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과 동학, 그리고 생명평화



                                                                                                      박맹수(연구기획위원장)


*이 글은 2010416, 강원 원주시에서 있었던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현판식 기념 강연 내용을 필자가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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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83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 때 집사람이 80년부터 사북(강원 정선군 사북읍)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83년에는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부론중학교, 85년에는 원주 시내에 있는 학성중학교로 전근을 와서, 그때부터 저도 자연스럽게 강원도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5월 광주항쟁(1980)을 겪었습니다. 그 때 고급 정보를 취급하는 사단 사령부 벙커에서 연락장교로 근무를 했는데, 매일 새벽 6시에 사단장님이 출근하면 그 전날부터 새벽까지 일어난 일을 브리핑하는 게 주된 일과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나오는 커다란 지도(地圖) 앞에 서서 2미터 넘는 지시봉을 들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날짜별 시간대별로 브리핑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816월말에 제대(除隊)를 하고 나오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우리 국군이 정반대로 국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부터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국민을 학살하는 군대의 하수인 노릇을 한 제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819월부터 전북 익산시에 있는 원불교중앙총부에서 처음으로 교역(敎役)에 임했지만 마음은 늘 왜 광주학살과 같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왜 나는 그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던가하는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82년부터 삼동야학(三同夜學)’이란 야학교를 만들어 후배들과 함께 야학을 통한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학운동을 하면서 805월의 광주학살의 문제는 어떤 개인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및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광주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학운동을 병행하면서 1983년에 한국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문제의 근원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좌절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어 83년부터 본격적으로 동학(東學) 공부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1986년 봄에 연구자 중에서는 최초로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선생에 대한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하던 도중이었는데요.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교로 계셨던 최성현 선생으로부터 우연히 해월 선생과 동학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하시는 도사님 한 분이 강원도 원주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지요. 왜냐면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광주학살 때문에 충격을 받고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사회를 변혁(變革)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 때문에 모두들 동학혁명 최고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에 대해서만 주목하던 시절이었는데, 해월 선생을 좋아하신다는 도사님이 계신다니 저로서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사님 소식은 접했지만 어떻게 연락드릴 길이 없어 마음속으로만 기억해 두고는 그만 몇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원주에 내려갔더니 집사람이 무위당 선생님께서 참여하고 계신 어떤 모임에서 나온 소식지를 보여주더라구요. 그 때 저는 아 그렇구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염원하면 서로서로 기운이 통하여 만나게 되는 수가 있구나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소식지를 보고 바로 연락을 드린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때 무위당 선생님과 연락이 닿게 해 주신 분이 당시 천하태평이라는 식당을 경영하고 계셨던 선종원 선생님이셨습니다. 선 선생님을 통해 연락을 드리니 어디어디로 나와라하는 연락이 바로 왔습니다. 약속한 날, 약속된 장소로 나갔더니 박준길 선생님이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미리 와 계셨습니다. 선생님 댁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C도로 근처 2층 횟집으로 기억되는 데요. 생선회를 진수성찬으로 차려 놓고 미리 오셔서 저를 기다리시던 선생님을 처음 뵌 순간을 저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물으셨던 첫 질문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얘 맹수야! 넌 다른 놈들은 다 전봉준에 미쳐서 거기에 푹 빠져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해월 선생을 연구하게 되었냐?” 이 질문을 몇 번이고 저에게 물으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젊은 놈이 그 때의 시류(時流)와는 다르게 해월 선생을 연구한다는 말씀에 대단히 기분이 좋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제가 선생님 앞에서 말이 되는 얘기, 안 되는 얘기를 4시간 가량을 떠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다 들어주셨던 것이 저 뇌리 속에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고, 바로 그것이 선생님에게 사로잡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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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0:41 2011/05/1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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