는 것은 우리 생명터전의 파괴이다.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의 역사를 일궈온 환경단체들이 2005년을 거리에서 맞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반증한다. 이 땅의 환경은 위험수위를 이미 넘어섰으며, 앞으로 진행될 ‘참여정부’의 개발정책들은 그 도를 더 해 갈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도시개발을 위해 국민들을 동원하였다면, 현 정부는 지역개발을 위해 또 한번 국민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것의 이익은 몇몇 기득권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며, 국민들은 단순히 동원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행정수도이전, 동북아물류센터, 지역혁신도시, 기업도시, 230개의 골프장 추가건설 등 수많은 개발계획들이 즐비하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는 소위 ‘농지법’과 ‘농어촌삶의질법’을 통해 개발에 방해가 되는 ‘토지개발에 대한 각종규제 장치’와 ‘농지와 농민보호’를 위한 각종의 제도적 장치를 해체하고자 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환경운동의 흐름속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환경과 생명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환경과 농업의 문제를 두가지의 다른 과제로 보지 않는 입장을 일컫는다. 환경운동의 중요과제로 농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농업문제의 중요한 과제로 친환경농법을 바라보는 입장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경문제를 본다면, 환경문제는 ‘도농공동체, 주민자치민주주의, 생태적 지역공동체, 귀농의 사회화, 평화와 공동체교육시스템 형성, 유기농업생산, 유통, 가공산업육성’ 등의 문제로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의 환경운동이 ‘정책당국자 및 기업들의 정책감시운동’을 넘어서, 초록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도정이 될 것이다.

2) 대안의 영역 - 환경과 농업이 어루러지는 생명터전을 위한 노력

(1) 유기농업운동속에서 - 일 할 수 있는 조건, 기계산업주의를 넘어서!

저항의 영역에서는 생명에 대한 두 가지 위협요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대안의 영역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산업화와 기계화를 통해 현대사회를 가장 잘 규정하는 문제가 ‘20대 80’의 사회이다.
20%의 사람이 일하고, 80%의 사람이 먹고산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20%의 사람들이 지구의 에너지를 80%를 소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적 부를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차지하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이 20%의 사회적 부를 나누어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통계와 인식은 한마디로 20%의 사람들은 쓸모 있는 인간이며, 80%의 사람들은 잉여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산업사회의 특징이 기계화 시대를 지나,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더욱 확고한 대세로 전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제 세상은 20%의 일하는 사람들과 80%의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뉘어가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이 초래한 이 사회는 불행인가? 악몽인가?
현재 진행되는 추세로는 ‘20대 80의 사회’는 실업이 만연된 사회, 사회의 아래로부터 서서히 무너져 버리는 사회를 의미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악몽이다. 우리나라의 고실업 사회로의 진입을 탓할 수 없게 되었다. 농업에서 기계화를 열망하고, 공장에서 기계화를 열망하고, 빌딩사무실에서 사무자동화를 염원했던 지난 시절의 우리의 바람이 그대로 실현되었고, 그것의 결과가 고실업 사회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인생에 있어 기계화된 들판과 기계화된 공장과 기계화된 빌딩사무실에서 쫒겨난 인간들이 돈이 없는 세상에서 극단적으로 무너져 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물음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인생관과 새로운 행복론이 단기적인 편리함을 주는 산업사회의 과학기술혁명에 대하여 회의의 대안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은 이제 과거에 우리가 무작정 떠났야만 했고, 반드시 벗어나야만 할 그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사회의 대안으로 ‘유기농업과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법론’이 강력하게 부상되고 있는 것이다.
유기농업운동은 웰빙시대를 열어가는 개별적 차원의 건강증진이라는 사회현상도 품고 있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유기농업은 강력한 노동집약적, 대안기술집약적 산업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농촌지역공동체’를 살려내고, 도농순환공동체(생협운동과 귀농운동의 결합)를 추구하지 못하는 유기농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기농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기농업운동은 ‘지역성순환성과 친환경성’이 강하게 결합되어 사회화 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현재 전국의 농지를 지역토호들의 골프장이나, 대기업들의 기업도시 용지로 바꾸어가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의지는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수백만명의 미래의 일자리를 현세대의 몇몇 기득권자들의 경제욕구로 그르쳐버리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과학기술운동속에서 - 유전자조작을 넘어, 생명질서의 사회적 적용의 시대로!

생명의 터전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유전자조작 및 생명복제의 분야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과학기술은 마침내 생명현상에 대하여 조작과 복제의 기술로 나아갔다. 급속히 진행하는 생명공학기술은 그것의 윤리적 문제와 결과의 불확실성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철학적 관점에서 생명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기도 하다.
생명현상을 사실대로 보기위한 인간의 노력은 정당하다. 그리고 이것은 권장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놓여 국가간 혹은 기업간 경쟁관계에 빠지게 되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생겨나는 현상이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의 문제는 대개 법적, 제도적 차원과 사회윤리적 차원, 과학기술의 민주주의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조작 및 생명복제의 기술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아직까지 연구와 상업화에 대하여 법적, 제도권 규제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적, 제도적 규제를 종교계와 일군의 비판적 학자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마냥 규제와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소리도 또한 존재하니, ‘유전자조작 및 생명복제 기술’의 연구와 적용에 관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자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기술과 그것의 연구와 적용의 민주화의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입장이 제안되는 것은 필수이다. 이 과정에서 옹호론과 반대론 그리고 유보론의 입장이 다양하게 제기될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각 진영의 세계관과 생명관 그리고 자연관, 문명관, 사회관들이 충돌하고, 교류될 것이다.
생명운동의 조류는 이 과정에서도 존재한다. 생명운동의 경우는 일단 이 문제에 관한한 반대이거나, 신중론의 입장에 서고 있다. 이는 생명운동이 생명현상에 대하여 입자론적 입장에 서지 않고, 관계론적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세우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유전자조작이나 생명복제의 기술은 생명현상을 특정한 입자에서 그 특징을 살피는 견해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비판적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생명운동은 생명현상에서 특정생명이 다른 생명과의 불가분의 조화로운 관계성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이 가능함을 읽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조화로운 관계를 사회적으로 학습하고, 적용하는 것이 생명현상에 대한 올바른 태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운동을 펼쳐가고 있는 세력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시민운동진영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업과 생태계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태생명운동세력은 가장 실천적으로 유전자조작과 생명복제기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학기술이 적용한 유전자조작식품이 제배되고 생명복제기술이 적용된 동물이 사육된다면, 생명운동세력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치명적인 위협이 예상된다.
생명운동세력과 함께 연대한다면,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추구하고 있는 시민운동진영은 새로운 사회적 동력을 만나게 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자본과 권력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의제’를 시민들이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 생명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 농지보호와 생명권확보운동

지금까지 생명운동의 태동배경과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는 생명운동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앞으로 생명운동이 하나의 운동의 조류와 조직적 흐름으로 사회화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주제에 대하여 확고한 대중적 인증작업을 걸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물적기반을 확보하는 문제와 더불어 구체적인 공간기반을 확보하는 문제를 다루어 볼 것이다.

1) 소지역도농공동체와 농지보존 운동의 결합

지난 총선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의 모든 지역구에서는 천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앞다퉈서 정치쇼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1차적으로 각 정당의 공천을 통과한 후보들의 공약들만을 다 모아서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제주에서 삼팔선까지 한번은 다 뒤집어야 가능한 ‘개발공약’들이 즐비했었다. 그 사람들이 이제 국회에 입성했다. 이제 ‘지역과 산으로 간 개발의 광풍’은 농지규제 철폐를 시작으로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뒤집어 갈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한 ‘각 지역별 전략산업 육성’ 정책은 이러한 흐름에 날줄을 그어주고 있다. 여기에 슬그머니 편성해서 ‘전경련’에서는 기업도시에 대한 정책제안을 시도하였고, 사이좋게 열린우리당은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지난 디제이정부시기에 이헌재와 강봉균에 의해 의욕적으로 제안되었지만, 구체화 되지 못했던 국민을 흩어버리기 위한 정책이 ‘행정수도이전’이라는 정치, 행정의 영역을 넘어 경제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산학협력체제를 명목으로 교육시설 이전의 문제도 당연하게 뒤 따르지 않을까 싶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각 지역으로 내몰릴 대중들이며, 점점 개발지로 바뀌어 갈 농지들이다. 이렇게 내몰리는 노동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풀린 농지에 기반하여 구시대의 자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할 ‘생산물’을 전국적으로 잘 생산하여 ‘시장’으로 배출할 것이다.
지난 95년 이후 지자체와 지역유지들은 자신들의 권한이 미치고 있는 자치체의 산과 문화유적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중앙정치권과 운동권들이 잘 협조를 안했다. 지난 총선을 통해 적어도 정치권 문제는 해결되었다.
정치권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유지들과 대자본은 지역공사(公社)를 매개로 하여 강력한 개발연합을 형성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자기 지역에 각종의 공단을 유치할 것이며, 관광지를 개발할 것이며, 댐과 도로를 개설할 것이다.
이 개발의 광풍에 맞서고, 우리들이 원하는 ‘생산물’을 중심으로 우리사회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이 아닐까 싶다.
이제 생명운동가들은 이들의 생산물에 대하여 딴지를 걸어야겠다. 그들이 생산하고자 하는 생산물 대신에 우리의 ‘유기농업혁명’을 주장해야 하겠다. 그리고 전력산업의 지역별 육성을 정책화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지’를 지켜가기 위한 노력과 함께 ‘녹색산업’을 일으켜 갈 ‘녹색기금’을 사회로부터 확보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업혁명은 ‘농약과 비료가 없는 농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순환적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유기농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인 동시에 굉장히 자원 및 생태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따라서 이것이 사회적으로 시작되고, 지탱되기 위해서는 ‘소지역도농공동체’가 필요하다.
먼저 농지를 지켜내고 공공의 농지를 확보하는 운동이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농지에 열심히 귀농자들이 결합되어야겠다. 기왕에 현재 농업이 행해지고 있는 농지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농업인구가 감소됨에 따라 이를 최대한 공공적인 토지로 전환하여 농지를 지켜갈 수 있는 ‘농지트러스트’를 일으켜 가는 것도 하나의 ‘녹색기금’의 확보방안일 수 있겠다고 본다.
또한 ‘전력산업 및 유기농산물 가공유통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생명운동가들은 사회로부터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각 마을에 유기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어가고, 각 소지역도농공동체 단위마다 ‘지역형물류센터’를 확보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지역적 특성에 맞는 에너지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펀딩작업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업에는 다소간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대도시의 시민, 환경, 노동, 종교세력들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 노무현정부는 농촌에 대도시의 투기형자본을 끌어들여 몇몇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려고 한다면, 우리 생명운동가들은 ‘초록의 기금’을 통해 ‘농지의 경자유전의 지속’ 혹은 ‘농지의 공공화’를 목적하여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의 토대를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정부에서 제안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면, 10년후 그것의 열매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 해 향유될 것이다. 생명운동가들의 제안은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의 열매를 공평하게 향유할 것이다. 이를 설명하고 증명하는 문제이다. 생명운동을 잘하면 실업문제도 풀어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2) 먹을거리를 통한 물의 순환과 삶의 순환의 만남 - 수계를 매개로 한 생명권확보운동

우리의 생명운동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환과 사람의 순환’이 만나는 ‘생명권 확보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예로 낙동강의 물과 사람들간의 순환관계를 통해 보자.
낙동강의 시원을 황지라고 한다. 그러나 낙동강의 물은 백두대간의 동쪽 줄기와 서쪽줄기에서 영남권을 향해 안으로 굽이치는 모든 계곡에서 비롯된다. 물의 순환은 이것을 계기로 하여 낙동강권 대중들의 ‘생활순환’과 만나게 된다.
낙동강의 상류권에서는 각종의 농약과 비료와 인간과 가축의 똥, 오줌이 섞여진다. 그리고 임하댐과 안동댐에 의하여 물은 다시한번 썩는다. 봉화와 영주를 거쳐 내려온 물이 다시 이 물과 합해져 대구로 흘러간다. 대구에서의 낙동강은 폐허로 변한다.
가야산과 지리산의 골짜기의 물들이 각각 황강과 남강댐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 물들은 각기 앞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모여든 낙동강이 중류를 지나면서는 공단의 폐수와 만나 이내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부근의 물금취수장의 물은 4-5급수를 번갈아 오간다.
부산과 남동해안권의 대중들은 오염된 낙동강을 원망하지만 그들은 부산을 거쳐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의 물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낙동강물은 최종적으로 청정해역인 남해안의 바닷물을 폐수로 만들어가고 있다.
낙동강의 물과 낙동강유역의 대중들의 삶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당연하게도 낙동강 수계권 사람들간의 관계 또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를 우리는 생명권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속에서 대구와 부산권의 시민들은 ‘안전한 물’을 가지고 90년 이후 15년을 서로 싸워오고 있다. 지난 99년 이후로는 이 싸움을 지리산권과 서부경남권으로 확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물전쟁’은 진행형이다.
이 물전쟁에 대한 해답은 오로지 ‘낙동강 수계의 인간과 자연의 생명공동체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4대강 특별법’에서는 하류도시민의 수돗세의 일부를 상류지역에 쏟아붇도록 되어있다. 이를 지금은 ‘개발’로 탕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재원을 상류의 ‘유기농업단지조성’ 및 ‘유기농산물 가공공장 확대’, ‘유기농산물 유통센터 확보’등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확보해 가야 할 때이다. 수계권을 중심으로 한 생명공동체복원(생명권확보)운동은 앞에서 제기한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광역화 시킬 수 있는 큰 매개체이다.
낙동강과 한강과 영산강과 금강유역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도시, 농촌대중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공간은 대도시와 농촌이라는 인위적 삶의 공간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생명권’이라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물의 순환과 삶의 순환이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을 통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는 사회를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것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초토대가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여 새로운 사회의 판은 시작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다.

5. 농업농촌문제를 통한 민중‧시민 그리고 생명운동의 연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운동권은 크게 나뉘어졌다. 소위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권이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화 시켜가기 위해 진영을 형성했다. 또한 90년대 이후 성장한 시민운동권이 ‘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크게 단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세력분활이 운동권의 분열로만 나아가고 있지는 않다. 사안별연대를 통해 꾸준히 그 관계성을 정립하고 있으며, 1년에 몇 번 정기적인 공동워크샾이나 토론회를 통해 연대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최근 농업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경험은 이 두 진영이 가지는 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2년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걷기’를 거치면서 전국의 여러 사회단체들과 대중들을 만났고, 그를 통해 ‘우리농업살리기연대’를 모색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정통적인 민중운동권은 전농을 중심으로한 30만명 대항쟁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시민환경단체들은 ‘전농의 전향적인 유기농업선언 ’만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생명운동가들이 노력했지만 우리들은 힘이 없었다. 그리고 능력이 부족했다. 2003년 이해경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인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 운동세력들은 이에 대하여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2004년 본격적인 쌀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운동진영의 공동대응은 효과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농촌과 농민문제는 생명운동권의 핵심주제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민중운동권과 시민운동권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는 것은 우리사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 갈 준비는 어디에도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생명운동권의 연대가 필요하다. 지금 생명운동권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존의 문제는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사회화의 제1단계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민중연대 - 시민연대 - 생명운동연대’의 3자정립 구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시도가 우리 생명운동권에도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운동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3자정립의 운동권 시대는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운동의 주제가 많아질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더 자주 모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09/07/08 12:20 2009/07/0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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