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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18일, 2박3일동안 (사)한살림 문화공간추진단에서 마련한 생명사상 기행이 진행되었습니다. 한살림에서 활동하는 지역 이사장, 중견활동가, 실무자 등 15명이 참여한 기행에 새내기로 실무지원을 맡아 함께 다녀온 하만조 연구원이 정리한 후기입니다. |
일정: 2011년 6월 16일(목) ~ 18일(토) (2박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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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주요 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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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목) |
서울 출발 -> 괴산 청천 인농(박재일) 묘소 -> 솔뫼농장 점심 -> 상주 화서 하송리 높은터 -> 경주 구미산 용담정 -> 경주 1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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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금) |
경주 남산 -> 원주 무위당(장일순) 기념관 -> 저녁 모임 -> 원주 1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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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토) |
원주 소초 무위당 묘소 -> 호저 송골 해월(최시형) 피체지 -> 여주 천덕산 해월 묘소 -> 서울 |
이틀째 날이다. 오전에 둘러볼 곳은 두 군데인데, 한 곳은 경주 남산 협곡 마애조상군이고, 다른 한 곳은 칠불암과 마애불이다. 서양의 만다라문화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까지 와서 한반도의 동남쪽 끝인 경주 남산 전역을 뒤덮었는데, 그 때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가 마애조상군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공사중이었다. 사방에 불교 예술작품이 새겨져 있다고 하여, 뒤로 돌아서 올라가 보았다. 세 명의 부처님이 그려져 있는데, 오른쪽에 부처님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가만 보니, 바닥이 기울어져 있었다. 기울어진 바닥에서 똑바로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하고 참가자들이 추측을 해봤다. 그래도 맨날 똑같은 정 자세의 부처님만 보다가 조금 기울어졌을 뿐인데, 새로웠다.


이번에는 남산의 다른 편에 세워진 칠불암을 보러 이동했다. 경주 남산에 흩어진 마애불 가운데 가장 연대가 빠르다고 한다. 앞으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사방으로 마애불이 있고, 뒤에 큰 바위에 세 명의 부처가 있었고,
마애불 옆에 법당에서 행사를 진행하시는 비구니 스님은 통유리 밖의 칠불을 보고 절을 하고 있었다.


저 큰 바위에다가 부처를 하나도 아니고 일곱이나 새겨넣은 까닭이 뭘까? 바위와 돌에다가 그림과 글을 써 넣고 부처를 조각해 넣은 선조들의 가슴 한가득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그저 바위에 자기 이름 석자나 써 놓고 가는 오늘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 예술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조금 더 올라가니 마애불이 있다. 정상까지 올라가느라 땀 꽤나 흘린듯 하다. 문득 이번 기행에서 이곳 마애불까지 올라오게 된 이유가 무얼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김지하 선생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가진 화엄개벽의 첫 씨앗이 원효에게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했다던데...

경주 남산을 내려와서는 이제 원주로 출발했다. 원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의 강의는 끊이지 않고,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여기서 기억나는 이야기 한토막. 해월의 사상에는 자기 안에 우주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라고 한다. 어느날 해월 선생이 제자 서택순의 집에서 밤 늦게까지 베짜는 소리가 들리자, 제자에게 무슨 소리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며느리가 베짜는 소립니다’라고 제자가 답 하니, 해월이 하는 말 ‘저것은 한울님이 베짜는 소리’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해주었다.

원주에서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무위당 기념관. 무위당의 유품과 책, 그림이 가득한 이 곳은 평온한 기분을 준다. 김영주 무위당만인회 회장님과 이경국 (사)무위당사람들 이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며, 무위당과 동학 이야기를 해주셨다. 농민은 땅을 죽이는 사람이 아닌, 살리는 사람이고, 엄마는 가족을 살리는 사람이고, 농민은 도시의 자식들을 살리는 농사, 엄마는 가족을 살리는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원주에서 어떻게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에 의해 생명운동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특히 성경을 오랫동안 공부한 무위당이 걸어다니는 동학으로 불리우며, 동학의 말씀을 성경에 나온 구절을 통해 해설하면서, 사람들에게 동학에 대해서 알려주었다는 일화도 말씀해 주셨다.



이어서 이경국 이사장님이 무위당의 가르침에 따라 광산에서 협동조합운동을 조직한 경험을 얘기해주며, 박재일 전 회장과의 추억, 한 살림 처음 할 때 이야기, 장일순 선생이 한살림 운동을 했던 방법 등을 이야기해 주셨다.
1시간 가량의 두 분 선생님과 이야기 시간을 마친 후에 우리는 최정환 선생님의 '우리집을 못찾겠네'라는 음식점으로 갔다. 언제나 원주에 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어르신들이 항상 반갑게 맞아주고, 또 술병 들고 찾아와 한잔씩 권해 주신다. 마침 박영복 이사장님의 생신이어서 케익 짜르고 생일 축하 노래하고, 이게 또 이어져서 각자 돌아가며 노래 부르고, 합창도 하고... 오랜만에 유쾌한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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